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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조금 힘들어 했지만 첫날 17km 이상(다음구간 일부포함) 걷기를 무사히 마쳤다.
첫날이라 수월했겠지만 첫날이기 때문에 자고 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간밤에 약간 불안했다.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어떤 이유로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러나, 기우였다.
며느리의 보고에 의하면 할아버지의 당부대로 집에 도착해서 평소와 달리 온수 샤워를
했고 아침에도 스스로 일찍 기상하여 길 떠날 채비를 했다는 것.
이처럼 착한 소년들이 엇나간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청소년 문제 말이다.
"문제아는 없다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
1950년대, 민족동란의 참화 속에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사회과학 관련 분야에서 다룬
사례 연구(case study)의 한 주제였다.
윗 물이 혼탁한데 아랫 물이 청결할 수 있는가(上濁下不淨)
콩 심으면 당연히 콩이 나는데 팥 나기를 기대하는가.
정답이 자명한데도 부모와 사회의 기성세대는 후대를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6코스 들머리로 가려면 어제의 귀가 코스를 역(逆)으로 하면 된다.
9호선 가양역이 들.날머리지만 약간 더 진행했으므로 이전 역(중미역)이다.
어제 우이동의 할아버지와 진관동의 손자가 헤어진 곳이 2호선 합정역이므로 이 곳에서
만나 한강 건너 있는 당산역에서 환승하면 목적지에 당도한다.
초등학생 손자에 대한 80대 할아버지의 염려가 지나친가.
지하철도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운데다 스마트폰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환승과
승하차의 오류를 걱정하는 것이.
이 아침(27일)에도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그의 첫 승차역(6호선 연신내역)까지 갔다.
강서구 가양동 황금내근린공원 안에 있으며 어제 마감힌 6코스의 마지막(3번째/위) 스탬프 대 앞에서.
6코스를 역 방향으로 시각한 시각은 아침 10시 40분.
들머리에 접근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어제는 은평구에서 시작하여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앵봉산과 봉산을 거쳐 마포구와 강서구까지 갔다.
오늘 코스는 강서구에서 영등포구, 구로구와 금천구에 이르는 18km 구간이다.
한강과 안양천을 따라서 걸으며 서울둘레길에서 유일하게 산이 없고 야간 도보 가능이 유일한 코스.
염강나들목의 터널(위)을 나와 한참 동안 한강을 거슬러 간다(아래 1~4)
수년 전, 휴전선 155마일을 걸을 때는 강화도에서 한강 따라 올라와 일산대교에서 한강을 건넜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한강 따라 걷기는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내 무덤이 되었을 지도 모를 한강 백사장이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한강인데.
어린 손자에게 한강의 비극을 말해주기는 싫어도 한강에서 해마다 일어나던 해프닝은 들려줘도 되겠지만
그 것 마저도 좀 더 성장한 뒤로 미뤘다.
민족 동란 때인 1950년 6월 28일 첫 새벽에 폭파된 한강 인도교에는 오랫동안 시신들이 매달려 있었다.
남으로 가던 피난민들이다.
그 다리에서 하류쪽 백사장에서는 밤마다 참호를 팠다.
인천에 상륙, 진격해 오는 UN군을 막으려는 서울점령 북한군의 짓이었는데 낮에는 전투기의 공격때문에
못하고 밤에만 했으며 그 일을 위해 매일 밤 동원된 사람들 중에 나도 들어 있었다.
첫 날만 무사했고 다음날 밤부터는 비행기가 하늘에 조명탄을 띄워 놓고 공중에서 사격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었으니까..
수복 후의 한강변은 해를 거르지 않고 여름마다 수재민촌이 되었다.
적지 않은 시민이 주거지를 한강변 마을로 하고 강변에 천막집, 판자집을 지은 후 홍수 오기를 고대하는
상습 수재민들이었으며 적십자사를 비롯해 많은 성금 성물을 챙겼으니까.
그 한강이 이렇게 변했으니 격세지감이라 할 수 밖에.
서울 둘레길의 역 코스는 한강에 합류하는 안양천을 거슬러 올라간다(위)
발원지가 관악산의 서남쪽에 자리한 삼성산(해발481m)의 안양사라 하여 안양천이 되었다는 하천.
아무리 정비하고 관리해도 범람을 막을 수 없는 것은 지리적 운명이다.
한강까지 34.8km에 불과한 길이는 장점과 단점, 양극이 되기 때문이다.
한강의 수위가 낮을 때는 어떠한 경우에도(아무리 장시간의 폭우에도) 안전한데 반해 한강이 범람
하거나 수위가 높아지면 여하히 대처해도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거대한 저수조를 만들고 한강의 역류를 막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발전하기 이전의 한강변 가양동은 서울에서 대표적 장어마을이었다.
