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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Henri Rene Albert Guy de Maupassant 1850 ~ 1893)
노르망디의 미로메닐 출생. 12세 때 부모가 별거하자, 어머니 밑에서 문학적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공부를 시작하였으나,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지원 입대하였다. 전후에 심한 염전사상(厭戰思想)에 사로잡혔고 이것이 문학지망의 결의를 굳히는 동기가 되었다. 1872년 아버지의 도움으로 해군성 ·문부성에 취직,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의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G.플로베르에게서 직접 문학지도를 받았다. 1874년 플로베르의 소개로 E.졸라를 알게 되었고, 또 파리 교외에 있는 졸라의 저택에 자주 모여 문학을 논하던 당시의 젊은 문학가들과도 사귀었다. 1880년 졸라는 모파상을 포함한 6명의 젊은 작가들이 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취재한 단편집 《메당 야화(夜話)Les Soires de Mdan》를 간행하였는데, 모파상은 여기에 《비곗덩어리Boule de suif》를 실었다. 이 작품은 날카로운 인간관찰과 짜임새 등에서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이로써 그의 문단 데뷔를 확고히 하였다. 그 후 《메종 텔리에 La Maison Tellier》(1881) 《피피양 Mademoiselle Fifi》(1882) 등의 단편집을 내어 문단에서의 지위를 굳혔다. 1883년에는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 Une vie》을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은 선량한 한 여자가 걸어가는 환멸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 작품으로서 문명(文名)을 더욱 높였을 뿐 아니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모파상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단편에 나타나는 외설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L.N.톨스토이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파상은 이미 27세경부터 신경질환을 자각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증세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과 10년간의 문단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몇 편 외에 《벨아미 Bel-Ami》(1885) 《몽토리올 Mont-Oriol》(1887) 《피에르와 장 Pierre et Jean》(1888) 《죽음처럼 강하다 Fort comme la mort》(1889) 《우리들의 마음 Notre cœur》(1890) 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작품에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 어두운 염세주의적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그의 무감동적인 문체를 통해 그의 작품 전체에 이상한 고독감을 감돌게 한다. 이런 경향은 당시의 시대적인 영향도 있으나, 그보다도 그의 신경질환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작으로 인한 피로와 복잡한 여자관계로 병은 더욱 악화되어 1892년 1월 2일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으나, 이듬해 7월 6일 43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번역에 따라
목걸이 - 모파상
1. 원하는 걸 갖지 못한 여자
운명의 잘못이랄까, 간혹 하급 관리의 가정에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있다. 그녀도 그런 고운 처녀였다. 지참금이 없고 유산이 굴러 들어올 만한 데도 없으며, 행세깨나 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귀여움을 받으며 아내로 맞아질 그런 연줄도 없었다. 그녀는 문부성에 근무하는 한 하급 관리가 청혼하는 대로 결혼하고 말았다. 몸치장을 하려고 해도 할 형편이 못되어 간소하게 지냈지만, 원래보다 낮은 계급으로 전락한 여자가 불행하듯,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여자란 본래 신분이나 혈통과 무관하게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매력이 곧 그들의 태생과 가문 구실을 하기 마련이다. 타고 난 기품, 본능적인 우아함, 재치 그런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등급이며 하층 계급의 처녀도 높은 신분의 귀부인과 나란히 설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 자기가 온갖 좋은 것, 값진 것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매일 매일의 구차스러운 살림이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 초라한 집, 얼룩진 벽, 부서져 가는 의자, 누더기 같은 빨랫줄에 빨래가 널린 것까지 모두가 보기 싫고 괴로움의 씨앗이었다. 같은 계급의 다른 여자라면 그다지 마음 상하지 않을 그 모든 것이 그녀를 괴롭히고 부아를 돋구었다. 브루타뉴 태생 여자 애를 하나 하녀로 두었지만 이 소녀를 볼 적마다 절망적인 안타까움과 미칠 것 같은 꿈이 떠올라 시달리곤 했다. 그녀가 항상 꿈에 그리는 것은 동양풍 벽걸이가 걸려 있는 조용한 거실에 청동으로 만든 촛대에 불이 켜진 그런 풍경이었다. 거기 짧은 바지를 입은 건장한 하인 둘이 의자에 파묻혀서 졸고 있다. 실내가 너무 따뜻해 깜박 졸고 있는 것이다. 고급 비단을 깐 넓은 객실도 그녀의 몽상에 떠올랐다. 진귀한 골동품들이 가득 찬 으리으리한 가구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은 모든 여자가 선망하는 유명인들이다. 그런 가까운 친구들과 오후 다섯 시에 모여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찬 멋진 살롱에서 고상한 대화를 나눈다. 저녁을 먹을 때, 사흘이나 빨지 않은 식탁보를 씌운 둥근 식탁에서 남편과 마주 앉는다. 남편은 스프 그릇 뚜껑을 열며 기쁜 듯이 "야, 이 스프 맛있겠는데! 이보다 맛있는 건 세상에 없을 거야!"하며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럴 때면 으레 그녀는 으리으리한 만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번쩍거리는 은 식기, 요정이 사는 숲 한가운데 이상한 새나 옛날 이야기의 인물이 수놓아진 벽걸이, 고급 그릇에 듬뿍 담아 내놓는 산해진미가 있다. 송어의 빨간 고기나 기름진 병아리의 부드러운 날개를 입에 넣으면서 속삭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스핑크스처럼 신비한 미소를 띠고, 여성의 환심을 사려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광경이 떠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나들이옷도 없고 장신구도 없고 뭐 하나 갖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뿐이었다. 그런 것을 위해 자기가 태어났다고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사람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녀에게는 돈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수도원 학교의 기숙사 동창이지만 지금으로선 만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만나고 돌아올 때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며칠이고 연거푸 울며 새우는 때도 있었다. 분하고 억울하고 절망과 비탄이 얽힌 마음에서였다.
