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야그 2탄
('68 사학. 홍광택)
영천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택형이 쓴 방명록이 홈페이지에서 1일 접속 건수가 100명이 넘으며 호미회
홈페이지까지 합하면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요새말로 하면 떴다는 것이다 전에 없는 현상이라는...
그럴줄 알았으면 초벌원고를 써서 말도 좀 고르고 수정을 해야 될 부분도 있고 한데
생각나는대로 자판을 때렸으니..
속편을 빨리 쓰라는 독촉이다
전편을 쓸때 생각 해 보니까 술 좌석에서 함부로 지꺼리는 것하고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오픈된 사이트이다보니 더구나 다 실명이고 너무 적나라하게 쓸 수는 없었다
그래 재미가 조금 덜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는 이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럼 한국영화 접속에 인용된--A lovers concerto 를 들으면서 시작 해보겠습니다
지금 서화회 재학생과 그당시 재학생의 경제력을 비교하는 것은 미상불 미국 경제와
방글라데시 또는 미얀마의 경제와 비교하는 것 정도일겁니다
서실 벽에는 돌격대장들이 궁리 끝에 만들어낸 격문이 붙어 있습니다
공수거- 필 만수두래 갈 때는 빈손으로 갈지라도 올 때는 필히 보급 투쟁을 해오라는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화실에 있는 전기 곤로에 운헌형을 비롯해 서화회원 여러명이
고구마를 굽고 있습니다
변변한 콘센트 하나 없어 천장에 있는 시이링 전선에
직선 연결해 한참 맛있게 굽고 있는데 갑자기 천정에서 펑 하면서 연기가 나고
불이 붙었습니다 여학생들도 여러명 같이 있었는데 많이 놀랄뿐 아니라 겨우 어떻게
해서 불은 진화 했으나 하마터면 역사적인 고려대 본관을 태워 먹을 뻔 했습니다
이것은 약과입니다 서실에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쓰레기통이 있는데 그 구조가
구식 아파트에 있는 4층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1층으로 떨어지는 그런 구조지요
그 쓰레기 통에는 서실회원들이 붓글씨 쓰고 버린 신문지 한지등 인화성 물질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어느날 그 속에 누가 담배불을 버린 모양입니다
연기가 나고 불꽃이 튀고 난리가 났죠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고 서실에 있는
바겟스에 붓을 싰는 시커먼 물도 들어붓고 했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
최후로 독약 처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학생들을 모두 화실로 대피 시킨 후 남자 서화회 의용서방 대원들에게
거시기를 거총하도록 명령하고 집중사격 하여 겨우 불길을 잡아 서울시 보호
문화재인 고대 본관을 겨우 구출해낸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후유증이었는데 그 쓰레기통의 1층 입구가 학생처 사무실 앞으로 통해
있는데 총장님 교수님들이 1주일여를 마스크를 하고 출입 했다는군요
무슨일로 바빴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고연전이 내일로 다가 왔으나 고연전
표를 전혀 구하지 못했습니다
서화회 회원들은 고연전 구경을 못하고 손가락 빨게 생겨 돌격 대장들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표를 그려서 들어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림쟁이를 동원 해 라면을 먹여 가면서 밤새 그렸습니다
격문도 잊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사랑하는 여학생들의 운동장 입장은
너희들 손가락끝에 달렸다 표 뒷면에 '산고수려' 라고 써진 서실에 있는 낙관도
찍었습니다 이게 뭐냐고 혹시 물으면 연대 고대 학생회 임원에게만 특별이
배부하는 특별 입장권이라고 사전 교육도 마쳤습니다
다음날 입장하는 날은 무척 긴장이 되었습니다
입구앞에는 연고대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여학생들을 가운데 두고
남자 서화회원들이 빙둘러쌌습니다
부여산성이 함락될 때 낙화암의 풍경이 이랬을까요
죽어도 잡혀도 같이죽자 이런 심정인가요
그러나 조금 후에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운동장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학생들이 떠밀려가 표를 주고 받고 할 사이가
