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바코드, YES 로컬푸드!
-시골오일장에 가면 '한울살림'이 보인다.
남원의 오일장이 서는 공설시장은 일터가 있는 광한루 서문으로부터 걸어서 약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다.
토요당번이라 혼자 근무하고 있었지만 '장구경', 특히 시골 전통 오일장의 유혹은 '참기 싫은' 것이어서
아침에 출근해서 매장을 오픈해 놓고는 출입문에 '잠시외출중'의 푯말을 걸어놓고 과감히 근무지를 이탈하여
장터로 내쏘고 말았다.
지난 장날, 우연히 짠지를 사서 먹으며 깊은 감회에 빠졌던 경험을 간직한 나는 오후에 늦게 갈 경우 혹시라도
짠지는 물론, 오일장에서 살 수 있는 각별한 물품들을 놓치게 될까 저으기 걱정한 나머지 달뜬 마음이 발걸음을
서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지역에 살면서 이렇게 아침무렵 부터 장에 간 적은 처음이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의 펄떡임과도 같은, 살아 숨쉬는 생생한 장터의 기운을 내심 욕망했는지도 모른다.
과연 물건들을 푸지게 늘어놓고 판을 벌여놓아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한 장터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 처럼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포만감에 들뜬 나는 다소 흥분하여 장터의 곳곳을 빠짐없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 관심과 눈길과 발길을 잡아끄는 것은 시골 노인들이 직접 농사 지어서 이고 지고 나온 푸성귀들이다.
간혹 운 좋게(정말 운 좋게) 그들이 만든 각종 발효식품이나 저장식품 등, 가공식품류를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무조건 지갑을 열고 그것들을 사곤 한다.
나의 애착은 시골 곳곳에서 유구히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재래 먹을거리나 전통식품에 거의 편집증에 가깝게 밀착해 있기도 한 때문이다. 길들여진 입맛, 익숙한 먹을거리로 확인하는 민족적 정체성! 나는 어쩔 수 없는 조선사람, 한국사람인 것이다.
가게문까지 잠가놓고 일찌감치 간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장터를 꼼꼼히 시찰한 결과, 딱 두군데서만 만날 수 있었던 짠지와 오이지 장수 할머니.
짠지를 갖고 나온 할머니는 저온저장고에 보관했던 짠지를 아침에 나올 때 열 댓개 쯤 갖고 왔는데, 그 새 다 팔리고
작은 것 네 개가 남았다며 떨이로 2천원에 전부 갖고 가라며 내 앞으로 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할머니댁에 짠지가 얼마나 더 남았는지 여쭈었다. 다음 달 부안의 한울살림연대 모임에 갈 때 갖고 갈 수 있을까 해서였다. 다행히 할머니댁의 저온저장고에는 앞으로도 한 동안 내다 팔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짠지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
짠지말고도 같은 염장 발효음식인 오이지를 만날 수 있었다. 여름철 밥반찬으로 이 오이지 만한 것도 없다. 소금믈을 팔팔 끓여 생오이에 그대로 붓고 독에 꼭꼭 눌러담아 저장해야 하는데, 간단한 방법처럼 여겨지지만 실패없이 만들기가 그리 쉽지 않다. 소금의 농도를 잘 맞추지 않으면 오이가 뜨고 무르고 맛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매우 숙달된 선생님을 통해 비법을 전수 받거나 오랜 시간 시행착오 끝에 내공을 쌓아야만 짭쪼름하면서도 꼬들꼬들 맛있는 오이지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원래 오이지는 여름 장마철이 되기 전 장만하는 계절 절임음식이다. 입추가 지난 지 한 달이 다 되고 처서까지 지났건만 기상이변으로 여전히 늦더위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지금, 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기에도 딱이긴 하다.
짠지와 오이지를 사고 느긋한 마음으로 장을 둘러보면서 추가로 산 물품들을 공개한다.
옥수수 수염. 역시 시골의 할머니가 직접 말려서 내온 것인데, 이물질이나 티끌 하나 없이 깔끔히 잘 말린 듯해 보이길래 현재 투병중이신, 우리 시대의 어떤 양심있는 지식인이며 실천가이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선뜻 샀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을 잘 모르지만 우연히 옥수수 수염을 구하고 계신 사정을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이다.
그리고 진짜 시골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식품인 말린 도토리묵도 한 봉지 샀다.
이름만 알았지, 한 번 도 먹어보지 못 한 것이라 아주머니께 요리법을 물었더니, 물에 불렸다가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장도 치고 물엿도 넣고 깨소금도 넣어 들들 볶아먹으면 된다고 해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발동해서 5천원이나 하는 거금을 들여 샀다.
어제 장에도 역시 채소 난전판의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짠듯이 고구마순의 줄기를 까고 계셨다. 보통 가정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고구마순 한 단 정도를 장만한다고 할 때, 그 정도를 일일이 손으로 까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건만 시장의 장삿꾼들은 산더미만하진 않더라도, 보통사람 같으면 충분히 질리고도 남을 만한 어마어마한 양의 고구마순 줄기를 저렇게들 종일 꾸부리고 앉아 까고 있는 걸 볼 때면 경이로운 기분까지 들곤 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손놀림을 유심히 쳐다보자니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술이 뛰어나다. 줄기의 끝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의 엄지 손톱을 이용해 껍질을 일거에 벗겨내는 솜씨 역시 달인의 경지에 이를 만 하다. 게다가 그 빠른 손놀림으로 줄기 하나 벗겨내는 데 3초도 안 걸리지 싶다.
