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긴 터널 끝에서 만난 희망, 눈부신 빛
'경의선'
서울과 신의주 사이를 잇는 철도. 경부선과 더불어 남북을 종단하는 간선 철도로 1906년 4월에 개통되었다가, 국토 분단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도라산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경의선의 사전적 의미다.
그런데 박흥식 감독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이 단어를 왜 영화의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었을까?
허리가 끊긴 철도, 그는 어쩌면 우리들 삶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어떤 '단절'의 아픔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만수(김강우 분)와 한나(손태영 분)의 사회적 계층만 봐도 그렇다.
만수는 지하철 기관사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시계추처럼 성실하게 살아내는 따뜻하고 선량한 소시민.
반면 한나는 대학 시간 강사로 독문학을 전공한 유학파, 소위 엘리트다.
부르주아 계급의 부모와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직업을 가진 상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현재에 알 수 없는 회의를 느낀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비밀한 사랑도 그녀를 늘 위축되게 만든다.
프롤로그,
둥글고 구불구불한 지하 터널 속을 빠르게 달려나가는 열차.
(시점은 늘 달리는 지하철 기관실이다)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젊은 남자, 무거운 어깨에서 자꾸만 흘러내려 바닥에 질질 끌리는 가방.
비틀거리는 발걸음, 한숨과 기침 소리.
그의 굽은 등에 덕지덕지 앉은 쓸쓸함...
신촌역,
캐리어를 끌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여자.
늦은 밤, 삭막한 도시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낯선 남녀가 경의선 기차에 오르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의 시점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점등-진행-출발!"
만수의 얼굴은 늘 긴장되어 있다.
뚫어질 듯 전방을 주시하는 불안한 눈동자.
차가운 레일 위를 구르는 바퀴의 금속성.
만수에게 지하철은 삶의 터전이자, 벗어날 수 없는(혹은 벗어나선 안 되는) 감옥과도 같다.
열차를 운행하는 도중 만수는 종이컵에 소변을 본다.
노동은 신성하고도 처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우직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무엇을 타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거랍니다"
일상에 지친 승객들에게 만수는 그들 모두에게 '생애 최고의 날'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런 그에게 잡지 '샘터'와 간식을 건네는 묘령의 여인(차서원 분)이 있다.
"벌써 네 번째네요, 이름이라도...고맙습니다"
말 없이 미소 짓는 그녀.
열차가 떠난 텅 빈 승강장, 천천히 뒤돌아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관객들은 그만 아, 탄식하고 만다.
빠른 속도의 열차와 느릿하고 기우뚱한 그녀의 발걸음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비겁하게도 무언의 동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만큼 그녀의 장애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하필 그녀가 준 도넛을 한 입 베어물었을 때(도넛 속에서 빨갛고 걸쭉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사상사고-비상정지'라는 다급한 통신이 만수를 절망하게 만든다.
감독은 '도넛'이라는 소재를 지하철의 외형과 사랑(성적인 의미의)을 상징하는 중의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만수와 가판대 여인의 '일용할 양식'이기도 하다.
다시 현재,
텅 빈 기차 안.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그의 열차 바퀴로 뛰어든 여인의 악몽을 꾸다 만수는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천지간은 눈으로 뒤덮이고 만수와 한나는 낯선 역사에 사물처럼 서 있다.
임진강 역 이정표를 사이에 두고 빨간 목도리의 남자는 왼 편에, 파란 스카프의 여자는 오른 편에...
영화에서 미장센은 매우 중요한 장치이다.
감독은 사소한 배경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절망의 강물에 떠밀려 온 그들은 끊어진 길 위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
자신이 선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는 한나와 얼떨결에 그곳에 도착한 만수는 불 꺼진 역사를 뒤로 하고 문산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서로의 직업과 연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크리스타 볼프'에 대해 얘기하며 폭설 속을 걷던 그들 앞에 신기루처럼 '장미 모텔'이 나타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공간에서 발현된다.
먼저 욕실로 들어간 한나를 위해 만수는 티브이를 켠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그는 실수로 실내등을 끄게 되는데 그 때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어둠 속에서 오열하던 만수는 한나의 부름에 울음을 멈춘다.
어두운 욕조에 앉아 있던 한나는 다시 불이 켜지자 독백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너무도 다른 두 남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스로의 방식으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눈물로 토해낸다.
교대로 욕실을 다녀온 뒤 다시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
"어쩌다 기관사가 되셨어요?"
"솔직히 말하면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기관사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좋은 일을 했나 봐요, 특별 휴가를 받은 걸 보면"
침묵하던 만수는 모로 드러눕는다.
"사람을 죽였어요...어떤 여자가 제 열차에 뛰어들었어요..."
롱 테이크,
이 순간 배우 김강우는 사라지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만수의 서러운 흐느낌만이 낯설고 텅 빈 방안을 가득 채운다.
"나 모레부터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돼요. 나,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요?"
한나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만수의 머리를 끌어안는다.
"잡을 수 있어요. 잡으세요. 당신이 없으면 수 천 수 만의 사람이 일을 하러 갈 수가 없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요?"
낯선 타인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한다.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미지의 공간에서 조건 없이 나눠 갖는 따뜻한 위안이다.
만수에게 샘터와 도넛을 건네던 가판대 여인이 왜 하필 그의 열차에 뛰어들었는지, 만수가 그녀의 죽음을 알았는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감독은 '만수의 충격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그녀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피했다고 했다.
그러나 만수는 알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그녀가 끝내 승강장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에필로그,
1년 후, 학교를 그만 둔 한나는 자신의 첫 소설(혹은 수필) '경의선'을 사서 지하철에 오른다.
그녀가 누구를 위해 그 책을 샀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때마침 안내 방송이 흘러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지금 막 지상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가실 때 눈길 조심하십시오. 지금까지 기관사 김만수 였습니다"
열차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상을 향해 달려 나간다.
눈부신 빛을 향해...
기관사 만수로 분했던 배우 김강우는 이 영화로 토리노 국제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룬다.
흔히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간혹 화가의 붓질 이면에서 스스로 영롱한 빛을 발하는 색채가 있다.
배우 김강우가 그렇다.
난 이 영화를 아주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볼 때마다 만수의 눈물에 가슴이 무너진다.
최근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스크린 도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젊은 노동자들의 사연이 시사하는 아이러니에도.
글/배성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