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승주) 개관
예로부터 "순천 가서 인물 자랑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 고 했다. 산수 빼어난 순천에 인물 좋은 이 많고, 번화한 항구이자 공업도시인 여수 살림이 건실한 건 당연하지 않을까?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였던 것처럼 순천은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놓여 있다. 순천은 본래 백제 땅에 속한 감평군이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승평군이 되었고, 고려 충선왕 2년(1310)에 순천부로 개편되어 처음으로 순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순천부는 여수현, 돌산현, 부유현 등을 거느렸으며, 조선 태종 13년(1413) 순천도호부로 승격돼 순천과 여수 지역을 포괄하였다. 1949년에는 순천읍이 시로 승격되어 승주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다시 순천시로 통합되었다. 땅모양이 마치 토끼풀의 세 이파리처럼 생긴 순천시는 광양군과 맞닿은 동북쪽 한 모퉁이 말고는 온통 승주군에 싸여있다.
순천시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여-순 반란사건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죄없는 주민들이 반란군과 경찰의 총칼에 죽어갔던 이 사건은 아직도 순천민들의 가슴속에는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그래서 이곳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다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에만 골몰하는 분위기가 짙다.
순천시에 통합된 승주군이지만 고려시대에는 이 일대가 승주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지역은 해남군에 이어 전라남도에서 둘째로 넓은 곳으로 전라도에서 산이 가장 많은 지방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아름다운 산이 펼쳐져 있고 그 속으로 결코 수량이 많지도 않은 그러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승주의 산중에서도 조계산은 높이는 884m이지만 우람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를 간직한 명산이다. 이 산의 기슭에는 차나무가 저절로 자라나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서는 그 맛의 뛰어남을 고려 말기의 문장가인 이제현의 <소송광승 기다시>를 끌어다가 설명하고 있다.
"갑자기 문 두드리고 대소쿠리 보내는 데에 놀랐으나, 향기롭고 신선한 것 얻으니 옥고보다 낫더라. 향기 맑으니 일찍 한식 전 봄에 딴 것이요 빛이 고우니 아직도 숲 아래 이슬 머금은 듯. 돌솥에 솔바람 소리 울고, 사기 사발에 젖 같은 방울 떠오른다."
산 자체도 호감가지만 무엇보다 조계산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산의 이쪽 저쪽에 한 치의 양보 없이 동등한 무게로 자리잡고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이다. 송광사는 우리 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로 고려 당시 불교계를 개혁코자 했던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에 뿌리를 내리고 수선결사의 수행처로 삼은 인연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정신을 계승한 조계종 본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선암사는 고려시대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적 요소를 가미하여 중국과는 다른 천태종을 내세운 대각국사 의천과 인연이 닿아 있는데, 천태종은 조계종과 더불어 우리 불교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절의 뒷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뒷간이라고 칭송 받고 있다. 맑고 시원한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에 자리잡은 송광사가 활기 있고 역동적인 분위기라면, 선암사는 다독다독 살림살이를 매만지는 아낙네의 살가운 손길이 감칠맛나게 느껴진다. 이 두절은 요모조모 비교해도 쉽사리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좋은 사찰들이다. 선암사에서는 조선시대 읍성의 원형을 간직하며, 우리 옛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낙안읍성이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