이 곳, 한강과 안양천의 합수지역이 장어의 서식지인 기수(汽水)지역이었던 때는 그랬는데 이처럼
정비된 이후 지금은 추억은 남아 있으나 어디였는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장어 마니아(도락가)들은 낮 밤 가리지 않고 즐겨 찾던 곳인데.
맑은 물이 아니면 못사는 물고기도 있지만 대개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水至淸則無魚)
는데 바닷물과 강물의 합수로 염분이 적어지고 바람을 타는 곳을 서식지로 한 장어는 특히 '풍천장
어'(風川)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장어 중 장어로 평가한다.
내 얘기를 들은 어린 손자가 장어 맛에 익숙해졌는가 아침부터 장어 타령을 하니.
애들의 중국 생활이 불가피했던 때, 일시 귀국 후 돌아갈 때 송별 식사로 사준 장어를 어찌나 잘 먹
던지 비용이 꽤 들었는데 또 사줘야 할 때가 되었나.
김포공항이 유일한 국제공항이던 시절.
김포공항이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이라면 양화대교(아래)는 서울의 관문이었다.
한강의 인도교가 하나씩 늘어나도 모두 서울관문(양화대교)을 거쳐서 하늘관문(김포공항)으로 가고
올 수 밖에 없었으니 이 다리가 얼마나 바빴는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리 직전에 인공폭포(양화폭포)를 만드는 등 하늘을 날아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주려고 애썼다.
천변 정리 때 갈대밭을 조성했는가.
제 철에는 멋스럽겠다(위)
갈대와 억새는 가장 많이 혼동하는 식물 이름일 것이다.
'볏과의 다년초'라는 공통점에 생김새 마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러나 한가지만 기억하면 고민 끝이다.
물가 또는 습지에 있는 것은 갈대, 그 밖의 지역에서 자라면 억새.
손자의 반응은 역시 "아 그렇군요"
건성인지 딴엔 진지한 표현인지 아직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억새는 일명 '으악새'로도 불리는데(경기 지역?) 어느 신문사의 공모에 뽑힌 소설에 으악새가 실존 조류로
등장해서 한동안 가십(gossip) 거리가 된 적이 있다.
으악새를 실재하는 새라고 우긴 그 소설가의 배짱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독교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한 이래 뱀 이상으로 혐오당하는 동물이 있을까.
무수한 파충류 중에서 유독 뱀이 그런 것은 선입견 때문일까.
고단백질 함유의 으뜸이며 심지어 뱀탕을 위한 동남아 여행 코스까지 있다는데.
까미노 6.000km에서 드물게 뱀을 보기도 하지만 '뱀 조심' 경구를 본 적이 없는데 일본 시코쿠 헨로 1.200
km에서 무수히 보았고(아래 2/위험, 뱀 주의) 여기 천변에서도 보게 된다(아래 1)
양평교와 목동교(위 1~3)를 지나는 동안 지루했겠지만 벌써 정오가 지났고 점심식탁에의
초대를 간절히 바라는 손자.
시간 적응력과 인내력 훈련기간이 83년과 13년.
수치 만으로도 나의 6분의 1도 되지 못하다면 그가 1시간 기다리는 것은 내가 6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천변에 식당이 없기 때문에 오목교(아래 2)를 건넜다.
어제에 비해 걸쭉하지는 못해도 내용물은 어제 못지 않은 설농탕 곱빼기.
맛 있게 먹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뭘 자꾸 더 주려고 하는 서빙 여인.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할아버지.
좋은 그림이었을 것이다.
손자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과식했나(아래)
초만원인 강북을 피해 새로운 시설(목동운동장)과 고층 빌딩들이 들어설 때마다 안양천에도
다리가 하나씩 늘어났다..
오목교(위)가 그러했고 신정교(아래)도 그랬다.
석수역 한하고 그러고 있다.
둑 위에는, 제 철에는 화사한 유혹을 퍼뜨릴 벚나무 가로수와 휴게 및 체육시설이 있고(위 1~3)
천변에는 다양한 시설(아래)이 있으나 아직 철이 아닌 것이 유감이다.`
오금교(위)와 공사중인 고척교 밑을 지나면 고척동 돔 구장(아래 1. 2)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있다.
교통문제를 비롯해 기술적 문제 등 안팎으로 문제점들이 들어나고 있다 하나 우리나라 최초의 돔 구장
이건만 나는 먼 발치의 눈 요기나마 처음이다.
15년 된 월드컵 경기장도 처음이니 이번 서울둘레길 나들이의 의미가 획기적이다.
