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이의 겨울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겨울바람이 차갑다. 목덜미를 싸늘하게 스치며 지나간다.
코로나 19란 전염병으로 모두 주눅이 들어 웅크리고 있는 겨울날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안이는 신바람이 났다. 올 겨울에 생전 처음 다른 형들처럼 아르바이트란 직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는 모든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기차역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새얼굴로 단장한 전철이 소리없이 하루에도 여러번씩 찾아와 몇 안 되는 손님을 내려놓고 이내 미끄러지듯 떠나가곤 한다.
그 역 앞에 이안이는 살고 있다.
이안이는 기차 역전 앞 이안 연립주택이 고향이다. 아빠가 이안이라고 지어주신 이름은 운이 좋은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올겨울은 이안이에겐 운 좋게 초등생이 벌써 알바를 하나 예약했기 때문이다.
지난달이었다. 손수 만든 바람개비를 날리며 동네 한 바퀴를 돌던 이안이는 우연히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 앞 초록색 대문에 써 붙인 글을 읽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생 모집>
0.자격- 없음
0.하는 일-눈치우기
0.수당-3센티 이상은 만원
0.연락처-000-0000-0364
아르바이트? 갑자기 이안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떤 눈치우기일까? 궁금해서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건강하셔 겨우내 눈을 치우며 살아가셨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허리협착증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걱정이 많으시다.
이안 이는 그날 할머니 말씀을 듣고 눈 치우는 알바를 하기로 굳게 약속을 했다. 그러니까 눈이 오는 날 아침 달려와 눈을 쓰는 일이다. 안마당과 문밖 30미터 길이 전부다. 코로나 19로 학교도 못가고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시간을 빼면 시간이 많은 편이다.
물론 그날 엄마는 끝끝내 반대하시며 그냥 쓸어드리라고 잘라 말씀하셨지만 아빠는 달랐다. 때문에 목사이신 아빠한테 알바 허락을 예상보다 쉽게 받아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라면서 극구 칭찬까지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날부터 북풍이 몰아쳐도 찬 공기가 무더기로 내려와도 이안이는 갑자기 겨울이 좋아졌다.
TV를 보면 특히 일기예보에 관심이 높았다. 아니 자다가도 박차고 나가 하늘을 보며 눈이 오지 않나 확인하곤 잠이 들곤 했다.
이웃 형은 가까운 홍천 비발디 공원에 알바를 한게 벌써 몇 년째이다. 겨울이면 스키장에 아르바이트하는 형이 늘 부러웠다.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이안이에겐 처음 맛보는 선물이다.
동지가 지나고 하늘이 흐렸다. 긴긴 밤 아빠와 독서를 하다가 이안이는 깜짝 놀랐다.
창문 앞에 싸락싸락 하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들려 내다보니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빠 눈이 내려요!
-와! 첫눈이로구나. 우리 아들 알바가 드디어 시작되었네!
-너 정말 할 수 있니? 아유 난 걱정이야
엄마는 또 짜증이셨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네 댁은 좁은 안마당과 대문밖 큰길 뿐이니까요?
-잠꾸러기가 잘 해낼까?
엄마는 겉으로는 계속 아들을 못 믿는 투였지만 한편으로 여간 대견해 하시는 눈치가 아니었다.
-걱정 마세요. 빗자루 하나만 가지고 가서 쓸면 되니까요.
-넉가래도 가져가야 해,
-지금처럼 눈이 오면 내일 만원 벌게 되겠네, 와! 어른이 다 되었구나!
그 때였다. 서울 간 이든이 누나가 전화왔다.
-정(鄭)이안! 거기도 눈이 오니? 드디어 내일이면 아르바이트가 시작 되냐?
온 식구가 야단법석이었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첫눈이 소복이 쌓였다.
대나무 자를 가지고 나가 재보니 3센티는 훨씬 넘었다.
기분은 어느새 깃발이 되어 펄럭이며 신바람을 일으킨다. 얼른 옷을 껴입고 아르바이트 장소로 달려 나갔다.
첫눈이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던 어둠을 새벽같이 쫒아버려 환했다.
이안이는 약속대로 할머니께 아침 인사를 하고 안마당부터 쓸기 시작했다. 포슬포슬한 눈은 싸리 빗자루에 깨끗이 쓸리고, 넉가래로 집 밖 길을 치웠다. 땀이 송송 배었다. 이웃집에서도 눈 치우다가 웬 꼬마가 와서 눈을 치우니 신기해 담 너머로 바라보신다. 반장이라는 아줌마는 가까이 와서 아르바이트로 눈만 오면 올 거냐고 거듭 물어보신다.
