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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8일은 무주선원의 石佛(석불) 점안식이라, 우린 그 전날 우리 차를 가장이 운전해 미리 출발했다.
한라산 깊은 삼림 속 큰 키 나무들 아래 천양금이 지천이고, 어린 동백나무와 녹나무가 많다. 서쪽 대숲엔 옹달샘이 있고 거기엔 석오스님이 심은 수련도 떠있다. 무성한 풀과 나무와 새들과 다람쥐가 사는 숲속 삼거리에, 100년은 되었음직한 비름나무가 이 작은 절과 그 가족-꽃과 바위와 불상과 도랑과 옹달샘과 스님-등을 지켜주고 있다. 키 작은 나무와 풀 다람쥐나 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작고 나지막하고 조용한 無駐禪院(무주선원)과 작달막한 스님이 숲과 그 숲속 가족들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절과 스님을 제주 TV에서도 방영하였다고 한다.
스님이 마음에서도 몸에서도 손톱에서도 피를 흘리며 쌓았을 뜨락의 돌들과, 왜란을 심어 폭신한 정원과, 분홍색과 흰색 꽃잔디가 아롱진 바위틈엔 영산홍이 붉다. 정원엔 황매화와 홍가시나무와 라일락과 빨간 장미가, 나지막한 울타리는 꽃댕강나무와 만리향이다. 수도꼭지만한 대롱에서 물줄기가 낙하하는 작은 도랑에선 붓꽃과 꽃창포가 피어 내 꿈을 완성시켜준다. 이 모든 것들이 조그마한 절이며 스님과도 매우 조화로움은 석오스님의 미적 감각이 뛰어남을 말해준다. 그래서 무주선원에 사는 모든 꽃들은 아롱지고, 키 작은 바위와 나무와 부처님까지도 다소곳하고 조용하며 어여쁘고 평화롭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절이 스님의 욕심 없고 소박함을 알려준다. 이 절 안의 스님을 비롯한 작은 존재들 모두가, 숲과도 잘 어울려서, 어느 웅장하고 역사 깊은 절보다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절터는 어느 보살이 200평을 석오스님께 무주상보시한 것을, 그 사람 마음에서 “줬다”는 마음조차를 없애기 위해 시가대로 값을 다 치러준 후(준 사람은 반드시 지배하거나 간섭하려들기 때문에도) 언니의 어린 아들 이름으로 등기 이전해줌으로써 스님 자신은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했다.
겨우 일 미터 폭의 작은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엔 나무판자에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서 예술적으로 쓴 ㅇ堂(원당)이란 현판이 달려 있고, 그 방엔 앉은키가 생후 1년생 아기 정도의 명상하는 金佛像(금불상)이 화평하고도 겸허하고 사랑스럽다. 그 불상 앞엔 한 사람이 들어가 참배할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손님이 오면 스님은 웃으면서 제일 먼저 그 작은 부처님께 절을 시킨다. 나는 미소 지으며 자비와 화평이 가득하고도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부처님께 공손히 절을 올렸다.
점안식을 도와주기 위해 청주 화장사의 무진스님과(출가해 처음 찾아간 석오스님을 삭발시키고 품어 가르쳐주신 비구니이자 주지 스님이시다), 수덕사와 공주 연화정사의 젊은 비구니 스님들도 와서 오랜 시간 독경을 하며 점안식을 거행해주셨다. 젊은 두 스님은 부엌일을 비롯해 다른 일들도 힘껏 도와줬다.
신도들은 제주도는 물론 뭍에서도 와 총 30명은 됐다. 몇 천 몇 백 명씩 모이는 대사찰의 석가탄신일 행사에 운집하는 신도들만 본 사람들은, 에게! 겨우 30명? 하고 웃겠지만, 원당이래야 두 평도 안 되는 무주선원으로선 크게 성황을 이룬 것이다.
절이고 교회고, 처세나 사업상으로라도 건물도 크고, 부자나 권세 있는 신도가 많고 신도 수도 많은 곳으로 다들 가는 법인데, 작은 직함 하나도 없는 비구니스님과, 몇 안 되는 신도마저도 절이나 스님에게 도움을 주긴 커녕, 가난하고 불행해 모두들 스님에게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뿐이니.
점심은 어느 식당 사장님이 제공해 준 비빔밥이 맛있었다. 그 사장님은 석오스님 일이라면 늘 물심양면으로 아낌 없이 도와주신다고 한다. 그분과,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먼 데서까지들 와서 헌신 봉사하는 스님과, 신도들이 있어 굶주림과 외로움에도 스님은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식사하는 옆자리엔 석오스님의 주례로 한국 여인과 결혼한 미국 남자가, 자신은 먹지도 않고 남편에게 계속 봉사만 하는 아내에게 당신도 먹으란 말 한 마디 없이 비빔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스님은 4월 초파일에도 행사를 성대히 하겠다고 했다.