세상에나,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비녀를 꽂아 쪽 진 머리를 하고 앉아 고구마순 까기에 여념이 없던 한 할머니가 물건을 흥정할 체도 않고 구경만 하는 나를 흘깃 올려다보며, "애기어머이, 고구마순 갖다 김치 담가 보가니?" 하고 은근한 종용을 하자, 또 다시 홀린 듯 지갑을 열고 말았다. 매끈한 가래떡처럼 말끔하게 껍질을 깐 고구마순 한 단을 2천원에 샀다. 가격에 비해 단도 푸짐하고 내가 좋아하는 짚끈으로 묶은 점이 또한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고, 근무시간을 도둑질 해서 나온 장구경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나는 이 정도 쯤에서 그만 발걸음을 돌려도 되겠다 여기고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와 일터가 있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건만, 아, 떡장수 아줌마! 방앗간의 기계로 뽑은 '영혼 없는 '떡'이 아닌 진짜 손으로 반죽을 치대고 주물러 꼼꼼히 빚은 오리지날 떡장수의 손떡 앞에서 또 한 번 눈길, 발길을 뺏기고 멈춰서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개피떡, 일명 바람떡이라고도 하는. 먹을 거리가 귀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장에 나가면 의례히 어머니를 졸라 얻어 먹곤 하던 떡장수의 손맛과 혼이 배인 진기 가득한 진짜 떡.
심술보 가득한 듯, 자기가 만든 넉넉한 떡살처럼 푸짐한 볼살을 가진 아주머니가 목판에 떡 반죽 그릇과 삶은 팥 새알심이 가득 담긴 그릇을 올려놓고 개피떡을 만들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떼어 손으로 치대고 주물러 손바닥 같이 넓적하게 펴서는 대추알 크기 만큼 새알심을 만든 삶은 팥을 속으로 넣고 주전자뚜껑으로 모양을 찍어내자, 마술처럼 개피떡이 만들어졌다.
쑥을 넣은 쑥개피떡과 멥쌀로만 빚은 흰개피떡, 참기름까지 발라 윤기가 자르르, 두툼한 떡살에 찍힌 뚜껑 자국은 투박하면서도 고집스런 정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요즘 방앗간에서 만들어낸 떡과는 비교할 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손으로 치댄 쫄깃쫄깃한 떡반죽은 물론이요, 통팥을 삶아 대충 으깨 섞어 만든 알심이 구수한 맛을 뽐낸다.
방앗간이나 시중의 판매되는 떡들의 팥앙금이란 전부가 공장에서 만들어져 대량으로 깡통에 담겨져 나온 것들이다. 이렇게 나온 팥앙금이 찐빵이나 찹쌀떡, 도너츠 등, 각종 먹을거리에 무차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두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정성' 운운하며 한가롭게 고상을 떠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치가 되겠다. 각종 유해한 화학 첨가물 가득한 '깡통의 비밀'을 생각하면 한 없이 아찔해 진다.
태생이 촌에서 나고 자란 촌년이라 촌스럽게 생긴 데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것도 촌스러운 것들만 좋아하며, 앞으로도 더욱 더 촌스럽게(사실 인류의 미래는 이 촌스런 삶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살고자 하는 '촌스러움 지상주의자'인 내가 촌에서 살며 촌에서 만나는 오일장에 구경갔다가 촌스런 물건들을 잔뜩 사갖고 왔길래, 사진으로라도 구경 한 번 하시라 글을 시작했다가 이렇게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요딴 촌스러움 폴폴 풍기는 글을 <한울살림연대>하고도 '살림살이 터' 코너에 올리는 것이 과연 합당하더란 말인가?
글의 말미에 던져보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왜냐 하면 내가 산 아래 사진의 물품들이야 말로 '자본이 찍은 낙인과도 같은 바코드' 없는, 순결한 물품 들인 것이며,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구현하는 지산지소, 진정한 '로컬푸드'이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대양과 대륙을 넘어오느라 버려진 연료와 에너지의 소비로부터도 자유로운 어떤 의미에서 '친환경적' 물품 들인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와 정겨운 오일장 문화 전통이 건재함을 확인시켜준 참 기특한 물증이기 때문이다.
고로 본 게시물은 '살림살이 터'에 매우 적합한 게시물이며, 이러한 소비 유형이야 말로 한울살림의 모범 실천사례임을 대놓고 주장하는 바임.
이상 하얀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뚜란이었습니다.
첫댓글 짝짝짝~ 잘올리셨어요 뚜란님! 저 쫀득하게 생긴 쑥개피떡이라 읔 침고인당(떡보의 한마디) 서울사람들은 고구마순 김치 잘몰라요. 색깔보니 참말 맛깔나게 잘 담으셨네요. (누가 중매좀 서요) 울친정엄마 고구마순 김치도 정말 맛났었는데. 고거 된장넣고 자작자작하게 지져 먹어도 밥두그릇 뚝딱이지요.^^
우와아 ~ 남원 오일장을 그대로 들어다 놨네요~혹시 뚜란님 뚜란에 장계목암촌집을 그대로 들어다 옮겨 놓지는 않았나요????하얀고무신꺼정ㅎㅎ
사진 하나하나 디더링,보정 하느라 애 썼습니다. 더욱 빛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