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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곡,데오사이고원 바낙고개 답사
삼라만상의 변화가 명백해져 대기 그 자체는 생명과 노래로 가득 차며,
산들은 단순한 눈과 얼음과 바위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변하게 된다.
카라코룸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초창기 탐험시대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히말라야 저편의 산맥,
트랜스 히말라야(Trans Himalaya)라고 불렀었다.
그 중에서도 아스콜리는 카라코룸의 중심에 위치해 하늘 아래 첫 동네요
외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인간세상의 마지막 마을이었다.
인도의 스리나가르에서 걸어서 족히 한 달은 걸렸다.
지금에야 항공기와 지프 등 교통 편의로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틀이면 들어갈 수 있고,
여름에는 원정대와 트레커로 넘쳐나 더 이상 오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다섯 빙하에 6,000m급 3개봉 숨은 호계곡
발토로 빙하의 콩코르디아를 다녀오는 중이라는 포터들이 막 게스트하우스를 들어선다.
빙하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왔다는 포터는 18일만에 무사히 마을로 돌아온 안도감으로 연신 싱글거린다.
따라 들어온 가이드 마쓰모도(38)는 올해 이 코스의 마지막 팀이라 말하는 표정에 힘들었음이 배어 나온다.
2003년 9월30일, 그럴 만한 날짜다.
젊은 마쓰모도와 달리 한참 후에 나타난 3명의 고객은 64, 72, 76세의 일본인 할머니들이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놀랍도록 생기가 넘쳐난다.
지도 없이 넓은 고원의 고개를 찾을 수 있을지 약간은 막막하다.
틀라싱스팡에서 앞쪽 계곡으로 들어가면 바낙고개, 왼쪽이 알람피고개로 향한다.
“비록 히말리야를 보지 못하고 생각만 한 사람일지라도
카시(인도 평원의 순례성지)에서 수없이 경배를 드린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나는 히말라야의 영광을 다 말할 수 없다.
아침 햇볕에 이슬이 마르듯 히말라야를 봄으로써 인간의 죄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힌두 경전 스칸다푸라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생각뿐만 아니라 직접 그 모습을 바라본 할머니들은
평화로웠고 걸었던 빙퇴석의 거칠고 힘들던 고통 따위야 아랑곳없다는 내색이다.
그들이 히말라야를 찾아간 길은 트레킹이 아닌 느지막한 고행의 길이 아니었을까.
산사(山寺)를 가끔 찾아가는 일흔의 노모가 마음속에 찾아든다.
멋진 여행의 답으로 스카르두에서 직접 담근 김치 한 접시를 그녀들의 식탁에 바쳤고,
감자와 닭고기 튀김이 수북이 돌아왔다.
이번에 내가 걷고자 하는 루트는 스카르두에서 아스콜리까지 차량이 다니기 이전에
브랄두(Braldu) 강 협곡 사이로 연결되는 옛길을 찾아 닷소(Dasso)까지 되짚어 내려가고자 한다.
도중에 북쪽의 호 계곡(Hoh Lungma)으로 들어가 숨겨진 봉우리도 찾아볼 생각이다.
스룽고 마을은 작다. 버드나무 밑에서 노인이 낫을 만들고 있다.
양가죽으로 만든 두 개의 공기주머니로 아들이 풀무질하고,
벌겋게 타오르는 숯에 못쓰게 된 쇠를 달궈 두드리고 굽혀 어렵지 않게 한 자루를 완성한다.
추수가 끝나서 조용하다.
이 마을에 사는 유수프(Yusuf)는 한국원정대에 고용된 적이 많아 꽤나 잘 사는 형편이다.
그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발티(Balti)족이 사는 지역에서 다리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폭이 좁은 냇물을 건너는 곳은 통나무 서넛을 나란히 걸쳐 만들고,
큰 강물을 건너 연결하는 다리는 굵은 로프로 만든 축잠(Chookzham)이다.
근래에 모든 다리가 와이어 브리지로 대체되는 바람에 가는 곳마다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반세기 이전으로 거스르는 탐험 사진에나 나오는 이 다리가 강 건너편 시노(Sino) 마을에 있단다.
많은 유량의 브랄두 강물은 단 1~2m의 매끈한 바위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먼저 브랄두 강을 건너는 곳에 30m 와이어 줄 하나에 한 명이 간신히 올라앉을 사각형의 두레박이 하나 덜렁 매달려 있다.