컨테이너박스에 지붕을 얹는 것도 사기를 당하고 빚을 져서, 귤 농장에 가 오렌지를 따주고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쌀이 없어서 굶기도 하는 등 극도의 궁핍을 겪은 듯한데도 나는 도와주질 않았다. 내가 복전함을 놓으라고 여러 번 권했음에도 스님은 그때마다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스님들도 시주 돈만 바라선 안 된다”고 했더니
“바라긴 누가 바래요. 안! 바래요!”하고 “안”자에 힘을 주며 내 말을 냉소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석오스님은 너무도 순수하고 순진해서 세속에선 사기와배신만 당하고 출가를 결행했던 것인데, 나도 마찬가지지만 스님은 아직도 세상과 인간을 자기 같은 줄 아는데다 주기만 좋아하고, 불문에 들어서서는 종교적 이상주의에 청정무비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니 어찌 굶주리지 않으랴?!
물론 스님도 나도 자존심과 양심상, 비루해 뵈는 보시함을 놓을 순 없지만, 참선과 수행만하는 스님으로선 당장 가진 돈도 호구지책도 또 다른 묘안도 없으니 어쩌랴?!
자고로 스님들은 중생의 시주를 받아 살며, 그로 해 치부도 해왔거늘...... 보시를 못 받는 스님들은 먹고살기 위해 신도들을 현혹 세속적 무속적 방법으로라도 돈들을 버는데, 우리로서야 그런 짓은 절대로 못할 성격이지만, 보다 건전하고 고차원적인 호구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우선 보시함을 놓으랄 수밖에. 그런데 인간심리와 세속인심을 더 잘 아는 내가 인생의 선배로서 또는 예지로 어떤 권유나 조언을 해줄 때마다 스님은 청정한 계율에만 집착해 사사건건 북-! 북-! 우기고, 꼭 거부하고, 반대하며, 내 말은 절대로 듣질 않아 대화조차가 늘 불편하고 불쾌했다.
거금을 갖고 종단에 들어가질 않는 한, 공양주 노릇과 허드렛일이나 해야 하는 게 불교계의 관행이요 불문율일진데, 스님들이 천하게 여기는 육체노동이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도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고 살려면 신도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생들이 사바 세상에 부대끼고 고뇌하며 피나게 번 돈들을, 자기 수양이나 할 뿐, 보답을 하거나, 세상에 기여도나, 베푸는 것이 하나도 없는 스님들께서 편히 먹고 살라고 쾌척하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할 것인가?!
그러므로 시주가 많이 들어오거나 재산이 많은 절에서 거처하는 스님들이 아니고선 먹고 살기 위해 대부분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도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기복 신앙적 무속적 행사를 권하여, 세속적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우린 굶어죽을지언정 순진한 신도들을 속이거나, 속된 짓을 해서 돈을 버는 건 전혀 생리에도 안 맞고 절대로 용납할 수도 없지만, 머리 좋은 스님들이 수천 년 연구 개발한 돈벌이의 80%가 무속적 세속적 방법 아니면 순진한 신도들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후려 먹는 방법들 아닌가?! 물론 그런 잡된 짓을 하는 건 땡중이나 사이비 승려들이겠지만
나는 건전하고 고귀한 방법이 생각나기까진 우선 복전함을 놓으라고 권했던 것이나, 그때 석오스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식으로 “아-니!!!”하며 북북 우기다가 자신의 종교적 이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순수한 자신의 성격엔 전혀 안 맞음에도, 여러 번에 걸친 내 권유에, 그 작은 부처님 뒤에 숨긴 듯 더 작은 복전함을 놓긴 했다. 그러나 깊은 삼림 속이라 자가용이 아니곤 갈 수도 없는데다, 신도들조차도 스님에게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뿐이고,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곤 어쩌다 한 둘, 몇 안 되는 밭에 삽이나 호미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뿐이니 누가 보시를 하랴!
생계비용이 없는 스님들이 하는 돈벌이 방법엔 속되고 계율에 어긋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복전함을 놓고는 보시를 하면 복을 받는다고 설법을 해 시주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것이야 말로 예로부터 스님들이 설법을 하는 외엔 세상에 베푸는 것은 전혀 없으면서도 거룩하게 대우 받으며, 불노소득으로 얻는 최고의 치부 방법이다. 여간 청렴결백한 스님이 아니고선 흐뭇할 뿐 양심에 가책도 없을 테니 참으로 비상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교육수준이 높아진 요즘은 우리 국민의 교양과 지적 수준도 높아진데다 순후한 인심도 사라져서, 기복 신앙적 행사나, 시주를 하는 사람들도 줄었다고 한다. 그로해서 스님들도 전처럼 풍요를 누리지 못함은 물론, 재산이 많은 절에서 기거하거나, 사교적 수단이 좋은 스님이 아니고선 식생활조차도 어렵게 마련이다. 또한 신도들의 시주금 즉 공돈을 받아먹고 살면서도 보답도, 국가 사회에 환원도 기여도 하지 않으니 공부와 수행을 하는 외엔 근성으론 거지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거룩하고 존귀하게 대우받으려고만 하니 어찌 고소를 금할 수 있겠는가?!