없었습니다 허탈했죠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학교 앞 총각 막걸리 집에 모여
지난밤 잠을 못 잔 화실 환쟁이들의 노고를 맘껏 위로 해줌과 함께
화실 환쟁이 들의 유감 없는 실력을 칭찬 해줬습니다
너무 딱딱한 얘기만 했나요
서화회 주제가인 고독은 원래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였다고 합니다
우홍형이 주로 잘 부른 노래였습니다
서화회원들이 합창이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찡한 노래지요
그러나 그 고독 앞에 1번 주제가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겁니다
독문과 이명희 선배가 잘부른 노래였는데 봄이 오면 오신다는 약속은 없었지만
.....언덕에 올라 님을 한없이 기다린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 노래 그 가사는 잊었지만 그 곡조 그 얼굴은 내마음 속에 그대로 있네 그런 식이네요
서경석 형은 원래 합창부에서 바이오린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분이었는데
재익형이 어느날 초빙해 오면서 서화회 회원이 되었으며 한때 서회회에
바이오린 붐이 일어 재익형 터주대감등 배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서실은 한참동안
개점 휴업 상태였습니다
서경석 형은 서화회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굿을 할 때는 꼭 참석하는
필수요원이 되었습니다
내가 화실에 처음갈 때 한켠에 낡은 스패니쉬 키타 한대가 있었습니다
소유자는 법대 여학생 선배 것이었으나 그 기타에는 애절한 사랑의 추억이
서려 있었습니다 서화회에 있는 모든 것은 이와 같이 문화재에 버금가는
엄청난 비밀이 서려있는 슬픈 궁전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화실을 지키고 있으면서 금지된장난 같은
주옥같은 선율을 토해 내다가 영천의 추억의 앨범 진흥왕 순수비탁본
등산 부분에 잠깐 나오는 영명이라는 불세출의 클라식 키타 맨을
출현 시키게 됩니다
재익형도 제대해서 직장에 다니고 나도 직장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날 불광동 산꼭대기에 있는 재익형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서화회원 몇 명과 같이 간 걸로 기억나는데 재익형의 음악에 대한 애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일제 산수이 전축을 구입했으니 와서 구경을 하라는 것었습니다
전축에서 나온 음악은 더할 수 없이 좋았으나 우리를 놀래게 한 것은
재익형이 직접 시공한'' 보르 박스의 울퉁 불퉁한 부분을 모두 떼어
벽에 온통 붙여 놓은 사제 방음벽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집념이 이 정도는 되어야 되겠지요
피곤하실 것 같으니 브레이크 타임을 잠깐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본말에 마부시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이 일본에 전한 한국말입니다
메'' 는 일본말로 눈이라는 말입니다 마는 메의 변형이고 부시이는 눈부시다는
말에서 따간 말입니다
눈부시다라는 말을 전혀 실감을 못하다가 이 여자를 서화회 그것도 어느 가을이
깊어가던 화실에서 갑자기 맞닥뜨리고 나서 나는 잠시 정신을 잃고 나서
그 말을 실감 하게 됩니다
눈 부신 여자를 만난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내 일생에 걸쳐
나의 사랑의 불시착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긴 머리를 핸드빽에서 갖꺼낸 큰 빗으로 빗을 때는 마음이 너무 두근거려
도둑질을하다 들킨 사람처럼 심장 뛰는 소리가 그 여자에게 들킬까봐
잠시 밖에 나가있다 와야 했습니다
어느날 자기 친구의 조그만 손가방이라면서 색깔이 바래 무늬를 다시
색을 칠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너무 좋은 기회가 왔다면서 흥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나는 나의 모든 기량을 총 동원해 진짜 작품을 만들어 돌려 줬습니다
그 여자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명도가 어떻고 채도가 어떻고
인촌묘소 뒤에 개운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넘어가는 데는 철조망이
반쯤 넘어져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누구의 조력을 받지 않고는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어느날 그 여자와 나는 화구를 챙겨 개운사에 넘어가 그림을 오붓하게 그리기 위해