중간쯤에서 줄이 축 늘어지자 삐걱거리며 돌지 않던 도르래로 더 진행하지도 되돌아오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원주민들은 보조줄을 이용해 반대편에서 당겨주는데 혼자 낑낑거리며 팔이 더 이상 줄을 당길 힘이 없을 때
겨우 반대편에 도착해 널브러졌다. 고장난 도르래를 고치지 않은 주민을 탓한다.
시노 직전 냇물 위에 축잠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길이는 20여m로 훌륭한 작품이다.
과거엔 50m가 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몇 번을 되 건너며 그 축조방법을 세세히 관찰한다.
한국의 짚으로 꼬는 새끼줄은 두 가닥이고,
두터운 동아줄은 세 가닥으로 트는 것과 달리 가장 기본이 되는 줄은
자작나무 생가지를 여러 개 겹쳐 뒤틀면서 네 가닥을 번갈아 꼬았다.
그리고 이 줄 아홉을 겹쳐 엮어 발판 줄을 만들고 기본 줄 여섯을 꼬아 양쪽 손잡이 줄 둘을 만든다.
양안에 각각 네 개의 기둥을 박아 돌을 쌓고 세 줄을 고정시켜 V자 모양으로 기본 줄을 50cm 간격을 유지해 죽 묶었다.
버드나무보다 자작나무을 쓴 것은 이곳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또 나무 자체에 유분을 포함하고 있어 잘 썩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파키스탄 북부 산간지역에 남아 있는 마지막 축잠인 것 같다.
총고(Chongo)에서 곰보로(Gomboro)까지 이어지는 협곡은 아직도 지질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산사태로 먼지가 피어오른다.
강 북안으로 난 옛길은 사태로 유실되어 하는 수 없이 남안으로 난 지프도로를 따른다.
여기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마치 땅이 움직여 흔들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절벽 밑에는 유황온천이 흘러나와 누런 색깔을 띤다.
잿빛 강물은 바윗돌을 품어 격류를 이루며 무시무시하게 흐르다 한 지점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그 많은 유량이 단 1~2m의 매끈한 바위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그 위에 통나무다리가 걸쳐진 길은 다시 이어진다. 자연의 오묘함이다.
호 룽마(Hoh Lungma)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는 차포(Chapo·2,600m)와 호(Hoh) 마을을 가르고 있다.
테라스 위 관계수로에 의해 물이 공급되지 않는 그대로의 사면은 적갈색의 황량함 그 자체다.
호 계곡의 좁은 입구는 반나절만에 계곡이 짧게 끝날 것 같고,
눈과 빙하로 덮인 고봉이 있다고 추측하기엔 힘들지만,
그 원류에는 다섯 개의 빙하와 소스분브락(Sosbun Brakk·6,413m)을 포함해
3개의 6,000m급 암설봉이 솟아 있다고 지도는 말한다.
초겨울, 날씨는 더없이 좋다. 맑은 하늘에 솜사탕처럼 뭉게구름이 떠 있다.
10월3일 오후에 서안으로 벤 밀밭 둑을 걷는다.
뒤쪽에서 남자 두 명이 “혼자 가면 안 돼!”라고 소리치며 따라온다.
냅다 달려 첫 번째 언덕을 올라 꽁무니를 뺀다.
목동들이 이용하는 길은 순하고 부드럽다.
가끔 언덕 사면에 단풍이 든 자작, 버들, 야생 장미숲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샘물이 졸졸 흘러나와 갈증을 달래준다.
훌리나탑사(Hulina Tapsa·3,145m)로 오르는 절벽 길에서 계곡은 그늘을 드리운다.
가쁜 숨을 고르며 되돌아본 코세르군게(6,401m) 정상을 흰 구름이 둥글게 감싼다.
호 빙하 내원의 눈의 세계. 왼쪽이 간첸(6,462m),
오른쪽 봉우리가 미답의 힉물(약6,300m)이다.
5시간의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도착한 페르마(Perma·3,385m)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양치기 집이 반긴다.
남쪽으로 향한 둔덕에 가축 분료가 쌓여 있고,
10여 채 돌집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우르르 나온다.
우유로 저녁과 아침거리를 기대했는데 아쉽게 팔지 않는다.
텐트 위로 반달이 떠오르고 빛을 받은 설봉은 파르스름 삭발한 머리를 닮았다.
툭 치면 우르르 쏟아질 듯 별이 반짝인다.
기온은 2℃로 곤두박질쳤다. 매일 흐른 땀을 씻어내야 다음날 상쾌하게 출발하는데,
추워서 간신히 발을 닦고 고양이 세수를 한다.
다음날은 여유 있게 산등성이를 넘어 약간 고도를 낮추면서 분지 모양의 평원으로 들어간다.
