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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는 길목에서 시산제를 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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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구 (2006/02/07 14: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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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는 길목에서 시산제를 올리고....
우선 승우여행사의 창립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월 5일(일)은 우리가 백두대간즈려밟기를 하고 있는 승우여행사 창립 8주년이자 2006년 시산제를 올리는 날이다. 입춘(4일)을 하루지난 이날은 입춘 하루전부터 서울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이번 겨울들어 가장추운 날씨를 보였다. 혹독한 입춘 추위는 대원들을 긴장하게 했다. 고소내의 착용하라는 박총무님의 문자가 타전되기도 했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5일 아침 5시 50분 집을 나섰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그자지 매섭지 않았다. 백두대간에 단련되어서일까(?) 오늘은 5대의 버스가 행사장으로 가는데 중부고속도로를 달려야 되기 때문에 모두 광화문으로 집결하여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집을 나섰다. 죽전에서 6시 정각에 9001번 좌석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내가 탄 버스는 분당을 벗어나기까지 등산객 3명과 육사생도 2명만이 승차하고 판교 IC를 빠져 경부고속도로로 달렸다. 남산 1호 터널을 나와 중앙극장앞에 왔을 무렵 휴대폰 메시지가 뜬다. 여사남(구명환)님이다. 갑자기 일이생겨 못나오신다는 내용이다. 어제까지도 사랑방에 들러 참석하기로 했는데.... 이 시간에 문자를 보냈으면 일어나셨다는 얘긴데 날이 춤다고 하니까 내외분이 합의하에 불참을 선언하셨나? 아니면 두분이 의견 충돌을 이르켜 한분이 삐지셨나? 이거이 또 궁금해지네....(올라올 때 알게 되었지만 친구분이 상을 당하셔서 불참하셨노라고) 세종문화회관 앞에 내리니 6시 40분이다.
6시 40분 너무 빨리 온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뒤켠에 오니 이미 여러대의 경기고속버스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고 주변은 아직 엄둠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승우직원들도 모두 나와 있었고 나처럼 일찍 나온 낮선 행사 참가자들도 10여명 왔다 갔다하며 포장마차에서 토스트를 먹으며 환담을 나누기도 한다. 7시쯤되니 분당의 전찬진님 내외분이 모습을 나타내셨고, 다빈이네도 뒤이어 도착했다. 먼곳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이다. 연이어서 이희철 선생님 내외분이 버스에 오르시고 잠시 후 박용주님 내외분과 박원경 총무님 내외분도 도착했다. 이제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이슬님과 박총무님의 호객행위(?)에 이끌려 포장마차로 가서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버스는 모두 5대였고 백두대간팀은 5호차에 특별히 <백두대간팀> 이라고 써붙였다. 예정보다 15분 늦은 7시 45분 광화문을 출발했다. 차안이 따뜻하니까 졸음이 밀려온다. 의자를 약간 눕히고 잠을 청해본다. 8시 40분 버스는 제1중부 고속도로 이천 휴게소에서 30분 쉬어가기로 했다. 이슬님이 우동티켓을 끈는다. 둘이서 우동을 한그릇씩먹고 9시 10분 버스는 휴게소를 출발했다. 9시 22분 일죽 IC를 빠져나온 버스는 장호원 방면으로 길을 갈아탓다. 9시 57분 목적지인 이티재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서부터 산행을 시작아여 서운산 정상(해발547.4m)을 올라 석남사(石南寺)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 오후 1시에 시산제를 올리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이티재에서 힘찬출발>
<정상을 향하여>
<백두가족의 힘찬모습>
길은 시발점부터 오르막이다. 30여분 올르니 능선길에 접어 들었고 별로 높낮이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히 걸을 수 있는 트레킹급 등산로였다. 170여명이 한줄로 서서 걸으니 꼬리가 보이지를 않는다. 길양 옆으로는 사람의 키를 넘는 진달래 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음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고 길도 군데군데 얼음판이 있었으나 낙엽이 수북하게 덮혀 있어 숨은얼음판이 있긴 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등산로 상태로 보아 많은 등산객이 찿는 명산인 듯 싶었다. 그리고 백두대간 마루금보다 이정표를 더 잘 해놓았다. 아마도 삼거리가 많아서 인 듯 싶었다. 작은산일 수록 갈래길이 많다.