둘째, 이야기 솜씨가 좋거나 설법을 잘하는 스님은 다른 절이나 불교대학에 초빙 받아 가서 설법을 해주면 거마비를 받게 마련이다. 자기 절에서 설법을 해도 그 날 온 신도들 대부분이 아줌마나 할머니들이라 복전함에 1~2천원이라도 넣는다. [내 경우는 절에 가서 설법을 들은 날은 비빔밥도 대접받으므로 설법 들은 값과 합해서 2만원을 넣는다. 옆집 교회에서도 추수 감사절 예배 등에 여러 번 초대하지만, 매번 가진 못해도 가는 날은 2만원씩 헌금하다가 지난해부턴 3만원씩을 헌금함에 넣는다]
묘허스님은 말씨도 음성도 깔끔한데다 어디서 그렇게 이야기를 무진장 퍼내는지 늘 재미있고도 유익한 이야기로 설법을 잘하시므로 신도들 모두가 좋아하는데, 요즘은 불교TV에서도 더러 뵐 수가 있다. 그분 설법집은 불교대학이나 불교용품 판매 서적상에 가면 볼 수 있다.
설법은 것은 선과 자비를 가르치는 일이니 국가 사회에 기여를 하는 셈이나, 초빙 받는 일이야 어디 그리 흔하랴!
셋째, 글을 잘 쓰면 법정스님처럼 책을 출판하면, 베스트쎌러가 되어, 신앙의 유무와 종교의 같고 다름을 불문하고 다들 사서 읽으니 인세를 많이 받는다. 존경과 인기도 누리며 국민정신을 교화시키므로 사회에 공헌도도 있고 설법과 함께 가장 차원 높게 돈을 버는 방법이다.
그러나 1970-1980년대엔 출생 시 별자리로 보는 사주와 운명에 대해 어느 스님이 썼다고 광고 해 그 책도 스님도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오래 전에 출판했던 책 내용을 글자 한자도 안 틀리게 출판했음을 대훈서적에서 원작자가 출판한 낡은 책을 보고 확인한 바 있다. 당시 온 국민이 그 책을 안 사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그 스님은 돈깨나 벌었을 것이다. 그 때 온 나라를 풍미했던 그 스님은 얼마 뒤 매스컴에서 사라진 후 지금껏 종적을 알 수가 없다. 그가 진짜 스님이었는지도, 출판사와의 공모 여부도 알 수가 없지만,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기를 쳤다거나, 그로 해 처벌 받았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넷째, 스님이 부자와 권력자들을 사귐으로써 후원과 시주를 많이 받는 방법이다. 세속적 수완과 사교가 좋은 스님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섯째, 초상집에 가 염불을 해주고 사례비를 받는 방법이다. 1980년대 초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묘허스님을 모셔왔는데 50만원을 드렸다. 그러나 초상집이 어디 그리 흔하며, 상가라 해도 다 스님에게 염불을 청하지도 않을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여섯째, 탁발이다. 석가께서는 수도를 하고 세상을 제도하는 스님들로선 끼니 정도는 대접받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 걸 기화로 많은 스님들이 지금까지도 모든 걸 공짜로만 바라며, 이를 당연시 하는 버릇이 생겼으니 그야말로 천한 거지 근성에 악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스님들의 탁발을 한용운 스님은 불교유신론? 에서
“부처님의 100가지 가르침 중에 왜 아흔아홉 가지 가르침은 다 져버리고, 왜 빌어먹는 짓만 하느냐?!”고 질타하였다. 비루하게 거지노릇하지 말고 점잖게 앉아서 존경받고 거룩하게 대접 받으란 뜻이다. 그러나 아무 생산적인 일도 않는데다, 도움도 보답도 않고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없는 스님들에게 늘 갖다 바치기만 하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 것인가?!
나야 우리 집에 누가 무엇을 팔러 오면, 같은 물건이 잔뜩 있어도 꼭 하나라도 팔아주고, 거지나 탁발승이 와도 모질고 각박하게 쫓아버리질 않고, 밥상을 차려 주거나, 1,000원이라도 줘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보내지만.....
그러나 육신이 멀쩡하고 나이 든 남자 거지가 오면 돈을 주긴하되 “젊어서 뭘 하셨어요?!” 힐란하듯 묻는다. 말년이 궁핍하고 초라한 사람은 빚보증이나 사업의 도산 등으로 몰락한 경우가 아닌 한, 베풀긴 고사하고, 간교하고 인색하고 각박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년에 돌아올 보응도 없는데다 좋은 사람들도 다 떠나버렸을 테지. 아니면 주색 방탕했을 테고, 대답은 예상대로다
“뭐 술 마시고.....”
탁발승이 오면 2,000원이라도 주면서
“한용운 스님의 가르침 모르세요?” 한다.
“모르는데요”
“한용운 스님은 왜 부처님의 가르침 100가지 중에 아흔아홉 가지는 져버리고 빌어먹는 짓만 하느냐?!고 했어요”
내 말을 들은 한 기괴하게 못생겼으나 정수리가 높은 스님은 “으흠!”했다. 알아들었다는 뜻이니 참된 스님이 분명했다.