갈색으로 바랜 낭마탑사(Nangmah Tapsa·3,319m)의 풀밭에는
검은 색 야크와 소가 눈을 스르르 감고 따사로운 햇살을 즐긴다.
주위에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푸른 하늘빛과 대비를 이뤄 산뜻하다.
급히 서두를 것도 없고 복잡함도 없다.
그저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 산들을 바라본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변화하는 이곳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빙하로 오르는 사면에 눈이 쌓여 있다.
2시간을 올라 큰 바위가 쩍 갈라진 곳에 닿았다.
사위를 조망하는 좋은 자리다. 능선이 아우른 눈의 세계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과 빙하 하나 하나에 눈맞춤을 한다.
소스분 산군은 남쪽의 브랄두 강, 서쪽의 바샤(Basha) 강,
동북쪽의 비아포(Biafo) 빙하 안쪽의 산군을 말하고,
지금 서 있는 곳은 산군의 중앙으로 소스분 빙하를 비롯해 다섯의 작은 빙하가 합류해 흘러내린다.
이 내원의 첫 탐사는 1899년 미국인 워크맨(F. B. Workman) 부부가 행했으며,
4년 후 다시 들어와 소스분 빙하 원두까지 탐험했다.
정확한 지도작업을 위해 1937년 바샤계곡의 비실(Bisil)에서 힉물 고개(Hikmul Pass)를 넘어 들어온
영국인 틸만(B. Tilman)은 ‘톱니 모양의 첨탑이 왕관 모양을 이룬 완고한 바위벽’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등반은 표고가 낮은 탓에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됐다. 간첸(Ganchen·6,462m)이 78년,
소스분브락이 81년에 각각 일본팀에 의해 등정됐고,
깨끗한 3개 암봉이 벽을 이룬 소스분타워(Sosbun Tower·약 6,000m)는
89년 프랑스팀이 오버행진 동벽을 시도해 어려운 등반을 펼쳤으나,
부서지는 암질과 그에 따른 낙석, 기후의 불안정으로 정상 근처에서 내려온 기록이 있다.
간첸 북쪽에 위치한 힉물(Hikmul·약 6,300m)은 미답으로 남아 있다.
차포 마을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닷소까지 내려가는 도로는 내년 K2 초등반 50주년으로 찾아올 많은 방문객을 위해 도로정비가 한창이다.
아스토르로 향하는 파리싱 계곡의 통나무집은 지붕이 삼각형에 발코니가 있는 카시미르 양식을 닮았다.
데오사이고원의 초원지대 바낙고개
스카르두에서 인도의 스리나가르로 연결되는 옛길은
인더스 강을 거슬러 올라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지 고개(Zoji La)를 넘어가는 루트와,
데오사이(Deosai) 고원을 횡단하는 루트가 있었다.
또 데오사이 고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세 루트가 있는데,
부르기 고개(Burgi La·4,815m, 알람피 고개(Alampi La·5,030m), 바낙 고개(Banak La·4,964m)를 각각 넘는다.
스카르두에서 낭가파르밧(8,125m)까지는
차량으로 이틀이 소요되어 차라리 바낙 고개를 이용하면 낭가의 관문인 아스토르까지 나흘이면 충분할 것 같아 걷기로 한다.
텐트와 취사용 스토브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호사스럽게 느껴지고 번거롭다.
대신 2×3m 비닐로 이슬을 가리고 취사용 연료는 마른 나무와 야크똥으로 해결하면 된다.
식량은 준비한 약간의 밀가루로 빵을 굽고, 우유는 목동에게서 얻어 마실 생각이다. 만나지 못하면 굶고
지도 없이 넓은 고원의 고개를 찾을 수 있을지 약간은 막막하다.
스카르두에서 길기트로 가는 포장도로를 서쪽으로 30km 달려 카추라(Kachura) 호수 앞에서
히치하이킹으로 타고 온 차에서 내려, 시가르탕 계곡(Shigar Tang Lungma)으로 들어선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세차게 떨어지던 계곡물은 조금 더 오른 촉(Tsok·2,500m)에서
하안을 넓게 잡아 한숨 돌리며 미리 준비하고 있다.
더운 여름 하계 휴양으로 찾아온 라호르의 한 가족이 물놀이 삼매경이다. 2004년 7월25일이다.
후끈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온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가끔 지나치는 버드나무 그늘과 물을 스친 바람은 쉬어가라 유혹한다.
새로 산 가죽 중등산화가 편하지 않다. 벌써 뒤꿈치에 물집이 잡혀 쓰라림으로 땀은 두 배로 흐른다.