2. 장관 댁 무도회의 초대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손에 큰 봉투를 들고 신이 나서 돌아왔다. "이것 봐, 이거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아내는 급히 봉투를 열어 인쇄한 카드를 꺼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부성 장관 및 그 조르쥬 랭뽀노 부인은 로와젤 씨와 그 부인을 오는 1월 8일 월요일 밤 관저에 오십사 초대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처럼 기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하기는커녕, 아내는 분한 듯 식탁 위에 초대장을 내던지며 중얼거렸다. "이걸 갖고 어떡하라는 거죠?" "아니 여보, 난 당신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여간해서 외출하는 일도 없으니 이건 참 좋은 기회야. 이걸 얻으려고 다들 무척 애를 썼지. 서로 이걸 가지려고 했으니까.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다 더구나 아래 사람들에겐 몇 장 나오지도 않았어. 가봐, 이름 있는 사람들만 모이거든." 아내는 약이 오른 눈초리로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뭘 입고 가라는 거예요, 그런 곳엘 말이예요?" 남편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극장에 갈 때 입는 옷 있잖아. 그것 참 좋아 보이던데…… 내겐…… " 남편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멍하게 아내를 바라봤다. 울고 있지 않은가. 커다란 눈물 방울이 두 눈 끝에서 입가로 스르르 떨어지는 것이었다. "왜, 왜 그래?" 남편은 더듬듯 말했다. 간신히 괴로운 심정을 가라앉힌 아내는 젖은 볼을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다만, 제겐 나들이옷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파티에는 갈 수 없어요. 옷이 많은 부인이 있는 동료 어느 분에게나 초대장을 드리세요." 남편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여보, 마띨드, 어때…… 얼마쯤이나 하는 거야? 그런 데 입고 나가서 부끄럽지 않고 다른 때도 입을 만한 그런 옷 말이야? 멋있으면서도 수수한 그런 옷으로 말이야."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해봤다. 조금 밖에 벌지 못하는 이 하급 관리 남편이 깜짝 놀라서 대뜸 비명을 지르며 거절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타내려면 얼마 정도를 말해야 할까. 마침내 주저하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4백 프랑만 있으면 그럭저럭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은 약간 창백해졌다. 꼭 그만한 돈을 따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엽총을 사서 오는 여름에 친구 너댓 명과 함께 낭떼르 근교로 사냥을 갈 예정이었다. 그 친구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그 쪽으로 종달새를 잡으러 가곤 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대답했다. "좋아. 4백 프랑은 어떻게든 만들어 보지. 대신 멋진 옷을 만들어야 해." 무도회 날이 가까워졌다. 로와젤 부인은 뭔가 생각에 잠겨 불안하고 안절부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들이옷은 이미 다 완성돼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당신 사흘 전부터 뭔가 이상한데…… " 아내는 대답했다. "장신구랄 게 하나라도 있어야죠. 보석 한 개도 없어요. 몸에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니, 궁상을 떠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날 밤 모임엔 숫제 안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남편은 대답했다. "꽃이라도 달면 되잖아. 계절이 계절인 만큼 산뜻할 거야. 10프랑만 내면 아주 멋있는 장미꽃 두세 송이는 살 수 있을걸." 아내는 코웃음을 쳤다. "안돼요…… 돈 많은 여자들 틈에 끼어 궁색한 꼴을 보이는 것처럼 창피한 건 없어요." 갑자기 남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바보로군! 당신 친구 포레스터 부인에게 가서 장신구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서로 친하니까 그 정도 부탁은 들어 줄 거야." 아내는 환호성을 올렸다. "참, 그래요. 어쩜 그 생각을 못했을까."