잘생겼지만, 머리에 10센티도 넘는 흉터가 말썽깨나 부렸을 듯 섬찍한 한 젊은이는 승복을 입긴 했으나, 내가 돈을 주며 한용운 스님의 말을 했더니, 팩! 하고 성질을 부리며 고맙다는 말도 않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는 성질로 보아서도, 정수리가 평평한 것으로도 스님은커녕 신앙생활조차 할 사람이 아니었다.
탁발승은 몇 년에 하나쯤 보인다. 그들은 주로 식당이나 약국 등 상가에 가서 염불을 하며 시주를 원하는데, 어느 곳에서도 환영은커녕 단 돈 100원도 보시를 하거나, 밥 한 술이라도 먹어보라는 곳을 본적은 없다. 주인들은 그런 중들이 많아서라고 했다. 그 스님들인들 천대와 냉대를 받으며 비럭질을 하고 싶을까마는.........
그러나 비구니가 탁발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탁발승 중엔 가짜와, 어진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먹는 사기꾼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사는 게 양심적이고 건강한 삶이지, 공부와 자기 수도만 하면서 거저 얻기만 하려는 것은 품위도 없고 염치없는 짓이다.
일곱째, 철학이나 주역 관상학 명리학 등은 전혀 공부도 안 했거나, 조금밖에 모르면서도, 스님은 무엇이든지 잘 알고, 신통력까지 있는 줄 알고, 신도들이 운이나 사주를 물어보면, 모르면서도 자신에 대한 존경심과 신비감이 사라져서 다른 절로 갈까봐, 아무 말이나 대답하는 방법이다. 스님을 절대 신뢰하는 신도들로선, 운을 공짜로 물어보는 재미로 절에 다니며 복채 대신 시주함에 몇 천 원이라도 넣곤 하니 이것도 돈벌이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 경우 어떤 사람은 궁합이 전혀 안 맞는데도 잘 맞는다고 대답한 스님의 말을 믿고 결혼한 결과 부부가 성격이 너무도 안 맞아 끝내 이혼하고 만 경우도 있다.
아예 족집게 도사라거나 운수를 백발백중 맞춘다고 매스컴에 광고를 하여 저질 무당처럼 돈을 버는 스님들도 있다.
그러나 스님이 운명을 알려고 하거나 남의 운을 봐주는 것 모두가 석가세존께선 금기시하신 일이다.
여덟째, 5만원 주고 화가에게 달마대사상을 그려 달래선, 자신이 그려서 큰 복과 기적이 일어나는 양 신문 잡지에 광고하여 신도들에겐 50만 원 이상 받고, 기도도 염력도 안 넣고 부적을 써서 거금을 받는 방법이다. 이런 일이야 말로 일등 사기꾼을 능가하는 짓들이다.
아홉째, 천도제나 49제를 지내주고 거금을 받는 방법이다. 이 경우는 가족을 여읜 사람들은 너무 애통하고 황망해 망자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천당행 차표를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물론 극락 지옥 저승 등 사후 세계와, 망자의 영혼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게 해주기 위해 그런 기복신앙으로라도 위로를 받으니 그런 일엔돈도 안 아낀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지적으로 보면, 절 식구들이 먹고 살기 위해 무지몽매한 신도들을 속여 후려먹는 한바탕의 큰 돈벌이 행사일 뿐이다.
기복신앙을 권해서 돈을 버는 스님들은, 초상집에 갔다 온 후 남편이 발병했다면
“보살님 남편 뒤에 죽은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고 귀신을 쫓아주어야 병이 낫을 듯 암시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겁에 질린 신도가 되물으면
“망자의 천도제를 지내줘야 합니다”해서, 무지와 불안에 떨며 스님을 절대 신뢰하는 신도에게 무속적 제례를 지내게 함으로써 큰돈을 버는데, 이는 천당행 차표를 파는 격이다.
열 번째, 문화재 보수비를 많이 받아, 절을 조금만 수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보수비를 매년 타낼 수야 없잖은가?!
열한 번째, 절에 신령스러운 일이나 영험한 일이 있다고 소문을 내는 방법이다. 스님이나 그 절의 창건과 소장된 보물에 관한 전설을 소문내는 일이야 흔하지만, 현대에도 불상을 두고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일이 일어난 듯 소문을 퍼트려 신도와 관광객들을 몰려들게 하는 절이 더러 있다.
어느 절은 어머니가 그 절에서 기도를 해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며, 그 절의 바위에 가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을 냈다. 그 결과 당시 모 대통령 재임기간엔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 절에 몰려가 인산인해를 이룬 적이 있다. 그 경우 소원성취하고 복 받으려고 시주들도 많이 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어떤 절은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소문 내 신도와 구경꾼들이 몰려들게도 (사실은 풀잠자리 알인데)하고, 설법을 듣는 강아지나 개구리, 눈물이나 땀이나 피를 흘리는 석불 등을 신비화하는 절도 있다.
