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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 이문구의 흔적을 찾아서
- 이문구 선생의 작고 10주기를 추모하며-
보령 책익는 마을에서는 지난 2012년 여름에 ‘이문구선생 타계 10주년 기념 책읽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명천 이문구(이하 명천)의 작품을 읽기로 하고, 선정한 도서가 『이문구 전집』(랜덤하우스중앙출판사)이다. 전체 26권인 이 전집은 안학수 작가가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출판사에 문의해 보니 보관된 것이 없고 절판이란다. 그래서 책익는 마을은 전집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 하였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내가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구하다 보니 상당량을 구하게 되었다. 두 권만 빼고 다 구했으니 어느 정도 성과는 이룬 셈이다. 그렇게 모은 전집을 책익는마을에 빌려 주었더니 정작 내가 읽고 싶을 때는 읽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다시 구입하기도 했다. 명천의 글은 농촌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글을 구성하는 치밀성이나 대화를 통한 심리적 묘사까지도 관심 있게 읽었다. 대화를 유심히 살피고, 충청도 사투리를 입으로 발성해 가면서 읽기도 했다. 그렇게 읽다보니 쉽게 들어오지 않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충청도 사투리가 읽혀지는 수준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문장에 녹아 있는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작가가 전하는 내용에 푹 빠지고 말았다.
『관촌수필』은 가정으로부터 동네 사람들과 이루어지는 이야기라면, 『우리동네』는 좀 더 넓어진 이웃 마을의 이야기이다. 바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시대의 생생한 모습이기에 더욱 감동이다. 나무를 소재로 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관촌수필』․『우리동네』에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장이리 개암나무’에서 재미를 더 느끼기도 했다. 특히 이번 설에는 세로판 『관촌수필』(문학과지성사, 1977년 초판본)을 들고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첫 장인 ‘일락서산’을 읽고는 마지막 줄에 눈이 갔다. ‘현대문학 1972. 5’라는 문장이다. 괜히 그 한 줄에 눈이 가기 시작을 하더니 “이 책을 내가 한번 찾아볼까?” 하는 욕망이 작동을 했다. 들뢰즈가 말하던 클리나멘(편위)이 작동을 했다. 한 사건으로 인해 가던 방향이 바뀌어 다른 길로 가듯 그렇게 명천의 책을 찾게 되었다. 명천의 흔적을 찾아서 그의 책을 찾는 여로가 시작되었다. 나는 명천의 흔적 찾기를 그의 삶이 아닌 작품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으로 한정하려 한다. 따라서 그가 살았던 지리적인 삶과는 관계가 없다. 명천이 발표한 당시의 잡지를 보고 싶었고, 그 책으로 직접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니 그냥 있을 수 없다. 곧바로 『관촌수필』에 나타난 제목과 발표된 잡지를 우선 정리했다.
『관촌수필』을 발표한 잡지는 다음과 같다.
일락서산(현대문학, 1972년 5월)
화무십일(신동아, 1972년 10월)
행운유수(월간중앙, 1973년 3월)
녹수청산(창작과비평, 1973년 가을)
공산토월(문학과지성, 1973년 겨울)
관산추정(창작과비평, 1976년 겨울)
여요주서(세계의 문학, 1976년 겨울)
월곡후야(월간중앙, 1977년 1월)
컴퓨터를 켜고 헌책방과 중고서점을 뒤지기 시작을 했다. ‘일락서산’이 발표되었던 『현대문학』지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재고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 번째인 ‘화무십일’이 수록된 책을 찾아 여행을 한다. 기쁨으로 클릭을 하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렇게 해서 ‘화무십일’을 발표한 『신동아』 1972년 10월호를 구했다. 그런데 목차를 보니 명천의 글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서 자세히 보아도 이문구의 이름이 없었다. 이에 여러 문헌을 통해 ‘1972년 10월호’가 아니라 ‘1973년 1월호’(통권 101호)인 것을 알았다. 초판을 낼 때 잘못 쓴 기록이 40년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나칠 수 없어 ‘문학과지성사’에 전화를 하여 오타가 있으니 확인하고 수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교정본으로 나오는 책을 언제 보게 될지 모르겠다. ‘여요주서’가 발표된 『세계의 문학』 1976년판과 『월간중앙』1977년 1월호를 구했다. 『창작과 비평』은 영인본을 갖고 있기에 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명천의 책을 찾기 시작한 이상 다른 책들에게도 눈이 갔다. 명천이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은 김동리의 추천을 받은 ‘다갈라 불망비’이다. 이 작품이 수록된 잡지는 『현대문학』 1965년 9월호인데, 이 책도 힘겹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구입한 초판본은 다음과 같다.