3. 옷과 보석, 성공…… 그리고
이튿날 그녀는 친구를 찾아가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포레스터 부인은 거울 달린 장롱으로 가서 커다란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며 로와젤 부인에게 말했다. "자, 좋은 걸로 골라 봐." 로와젤 부인은 먼저 팔찌를 보고 그리고 진주 목걸이, 다음에는 기막힌 솜씨로 세공한 금과 보석으로 된 베네치아 산 십자가 장신구를 살펴보았다. 거울 앞에 서서 이것저것 달아보고, 망설였다. 그렇다고 쉽게 단념하고 돌려주지도 못했다. "딴 건 없어?" "또 있어, 찾아 봐. 어떤 게 네 마음에 들지 나는 모르니까." 한 순간, 로와젤 부인은 바라던 것을 찾았다. 까만 비단으로 싸인 상자 속에 찬란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몹시 울렁거렸다. 그것을 집으며 그녀의 손은 떨렸다. 목걸이가 감추어지는 옷이었지만 그래도 그 목걸이를 달아보고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면서 도취됐다. 그녀는 주저하며 불안에 목이 잠겨 물었다. "이거 빌려줄 수 있어? 이것만 있으면 충분해." "그럼, 그럼. 괜찮아." 로와젤 부인은 친구의 목을 껴안고 마구 입을 맞추고 보석을 갖고 도망치듯 돌아갔다. 파티 날이 왔다. 로와젤 부인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어느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점잖고, 우아하고, 명랑하게 웃고, 너무 기뻐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남자란 남자는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녀를 소개받고 싶어 했다. 정부의 높은 사람들이 모두 그녀와 왈츠를 추려고 했다. 장관조차도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취한 듯한 기분으로 정신 없이 춤을 추었다. 쾌락에 취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 미모의 승리, 이 밤의 영광스러운 성공, 이 모든 아부와 찬미... 욕망이 일깨워지고, 여자의 가슴에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기만 한 승리, 그러한 것에서 생기는 행복의 구름, 그 속에서 일체를 잊었다. 파티는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남편은 자정이 지나자 다른 세 사람의 남자와 함께 사람이 드문 조그만 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 세 신사의 부인들도 한바탕 맘껏 즐겼던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에, 돌아갈 때 입으려고 갖고 온 옷을 걸쳐 주었다. 평상시 입는 소박한 옷으로 무도회의 화려한 의상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걸 느끼고 급하게 길거리로 몸을 피하려 했다. 화려한 모피를 휘감은 귀부인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로와젤이 그걸 말렸다. "기다려, 그대로 밖에 나갔다간 딱 감기 걸리기 좋아. 내가 마차를 불러오겠어." 그러나 그녀는 귀담아 듣지 않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이 거리에 나오자 차라곤 한 대도 눈에 띄지 없었다. 둘은 멀리 달려가는 마차들을 부르면서 거리를 걸었다. 마차를 찾을 수 없자 둘은 맥이 풀려 추위에 벌벌 떨면서 세느강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강가에서 겨우 마차 한 대를 잡았다. 낡아빠진, 밤에만 나타나는 작은 마차로 대낮의 파리에서는 그 초라한 모습이 부끄러워 나타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마차였다. 이 초라한 마차를 타고 두 사람은 마르치르 거리 그들의 집에까지 갔다. 그들은 침울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갔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다…… 그녀는 감회에 잠겼다. 남편은 아침 열 시에는 직장에 나가야 한다는 것에 새삼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어깨를 감싼 옷을 벗어 던지고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자기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려 했다. 돌연 그녀는 앗 소리쳤다. 목걸이가 없어진 것 아닌가. 벌써 반쯤 옷을 벗은 남편이 그 소리를 들었다. "왜 그래?" 아내는 미친 것처럼 남편을 돌아보았다. "그…… 글쎄…… 포레스터 부인에게서 빌려온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남편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라고? 설마…… " 둘은 함께 드레스의 갈피, 망토의 구석구석 주머니 속까지 다 찾아보았다. 목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몇 번이나 물었다. "무도회에서 나올 때 분명히 갖고 있었어?" "그럼요. 저택 현관을 나올 때 손으로 만져 본 걸요." "하지만 거리에서 없어졌다면 떨어지는 소리라도 났을 텐데. 마차에서 떨어트린 것이 틀림없어."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마차의 번호 기억하세요?" "아니, 당신은? 당신은 번호 못 봤어?" "보지 못했어요." 두 사람은 절망적으로 얼굴을 마주 봤다. 결국 로와젤은 다시 옷을 입었다. "우리들이 걷던 길을 다시 한 번 가보지. 혹시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나갔다. 그녀는 야회복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어갈 힘마저 빠져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 불기도 없는 곳에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꼼짝 못하고 앉아 있었다.