열두 번째, 온갖 행사를 하여 신도들을 자주 불러 모으고, 행사 때 설법을 함으로써 세상도 제도하고 석가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방법이다. 그때마다 복전함에 시주 돈이 많이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절에 가는 신도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인데다, 갈 때마다 전원 다 시주하는 것도 아니고, 시주를 한 대도 99%가 1,000-2,000원씩이니 그날 대접하는 밥값도 안된다.
열세 번째 비구니의 경우는 드물지만 장을 담이나 효소를담아 팔 거나, 약초를 재배해 파는 이도 있는데 생산적이고 건전한 방법이긴 하나 외롭고 가엾어 보인다.
이처럼 출가할 때 평생 먹고 살 자금을 소지하고 불문에 들거나, 종단이나 주지에게 거금을 주지 않는 한, 사바세상 분진과 소음 속에서 중생들이 피나게 번 돈을 보시 받아 사는 게 스님들이다. 그런데 종단에 바친 돈도, 가진 돈도 없고, 시주도 받지 못해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스님 중에선 자존심도 체통도 양심마저도 저버리고 순진하게도 자신을 절대 신뢰하는 신도의 돈을 후려 먹거나, 거지(탁발승 노릇)가 된다. 그런 스님들로 해서 가장 청정해야 될 불교계와 스님들이 저질스러워 보이고 때론 악취마저 풍긴다.
하지만 불교계에선 위와 같이 잡된 짓을 하는 스님들만 탓할 수는 없으리라. 평소 원로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보시를 해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쳐 와서, 어떤 사찰과 종단은 시주 받아 치부한 재산과 돈이 엄청나게 많으므로. (어느 종단의 총무는 내연녀와 아들을 대전 오정동에 숨겨두고, 가끔 한밤중에 돈을 한 짐 지고 와선 여자에게 주고 며칠간 두문부불출하다가 또 한밤중에 떠난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떤 스님들은 연명조차 힘 드는 등, 불교계의 빈익빈 부익부와 부패와 불공평은 세속의 그 어떤 단체보다도 심하다.
사회단체들도 새 회원이 들어오면 푸근히 돌봐주고 적립금을 공평무사하게 쓰는데, 불교계는 부처님과 대자대비가 좋아서 세속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은 물론 혈육이며 친구들 을 다 버리고 입단한 스님들을 돌봐주긴 커녕, 생계비와 건강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보장도 안 세워주고, 굶어죽건 얼어죽건 방치하고 있다. 찬란한 문명세계요 배부르다 못해 곡식과 먹다 남은 음식은 물론 포장도 안 뜯은 음식물과 상품들까지 지천으로 내버리는 이 풍요 속에서도 인심은 날로 황폐해지는데, 불교계가 이런 악습들을 개혁하지 않는 것은 인정상이나 도리로도 종단 지도층의 무책임이요 태만이요 박덕이요 이기주의요 무자비라 아니할 수 없다.
스님들은 육체노동을 천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도 안 맞거나 싫어하고, 공부와 수행만 하고 싶어하는데, 종단이 생계에서부터 건강보험과 간병 수발에 대한 보장과 책임을 져주지 않으니 연명하기 위해 복전함을 놓고 공돈을 바라거나, 순진한 신도들을 속여서 돈을 후려 먹거나, 기복신앙적 제례를 치르게 하는 등으로 스님으로서의 품격을 손상시킴은, 불교계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종단 지도부가 그 개선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계종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스님들에게만 노후 거처와 생계와 건강보험과 요양 수발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스님들도 대부분 가진 것이 없고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생계대책이 전혀 없음에도 알아서 의식주를 해결하라는 식이니, 순진한 신도들을 현혹해 속여 먹는 방법 외에 어떤 묘수가 있으랴. 종단 회의에서 그 문제를 토의해 법규를 정한다고 하고도, 종단 책임자들은 급여를 받으니 여타 스님들이야 아사하건 병사하건 알바 아니란 식이다. 천하고 삿된 짓을 해서라도 연명하는 스님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매번 법규 제정을 유야무야한다니, 교리와 정신세계는 가장 방대하고 고차원적이면서도. 우리 국민과 신도가 무지몽매하던 시절의 기복신앙과 탁발 수준에서 아직도 벗어나질 못해 불교계가 가장 후진되고 발전이 더뎌 보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재를 진학시키거나, 학교를 세워 인재들을 양성하는 사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템풀스테이도 하곤 있으나, 우선적으론 스님들의 생계와 질병 요양 등에 대한 대책들부터 세워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몇몇 스님들만 부를 누리는 한 불교계나 종단 관계자들은 위선자이므로, 대중의 존경이나 우러름을 받는다는 생각은 자존만대한 스님들의 착각일 뿐이다.
가난한 스님들의 생계 등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종단에서 기업체를 설립하든지 생산적인 사업을 해서, 스님들도 모두 그 사업체에서 각자 적성에 맞는 일을 하도록 하되, 참선 수행도 할 수 있게 각자 원하는 대로 일 년에 서너 달 아니면 격월로 휴가를 주면 된다. 그 경우사업체의 수익금으론 생계비와 건강 등을 책임지고 보장해 주면 된다. 그러면 스님들도 안정되고 비루한 짓이나 삿된 짓을 안 해도 되니 떳떳하고, 수행도 하므로, 진실로 고고 청정해 존경과 신뢰를 받을 것이다.