<서운산 정상의 백두가족>
10시 57분 정상인 듯 한데 정상이 아닌 위치에 삼각점 표석(진천 21, 1984 재설)이 있었다. 여기에서 30여미터 오르니 정상이었다. 정상에오르니 정상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느라고 혼잡하다 우리 백두가족도 여기서 단체사진을 남기고 하산했다. 하산길도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였다. 디카가 작동을 멈추는 걸로봐서 기온은 영하 6-7도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바람이 없어 산행하기에는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쾌청하고 좋았다. 디카는 가슴에 품었다 꺼내어 찍기를 반복하며 걸었다. 그래도 양지쪽 골짜기엔 얼음이 녹아내리고 잔설을 머금은 버들강아지도 갑옷을 벗고 솜털을 내밀고 있었다. 양지쪽 언덕엔 풀잎도 피어나고 있어 봄이오는 길목을 느끼며 걸을 수 있었다. 11시 50분 석남사 마애석불입구 삼거리에 도착하니 성기인님과 동행하신 또 한분이 마애석불을 보기위해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뒤따라 함께 올라갔다. 300여미터 올라가 마애석불을 친견하고 되돌아 내려와 석남사에 닿으니 12시 10분이었다.
<석남사 마애석불>
<석남사 전경>
<골짜기엔 얼음이 녹고...>
<버들강아지는 눈을 뜨고.... 사진/이승희님(퍼온사진)>
경내를 돌아보고 대웅전 부처님 앞에 삼배로 경배하고 내려오니 우리 식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히 경보로 걸어 내려오니 오른쪽 공터에 <경축 제8회 창립기념행사>와 우리가 단체사진찍을 때 펼쳐들던 <백두대간즈려밟기> 현수막도 함께 걸려있고 방긋웃는 돼지머리가 올려진 제단이 차려져 있었다. 에델님이 항아리에서 막걸리를 한사발 퍼주신다. 쫘악- 마시니 시원하다. 맛도 좋다. 모두들 식당에 있으니 식사부터 하란다. 식당은 개울 건너편에 있었는데 전문식당이 아닌 살림집 구조였다. 워낙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있어 밥한그릇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박총무가 반겨주신다. 백두가족이 테이블 하나를 잡아놓고 식후 주총을 하고 있었다. 김오곤님의 권주로 한잔쭈-욱-하고 사모님이 만들어오신 꽂감호도말이 안주에 식전 짜르르를 한잔하고 식권내고 타온 비빕밥을 한 그릇하고 행사장으로 나왔다.
<시산제 제단>
<시산제를 알리는 승우의 김이사님과 이과장>
<축문을 낭독하는 원로 산악인과 제단앞의 이종승 사장님>
<백두대간 6기 일동, 조창제 6기 회장님의 헌주>
<백두대간 6기 헌금을 돼지가 물고 있다>
오후 1시 5분 15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김이사님의 시산제 개막을 선포하며 시산제는 거행되었다. 우리나라산을 2,200봉(1봉이 산하나) 이상 올랐다는 원로 산악인(존함을 몰라 죄송)의 축문낭독에 이어 이종승 사장님의 배례로 이어졌고, 백두대간 1기, 2기, 3기, 4기, 5기까지 선배님들의 배례에 이어 우리 6기는 조창제 회장님이 대표로 백두까지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신령님께 술한잔올리고 구호도 외치고, 만세삼창도 했다. 박총무님과 이슬님도 술한잔 올리시고, 성기인님도 동반하신 비서(?)와 함께 술한잔 올리셨고 한정구도 술한잔올렸다. 우리 백두가족이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백두까지 완주 할 수 있게 보살펴 주십사하고....
<백두가족의 만세삼창 카메라가 얼어 팔이 내려온뒤에 찍혔다>
<백두가족 부라보!!!>
오후 1시 55분 공식행사는 끝났고 막걸리와 떡을 나누어 먹으며 추위도 잊은 채 담소를 나누며 행사장은 시끌벅적해졌다. 2시 15분쯤에 모든 행사는 종료되었고 5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서울로 향했다. 오는 버스에서 백두가족들은 이정도 산행은 이젠 오픈게임정도 밖에 안되다는 듯 피곤해 하는 사람이 없고 잠을 자는사람도 없이 담소를 나누며 오는데 버스는 갈때와는 달리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죽전팀은 광화문까지 가야 한다는 김오곤님의 협박(?)에 못이겨 전찬진님만 내리시고 다빈네랑 모두 광화문까지 갔다. 광화문 제일의 감자탕집에서 이슬이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며 부라보도 많이 했다. 팀웍이 한층 더 결속되는 순간이었다. 식사 후 자리를 바꿔 또 다른 방에서의 휘날래는 광란(?)의 예술이었다. <제2회 백두가족예술제> <제1회 백두가족예술제>는 작년 12월에 강남에서 있었다.
2006년 2월 7일 성수동에서 백두가족 한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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