4. 재난
남편은 일곱 시쯤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경찰에도 가고 신문사에도 가서 분실물 신고를 했다. 마차 조합에도 가보았다. 한 마디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아내는 이 천지가 뒤집힐 것 같은 재난 앞에서 하루 종일 어쩔 줄 모르고 혼 나간 사람처럼 절망에 빠져 기다렸다. 로와젤은 저녁에 창백한 얼굴로 핼쓱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 소득도 없었다. "포레스터 부인에게, 목걸이 고리가 망가져 수리하러 보냈다고 편지를 쓰도록 해. 그러면서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지." 아내는 남편이 일러주는 대로 편지를 썼다. 1주일이 지나고 모든 희망의 줄이 끊어졌다. 로와젤은 갑자기 대여섯 살은 더 늙었다. "다른 것을 찾아 봐야지." 이튿날 부부는 목걸이가 들어 있던 상자를 들고 상자 속에 이름이 쓰여진 보석상을 찾아갔다. 보석상은 장부를 조사해 주었다. "이 목걸이는 저희가 판 것이 아닙니다, 부인. 저희는 상자를 드렸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이 보석상에서 저 보석상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비슷한 목걸이를 찾아 헤맸다. 둘 다 마음의 고통과 불안으로 심하게 앓는 사람들 같았다. 파레 로와이 야르의 어느 상점에서 두 사람은 찾고 있던 것과 똑 같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발견했다. 4만 프랑이었다. 그러나 3만 6천 프랑까지는 가격을 깎아준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사흘 동안 목걸이를 팔지 말아달라고 보석상에 부탁했다. 2월 말까지 원래 목걸이가 발견되면 3만 4천 프랑으로 환불해준다는 약속도 받았다. 로와젤은 부친이 남겨준 1만8천 프랑을 갖고 있었다. 나머지는 빌려야 했다. 그는 돈을 꾸었다. 이 사람에게 1천 프랑, 저 사람에게 5백 프랑 하는 식으로 돈을 꾸고 여기서 5루이, 저기서 3루이 꾸느라 수많은 차용 증서를 썼다. 목숨 같은 증서를 저당 잡히기도 하고, 고리대금업자와도 거래하고 온갖 사채업자를 찾아다녔다. 나머지 평생을 몽땅 바쳐도 갚을 힘이 있을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마구 서류에 서명했다. 미래의 불안에 떨며,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절망적인 생활과 모든 물질적 제약, 정신적 고뇌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보석상에 갔다. 그리고 계산대 위에 3만6천 프랑이란 돈을 올려놓았다. 로와젤 부인이 포레스터 부인에게 목걸이를 돌려주러 갔을 때 부인은 약간 기분이 나쁜 듯 쌀쌀한 말투였다. "좀, 일찍 갖다 줘야지. 나도 언제 쓸지 모르잖아." 포레스터 부인은 상자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로와젤 부인은 마음속에서 은근히 친구가 상자를 열어볼까 봐 두려웠다. 물건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라고 말했을까? 나를 도둑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로와젤 부인은 빈민들의 생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무서운 생활을 직접 체험하게 됐다. 물론 그 점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이 무서운 빚을 갚아야 한다. 갚지 않으면 안 되니까, 무조건 갚아야 한다. 그녀는 하녀를 내보내고 집도 싸구려 다락방을 빌려 이사했다.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것, 부엌일이 얼마나 짜증나는 것인지 그는 알게 됐다. 식기도 손수 씻었다. 장미빛 손톱은 기름 묻은 그릇과 냄비 바닥을 닦느라 다 닳았다. 더러워진 속옷, 셔츠, 걸레도 자기가 빨고 줄을 매고 널어 말렸다. 매일 아침 큰길까지 부엌 쓰레기를 운반하고 물을 길어 올렸다. 계단마다 한 번 멈춰 숨을 돌리면서. 하층 계급 여자와 똑 같은 차림으로 거리낌 없이 바구니를 팔에 낀 채 과일 집에도 잡화점에도 갔다. 가서, 막된 말을 들으면서도 한 푼이라도 깎아서 물건을 샀다. 매달 어음을 지불해야 했다. 증서를 새로 써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지불을 연기해야 했다. 남편은 매일 밤 어떤 상점의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맡아 했다. 밤에는 때로 한 페이지에 5스우짜리 싸구려 서류 복사 일까지 하곤 했다. 이런 생활이 십 년이나 계속됐다. 십 년이 지나서 두 사람은 빚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갚았다. 터무니없는 고리대금 이자, 쌓이고 쌓인 이자의 이자까지 완전히 빚을 다 갚은 것이다. 로와젤 부인은 이제 할머니 같았다. 드세고 우락부락하고 지독한 여자, 가난에 찌든 단단한 아줌마가 되었다. 머리도 제대로 빗질하지 못하고, 스커트가 볼품없이 구겨져도 태연했다. 굵은 목소리로 지껄이면서 벌개진 손으로 물을 첨벙대면서 마루를 닦았다.
