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9차 비봉산(飛鳳山)-671m
◈날짜: 2007년 01월07일 ◈날씨: 오전-맑음 /오후-맑음
◈위치: 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참가인원:44명 ◈산행소요시간: 4시간50분(09:35-14:25)
◈교통:동원고속관광(제웅식기사):마삼(07:05)-칠원요금소(07;20)-서대구요금소(08:05)-동명휴게소(08:15-45)-군위요금소(09:02)-공룡약수(09:25)-수정리입구 하차(09:33)
◈산행구간:수정리→주차장→산불감시초소→남근석→비봉산→수정사갈림길안부→영니산봉수대→금성산→주차장
◈특기사항:의성군 가음면 현리소재 빙계온천(☏054-833-6660)에서 목욕
◈산행메모:어제 내려진 대설주의보의 영향으로 지리산국립공원 입산이 금지되어 산행지를 비봉산으로 변경한다.
중앙고속도로에서 군위요금소를 통과하며 5번도로를 따라 가다가 927번도로로 진행한다. 구불거리는 고개를 넘으니 왼쪽으로 공룡약수(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몇 년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약수를 구입하러 몰려들었다는 약수터)를 지난다. 갈림길에서 68번도로(빙계계곡)로 우회전한다.
금성산·수정사 방향으로 좌회전하니 중앙선도 없이 마을을 관통하는 포장도로다. 새로 조성된 2차선포장도로(수정리입구)에서 하차한다.
우리가 오를 금성산, 비봉산이 정면에 막아선다. 오른쪽에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으로는 금성산으로 치솟아 그 뒤로 뻗어나간 능선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비봉산으로 연결된다.
마을안길을 지나니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작업 중이다. 도로 확·포장 작업이다. 산행들머리에는 새 주차장이 조성되어 마무리공사만 남았다. 수정사방향으로 100미터 가까이 진행하니 오른쪽에 비봉산등산안내도를 만난다(09:56).
그 앞으로 산길이 열린다. 오른쪽으로 밋밋하게 진행하다가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르게 올라간다.
소나무 아래로 之자를 그리는 오름이다. 때때로 와 닿는 바람이 차갑다. 시야가 트이며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이다(10:25).
초소 안에는 근무자가 정위치하고 있다. 이런 높은 곳의 초소에 근무자를 만나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발아래는 연무로 조망이 흐리다. 진행방향으로 두 개의 봉이 기다린다. 5~6m높이의 소나무 숲은 계속된다. 내려서다가 之자로 치솟으니 봉이다(10:43).
내려가며 호흡을 조절하고 치솟으니 봉이다(10:53).
오른쪽이 바위절벽인 비봉산이 독립된 산처럼 새로 나타난다.
좌우로 가파른 암반도 만나는 능선을 10분 가까이 밋밋하게 진행하다가 之자를 그리며 가파르게 쏟아지니 안부다(11:06).
소나무 아래로 촉감 좋은 길을 밋밋하게 올라가니 갈림길이다(11:15).
모두 비봉산으로 이어지는데 오른쪽은 암벽에 걸린 밧줄을 만나게 된다. 몇십미터 오르니 밧줄이다. 오른쪽으로 가서 남근석에 눈도장을 찍고 밧줄을 당기는 유격훈련. 올라서니 오른쪽은 절벽 낭떠러지다. 연무에 사방이 침침하지만 들판의 비닐하우스들이 반짝인다. 왼쪽으로 작은 봉을 넘어 오르니 헬기장을 만나고 비봉산정상표지석이다(11:33-12:08).
2002년 개천절에 이 곳을 찾았을 때는 없었던 표지석이다. 이른 시각이지만 찬바람을 막아주는 장소라 여기서 장수식당을 차린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지날 금성산도 보인다. 표지석을 오른쪽으로 보내고 왼쪽으로 휘어지며 아래로 쏟아진다. 소나무 숲은 이어지지만 응달이라 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을 마주하며 내려간다. 수정사갈림길 안부에 내려선다(12:22).
