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李永道 - 한국적 여성 이미지 또는 황진이 이후의 여류시인
이재창
丁芸 이영도(1916, 10, 22~1976, 3, 6) 시인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면 내호동 출생으로 시조시인 이호우의 누이동생이다. 1945년 대구서 문예동인지『竹筍』에 시「除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부산 남성여고와 통영여고 등지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부산여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현대시학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1966년 문학과 사회봉사 공로로 눌월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민족정서가 담겨있는 시조 고유의 가락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여성의 맑고 섬세한 계시주의와 한국적 전래의 기다림과 낭만적 정서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 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 미인형을 지닌 여류시인이며, 평상시 한복차림에 궁녀머리형으로 쪽을 지고 아주 정결하고 우아한 몸가짐을 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평자들은 그를 황진이 이후의 여류시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시조집으로『靑苧集』『石榴』가 있으며, 수필집으로『靑芹集』『비둘기 내리는 뜨락』『머나먼 사념의 길목』등이 있다.
산이여, 목 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 보는 머언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소리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情.
-「황혼에 서서」전문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오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아지랑이」전문
작품「황혼에 서서」는 1958년에 발표한 것으로 그가 평소 가슴에 담고 있던 愛慕를 주제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첫 단어가 산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어떤 대상에 대한 거대한 주춧돌처럼 그리움이 담겨 있다. 바다를 지켜보는 거대한 산의 침묵, 그것은 시인 자신이 마음을 기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 메인 듯 숨죽이고 서 있는 그의 대상은 하나 뿐인 목숨의 아픔도 견디는 긴장감이 감도는 거대한 산이다. 그리움의 대상과 자신의 삶의 아픔과 고통까지도 감내하면서 먼 바다를 굽어보는 그의 한 여인으로서의 일면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바다에 저무는 애모와 그 대상이 가고 없는 마음을 달래주는 물결소리가 들리지만 그의 한 여인의 가슴엔 세월이 흘러도 그 마음이 그 마음처럼 덧없이 남아있다. 높은 산과 깊은 바다로 비유될 수 있는 그의 한 대상에 대한 감정을 절제 하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시세계가 절실하면서도 아름답다. 또한 고뇌와 인내가 자연과 어울려 정화되면서 안으로 다스리며 참고 견디어 변함없이 살아온 시인의 고독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아지랑이」는 시조의 배행구조가 독특하다. 90년대에 와서 많은 젊은 시인들이 시도하고 있는 모습을 66년에 발표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시적 예견 또한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이러한 자유로운 형식의 배행구조의 시각적 효과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시각적 효과 뿐만 아니라 나비가 날아가는 회화성까지 포괄되어 나타나고 있다. 당신 숨결과 아지랑이와 나비의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그리움과 사랑의 이미지가 잘 채색되어 우리에게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한국의 여성적 이미지는 그 혼자만으로는 족할 만큼 완벽한 경지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