5. 십 년 후
그렇지만 이따금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없어 한가할 때면 창가에 앉아서 옛날 그 밤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 자기가 그렇게도 아름답고 그렇게도 칭송을 받으며 여왕처럼 행세하던 무도회의 일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 목걸이를 잃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누가 알 수 있으랴! 인생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이다. 한 사람이 파멸하거나 반대로 구원을 얻거나 하는 것이 다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로도 충분한 것이다! 어느 일요일, 그녀는 일 주일 내내 고되게 일한 생활에서 한숨 돌리려고 샹제리제로 산책을 나갔다. 그때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포레스터 부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로와젤 부인은 가슴에 무언가 뭉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말해 줘야지. 이미 빚은 몽땅 갚았으니까 전부 말해야지. 무엇이 겁나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녀는 터벅터벅 친구 곁으로 다가갔다. "잘 있었어? 쟌느?" 상대는 로와젤 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허름한 옷차림의 여인이 이렇게 허물없이 친구처럼 부르는 것에 놀란 것이다.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저, 실례지만…… 저는…… 혹시 댁이 잘못 본 게 아닌지?" "나 마틸드 로와젤이야." 상대는 깜짝 놀랐다. "뭐! 마틸드? 너무 변했구나……!" "그래, 변했어. 무척 고생을 했단다. 그게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야…… 다 너 때문이었어……!" "나 때문에? 어쩜, 왜?" "너 기억나니,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 말이야. 장관 댁 무도회에 가느라고 내게 빌려준 거 말이야?" "그럼 기억해. 그게 어쨌다는 거니?" "그게 말이야. 그걸 내가 잃어버렸어." "뭐라구? 하지만 돌려줬잖아." "아주 비슷한 딴 걸로 갖다 줬어. 꼭 십 년이 걸렸구나, 그 돈을 갚느라고. 잘 알겠지만 우리들처럼 재산도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선 그리 쉽지 않았지…… 아무튼 겨우 끝장이 난 셈이야. 이제 맘이 편안해." 포레스터 부인은 우뚝 멈춰섰다. "내 것 대신 다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단 말이야?" "응, 그래. 너 몰랐구나. 하긴 모양이 똑 같은 목걸이였으니까."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순진한 웃음을 띠었다. 포레스터 부인은 숨이 탁 막혀 친구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내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
목걸이 - 모파상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가 가난한 사무원의 딸로 태어난 것은 운명의 실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지참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질 수 있는 길도 없었으며, 돈이 많고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리라는 따위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문부성에 근무하는 하급 관리와 결혼하게 되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할 만한 여유도 없었으므로 소박한 차림을 했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 있는 여자들은 다 마찬가지지만, 결코 그런 환경에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여자란 신분이나 가문이 문제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답고 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혈통과 가문을 대신하게 마련이다. 바탕이 아름답고 천성이 우아하고 마음씨가 부드러우면, 그것으로 능히 특권 계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민의 딸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얼마든지 귀족의 딸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온갖 쾌락과 사치를 즐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언제나 마음이 언짢았다. 집이 초라하고, 벽이 남루하며, 의자가 낡고, 가구가 때묻은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이러한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여자들 같으면 별로 의식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녀만은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그리하여 식모 노릇을 하고 있는 부르따뉴 태생의 계집애를 보고만 있어도 서글픈 생각과 미칠 듯한 몽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동양식 장식이 걸리고, 높은 청동 촛대에 촛불이 휘황하며, 짧은 바지를 걸친 두 하인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의 후끈한 열에 싸여 졸음이 와서 긴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는 비단으로 장식한 넓은 살롱을 상상해 보았다. 값지고 진귀한 보석들이 달려있는 아름다운 가구하며, 뭇 여성들의 선망을 받고 있는 사교계의 인기 있는 남성들과 친한 친구들이 모여 저녁 한때의 이야기를 즐기도록 마련한 향취 높고 아담한 방을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때 벌써 사흘째나 빨지 않은 테이블보를 깔아 놓은 둥근 식탁에 앉자, 마주 앉은 남편이 수프 뚜껑을 열고, “아, 훌륭한 수프로군, 나에겐 난생 처음인걸…….”하고 기뻐하는 소리를 듣자, 그녀는 다시금 호화로운 만찬의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번쩍이는 은그릇들, 선경의 숲 속에 나오는 기이한 새들과 고대의 인물들을 그려 놓은 벽화, 눈부신 그릇에 담긴 산해진미, 불그레한 생선이나 들꿩의 고기를 뜯으면서, 스핑크스와 같은 미소를 띄고 정담을 나누는 남녀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에게는 이렇다할 옷도 보석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장 사랑한 것은 옷과 보석이었다. 