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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iver Runs Through It
1992년 10월 영화 “A River Runs Through It” 은 미국에서 처음 상영되고, 1993년 4월 한국에 개봉하였다. 배우 Robert Redford가 감독한 영화 배경은 아름다운 Rocky Mountain, Yellowstone, Gallatin, 그리고 Boulder Rivers 상류에서 촬영하였다. Montana 주 Missoula의 블랙풋 강이 있는 마을에 목사 가족이 살았다. 세계 대공황 경제 혼란 시대의 가정의 형제들 이야기다. 원작은 Norman Maclean (1902 ~1990)이 1976년 열다섯 살 된 해 1917년~1920년까지 산림청 관리원으로 아르바이트 일하면서 4년간 작품이다. 작가는 가족의 삶과 생활을 글로 써야 한다는 아버지 말을 언제나 기억했다. 시카고 대학교 영문학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20년 전의 이야기를 대학이 허락하여 독자를 만났다. 감독은 작품(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The Sting 1973, All the President's Men, 1976)에 이어 네 번째로 1993년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상, 촬영상을 받았으며 각본과 음악상도 심사에 올랐다.
미국 몬태나주 교회가 있는 마을에 네 명의 가족이 살았다. 아버지 Norman Mac lean(Tom Skerritt 역)은 스코틀랜드 장교에서 목사가 되었다. 1900년대 절대 권위주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그의 아내(Brenda Anne Bottle 역)와 자식에게 엄격하였다. 억제를 요구하며, 절제, 실천, 인내를 요구하며 칭찬은 인색하였다. 특히 일기 쓰기를 지도하고, 다 쓴 노트도 허락을 받아 버렸다. 아버지는 문학과 낚시를 즐기고, 자식들 사랑은 서투르게 표현하였다. 두 아들 Norman Maclean & Brad Pitt는 어릴 때부터 개성이 달랐다. 강가나 들판에 누워서 동생과 형이 나눈 질문과 대답에서 나타나고 있다(What do you want to be when grow up? Minister. I quess, What are you gonna be? first, we'll fly fishermen. There’s no such thing). 동생의 질문에 형의 꿈은 장내 목사, 동생은 낚시꾼 된다고 말했다. 낚시꾼, 그런 직업이 어디 있어. 형이 말했다. 낚시꾼은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 동생, 정말- 음! 그들은 사춘기에 행동, 감정, 선택, 그리고 이성 교제에서 성격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났다. 형제는 세 살 차이지만 자연에서 자라며 부모에게 교육과 플라이 낚시를 배웠다. 세 명의 부자가 강에 송어 낚시는 가족의 삶에서 종교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형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지적이고, 조용하고, 행동이 신중하고, 학구적이지만, 동생은 반항적으로 여러 가지 일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기대에 따라 형은 먼저 문학을 공부하러 집을 떠난다. 동생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순종에서 벗어나려 자유분방하고,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다. 그는 규칙을 어기고, 아버지에게 자주 지적받고, 낚시에서 형을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청년기에는 잘생긴 남자로 성장하여 지방신문 기자가 된다. 그는 여러 여성들을 쉽게 만나며 청춘을 즐겼다. 공부를 마치고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형은 동생과 강에서 프라이 낚시를 한다. 그동안 놀라울 정도 낚시 기술이 발전한 동생은 아버지를 능가하였다. 동생의 낚시 기술에 형은 시기가 날 정도였다. 물이 빠르게 흐르는 강에서 하늘 높이 낚시를 던져 큰 숭어가 물렸다. 숭어를 잡아 올리기까지 급류에 떠내려가며 고기와 싸우고 낚아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위험에서 보여준 용기와 낚시 기술이 어우러진 멋진 모습에 아버지, 형이 놀라는 기쁨이 산까지 울렸다. 형은 고향에 제시라는 여자 친구가 생기지만, 얼마 후에 동부 시카고 대학교 교수에 임용하여 다시 고향을 떠나 헤어진다. 자식의 성공한 기쁨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얼굴은 가장 행복했다. 반면 동생은 술과 여자, 그리고 도박으로 방탕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춘에서 포커 게임까지 빠진 동생은 마을에 다 알려지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어느 날 자신을 모욕한 남자와 싸우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에도 도박에 빚까지 지고, 포커판을 전전하다 길에서 폭행당하여 죽는다. 자식의 죽음으로 아버지, 어머니는 큰 슬픔에 빠진다. 독립을 인정할 나이에 자식을 잃은 충격이 계속되고 건강이 나빠진다. 아버지 목사는 교회 마지막 설교에 다음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완전한 사랑은 할 수 있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perfect understanding) 그는 더 말하지 않아도 자식들 각자는 특성으로 태어나 인생을 다르게 선택하고, 죽을 때까지 개성은 매우 다르게 살았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형은 학교를 퇴임하고, 고향 몬태나 강에서 낚시하며 독백한다. 자신이 태어나 성장한 고향, 기억들, 추억은 흐르는 물은 계곡을 장막으로 만들고, 삶과 죽음이 하나로 섞여 강물 따라 흘러간다. -End-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를 세 번이나 보았다. 긴 간격에서 보았지만 세 번 감상은 매우 드문 일이다. 첫 번째는 제목에 공감하여 개봉 극장에서 보고, 두 번째는 가족에게 추천하고, 세 번째는 다이얼로그를 중심으로 어떤 특집에서 EBS-TV에서 보았다. 사실 감동 영화도 일 년 내외에 대부분 사라져 회상조차 어렵다. 최근에 수업에서 기억나는 영화를 질문받고 제목을 지명했다. 이십팔 년 전에 관람 영화에 몇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형제의 특성이 나의 형제와 비슷하여 공감이 더한 영화이다. 