* ‘다갈라 불망비’(『현대문학』, 1965년 9월, 129호)
* ‘백결’(『현대문학』, 1966년 7월, 139호)
* ‘지혈’(『현대문학』, 1967년 10월, 154호)
* ‘가을소리’(『현대문학』, 1968년 12월, 168호)
* ‘그가 말했듯’(『문학사상』, 1972년 10월 창간호)
* ‘공산토월’(『문학과 지성』, 1973년 겨울)
* ‘관산추정’(『창작과비평』, 1976년 겨울)
* ‘한 켤레 구두로 산 사내’(『문예중앙』, 1978년 여름)
* ‘우리동네 姜氏’(『실천문학』, 1980년 1권)
* ‘우리동네 長氏’(『창작과 비평』, 1980년 여름호. 통권56호)
* ‘명천유사’(『실천문학』, 1984년 제5권)
* ‘더더대를 찾아서’(『문학동네』, 1994년 창간호)
솔 출판사와 랜덤하우스중앙 출판사의 전집은 책이 겹치기도 하고, 또한 내가 소장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제외한다. 아래는 내가 구한 초판본이다.
『해벽』(창작과 비평사, 1974년 7월)
『엉겅퀴 잎새』(열화당, 1977년 2월)
『아픈 사랑 이야기』(진문출판사, 1977년 8월)
『으악새 우는 사연』(한진, 1978년 12월)
『지금은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전예원, 1979년 12월)
『우리 동네』(민음사, 1981년 12월)
『그리고 기타 여러분』(사회발전연구소, 1985년 4월)
『몸으로 살러온 사내』(도서출판 산하, 1987년 4월)
『다가오는 소리』(삼중당, 1987년 5월)
『장한몽』(책세상, 1987년 7월)
『산너머 남촌』(창작과 비평사, 1990년 6월)
『매월당 김시습』(문이당, 1992년 7월)
『유자소전』(도서출판 벽호, 1993년 2월)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보다』(열린세상, 1993년 12월)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열린세상, 1994년 6월)
『나는 남에게 누구인가』(엔터, 1997년 5월)
『샛길에서 나 홀로』(강출판사, 1997년 5월)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학고재, 2000년 2월)
그 외에도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명천의 글이 들어 있는 책을 들어보면
『차 한잔의 꽁트』(태창, 1978년 2월): ‘믿은 사람’ ‘문병하는 여자’
『나』(청람, 1978년 3월): ‘남의 하늘에 붙어 살며’
『문제작·문제작가』(동천사, 1983년 8월):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 편’
『오늘의 한국문학 33인선』(양우당, 1988년 9월): ‘인생살이 한 자락만 머무는 冠村’
『짧게 즐겁게』(도서출판 친우, 1985년 6월): ‘이름모를 풀’ ‘성냥개비’ ‘텃세’ ‘별난 이웃사람’ ‘팔도 고무신’ ‘그의 옛 친구’ ‘삼각지에서’
『행복한 도둑나라 이야기』(중원사, 1992년 11월): ‘그날부터’
『뒤집어져야 문학이다』(중앙books, 2009년 4월):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의 탐구』(도서출판 지소림, 1977년 12월): ‘18년만의 귀향’
나는 작년부터 명천의 글을 통해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한 맛을 알게 되었고,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전에는 그의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쉽게 읽혀져서 좋다. 쉽게 읽히니까 내용뿐만이 아니라 행간의 숨은 뜻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명천은 일제에 태어나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겪은 삶이다.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사상의 대치로 인해 좌익이었던 아버지를 잃었고, 이어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차례로 떠나보낸 명천은 민족과 함께 아픔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남에게 그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일 수 없었던 경계인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농촌사람들의 애환을 짙게 그리면서도 살아온 자취를 시원하게 풀어놓은 그의 작품은 진정 박수를 받을만하다. 그는 아웃사이더가 아닌 진정한 인사이더로서 우리 동네 아저씨다.
