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비담론-2 휴비(休否) 표제 그림 ‘세한도(歲寒圖)’에 대하여

[鶴田]

휴비(休否) 표제 그림 ‘세한도(歲寒圖)’에 대하여

휴비 담론의 표제 그림(원그림 크기 ; 23cm x 69.2cm)은 조선조 헌종 10년(1844)에 추사(秋史)로 더 많이 알려진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 1786~1856)가 역관(譯官)이었던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것입니다. 그림의 오른편 위쪽으로 ‘歲寒圖’라는 제목이 있고, 그 왼쪽에 세로로 ‘藕船是賞’(우선, 감상하시게나)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림의 내력을 아시는 분이라면 ‘우선시상’이란 말에 가슴 뭉클하며 사제간의 의리가 진한 감동으로 잔잔히 전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옆으로 소나무와 잣나무, 초가집, 다시 잣나무의 그림이 이어지고, 윗 그림에서는 담아내지 않았으나 왼편으로는 이상적에 대한 완당의 고마운 마음이 절절히 스며들어 있는 발문이 적혀 있으며, 마지막으로 ‘阮堂老人書’(완당노인 쓰다)’라 하고 낙관이 찍혀 있습니다. 굳이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 ‘세한도’는 완당의 최고 작품이자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그림입니다.

발문에서 완당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歲寒然後(세한연후)에야 知松柏之後凋也(지송백지후조야)ㅣ니라’(추운 때가 온 뒤에야 송백이 뒤늦게 시듦을 안다)하는 말을 인용하고, 여기에서 화제(畵題)까지 땄습니다. 염량(炎凉)세태 속에서도 항상 의리(義理)를 잃지 않고 연경에 갈 때마다 귀한 책들을 사서 멀리 제주도까지 보내주고 더욱이 총120권 79책의 ‘皇朝經世文編’(황조경세문편)이라는 책까지 구해 보내준 이의 그 지극한 정성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완당의 최고 역작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빡빡한 갈필(渴筆)로 그려낸 그림을 잘 살펴보면 권세와 이익을 좇아 휩쓸리는 염량(炎凉)세태 속에서도 지고한 의리를 잃지 않는 우선의 행실과 마음을 담아내고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는 완당의 이상향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네 그루의 송백이 있고, 초가집이 한 채가 있습니다. 네 그루의 송백(松柏)은 사시사철 변화에도 늘 푸르름을 잃지 않는 이상적의 지고한 마음 바탕을 표현했을 것이고 그러한 마음을 가진 이상적이야말로 초가집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지극한 순리(順理)를 실천해가며 사는 선비로 표현한 듯싶습니다.

좀더 부연설명하자면 송백 네 그루를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왼편의 큰 나무 하나는 소나무입니다. 밑둥은 굵으면서 텅빈 듯하다가 위에 올라가서는 두 가지로 나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텅빈 듯한 무한 광대의 태극에서 양의(兩儀, 음과 양)가 나오는 이치를 나타낸 것입니다. 나머지 잣나무 세 그루는 천지인 삼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가집의 전체 구도를 보면 둥근 원과 네모, 세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과 네모는 하늘과 땅을 뜻하며, 세모는 천인합일(天人合一) 곧 천지인 삼재에 귀일하려는 지극한 삶의 자세를 나타낸 것이며, 들고 나는 문의 형상 또한 열려진 것으로 표현했는데 깊이 들여다보면 둥근 원이되 일월(日月)의 상으로 표현했으니 한번 낮이면 한번 밤이 되는 음양의 순환 이치이자 대도(大道)의 이치를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귀양살이를 한탄하면서 세상을 원망했을 터인데 완당은 '완성'을 향한 용맹정진의 기회로 삼아 마침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간결하면서도 거친 붓놀림이 지나간 자리에서 완당의 청신(淸新)한 정신과 고고한 기품이 뿜어져 나옴을 함께 감지할 수 있을겁니다. 이런 그림이야말로 일찌기 노자가 말한‘大道無門’(대도무문)의 경지가 아닐까요?

휴비 담론의 표제 그림을 ‘세한도’로 정한 까닭은 위에서 열거한 여러 이치를 담아내려고 한 것입니다.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움직인다(至誠感天)고 하였습니다. 세태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개인의 비색한 것, 우리 사회의 비색한 것, 현대 문명의 비색한 것들에 대해 제가 가진 역량은 매우 미미하겠지만 천인합일의 지극한 정성으로 풀어내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