스님들도 할 수 있는 수익 사업은 많을 것이다. 비구니들은 비닐하우스나 유리 온실에서 꽃 채소 산나물 약초 과일 등을 길러 관광객에게나 인터넷 판매 위탁판매업체에 위탁이나 식품공장에 납품 수출, 아니면 아파트 직거래 등 판로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미장원이나, 유치원, 어린이 집을 운영해도 될 것이고......
선식과 채식위주의 뷔페식당 운영이나, 건강식품과 식품 등의 생산 판매나, 직물이나 옷이나 침구를 생산 판매하거나, 출판이나 인쇄, 공업 제품 생산도 좋을 것이다.
제품마다 품질 최고라고 정평이 나면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될 것이다.
교조가 스스로를 구세주라 한다 하여, 아주 먼 옛날 남의 나라에서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독생자요 왕이요 자칭 구세주였던 한 성자만 오로지 절대자로 숭배하는 한국의 모 종단체로부터 이단이라고 태동기부터 지금까지도 매도되고, 갖가지 중상모략과 박해와 오해를 받고 있는한 종교단체의 예를 들면,
그 종단은 설립 허가를 얻지 못해 국내에 방송국은 없으나, 전 세계에 언론사(주로 신문사)가 10여개나 있다.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지는 경영난으로 매각했다) 그 언론들을 이용하거나 교조의 노력으로 미국의 대통령과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인사를 당선시켰다. (그래서 교조인 총재는 일본 입국이 금지 됐다) 뿐만 아니라 교조가 고르바쵸프를 만나 소련의 개혁개방과 붕괴를 이끌어 냄으로써 동서 냉전과 미 쏘의 무기경쟁을 종식시키는 등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 외에도 그 교조가 한 위대한 일은 너무도 많으나 이 글에 관계없는 내용은 생략함)
그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에서의 5박 내지 7박에 걸친 세미나와 관광에 왕복 비행기 표와 최고급 호텔에서의 숙식비 등을 합해 200만원~350만원을 그 종단에서 전액 부담하여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을 포함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쎄미나를 했다. 비용으로만 따져도 다른 종교계에선 쓴 적이 없는 크나큰 액수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단지 도덕과 양심교육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일찌기 생각도 못한 세계평화와 한국의 평화통일에 대한 지혜로운 방법과, 희망과 환상을 제시하고 가르쳐줬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종교방송들에선 스님도 목사도 출산을 많이 하라고 설교했고, 지자체장은 물론 정부도 출산을 독려하는가 하면 출산장려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우리국민이 지금까지와 같이 출산을 안 하면 앞으론 용병과 노동자들까지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할 것이니 출산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 종단이 세미나에서 교육시킨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종단은 수업료 전액을 면제해주고 유학까지 보내주는 각종 학교도 세웠고, 예술단체도 있고, 체육대회도 해서 상금을 크게 주곤 한다. 이런 사업들은 국위 선양과 인재양성과 사회 환원 목적의 사업일 것이다.
그 밖에 그 종단의 수익사업체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국내에만도 50개에 가까운 종류가 있다. 자동차 중공업 음료수 건강식품 무역 유통 이사 짐 운반 목재가구 석재 골재 건설 철강 기계 정밀기계 도자기 발전기 자동차 부품 티타늄 공원묘지 쇼핑몰 관광여행 레저 리조트 호텔 수산 부동산 의류 침구 출판 인쇄 등등......런 사업들을 함으로써 한국의 국부와 문화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많은 고용효과도 내고 있다. 그러나 총재(교조) 자신의 이름으로는 땅 한 평도 가진 것이 없고, 종단의 재산은 국내에만 해도 부동산과 금융자산 합해서 2,000년대에 2조 5천억 원 정도였다.
그 종단도 태동기엔 신도들이 집과 재산을 총재와 종단에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총재는 그들이 기증한 재산을 자본금으로 하여 신도들을 활용해 사업을 벌임으로써 교세 확장은 물론 재정적으로도, 대부분의 사업도 크게 번영했다. (그래서 외국 언론들은 그 교조를 종교의 창시자로 보는 게 아니라 “사업가”라고 부른다)
그렇게 생산적인 사업들을 함으로써 불교계처럼 신도들에게 시주를 바라거나 요구를 해 종단이나 관계자 몇몇만 치부를 하고 여타 스님들은 굶어죽어도 알 바 아니라는 듯 방치하는 법이 없다. 신도들까지 그 종단의 수많은 단체에서 직책을 부여받거나나, 사업체에서 직무를 맡아 다들 높은 직위와 일자리를 얻어 보수가 보장됨으로써 자긍심을 갖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종파에서야 모함을 하건 박해를 하건 그 종단 신도들은 모두 교조(총재)를 절대자로 우러르며(세배를 가도 총재가 일인당 10만원씩 준다), 종단의 각종 봉사단체에서도 열심히 봉사들을 한다. 따라서 천한 짓을 하거나, 신도들을 속여 먹는 사람도, 생계나 건강 장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일도 없다.