국회도서관에서 ‘이문구’란 단어를 검색을 해 보니 365건이나 나온다. 대학 논문만 87개나 되는데, 그 중에 관계가 없는 20개를 제외하면 67개가 이문구에 관한 연구논문이다. 그러나 『관촌가는 길』의 연구논문 목록에 보면 2006년 현재 186개나 되는 논문이 있다. 이렇게 많은 논문이 나올 정도의 문인이라면 우리 보령의 자랑이다. 그에 대해 연구한 책도 여러 권이나 나왔다. 『작가세계』 1992년 겨울호에는 ‘장한몽’에서 ‘매월당 김시습’까지 ‘이문구 특집’으로 다루어 명천의 삶을 나이별로 고찰하기도 했고, 작가에 대한 내면의 모습까지도 파헤쳐 그의 모습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충청도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문구 소설어 사전』도 발간되어 그를 이해하는데 큰 힘이 된다.
내가 소장한 명천을 연구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세계』(세계사, 1992년 겨울)
『이문구 소설어 사전』(민충환 편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00)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구』(고인환, 청동거울, 2003)
『이문구연구 논문집 관촌가는 길』(구자황, 랜덤하우스, 2006)
『이문구 문학의 전통과 근대』(구자황, 도서출판 역락, 2006)
『한민족 문화연구』33집. ‘도시/농촌의 공간 충격과 속물주의 비판-이문구의 『산너머 남촌』연구’(한민족문화연구회, 2010)
『전망의 발견』양진오 평론집. ‘김원일·황석영·이문구의 소설’(실천문학사, 2003)
『고교 독서 평설』(지학사, 2005. 4월): ‘이문구의 일락서산’
『작가마당』 2012 하반기 제21호(대전작가회의, 2012년 11월) ‘이문구의 문학적 고향을 찾아서’(김현정)
『관촌수필』이나 『우리 동네』는 대학수능 논술에서도 주요 작품으로 다루어져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명작이다. 『고교 도서평설』에는 ‘일락서산’을 읽기 쉽게 단어 옆에 해설을 써놓았기에 쉽게 읽혀진다. 이렇게 고등학교 전체에서 읽혀지는 작품을 쓴 작가가 정작 고향에서는 그리 환대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것은 그의 글을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부친에 대한 이미지가 클로즈업되면서 끼친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관을 설치하려다 취소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누군가는 그를 사랑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오는 2월 25일은 그가 작고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보령의 문인들이 2월 23일, 관촌의 ‘관촌마을비’ 앞에서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명천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보령인으로서 그를 추모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이들도 함께 추모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바라기는 보령에 명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의 작품이나 글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는 모임이 만들어 지기를 기대한다. 우선 나 혼자라도 그에 관한 책을 모으다 보면 작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명천의 흔적을 찾는 일을 계속하려 한다.
2013년 2월 15일 흥덕골 서재에서 안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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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2013. 2. 23일자 보령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안세환목사님의 열정이 역사의 커다란 한획을 긋게 될것입니다.
목사님의 끈질긴 열정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