지나가며 목사님 아들이라고 반기는 사람도 계시다. 어른 다 되었다고 칭찬을 하니 신바람이 더 났다.
-그래, 잘했다. 지난번에도 눈 쓰는 사람이 없어 내가 쓸어드렸는데 -
동네 반장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바생을 칭찬하신다.
두 시간이 다 되어 첫눈과의 결투는 이안이 승으로 깨끗이 끝났다.
허리를 못 쓰시는 주인 할머니께서도 창문으로 연실 내다보시며 좋아하셨다. 다 끝나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이안이는 평생 처음 알바 비를 만원 수령했다. 건네는 할머니도 싱글벙글하시며 네가 아니면 눈을 못 쓸어 길가는 행인들이 미끄러지면 큰일이야! 그러면 병원비를 할머니가 내야 한다면서 만원을 손에 꼬옥 쥐어주는 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실하며 현관을 나오는 데, 한 장짜리 달력에 2월 20일이 유난히 크게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빨간 공휴일이 써있는 설날이 지나고 아홉번 째였다.
- 뭘 그렇게 보냐? 내 생일이라고 지난번 애들이 표시해 놓은 거란다. 해마다 돈만 써 그만두자고 했는데.....
용예이거리까지 싸주시며 이 다음에 크게 될 녀석이라고 어깨를 다독여 주신다. 이안이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인사를 하고 단숨에 달려와 문밖에서부터 당당하게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나 아르바이트해서 알바비 벌었어-.
-와! 드디어 우리 아들이 해냈구나. 장하다. 정(鄭)이안-. 어디 보자
배춧잎 같은 만원 한 장을 엄마 아빠한테 내놓았다. 당당하게 내놓은 만원에서 세종대왕도 웃고 계셨다.
알바생 정이안의 첫번째 아르바이트는 대 성공이었다.
평생 처음 땀 흘려 번 댓가였다. 물론 그냥 봉사로 쓸어들이고 싶었지만, 아빠 말씀처럼 신기한 아르바이트의 맛을 보기 위함이 무엇보다 첫 번째였다.
그 후, 세 번의 눈이 더 내렸고 그럴 때마다 이안이는 운이 좋은 사람으로 할머니댁으로 가서 눈을 쓸어드리고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 만두처럼 통통하게 살찐 참새들도 옆 울타리에 모여 끝까지 눈 쓰는 이안이를 바라보며 저희들끼리 조잘대고 있었다. 할머님께도 자식이 있다. 시내에서 통학버스를 운영하셔 눈이 온 새벽에 바빠서 올 수 없다. 그런 연고로 큰 형께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라고 일러주신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파가 몰아친다. 펑펑 눈은 내리지 않고 수은주만 고드름처럼 영하 20도로 끌어 내린다. 동장군이 온 것이다. 이안이는 두려울 것이 없다. 눈이 쌓여도 눈을 치워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부모님께 칭찬도 받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올 겨울이 아직도 남았다. 이안이 눈치를 보며 언제 내려줄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겨울 동천(冬天)이다.
이안이가 번 알바비는 모두 5만원이었다. 그러나 소중한 알바비를 벌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안이 혼자만이 알리라. 언젠가 눈길을 쓰는데 담임선생님께서도 지나가시다가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알바비 소중하게 쓰라고 귀뜸까지 해 주시지 않았던가!
서해안부터 흐려 내일부터 전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이안이네 온 식구는 즐거운 비명이다. 계절적인 알바 눈치우기가 겨울이 가면 직장을 잃게 되는 게 아닌가? 갑자기 새봄이 오는 게 싫어지는 이안이다. 설밑 2월 20일-. 일기장에 크게 표시해 놓고, 이안이는 또 다른 봄을 꿈꾸고 있었다.(끝) 1/11 新作
첫댓글 "이안이의 겨울" 잔잔히 다가오는 겨울풍경이 추워도 춥지 않을 것 갑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주인공도 가족들도 할머니도 모두모두 건강하시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동장군도물러나도망갑니다
이안이는샛별입니다
이안이는 정성껏모은 알바비로 2ㆍ20할머니생신때
어떤 즐거움을안겨드릴런지
기대해주세요ㅡ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