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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콘서트 영상물을 본격적으로 감상하기에 앞서 베르디 선생 탄생 200주년 기념의 해를 맞아
<서푼짜리 정기감상회> 첫 시간을 베르디 선생의 작품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참석하실 회원님들...댓글 달아주시면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제1회 <서푼짜리 정기감상회> 안내 ===
1. 일시 :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19:30 ~ 22:30
2. 작품 : 베르디 <현악4중주 e단조> 및 <레퀴엠> 전곡감상
3. 순서 : 1부 - 베르디 다큐멘터리 Verdi's Backyard(50분) - 한글자막 지원
베르디 현악4중주(23분) - 이 작품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영상물이 없어 CD로 감상하겠습니다.
2부 - 베르디 <레퀴엠>(90분) - 한글자막 지원
=== 베르디 <현악4중주> e단조 해설 ===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음악세계> 241 ~ 242쪽
작곡 1873년
초연 1873년(개인적으로)
출판 1876년 라이프치히의 패터스 사
시간 약 23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는 4중주곡을 한 곡밖에 쓰지 않았다. 베르디는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이 곡에 착수하기 전, 야심작 <아이다>로 카이로와 밀라노에서 경이로운 대성공을 거두어 몸도 마음도 상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873년 3월 31일에는 <아이다> 공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나폴리를 방문하였는데, 이 성공적인 나폴리 공연 이후 약 2주 간에 걸쳐 이 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전인 1871년 1월에 나폴리의 음악원 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베르디는 "대위법과 푸가의 작법을 완성해야 한다"며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베르디는 대위법과 푸가의 작법을 이미 마스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에는 자신은 교육자가 아닌 오페라 작곡자로 남고 싶다는 것이 은연중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현악4중주곡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나 종교적인 텍스트가 없는, 소위 말하는 절대 음악을 쓰는 즐거움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르디의 이 말은 음악 창작 중에서 각 성부의 선(line)의 움직임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현악4중주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4중주곡을 쓰는 것은 베르디에게 오랜 세월 동안 현안으로 남아 있었는데, 나폴리에서 우연하게 그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베르디는 이 곡을 오페라 작곡가가 심심풀이로 쓴 곡이라고 하며, 나폴리의 한 호텔에서 개인적인 초연을 가진 후에는 공개적인 초연이나 출판 요청을 오랫동안 거절하였다.
이 곡은 대위법과 푸가를 즐겨 사용한 곡이다. 특히 제4악장은 푸가의 스케르초이다.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답게 악기의 색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 색채가 서로 대비되어 있다. 선율은 성악적이라기보다는 기악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응축된 주제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실타래를 풀어가듯이 부드럽게 진행된다. 단조이지만 대부분의 베르디 오페라에서 보이는 비극적인 힘이라든지 격정적인 정열이 이 작품의 주를 이루지는 않으며, 오히려 경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무겁고 느린 악장이 없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 베르디 <레퀴엠> 해설 ===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음악세계> 212 ~ 215쪽
작곡 1873 ~ 1874년. <리베라 메>는 1868~1869년
초연 1874년 5월 22일 성 마르코 대성당에서 베르디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1874년 밀라노 리코르디 사
시간 약 1시간 37분
1868년 11월 13일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였던 로시니가 파리에서 객사했다. 고향 마을 부세토에서 이 슬픈 소식을 접한 베르디는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면서, 그의 서거 1주기에 <레퀴엠>을 헌정하고 싶다는 편지를 11월 17일에 밀라노에 있는 출판사 티토 리코르디 앞으로 보냈다.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작곡가였던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의 연작으로, 작곡과 연주느 모두 무료로 하여, 로시니의 음악적 고향인 볼로냐의 성 페드로니오 성당에서 1회만 초연한 후, 그 악보는 밀봉하여 묘지에 바치고 나서 음악원의 기록 보관소에 넣어 두었다가, 로시니의 기일에 연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리코르디와 베르디는 즉시 볼로냐 시의회와 아카데미아 필하모니라는 볼로냐의 음악 단체에 협력을 부탁함과 동시에, 밀라노 음악원의 라우로 로시, 알베르토 마츠카토, 스테파노 론케티 몬테비티 교수 등 지식인을 망라한 위원회를 조직하여 티토 리코르디가 사무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위원회는 이 <레퀴엠>의 작곡자로 베르디 외에 11명의 작곡자를 선정하여, 작곡상의 통일을 기하도록 요구하였고, 베르디는 마지막 악장인 <리베라 메>를 작곡하기로 하였다. 또한 초연의 지휘는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지휘자로 정평이 나 있엇던 안젤로 마리아니가 맡기로 하였는데, 그는 1871년 벌로냐에서 바그너 오페라의 첫 이탈리아 공연인 <로엔그린>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작곡가의 선정을 서둘렀던 위원회는 당시 이탈리아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부졸라, 파치니, 페도로티, 카노니, 페데리코 리치, 니니, 코치아, 가스파리, 플라타냐, 페토렐라, 마벨리니, 여기에 베르디를 포함한 12명의 연작으로 결정, 완성 기한을 1869년 9월 15일로 정하였다.