그 외에 제목의 이미지가 자연과 삶의 관계에서 테마를 나의 퇴임 에세이 <캠퍼스는 흐른다> 출판까지 인연이 되었다. 거기다 얼마 전에 지인에게 박영신 작가의 저서 ”영화 100년 · 인생 100년(실버아이 TV, 2019)“ 의 책을 받았다. 영화 이야기를 싱그럽게 집필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저자의 흉내를 내어 기억에 남은 영화를 한 편 선택할까 생각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형제의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두 형제가 개인차로 나타나는지 보여준 가족의 사례이다. 영화에서 목사 아버지, 강과 숭어 낚시, 전통가정에서 조언을 수백 번 요구하고 자식을 가르친 시대에 교육은 어려운 과제들이다. 자식들의 개성이나 불만, 열등감을 개성에서 인정하지 못했다. 자식의 아픔을 동서양의 공감에서 세계 부모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인상적으로 남은 터마 이미지는 자식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억압의 찌꺼기를 독자에게 부담으로 주지 않은 것이나 부모가 잘못을 후회하고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지 던진 질문이 테마의 중심 문제였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이 문제가 보이면 즉시 개입하여 다스리거나 훈계한다. 심지어 부모의 사랑의 거리가 있어도 아버지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부모가 나이나 권위로 자식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완고하고 엄격한 아버지가 자식이 죽은 후에 슬기롭게 반성한 말은 주목할 대목이다. 마지막 설교에서 그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은 자식 사랑의 진실한 표현이다. 부모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자식을 사랑할 수 있다. 인내하고 자식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남긴 말이다. 반면 부모의 몸과 정신이 얼마나 아픈지 또는 자식의 불만과 갈등이 그들 성장에서 얼마나 힘든지 강물이나 낚시는 답을 주지 못했다. 가족을 모두 잃고 잊어버리는 것 말고 다른 해석에서 위로를 찾을 수 없다. 아버지가 남긴 말을 두 번씩 아니 세 번씩 반복해도 관객을 퇴행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일생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행이 달려든다. 부모는 너무 다른 개성과 문제 자식이 태어난 후회나 원망을 어떤 탓도 하지 않는다. 그럼 부모가 죽은 후에 그 자식은 동생을 진정한 개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형이 학교를 은퇴하고 고향에서 혼자 낚시한다. 흐르는 강물에서 가족의 역사를 회상하고 자신의 성공적인 인생은 인정하지만, 그는 그때도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부모나 동생을 영원히 재생할 수 없다. 영화는 한 가정의 역사를 123분에 1820년대 이야기에 네러이션을 섞어가며 그때 100년 전 미국의 전통적 가정의 자녀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영상으로 전하기는 아쉽다.
블랙풋 강물의 힘찬 물결에서 허공에 날리는 프라이 낚시 캡처 기술은 Redford 감독아니면 담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특히 빠르게 흐르는 강에서 낚시에 걸린 큰 숭어를 낚아 올리려고 급류에서 고도의 낚시 기술을 사용하여 승리한 막네의 승리감에 형과 아버지의 함성이 용기와 에너지를 강렬하게 전도한다. 아버지의 응원보다는 낚시 경주에서 승리한 동생에게 관객은 그때까지 긴장한 어깨를 풀어주는 순간도 즐겁다. 자연의 질서를 선택한 감독은 프라이 낚시를 그림 같은 영상 예술로 표현하고 기억에 남을 이미지에 찬사를 보낸다. 1920년대 미국 경제적 빈곤에서 한 가정의 서정적인 각본을 복잡한 상상이나 난해한 영상으로 이끌지 않은 선택도 기대 이상으로 다행스럽다.
영화 후기를 미국이나 한국서 남긴 독자의 글을 잠깐 보았다. 어떤 독자의 통통 뛰는 주인공이 던진 아름다운 감성이 사춘기에 내 가슴에 물든 자욱이 덤으로 선물 받아 즐거웠다. ‘노먼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폴은 연애하고 싶은 남자이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노먼을 선택했다. 그리고 평생 폴을 그리워하겠지. 폴의 미소는 정말이지 상대의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그게 애인이든, 엄마든, 형의 여자 친구든 상관없다(Songmua, 2010).’ 이만한 청춘의 열정까지 읽었으니 그 시대의 Craig Sheffer 나 Brad Pitt 젊은 스타를 추억에 담은 손짓 모습을 즐거운 상상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100년 청춘으로 남기를 바란다. 두 형제 역 미남 스타 팬의 열정 비하면 나의 청년 시절은 싱겁고 초라했다. 한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캐릭터 스타일에 공감하여 어느날 갑자기 총탄으로 세상을 떠나 그의 부인 제키까지 슬픔과 미래를 따져가며 알려고 최신 정보나 이미지를 만나려고 시사 라이프지를 미국 문화원 도서실(USIS)에서 찾았다. 어느 날 뉴욕 허드슨강 역풍의 바다를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산책하는 제키 이미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기억이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가족의 특성과 갈등 한가지 검증으로 감상한 글이라면 원작자, 또는 감독자 기대에 벗어난 자유 독자에 불과할 것이다. 끝으로 자식들이 성장하고 여성을 만나 데이트하고,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행복과 슬픔이 엉켜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족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세계 부모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구본권, 2020,2/2/2/). 1수정, 2020년 2월 21일, 2차 수정 2월 23일/3차 수정 3월 7일/O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