오후 6시에 쿰부스탁찬(Khumbu Stakchan)의 묘목 조림지 옆 노간주나무 밑에서 운행을 마쳤다.
고요한 밤에 뻐꾸기 소리가 애달프다.
보리밭이 넓은 스탁찬 마을은 이 계곡에서 가장 큰 마을로, 티벳족에 발티어를 쓴다.
반면 시가르탕 주계곡과 다리 계곡(Dari Lungma)이 만나는 마지막 마을
시가르탕(3,280m)은 발티족 사람인데 카시미르어 계열인 시나(Shina)어를 사용한다.
이들을 스카르두 사람들은 ‘고원에 사는 사람’이란 뜻의 브록파(Brok Pa)라고 부른다.
아낙네들이 겨울철 가축에게 먹일 건초를 만들 풀을 베고 있다.
외지인에 대한 호기심에 쳐다보면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면 부른다.
알람피 고개와 바낙고개 사이에 오른, 무명의 고개에서 본 우르둥 계곡.
시가르탕에서 계곡은 서쪽으로 접어든다.
유순한 양쪽 사면에는 꽃들이 지천을 이룬다.
꽃봉오리를 밟지 않고는 어디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들다.
흰 눈이 흩뿌려져진 듯하고, 점점이 노란 민들레가 꽃대를, 아이리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아! 천상의 화원이다. 눈의 거처(Abode of Snow) 히말라야가 품은 이곳은 꽃들의 거처(Abode of Flowers)다.
배낭을 풀어놓고 카페트 같이 푹신한 꽃밭에 드러누웠다.
매콤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낮은 고도에서 무력감과 노곤했던 몸은 새로운 생기를 찾는다.
시가르탕에서 10km 오른 지점에서 서북서쪽과 남서쪽으로 계곡은 둘로 갈라진다.
목동들 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틀라싱스팡(Thlashing Spang·3,650m)인 것 같다.
서쪽 계곡에서 일본인 중년 부부가 내려온다.
이들은 바쇼 계곡(Basho Lungma)을 거쳐 낙포남술 고개(Nakpo Namsul La)를 넘어왔다고 했다.
낮은 5,000m급의 산들 사이로 많은 지계곡 중에
어디로 들어가야 바낙 고개로 이어지는지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예측은 쉽지 않다.
1931년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의 카메트(Kamet·7,756m)를 초등한 후
되돌아오던 길에 숨겨진 분다르 계곡에서 프랭크 스마이드(Frank S. Smythe·1900-1949)는 비경을 본다.
바로 꽃들의 계곡(The Valley of Flowers)였다. 스마이드는 같은 이름의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느끼는 이러한 힘은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낌을 찾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을 차단하므로 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삼라만상의 변화가 명백해져 대기 그 자체는 생명과 노래로 가득 차며,
산들은 단순한 눈과 얼음과 바위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허약한 상상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조자와 합일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서쪽의 주계곡으로 방향을 정한다.
표고가 상승하면서 계곡은 좁아지고 꽃들의 색깔은 흰색, 노랑, 분홍에서 보라빛, 푸른 빛으로 바뀐다.
또 잎은 바닥에 붙고 꽃대도 없이 꽃이 피어있다.
도중에 만난 노인에게 “바낙 라, 아스토르”라고 하자 무조건 위쪽으로 손짓한다. 다행히 우유를 얻었다.
“슈크리아 메르바니.”
하늘을 지붕 삼아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끝없이 나타나는 계곡으로 들어간다.
또 하나의 목동집이 있다. 야크털로 실을 잣던 그들은 그곳을 마앗(Maat·4,150m)이라고 불렀고,
아스토르 방향을 가르킨다. 고개를 넘지 못했는데 구름이 몰려와 흐려질 모양이다. 발걸음이 급해진다.
아스토르 닿자 천상의 화원 추억 아련해져
오목한 분지에 오래 전 사용했을 원형 돌담이 무너진 채 있다.
고개를 넘기 전 베이스캠프로 이용한 흔적일 것이다.
바라보이는 안부를 목표로 잡석지대를 오른다.
마앗에서 3시간 반, 설사면을 헤치고 커니스가 진 설릉에 도착했다.
고도계가 4,560m를 가리킨다. 사진에서 보았던 바낙 고개는 아니다.
엉뚱한 고개를 오른 것이다. 그럼 어제 일본인 트레킹팀이 내려오던 그 계곡이 옳은 길일까.
안부 반대편 500m 내려선 곳에 표면이 얼어 붙은 빙하호수가 보이고,
구름 사이로 낭가파르밧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진다.
