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법과 사순대재
“목욕재계”라는 말이 있지요. 제사를 지내거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절기에 목욕을 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행동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도 금식이나 금육으로 절제와 극기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전통을 재계법(齋戒法)이라고 부릅니다. 재계에서 ‘재(齋)’는 음식을 삼가는 것을, 계(戒)는 부정한 행동을 금하는 것을 뜻합니다.
재계법에는 대재(大齋)와 소재(小齋)가 있습니다. 대재일은 사순절 기간으로써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진 ‘성금요일’에는 금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간 40일은 극기와 기도로 지킵니다. 소재일은 모든 금요일(부활절과 성탄절 제외)입니다. 모든 주일이 작은 부활절이듯이 모든 금요일을 작은 수난일로 지킨 것입니다. 소재일에는 금육 등의 극기를 합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로서 '사순대재 수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은 이날 회개의 징표로 이마에 재를 긋는 오랜 관습에서 나온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베옷을 두르고 재를 뒤집어쓰고 비탄과 슬픔에 빠진 처지를 표현했습니다. 욥은 비탄에 젖어 잿더미에 앉았고(욥기2:8) 니느웨의 백성들은 요나의 충고를 듣고 그렇게 했습니다(요나3:6).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한해 전 성지주일에 받았던 성지를 태워 만든 것으로서 우리의 죄와 허물이 타고 남은 잔재입니다. 사제는 이날 축복한 재를 신자들의 이마에 찍어 바르며 창세기에서 인용한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창세3:19)라는 권고의 말을 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고 첫날 재를 바르는 것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죄의 보속을 통해서 사순절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케 하기 위함입니다.
사순절( LENT)
부활절 전에 절제와 극기로 보내는 40일간의 절기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별도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6세기말 그레고리우스 교황 때 40일로 확정됐습니다. 사순절을 가리키는 '렌트(Lent)'는 '봄'이라는 뜻을 가진 '렝텐(Lencten)'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즉 봄에 행해지는 바벨론의 이교적 절기인 '아스테르테(Astarte)'에서 차용되어 기독교적으로 정착된 절기입니다. 물론 단식은 유대인들의 오랜 종교적 관습이며, 40이라는 숫자도 성서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노아의 홍수(창세7:12), 모세의 단식(신명9:18), 엘리야의 여행(열왕상19:8) 등이 이와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 광야에서 보낸 예수의 40일간의 단식(마태4:2)이 이 절기의 기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사순절에 금식을 하는 것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엄격한 관행이었으나 점차 완화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기간을 금식기간으로 지키기 보다는 극기와 구제와 경건훈련으로 보내는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금식재 / 금육재 / 공복재
성공회 법규 <신자의 의무>에 ‘신자는 성공회의 재계법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전통교회가 정하고 있는 금식규정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금식재'(=단식재)란 신자들에게 극기와 희생의 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사순절 첫날'(재의 수요일)과 '구주 수난일'(성금요일)에 한끼를 먹지 않도록 한것이고, '금육재'는 사순절 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한편 '공복재'는 성체를 영할 사람의 육신적 준비를 위한 규정으로서 최소한 영성체 한시간 전에는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위 세가지 경우 모두 병자나 허약자, 임산부, 중노동자 등 건강 상의 특별한 이유로 지키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예외규정이 있고, '금식재'나 '공복재'에 있어서 맹물이나 체액(침 등), 치료를 위한 약물복용은 금식 항목에서 제외됩니다.
재계법의 현대적 의미
과거에는 재계법을 글자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문자적 금식이나 금육 같은 육체적 고행 보다는 경건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기 위한 단식을 비판하셨고, 이사야 58장에 보면 참된 단식이란 결국 이웃 사랑의 실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식한다는 것들이 시비나 하고 싸움이나 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주먹으로 치다니, 될 말이냐? 오늘 이 따위 단식은 집어 치워라. ... 그러고도 야훼가 이 날 너희를 반길 듯싶으냐?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이사야 58:4-8>
음식의 단식이 다가 아니라 마음과 혀와 행동에 있어서 삼가고 착한 행실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식과 재계는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기 위한 좋은 훈련이며, 분주한 현대인의 삶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성찰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좋은 훈련이 됩니다. 모든 영성가들은 이런 이유로 재계를 실천하였습니다. 몸을 비우듯 마음을 비우고, 분주함에서 단순함으로 변화시켜 주님의 현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