쎄미나는 우리 국민을 깨우쳐 주었고, 그 종단과 총재가 지금껏 연대별로 전 세계에서 어떤 일들을 해왔으며, 총재가 자칭 구세주라 하는 것 외엔,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며, 전 세계에 얼마나 크고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해 왔는지를 알 게 했다.
받기만 할 뿐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나, 베푸는 것이 가장 적어보이는 불교계에서도 위 종단과 그들 총재가 한 일들을 참고로 알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한국 불교와 승려들은 신도들에겐 “베풀어야 복이 온다”고 함으로써 보시를 유도하여, 공짜로 받기만 하며, 베푸는 것은 너무도 없는 위선자요 거지근성을 가진 자들이란 낙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불교계는 개혁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그런데 개혁은 않고, 보시를 받건 탁발을 하건 공짜로 받거나 빌어먹는 짓을 당연시 내지는 관행으로 여김으로써 속세가 더러워 출가를 하고도, 그 더러운 사바세상 중생들이 고통 속에 피땀 흘려 번 돈들을 시주받다 못해 사기 쳐서라도 공양주까지 절 식구들이 푸성귀나마 먹고 살며, 공부와 수행도 해야함은 불교계의 치부요 욕스러운 면 아닌가?!
청정무비만을 고집하는 석오스님이나 나로선 거지가 손을 내미는 식으로 복전함을 놓아 남의 피땀 흘린 대가를 거저 얻는 것은 파렴치하고, 기복신앙으로 신도들을 현혹해 큰돈을 버는 것도, 사기 치는 짓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이니 어찌 굶어죽지 않을 손가?!
그래도 우선 어쩔 수 없으니 내 권유가 백번 옳으며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인가를 스님 스스로 처절하게 깨닫고, 연명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스님을 전혀 도와주지 않고 대신 다음 말을 했다.
“이젠 우리 국민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무지한 기복신앙인구도 줄어들었고, 시주하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는 게 현실이다. 양심상 성직자나 스님들도 생산적인 일을 해서 수입을 얻어야지, 공짜(헌금이나 시주)만 바라선 안 된다.
우리 집 옆 베델교회의 홍택주 목사님은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갱생시키느라고(그 소문이 외국에도 퍼져서 독일과 미국 교회에서 1,000 달러씩의 후원금이 오곤 했다) 일반신도들 상대의 목회는 하지 못해서 40여명이나 되던 신도들이 모두 다른 교회로 갔다. 그러니 십일조나 헌금도 들어오는 게 거의 없지만, 몇 푼 들어오더라도 사적으론 헌금을 일체 쓰지 않는다. 그것을 쓰면 신도들은 목사님 가족을 자신들이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어린이 집을 운영해 생활하고 두 아들의 학비도 준다.
스님들도 일본 사찰처럼 양초나 향 등, 절에 필요한 물품들이라도 판매를 해서 수입을 얻어야 할 것이다”
전부터 석오스님은 처음엔 연꽃 모양의 양초와 촛대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팔았으나 생필품도 아니고 수요층도 극소수이니 잘 팔렸을 리가 있겠는가?!
그 다음엔 표고버섯을 재배해서 판매한다고 하는데(재배법은 아마 유향난원 허순재 원장님이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싶다) 버섯이 사계절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수입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은 꿀과, 일랑일랑, 로즈제라늄 등, 극심한 분노와 우울증을 소멸시키고 사랑을 부르며, 해충을 퇴치하는 천연 원료로 예술품처럼 아름다운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비누를 만들어 자율판매대에 놓았다. 그러나 버스도 안다니는 깊은 산 중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아주 작은 절에 그걸 팔아 줄 그 누가 올 것이며, 보시를 할 사람 누가 올 것인가?!
점안식 날엔 너무도 아름다워 쓸 수가 없고 완상이나 해야 할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조각품 같은 비누를 와준 모든 보살들에게 빨강 파랑 분홍 등 예쁜 색깔의 봉지에 세 개씩 담아 선물로 나눠줬다. 그걸 받아든 사람들은 하도 예뻐서
“이걸 어떻게 쓰란 말야?!” 했다.
한 여자는 비누를 받아가며
“판다지만, 파는 것 한 번도 못 봤네. 늘 선물로 다 주지…”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분홍과 흰색 등 보석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 열 개를 고르곤 그 값을 보시함에 넣었는데, 스님이 또 여러 봉지를 선물로 줬다.
“집에 있는 비누들도 10년은 쓸 텐데......”
“선물 개념으로 주는 거예요”
나는 몹시 가난한 스님이 그토록 애써서 예쁘게 만든 선물을 아낌없이 주는 것에 눈물 나고 마음 아파 그 비누들을 팔아서 전액 송금해주리라.
무주선원 인근엔 숙박시설이 전혀 없으므로, 역시 깊은 숲속에서 수천 평 부지에 양난을 재배하는 유향난원으로 가야했다. 저녁에 일부러 와서 안내하는 여사장님 차를 따라갔다.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에 자동 분무장치와 온도조절기 등 온갖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조직배양으로 신품종도 개발하며 양난을 재배해 순전히 외국 특히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만하는 곳이다.