잠시 머물었다가 안양천3철교 위를 서쪽으로 달리고 있는 열차는 경인 전철 하행선이렸다.
멎었던 곳이 구일역이다.
역사 앞 둑에 있는 스탬프 대(빨간 우체통)에서 6코스 2번째(오늘은 처음) 스탬프를 받은 후(위) 둑길을 걸었다.
안양교를 지나고 광명대교(아래 1), 철산교(아래 2)와 금천교(아래 3)를 지났다.
금천교 이후에는 머리 위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금천교 이후 금천구청 옆을 통과할 때 부터 조금씩 지쳐가는 손자.
어제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한계를 늘릴 대책을 세워야겠다.
시흥대교(위) 밑에서 마지막 30여분의 분발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쉬는 동안에 걸어온 안양천 길을 돌아보았다.
하천을 정비하여 각종 친 생활시설을 갖추는 것은 전국적 현상이므로 특기할 일이 되지 못한다.
15km남짓 거리의 하천에 2개의 철교를 포함하여 15개가 넘는 다리가 놓인 것 또한 하천으로 인한
주민 생활의 불편 해소와 균형 발전을 위한 조치로 이해하자.
하천의 길이에 비례한 교량의 개수로 보면 우리나라가 소위 선진국 중에서도 최 상위에 들 것으로
판단하면 내가 과문하기 때문일까.
교량을 줄이고도 보다 효율적인 도로 정책을 펴는 지혜는 과연 불가능한가.
내로라 하는 선진국들은 우리 보다 지혜가 부족하거나 경제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도로와 교량
건설에 인색(?)한 것일까.
다리가 없기 때문에 먼 다리까지 U턴 또는 P턴을 기꺼이 감수하며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그들.
모자라기 때문인가 멸사봉공(滅私奉公)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의 생활화에서 비롯된 것일까.
건설이 불가피 하다면 1c는 유지되도록 견실해야 하거늘 30년을 버티지 못할 만큼 부실한 다리가
태반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에 들어 있으며 2밀레니엄(millennium)에도 말짱한 세고비아(스페인)의
아꾸아둑또(acueducto/水道橋/아래)에 견줄 다리를 바라지 않는다.
레레스 강(Pontebedra)의 아름다운 띠란떼스 다리(아래2.3)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일제가 놓은 다리 만큼도 턱 없이 모자란데다 하나같은 모양임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내 기분이 힘 들어 하는 어린 손자에게 비칠세라 추스려 일어섰고 오늘의 종점인 석수역권에 진입했다.(위)
5시 정각에 안양천 코스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음으로서 종료(아래)
내가 어린 손자와 함께 서울둘레길을 걷는 이유 중 하나는 그와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함이다.
이 시간에는 접근과 귀가의 교통시간도 포함된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전철이 될 때는 이산가족이 됨으로서 낙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는 경로석(노약자석)에, 그는 일반석에 앉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경로석에 앉아 있으면 어른 공대를 하지 않는,도덕적으로 싹수 없는 아이가
되고 내가 일반석에 앉아 있으려면 주책 없는 늙은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윤리적 도덕적이지 못한 아이라고 매도당하며 쫓겨나거나, 당신네 자리 두고 젊은이들
앉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 등은 상상이 아니고 종종 있는 실제 상황이다.
나는 경로석 또는 노약자 및 임산부석,교통약자석 등의 이름으로 전철과 버스에 등장한
특별석(?)에 대해 애초부터 신날하게 비판하고 있는 늙은이다.
다른 선후진국의 시행 여부에 관계 없이 건전하지 못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시대에 제한된 좌석을 두고 늙은이끼라 경쟁하란 말인가.
게다가 우리 젊은이들을 한글 문맹(文盲)으로 만들며,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젊은이의
마음인들 편하겠는가.
이까짓 강제적인 좌석 양보가 도덕성 함양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는가.
숱한 밤을 보낸 알베르게에서 벙크(bunk/2층 간이침대)의 편한 아랫층을 내게 양보한
젊은이는 경로석 제도로 훈련 받은 한국인이 아니고 모두 외국의 청년들이었다.
그들 나라의 대중교통 수단에는 경로석이 없어도 경로는 생래적 인성의 발로라는 것.
개인은 도덕적이지만 그가 속한 사회의 집단적 이기주의 때문에 비도덕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어느 분(R. Niebuhr의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은 말했다.
비도덕적인 개인의 집단이기 때문에 도덕적 사회가 될 수 없는 것이 필연 아닌가..
그러나 어느 쪽이건 도덕 운운에는 나는 불행하게도 냉소적이다.
그럼에도 내가 어린 손자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이 제 3세대가 유일한
희망임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