자기는 그런 것들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토록 그녀는 인생을 향락하고 싶었다. 모든 남성들의 인기를 차지하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부유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수도원 학교 시절의 동창이었다. 그녀는 그 친구를 별로 찾아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로서는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이 몹시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으레 며칠 동안 슬픔과 뉘우침과, 절망과 비관으로 종일 울곤 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남편이 사뭇 자랑스러운 얼굴로 손에 커다란 봉투를 한 장 들고 들어왔다. “이거 당신에게로 온 거요.”하고 남편은 말하였다. 그녀는 얼른 봉투를 뜯고 그 속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었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문부성 장관 조르주 랑포노 부처는 1월18일 월요일 저녁에 장관 관저에서 야회를 개최하오니 루아젤 부처께서는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조금도 기뻐하지 않을뿐더러, 아내는 그 초청장을 심술궂게 테이블 위에 내던지며 중얼거렸다. “이걸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아니, 여보. 난 당신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리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별로 외출도 못 하였으니 좋은 기회가 아니오? 이것을 얻느라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직원들이 저마다 얻으려고 했지만 몇 장 차례가 오지도 않았소. 아무튼 그 날 가면 정부의 고관들을 다 볼 수 있을 거요” 그녀는 성난 목소리로 남편을 노려보더니. 이윽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대관절 무엇을 몸에 걸치고 가라는 거에요?” 남편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거 극장에 갈 때 입었던 옷 있지 않소? 내 눈에는 그 옷이 퍽 좋아 보이던데…….”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내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두 방울의 커다란 눈물이 눈가에서 입 끝으로 서서히 흘러 내리고 있었다. “왜 그래? 글쎄, 왜 그러는 거야?” 그녀는 간신히 슬픔을 가라앉히고 나서 잦은 두 볼을 닦으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아녜요, 아무것도 아녜요. 단지 입고 갈 옷이 없어서 그래요. 난 야회에 안 갈 테에요. 그 초대장은 다른 친구에게 주어 버리세요! 나보다 좋은 옷을 가진 아내 가 있는 사람에게 말이에요.” 남편은 실망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 봐 마틸드! 멋있는 옷 한 벌 맞추는 데 얼마나 해? 다른 나들이 때에도 입을 수 있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옷 말이야.” 그녀는 잠시 생각하여 보았다.―― '얼마나 요구해야 그 검소한 공무원 생활을 하는 자기 남편이 단박에 기절해 버리지 않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지도 않을까.' 하고 값을 따져 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주저주저 하면서 말하였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4백 프랑쯤 있으면 될 거에요.” 남편은 얼굴빛이 약간 해쓱해졌다. 그는 꼭 그만한 돈을 예금해 두었지만, 그 돈으로 총을 사서 이번 여름에 낭테에르 벌판으로 사냥을 가려던 참이었다. 일요일마다 그 곳에 가서 종달새 사냥을 하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 내 4백 프랑을 줄 테니 좋은 옷을 맞추도록 해.” 무도회의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루아젤 부인은 근심과 슬픔에 싸여 있었다. 옷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어느 날 저녁에 이렇게 물었다. “왜 그래? 당신 요새 며칠 동안 아주 얼빠진 사람 같구려.” 그녀는 대답하였다. “나는 보석도 패물도 아무것도 몸에 붙인 것이 없으니, 이런 딱할 데가 어디 있어요. 내 모양이 얼마나 꼴불견이겠어요. 차라리 그 야회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남편은 말하였다. “생화를 달고 가구려. 요즘은 그것이 아주 멋있어 보이더군. 10프랑만 주면 아름다운 장미꽃 두셋은 살 수 있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싫어요! 돈 많은 여자들 틈에 끼여서 가난하게 보이는 것처럼 창피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남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참 당신도 딱하구려! 아 당신 친구 포레스티에 부인 있지 않소. 그 여자한테 찾아 가서 보석을 좀 빌려 달라고 하구려. 그만한 것쯤 편리를 못 봐줄 사이가 아닐 테니까.” “참 그렇군요! 그 생각을 미처 못 했군요.” 이튿날 그녀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서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거울이 달린 의자 앞에 가서 커다란 보석 상자를 들고 와서 열어 보이며 루아젤 부인에게 말하였다. “자, 골라봐.” 그녀는 우선은 몇 개의 팔찌를 골라 보았다. 다음에는 진주 목걸이를, 그 다음에는 베니스제의 십자가를 골랐다. 그 십자가는 금과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솜씨가 놀라웠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보석을 이것저것 몸에 걸어 보면서 망설일 뿐, 어떤 것을 놓고, 어떤 것을 빌려가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번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또 뭐 없어?” “왜 없어. 가서 골라 봐. 어느 것이 네 마음에 들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러자 까만 공단 상자 속에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것이 어찌나 탐이 났던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을 쳐들자. 이번에는 손이 떨려왔다. 