그 철조망을 넘기로 했습니다
넘기 위해서는 손을 잡는 것은 물론 몸무게의 상당부분도 잡고 지탱해야 했습니다
하숙밥을 오래 먹어 골병이 들었지만 그녀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할 수없어
거의 번쩍 드는 수준으로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그해 늦은 가을 광교에 있는 조흥은행 미술관에서 미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내 그림 옆에 그 여자 그림도 걸렸었고요 그 여자 입고 온 옷하며
핸드백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군요
그리고는 상당기간 소식이 없었습니다 휴학을 했다더군요
나는 학교 신문을 보내는사람 이름이 없이 1년여를 보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학교 본관 앞 우체국 게시판에서 등기 우편물이
왔으니 찾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왕자라는 책도 들어 있고 사연도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 우리는 명동에서 가끔 만나 차도 마시고 영화도 봤습니다
눈오는날 중앙극장에서 본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졸업을 앞두고 나는 곧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포즈해서
결혼을 하자고 할 수없는 무작정 대쉬할 수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그 상황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어느날 그 날도 눈이 몹시오던 광교에서 만나 내일 천마산에 가자고 약속하고
시외버스 터미날인 동마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날밤은 그 여자와 산에 가서 오붓이 지날 생각으로 잠을 한숨도 못잤네요
그날 아침 그 여자는 가방은 메고 왔지만 운동화만 달랑 신고온 상황이어서
무릅까지 빠지는 산 속을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천마산 입구 가게에서
고무줄과 비닐을 사서 내가 신은 스타킹을 벗어 그녀에게 신기고
비닐로 감고 고무줄로 칭칭 감아줬습니다
점심은 눈을 코펠에 넣고 녹여 그녀가 준비해 온 카레를 먹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카레를 대할 때마다 목이 메이지 않을 수 없었고 일주일 후에 다방에서
그녀가 조그만 선물상자를 주어 집에 가서 풀어 보니 천마산 갈 때 내가 신겨준
그 스타킹을 빨아 다려 곱게 포장 한 것이었습니다
한참 후에 신촌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만나 강화도 전등사에도 갔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한참 불공을 드리기도 했지요
그후 나는 군에 가고 다시는 못볼 줄 알았습니다
천마산 갈 때 서화회원 중에 이름은 생각 나지 않지만 사진을 잘 찍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라고 렌즈가 위 아래로 둘 달린 구닥다리
이긴하지만 작품사진 찍을 때는 많이 사용하는 귀한 사진기를 빌려줘서
그여자의 모습을 맘 껏 찍었는데 군에 갈 때는 그 사진을 몰래 수첩 뒤에다
끼어 두고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봤는데 혹시 그 사진기 빌려준 서화회원이
이 글을 읽으면 연락 주세요 내가 크게 한번 쏘리다
내가 제대를 앞두고 고향으로 그녀가 보낸 편지를 나의 누이동생이 다시
릴레이 편지를 해서 받아 봤습니다
아 아직도 시집을 안갔구나 이제 비로소 대쉬 할 수있는 기회가 왔구나
마지막 말년 휴가를 받아 군복 입고 그녀가 다니는 광화문에 교회에서 만났지요
그후의 애기는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하겠군요
너무 슬픈 애기라서 WHERE DO I BEGIN''' 그런 노래가 유행하던 때였지요
부처님이 법귀경에 말씀 하시길 '사랑 하지 마라 못봐서 괴롭다
미워 하지마라 봐서 괴롭다
흑흑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아님 최백호의 내마음 갈곳을 잃어
어느곡을 틀어 드릴까요
아니면 BON JOVI의WITHOUT lOVE 또는NEVER SAY GOODbYE
이런걸 틀어 드릴까요
서화회 회원이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메뉴얼은 하나도 얘기 못하고 2편을
끝내야 되겠군요 죄송합니다
엘리 에리 라마 사박다니
홍 광 택 2003.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