리코르디는 이 초연에 대해 당시 스칼라 극장의 운영 위원장이었던 밀라노 시장과 상의하였는데, 소프라노는 테레사 스톨츠, 테너는 당시 인기 절정의 마리오 티벨리니로 정하여 전 이탈리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예정되어 있던 볼로냐의 테아트로 코무날레 합창단이 극장 일정 때문에 출연할 수 없게 되고, 테아트로 ㅋ무날레의 관현악단도 출연을거부하여 이 계획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 통고를 받은 베르디는 "그건 어린애의 변명에 불과하다. 조국이 낳은 대작곡가를 추모하는 이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이기심이 낳은 부패 때문이며 조국에 대한 애정결핍이다"라고 하였으나, 이미 완성해 놓았던 <리베라 메>의 악보는 결국 그의 책장 속에서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렸다.
1873년 4월 9일 <아이다>의 재공연 때문에 나폴리에 머물고 있었던 베르디는 나폴리를 떠나 부세토로 향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가장 존경했던 이탈리아의 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1785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만초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1819년에 사극 <칼마뇨라 백작>을 썼으며, 종래의 삼위일체 법칙을 타파하여 낭만주의 문학을 확립한 괴테도 만초니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 후 만초니는 나폴레옹의 죽음을 추모하는 송시 <5월 5일>, 사랑과 신앙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사람들과 순수한 종교 정신을 그린 <약혼자> 등의 작품으로 단테와 비견되는데, 1872년에는 로마의 명예 시민이 되어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온건하면서도 불타는 애국정신이 작품과 생활에 일관되어 있는 만초니를 오래 전부터 깊이 존경하던 베르디는 늘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했다. 1868년 6월 30일 그 소원을 이루었을 때에는, "그 위대한 분 앞에 섰을 때 느꼈던 외경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신 앞에 나아갔을 때처럼 엎드려 절을 올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라고 그 감격을 클라라 마페이에게 편지로 적어 보냈다.
만초니는 베르디가 나폴리를 떠나던 날인 4월 9일, 밀라노의 갈레리아 뒤편에 있는 성 페데레 성당에 갔다가 입구의 돌계단에서 미끄러졌는데,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택으로 옮겼으나 5월 22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세토의 산타가타 집에서 만초니의 부고를 접한 베르디의 슬픔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줄리오 리코르디에게 보낸 5월 23일자 편지에서도 "위대한 분의 죽음으로 저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밀라노에서 있을 장례식에는 도저히 참석할 기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찾아가서 애도의 뜻을 바치려고 합니다"라고 계획을 적어 보냈다. 이 계획은 이전에 로시니를 추도하기 위해 작곡했던 <리베라 메>의 쌓인 먼지를 털어버리고 이번에는 혼자서 전곡을 완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베르디는 이 계획을 실행하면서 아주 신중을 기했는데, 런던과 파리에서는 어떤 미사곡을 작곡해야 하는지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여러 미사곡의 악보를 대조해 보기도 하였다.
6월 2일 밀라노로 간 베르디는 우선 기념 묘지의 성당에 모셔놓은 만초니의 묘소를 찾아간 후, 밀라노 시장인 줄리오 벨린차이를 만나 만초니의 1주기에 고인에게 헌정할 <레퀴엠> 초연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여 약속을 받았다. 같은 달인 6월 13일 '지휘의 왕자'라고까지 불렸던 마리아니가 제노바에서 그 화려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에 상심하였기에 <레퀴엠> 작업도 늦어졌고, 6월 25일 파리로 간 베르디는 6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레퀴엠>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 해 가을에는 부세토에서 작곡을 하면서 스칼라 극장 지배인과 초연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겨울이 다가오자 베르디는 브루타라고 하는 한파를 피해 매년 그랬듯이 따듯한 지중해 연안의 제노바에서 지냈다. 이듬해 2월, 작곡은 거의 완성되었다. 해변 언덕 위의 산 자코모 사우라에 있는 파라비치니 집에서 살고 있던 베르디는 리코르디를 제노바로 불러 공연 준비를 마무리하는 한편, 독창 예정자를 밀라노에서 불러들여 직접 연습을 시키면서 초연에 대비하였다.