그녀는 그 목걸이를 몽탕트 위로 목에 걸고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입을 떼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걸 좀 빌려 줘. 다른 건 필요 없어.” “그렇게 해.” 그녀는 친구의 목을 얼싸안고 뜨거운 포옹을 하였다. 이어서 목걸이를 들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무도회 저녁이 돌아왔다. 루아젤 부인은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어느 여자보다도 아름답고 우아하고 맵시가 있었으며,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모든 남자들마다 그녀를 바라보고는 이름을 부르며 소개를 받으려고 하였다. 비서관들은 저마다 그녀와 춤을 추고 싶어하였다. 이윽고 장관도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도취된 기분으로 춤을 추었다. 자기의 미모가 가져온 승리와 성공을 이룩한 영광, 온갖 찬사와 감탄, 소생하는 정욕과, 여성들에게도 한없이 달콤하고 완전무결한 최고의 승리로 이루어진 행복의 구름 속에서 기쁨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튿날 새벽 네 시쯤 되어서야 야회에서 나왔다. 남편은 자정경부터 조그마한 응접실에서 세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졸고 있었다. 그 동안에 그들의 부인은 저마다 마음껏 쾌락에 도취되어 있었다. 남편은 돌아올 때를 생각하여 가져온 평시의 허름한 웃옷을 아내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 초라한 모습은 아무래도 야회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도 그것을 느끼고, 값진 털옷을 몸을 단장한 다른 여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피하였다. 루아젤은 아내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기다려.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감기 들 테니까. 내가 나가서 마차를 한 대 불러 올게.”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날쌘 걸음으로 층계를 총총히 내려갔다. 두 사람은 낙심하여 달달 떨면서 센강 쪽으로 내려갔다. 그 때 마침 강변에서 밤에나 돌아다니는 낡은 마차 한 대를 발견했다. 낮에는 빠리에서 차마 그 초라한 꼴을 보이기가 창피하다는 듯이 밤에만 벌이를 하는 그런 마차였다. 두 내외는 그 마차를 집어 타고 마르티르 거리에 있는 집 문 앞에 다다랐다. 그들은 쓸쓸한 마음으로 발을 옮겨 층계를 올라갔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아침 열시까지는 문부성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자기의 화려한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 가서 어깨위에 걸친 웃옷을 벗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목에 걸었던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옷을 벗고 있던 남편이 엉거주춤하며 물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남편을 향해 얼빠진 듯한 어조로 대담하였다. “저…… 저…… 포레스티에 부인의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남편은 실성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아니 뭐라고…… 그럴 리가 있나!" 그들은 옷 갈피와 외투 갈피, 그리고 호주머니 속 등을 온통 뒤져 보았으나, 목걸이는 아무데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남편은 물었다. "무도회에서 나올 때는 분명히 갖고 있었나?" "그럼요. 장관댁 현관에서 만져 보기까지 한걸요." "그러나 만일 한길에서 떨어뜨렸다면 소리가 났을 텐데. 그러고 보니 마차 속에서 잃은 것이 분명하군." "그런 것 같아요. 당신 그 마차 번호를 아세요?" “몰라. 당신도 마차 번호를 잘 보아 두지 않았지?” 그들은 낙심하여 서로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루아젤은 옷을 다시 입기 시작하였다. "혹시 찾을지 모르니 돌아온 길을 다시 가 봐야지." 그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야회복을 벗을 생각도, 잠자리에 들 기력도 없었다. 그리하여 불도 피우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의자 위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7시쯤 되어 남편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경찰국과 신문사로 달려가 현상을 걸고 광고도 내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마차를 부리는 회사를 온통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가망이 있어 보이는 곳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아내는 이 끔찍스러운 재난 앞에서 넋을 잃고 종일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아젤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눈이 푹 꺼진 창백한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당신 친구에게 편지라도 써야 할까 봐. 목걸이의 고리가 부서져서 수선을 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하면 다시 사방으로 찾아다닐 시간 여유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내는 남편이 부르는 대로 받아 썼다. 한 주일이 지나자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 며칠 동안에 5년이나 더 늙어 보이는 루아젤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보석을 돌려 줘야지.” 다음 날 두 내외는 목걸이가 들어 있던 빈 상자를 들고, 그 안에 적힌 상호의 보석 상점을 찾아갔다. 상점 주인은 여러 권의 장부를 뒤적거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 그 목걸이는 저희 집에서 사 간 것이 아니올시다. 저희는 다만 상자만 제공했나 봅니다.” 두 사람은 잃은 것과 꼭 같은 보석을 구하기 위해, 그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보석상마다 찾아다녔다. 두 내외는 비탄에 젖어 환자처럼 보였다. 이윽고 이 부부는 팔레 루아이얄의 어느 보석상에서 그들이 찾고 있던 것과 똑같아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아 내었다. 