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교지, 공명첩(空名帖)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자 (1894년)
조선후기에 국가재정이 궁핍해지자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납속책(納贖策)을 실시하였다. 납속책이란 곡물이나 돈을 납부한 사람들에게 품계(品階)나 관직(官職)을 수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품계(品階)나 관직(官職)을 수여하기 위해 발행한 사령장(辭令狀)을 납속첩(納粟帖)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납속책은 사실 매관(賣官) 행위와 다름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명예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책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재정이 갈수록 궁핍(窮乏)해지자 납속책을 더욱 확대 실시하였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공명첩(空名帖)이다.
공명첩이란 글자그대로 이름을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령장을 말한다. 중앙정부에서는 이와 같이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령장 즉 공명첩을 대량으로 발행하여 관리들에게 배당하였으며 관리들은 이 공명첩을 들고 다니며 곡식이나 돈을 받고 즉석에서 공명첩에 그의 이름을 써넣어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으나 힘이 약한 평민들에게 강매하여 사회문제로 비화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납속첩이나 공명첩이 남발되자 자연히 관직이나 품계를 받는 것을 명예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유물과 같이 공명첩을 발행하는 관리나 또는 이를 받은 사람이나 모두 공명첩에 이름조차 써넣지 않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