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블루
이종오
북간도 이국의 땅으로 갈 때
고향의 그리움은 부모님 무덤에 묻어 버렸다
무덤에 묻는다고 잊혀질
그리움은 아니었지만---
조선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백의민족 DNA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진 멸시와 고통을 받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모두가
바랄 것 없는 나라를 조국이라고
그토록 값진 것을 죄다 바쳤다
재물도, 가족도, 목숨도
남아있는 그 무엇도---
그렇게 다시 세워진 조국
그리움을 부모님 무덤에 묻었던 아버지는
그 무덤에 다시 묻혔고
이유도 까닭도 모르는 어린 자식은
묻힌 조상과 아버지의
멸시를 빚처럼 떠안고
이렇게 이국에 놓여 있다
족속은 같은 말을 하고---.
가을
너는 옷을 정갈히 갈아입는다.
속옷도 갈아입고
겉옷도 갈아입는다.
나는 갈아입을 옷이 없다.
너는 다가오는 때를 준비한다.
메마름에도 준비하고
추위와 배고픔에도 준비한다.
무능력한 나는 준비할 게 없다.
너는 차디찬 바람에도 잘 견딘다.
이파리가 떨어지며
가지가 앙상해 지며
그 모진 고통과 공허에도 견디며 있다.
나는 인내심도 견딤도 없다.
너는 그렇게
옷을 갈아입혀 줄 부모가 있고,
때를 준비할 친구가 있고,
견디며 같이할 형제가 있다.
나는 이렇게
그냥, 혼자다.
된장찌개
콩으로 빚어 빚어
메주로 계절을 뛰어 넘어
찬바람 더운 바람
모두 견디며 걸려 있다.
한 숟가락 물에 풀어
보글보글 끓는 속에
양념 형제와 같이 한다.
파, 마늘, 두부, 호박…….
새색시 같은 흰 속살 두부가 떠오르는가 싶더니
맏며느리 같은 호박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가난한 형제들이
얽히고 혀 자듯이
된장찌개 방에서
양념들이 서로 기대거나 껴안으며 어우러진다.
여러 개 숟가락이
오며 가며 찌개 방을
들락이는 사랑스러움.
어우러짐의 맛과 멋.
대한국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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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오 프로필
서울 마포 출생 / 한국신춘문예 시부문 등단 / 한국신춘문예 수필부문 신인작품상 수상 /아름다운 시낭송회 회원 / 서정수필회 회원 / 순수창작문학회 회원 / 1983년부터 용담중,정읍고, 백운증, 정읍농공고, 삼례공고, 장계공고 중등학교 교사 역임 / (현)전주공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