이정표에는 뒤로 비봉산900, 왼쪽으로 수정사1000, 오른쪽으로 운곡리, 진행방향으로 금성산4950m다. 10분 후 더 낮은 안부에 내려가서 땅바닥을 살짝 덮은 눈길로 봉에 오르니 사라졌던 찬바람을 다시 만난다. 좌우로 휘어지며 고만고만한 봉을 넘는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왼쪽에서 금성산이 모습을 드러낸다(12:52).
8분간 내려가니 안부갈림길이다. 6분간 올라기니 영니산봉수대유지 푯말이다.
<해발445m에 위치한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1455)에 영니산봉수대로 기록되어 있다. 면내에는 3개소의 봉수대유지가 있으며 영니산봉수대는 철로의 승원산봉수대에서 봉화를 받아 만천의 대야산봉수대에 전달했다고 전한다. 1998년4월에 의성문화원에서 현지를 답사하고 3곳의 봉수대에 유지 푯말을 설치했다. 봉수의 기원은 삼국유사가락국기 시조 수로왕7년(AD48년), 삼국사기 백제온조왕10년 봉현, 봉산, 봉산성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용문정갈림길, 건들바위를 지나 금성산표지석이다(13:35).
고스락에는‘530.1고지, 국내최초의 사화산’안내판도 있다
<盈尼山, 金鶴山, 天辰山, 金城山 등으로 불리며 산 전체가 흑요석으로 덮여있고 정상에는 부근 최대의 길지(명당)로 알려진 500여평의 분지가 있다. 여기에 매장을 하면 3년 이내에 큰 부자가 되고 인근 30리 안에는 석달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수정사의 샘물이 마른다는 전설이 있다. 전하는 말로는 조문국 최후의 격전장이라 하며 맑은 날에는 의성읍 시가지와 가음면 일부가 보이고 제오리, 운곡리, 도경리 일부를 제외하고 면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연무로 인해 사방의 조망은 포기한다. 왼쪽으로 내려간다. 비봉산을 앞두고 바위 앞에서 당겼던 로프를 여기서도 만난다. 정면에 가로지르는 능선의 왼쪽으로 비봉산이 주인답게 높다.
그 아래로 자리잡은 수정사도 보인다. 내려가니 병마훈련장 안내판이다.
<병마훈련장은 조문국이 최후를 맞아 성안에 갇혀있는 동안 병마를 훈련시키던 곳이라 전하며 지금도 그때의 취사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으나 패망한 나라의 역사가 있을 수 없으니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기록에는‘이 지역에 진한시대에 작은 나라로 등장한 조문국에 난리가 나 크게 군사를 모으니 30명이었다.’고 기록되었다고 하나 당시의 30명이 현재의 몇 명인지는 알 수가 없다.>
조문국 군 지휘부의 초소역할로 적의 침입을 살피고 감시했다는 관망대를 내려서니 오른쪽으로 일직선의 돌담이 아래로 이어진다.
조문산성·금성산성 안내판도 있다.
<詔文山城 또는 金鶴山城, 金山石城으로 부른다. 길이 약2730m, 높이 4m, 너비 2~4m로 山頂石과 包谷式을 복합한 석축산성으로 축성연대는 알 수없으나 신라문무왕13년(673)9월에 성을 보수하여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당군을 물리치는데 한몫을 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村老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문무왕 이전에 축성된 조문성이라 전하며 義城懸誌에 의하면 금성산 古城안에 대궐유지와 우물4개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촌로들의 구전이 신빙성을 더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오른쪽으로 성을 끼고 내려가다가 성을 넘어 오른쪽으로 가서 왼쪽으로 내려가니 옛길에 내려서고 왼쪽으로 금성산·비봉산등산안내판을 만난다.
오른쪽 새로 조성된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감한다(14:08).
♧승차이동(14:53)-목욕탕(15:10-16:43)-수정사입구(16:53)- 28번도로(17:01)-5번도로(17:17)- 가산요금소(17:32)-동명휴게소(17:42-52)-서대구요금소(18:05)-현풍휴게소(18:22-32)-칠원요금소(19:03)-마산도착(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