설사면을 스키 타듯 글리세이딩으로 미끄러지고 잡석지대를 이리저리 건너뛰어
다시 야생화가 무릎까지 자란 사면을 걷는다.
우르둥 계곡(Urdung Gah)이라면 이 계곡은 여러 지류와 만나 파리싱 계곡(Parishing Gah)으로 이름을 바꾸고,
아스토르 마을 근처에서 아스토르 강과 만날 것이다.
도대체 어느 계곡에 들어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바위에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휘어 비닐을 덮어 터널을 만들었다.
오늘 잠자리다.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잔뜩 찌푸린다.
다음날 새벽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새들은 물을 찾아 냇가를 날고 나는 찻물을 뜨러 냇가를 찾는다.
첫 목동을 만나고서야 드디어 이곳이 파리싱 계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미끈하게 솟은 아름드리 삼나무숲 계곡을 빠져나간다.
고개 이 편부터는 이제 여름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비가 내린다.
곳곳에 많은 나무들이 밑둥치가 잘려 있다.
최근 값비싼 목재를 훔쳐 가는, 총기까지 휴대한 벌목 도적떼들(Timber Mafia)로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머지않아 몇 백 년 자란 나무는 금세 사라질 것이다.
강물 위로 자른 원목이 줄지어 떠내려가고 있다.
스카르두쪽에 돌로 벽을 쌓고 평평한 지붕의 집들은
고개를 넘자 목재로 지은 지붕이 삼각형에 발코니가 있는 카시미르형 주거 형태로 바뀌었다.
내가 넘은 안부는 바낙 고개와 알람피 고개 사이의 이름 없는 고개였다.
고도를 낮추어 사람이 북적거리는 아스토르 바자르에 도착하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천상의 화원에서 보낸 나흘은 이내 아련해지고 이젠 코끝에만 남았다
숨겨진 호 계곡& 데오사이 고원 바낙고개
호 계곡만을 목표로 하기에는 코스가 짧아 발토로 빙하나 비아포 빙하 트레킹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시즌은 6월 중순에서 9월까지.
바낙 고개는 데오사이 고원을 가로지르는 꽃밭길이 인상적이다. 만개하는 8월이 적기다.
두 코스 모두 개방지역으로 허가서는 필요 없고,
다만 호 계곡으로 진입하기 전 닷소의 군 검문소에서 공인된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으면 스카르두로 돌려보낸다.
스카르두~닷소 구간은 시가르까지는 포장되어 있고 이후로 비포장이다.
스카르두의 나야바자르(Naya Bazar) 후사이니촉(Hussaini Chowk)에서 오후 1시에 왜건이 출발하며,
다음날 아침 7시 닷소를 떠난다(2시간30분 소요, 운임 90루피).
닷소 이후의 마을로는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세지프를 이용해 호 마을까지 바로 가는 것이 좋다(대여료 2,000루피).
스카르두~스탁찬 구간은 대중교통은 없어 지프를 대절해야 한다(약 1,500루피).
장비·식량은 스카르두나 아스토르에서 준비한다.
바낙고개 운행 일정
통상 6일 행정인데 최근 지프도로가 개설되어 5일 일정이 적절하다.
제1일
스카르두(2,400m)~스탁찬(3,000m)~시가르탕(3,280m) 4시간 소요, 1280m 등고.
지프로 2시간을 달려 스탁찬에 도착해 도보로 2시간 거리의 마을에서 야영한다.
제2일
시가르탕~틀라싱스팡(3650m) 4시간 소요. 370m 등고. 꽃들을 즐기며 냇가를 걷는다. 식수 양호.
제3일
틀라싱스팡~우르두카스(Urdukas·3,962m) 6km, 4시간 소요. 312m 등고.
가파르고 잡석지대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수목한계선이 야영터다.
제4일
우르두카스~바낙 고개(4,964m)~추믹(Chumik·3657m) 14km, 7~8시간 소요.
고개는 얼음빙하의 크레바스가 벌어져 스노브리지를 이용하여 건넌다. 로프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제5일
추믹~구툼사르~아스토르(2,450m) 6시간 소요.
호젓한 전나무, 삼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고개 양쪽의 사람과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호 계곡 운행 일정
제1일
호(2,600m)~낭마탑사(3,310m) 6시간 소요. 710m 등고.
운행 중 곳곳에 샘물이 있다. 낭마탑사는 넓은 초원과 맑은 식수로 최적의 야영장.
제2일
텐트는 그대로 두고 빙하로 올라 산군을 조망하며 하루를 보낸다.
제3일
호 마을로 되돌아온다.
김창호 쎄로또레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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