4월 10일 곡 전체의 오켓트레이션이 완성되어, 5월 2일부터 스칼라 극장에서 연습에 들어갔다. 그 동안에 공연 준비도 지체없이 진행되었고, 단지 공연 장소의 선정만 고민거리로 남았다. 결국 장소는 당시 롬바르디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일컫던 성 마르코 대성당으로 정해졌다. 성 마르코 대성당은 스칼라 극장에서도 가까웠고, 1770년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숙박했던 곳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254년 베아토 란프랑코 세타라에 의해 건축된 고딕풍의 유서깊은 성당으로, 이후 바로크풍을 가미한 개보수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1871년에는 정면 윗부분이 카를로 마치아키니에 의해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초연] 만초니의 서거 1주기인 1874년 5월 22일, 밀라노 시장 줄리오 벨린차이의 사회로 성 마르코 대성당에서 초연되었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단원 중에서 선발된 110명의 관현악단과 120명의 합창단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독창은 1872년 2월 8일 스칼라 극장에서의 <아이다>의 이탈리아 초연 때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당시 스칼라 극장의 프리마 돈나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테레사 스톨츠, 같은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았던 알토 마리아 월드만, 테너 주세페 카포니, 베이스 오르몬도 마이니 등 당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성악가로 구성되었다.
초연은 베르디가 직접 지휘를 하여 고인의 영전에 연주를 바쳤다. 성당에는 이탈리아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성대한 식전 행사가 펼쳐져 연주와 함께 절찬을 받았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초연에 이어 5월 25일부터 스칼라 극장에서 3회 공연되었는데, 이때는 성 마르코 대성당에서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스톨츠도 상복 대신에 흰색 벨벳에 테두리가 달린 청색과 은색의 드레스를 입었고, 월드만도 분홍색 의상을 입는 등 완전히 보통 연주회의 스타일이었다. 앙코르도 세 곡이나 불렀다는 사실에서도 이 작품의 성공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연주회가 끝난 후 밀라노 시는 베르디에게 은관을 수여하였다.
5월 25일 스칼라 극장에서의 1회 공연을 끝낸 베르디가 미리 계약되어 있던 6월 9일의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공연의 리허설을 위하여 5월 26일 밀라노를 떠나게 되어, 나머지 2회 공연은 프랑코 파초가 지휘하였는데 그 칭찬의 소리는 전 유럽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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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빠 참석합니다. ^^ 베르디 레퀴엠 영상물 2편 비교 감상인 줄 알았는데 ㅎㅎㅎ
두 편을 비교 감상하자니 쉬는 시간 포함하면 세시간 반 정도 걸려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한 개의 영상물은 너무 철지난 거라서 비교감상하기가 좀 그렇더군요...대신에, 다큐멘터리와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디 선생의 현악4중주로 구색을 한번 맞춰봤습니다...ㅎㅎㅎ
매일 출근도장 찍는사람들끼리 감상회를 가져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ㅎ 참석합니다!!
서푼짜리 정기감상회는 일종의 사랑방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편한 레퍼토리로 갈 겁니다...다양하고 재밌는 영상물이 준바되어 있습니다...즐길 일만 남았다는...ㅎㅎㅎ
참석 + 1(?)
환영합니다! 독창가수들...기대하셔도 좋을 거라는...ㅎㅎㅎ
참석합니다.
환영합니다...첨부된 해설 자료, 정독 부탁합니다!
참석 신청합니다. 제 직장 사람들 몇도 이야기해 두었는데, 일단 저 먼저 신청합니다.
추가 참석 인원이 확정되면 댓글 부탁드립니다...정원 20석입니다!
온새미님 외 4분이 신청하셨습니다...감상신청하기 게시판의 신청을 대신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하필 그날 직장사람들 저녁모임이 잡히는 바람에 저까지 참석 못하게 되었네요. 다음에 가겠습니다.
불금 아닙니까...ㅎㅎㅎ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금이 무슨 소린가 했더니 불타는 금요일이라네요.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네요. 한 번 들렀던 터라 앞으로 시간 되는 대로 자주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석합니다
제가 처음이라 많이 착각을 했네요. 당연 21:30에 마치는줄 알았더니 22:30분에 마치는걸 잘 모르고 예약했습니다.
일행중에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되는 사람이 있어 음악감상은 다음기회로 미루고자 합니다. 번거롭게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니요...무슨 그런 말씀을...그럴 수도 있지요...ㅎㅎㅎ
어라연+1(?)이 어라연만...-_-
옙!
sempre님, 오스카님, 어라연님, 남토님, 라클님 ... 총 다섯 분께서 신청하셨습니다.
참석합니다^^ 너무 늦게 신청하네요 ㅜ
무슨 말씀을요...ㅎㅎㅎ...환영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4 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