값은 4만 프랑이었으나 3만6천 프랑이면 팔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사흘 안으로 살 터이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리고 만일 3월 말까지 잃어버린 목걸이를 다시 찾으면, 상점에서 3만4천프랑으로 도로 사준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였다. 루아젤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1만 8천프랑의 재산이 있었다. 나머지 돈은 빚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사람에게서 천 프랑, 저 사람에게서 5백 프랑, 여기서 5루이 저기서 3 루이 하여 닥치는 대로 돈을 꾸었다. 차용증서를 쓰고, 재산을 몽땅 잡히고 고리 대금은 물론 모든 대금 업자와 거래를 했다. 그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 생애를 담보하다시피 하였으며. 갚을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서약서에 마구 도장을 눌렀다. 그는 앞으로 닥칠 불행에 대한 걱정, 머지않아 찾아올 비참하기 짝이 없는 어두운 그림자, 앞으로 겪어야 할 모든 물질적인 궁핍과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신을 떨며, 새 목걸이를 사기 위해 보석상에 가서 계산대 위에 3만6천 프랑을 내놓았다. 루아젤 부인은 그 목걸이를 사들고 곧 포레스티에 부인을 찾아 갔다. 부인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좀 일찍 갖다 줘야지. 내게도 쓸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아.” 포레스티에 부인은 상자를 열어 보지는 않았다. 루아젤 부인은 친구가 그 상자를 열어 볼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만일 친구가 물건이 바뀐 줄 알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무어라고 했을까? 자기를 도둑년으로 여기기 않았을까? 루아젤 부인은 가난한 생활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우선 저 끔찍한 빚부터 갚아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꼭 갚을 심산이었다. 식모를 내보냈다. 집도 바꾸어 지붕 밑 다락방으로 세를 얻어들었다. 그녀는 집안 일이 얼마나 힘이 들고, 부엌 치다꺼리가 얼마나 귀찮은지 몸소 체험하여 잘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기름기가 묻은 그릇과 냄비 속을 닦느라고 분홍빛 손톱이 다 닳았다. 더러운 옷이나 내복, 걸레 등속을 빨아서 줄에 널었다. 아침마다 쓰레기를 담아 들고 거리까지 나갔다. 층계참에서 숨을 돌리며 물을 길어 올렸다. 하류 계급의 아낙네들과 다름없는 차림을 하고, 바구니를 팔에 끼고 야채 가게와 식료품 상점과 고깃간을 드나들며 값을 깎다가 욕을 먹기도 하면서, 돈 한 푼을 아꼈다. 두 내외는 달마다 지불할 것은 또박또박 이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용증서를 고쳐 쓰고 연기하였다. 남편은 저녁마다 어느 상인의 장부를 정리하는 부업을 맡았다. 그리고 때로는 한 페이지에 5수우의 보수를 받고 사본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0년이 지나서야 모든 빚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고리 대금의 이자와 묵은 이자의 이자까지 다 갚게 되었다. 루아젤 부인은 무척 늙어 보였다. 그녀는 억세고 완강하고 거칠고 가난한 살림꾼 아낙네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텁수룩하고, 치마는 구겨지고, 빨개진 손으로 마룻바닥을 훔치고,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그러나 가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창가에 걸터앉아서, 지난날의 야회, 그토록 아름다워 총애를 받던 야회를 회상해 보았다. 그 목걸이만 잃어버리지 않았던들, 어떻게 되었을까? 누가 알 수 있으랴. 알 수 없지! 인생이란 무척 기이하고 허망한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 파멸을 가져 오기도 하고 구원을 해 주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녀는 한 주일 동안의 피로를 풀려고 샹젤리제 거리로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어린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포레스티에 부인을 만났다. 부인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루아젤 부인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서 그 동안의 경위를 이야기할까? 그렇지! 이미 빚을 다 갚았겠다. 이야기 못 할 게 뭐람? 그녀는 가까이 다가갔다. “잔느 아냐? 이게 얼마만이야!” 포레스티에 부인은 그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런 비천한 여자가 자기를 그토록 정답게 부르는 것이 적이 놀라웠다. “누구야?…… 나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요?” “어머! 나 마틸드 루아젤이야.” 친구는 크게 외쳤다. “뭐, 마틸드…… 아이 가엾어라! 그런데 왜 이렇게 변했어!”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우리가 마지막 헤어진 후로 고생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그것도 다 너 때문이지 뭐야…….”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생각나지 않아? 저 문부성 장관의 야회에 가려고 내가 빌려 갔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말이야.” “응, 그래서?” “그걸 잃어버렸지 뭐야.” “뭐? 아니 내게 고스란히 돌려 주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건 품질은 같지만 다른 목걸이야. 그 목걸이 값을 갚느라고 10년이나 걸렸지 뭐야……. 인제 다 해결되었어.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몰라.” 포레스티 부인은 발길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래, 내 것 대신에 다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왔단 말이야!” “그럼, 여태껏 그걸 몰랐구나. 하긴 똑같은 것이니까.” 그녀는 약간 으스대는 듯한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크게 감동되어 친구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아이 가엾어라, 마틸드! 내것은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