넓은 소나무 숲이 다 정원인 곳, 창을 열면 연못과 분수가 앞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컨테이너박스를 모텔 부럽지 않게 시설을 갖춰 놓았다. 인근엔 식당도 없는 지라 원장님은 숙소에 쌀과 라면 김치 커피 김 등을 놓아둠으로써 숙박하는 누구든 굶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 놓았다. 우리에게는 스님이 매끼 손수 밥을 지어주셨으나, 첫날 아침엔 원장님이 표고버섯도 조금 재배한다며 버섯 죽을 끓여주셔서 평생 아침이 먹기 싫은 나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호텔이나 가정집 그 어디에서도 유향난원 숙소처럼 침대와 물이 뜨거운 곳을 본 적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사장님이 얼마나 후덕하신 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원장님은 욕심 부리지 않지만 숙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있다고 한다.
석오스님께 온 손님들의 숙박비는 모두 그 스님에게 보시하지만, 스님도 사양하여 반분하거나, 3대 2쯤으로 받는 듯했다. 스님으로 하여금 아사하지 않도록 원장님은 그런 방법으로도 도와주고 계신 것이다.
무주선원 원당의 부처님과 정원의 돌부처님 주변은 물론, 정원을 흐르는 도랑이 온통 양란으로 채워져 있는 건 모두 유향난원장님의 꽃 공양이었다. 그분은 평소에도 석오스님과 무주선원 일이라면 늘 친 엄마처럼 후덕하고 푸근하게 후원하고 베풀고 도와주신다고 한다, 선원을 아름답고 값비싼 양란들로 가득 채워 주신 것만 봐도 덕이 매우 높고 어지신 분이다.
떠나올 땐 아침 6시라 문을 두드릴 수가 없어서 원장님께는 종이에 인사말만 써놓고 나왔다. 그런데 내가 꽃 중독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셨던가보다. 원장님은 일찍 일어나 우리 차가 출발하는 소리를 듣고 유향난원만의 희귀한 난(아마 춘란과 보세란의 교배종인 듯?) 두 화분을 들고 좇아 나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차는 이미 떠나버려서, 차로도 한참을 달려 가 스님에게 주자, 스님은 내게 부쳐주셨다. 우리가 출발할 때도 원장님이 공양한 양난을 스님은 다섯 분이나 주셨는데, 나머지 30분을 또 부쳐주셨다. 장미꽃이나, 빨간 꽃사과 열매 한 송이만 받아도 평생 잊지 못하며, 좋아하는 꽃 한포기를 구하면 천하를 다 얻은 듯한 내가 엄청 부자가 된 셈이다.
주변엔 버스 다니는 길조차도 없는 깊은 숲속에, 디즈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동화의 나라 요정의 집 無駐禪院(무주선원).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니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도 되리라. 이 조용하고 아주 작고 나지막한 절은 훗날 전설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전설이 되어, 석오스님이 네팔의 기원정사에 가서 여러 달 참선을 하고 온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여기 오면 (스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내려놓아진다”고 한단다.
옆의 단독으로 된 최고급 리조트에선 1박당 숙박비가 40만원인데, 무주선원에 온 손님에겐 숙박비를 대폭 할인해준다. 평일엔 30% ,주말 등엔 25% 정도................
이 세상에서 제일 작고 사랑스러운 이 요정의 나라 무주선원이 (절도 스님도 현판도 작은 부처님도 꽃도 나무도 바위도 도랑도 모두가 요정들이다) 어서 유복해지고, 몇 년 후에라도 내가 이 사랑스러운 요정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일주문을 나섰다.
석오스님은 미얀마에서 절의 고탑이 무너지면서 발견된 석가세존의 血사리를 미얀마 전 종정님으로부터 2014년 3월 5일 수백과 선사 받았다. (미얀마에선 스님들이 사리를 한국 스님-절-에 줘야 된다고 한다) 그 사리탑 봉안식을 2014년 3월 31일[월요일] 9시 경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5월 19일엔 인도의 기원정사{수자타 장자가 석가세존의 설법을 듣고 그 우아함과 탁월 비상한 논리와 인격에 감복하고 우러르게 되어 절을 지어드리려고 땅을 사고자 하니 지주 제타태자가 황금을 갖다 이 땅에 다 깔면 팔겠다 해서 수자타 장자가 수레에 황금을 싣고 가 깔으니 지주가 감동을 해서 수자타 장자와 함께 지은 것이 기원정사이다. 석가세존께서 가장 오래(20여년간) 머무르셨으며, 최고의 경전인 금강경을 비롯해 불경의 80%를 설법한 절이었으나 힌두교도들의 파괴로 기원정사는 절 터만 남아 있다. 그 곁에 한국의 스님이, 300명이 설법을 듣을 수 있는 절과, 숙박소를 지어놓았다. 그 스님이 석오스님만을 위한 구들 깔은 방을 따로 하니 만들어 주셨다}에 가셔서 3개월간 참선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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