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실감하는 것이지만 세상 참 좁습니다. 지난주에 파티마 병원에 연도를 가는 길이 수녀님들과 마르티노 신부님과 함께 복자성당을 끼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성당 근처를 지나면서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성당의 추억들을 이야기 나누다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르티노 신부님께서 출신 고등학교를 물으셔서 성광고등학교라고 이야기하니 마르티노 신부님도 성광 출신이라고 하시네요.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가 마르티노 신부님이셨습니다. 세상, 참 좁지요? 저는 칠성동에 학교가 있을 때였고 마르티노 신부님은 검단동으로 이사한 뒤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독사, 백곰, 정부미, 반자동 등등의 선생님들의 별명을 마르티노 신부님은 잘 모르셨습니다. 아마 독사와 백곰 쌤은 제 졸업 후 20년 뒤에 마르티노 신부님이 고등학교에 다니셨으니 은퇴도 하셨을 것이고 또 많이 순화되셨으리라 믿을 따름입니다. 성광을 예전에 저희들은 탄광고등학교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대구역 근처였으니 아마 무연탄 같은 것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훌륭한 선배 신부님들을 많이 배출한 대성광 출신이어서 우리 마르티노 신부님이 더 살갑습니다.
저는 아침에 7시 20분 즈음에 눈을 뜹니다. 간단하게 아침기도 바치고 내려가서 아침 먹고, 올라와서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헬스 자전거 50분 타고 샤워하고 미사 준비하고 오전 미사를 위해 방을 나섭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반복되는 일과입니다. 어릴 때나 젊을 때는 반복되는 삶이 재미없다고 여긴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기도 했고 신나는 일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어제의 아침이 오늘도 다시 시작되는 그 단조로운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행복한지 모릅니다. 아마 훈화를 읽으시는 많은 분들도 같은 생각이겠지요. 어느 아침엔 햇살이 찬란하게 나뭇잎을 비추고 있어 좋고 어느 아침에는 시원한 비가 내려 좋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 노랗게 물드는 가로수의 잎들도 참 좋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미사에 참례하고 같은 사람들과 차를 나누고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이 참된 행복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을 아침에 커피를 마실 수도, 식사 후에 산책을 갈 수도 있을 겁니다. 주말이 되면 방 청소를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오늘 했던 일을 내일 다시 할 수 있고 오늘 만났던 사람을 내일도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요즘에는 루틴이라고 부릅니다. 컴퓨터에 반복되는 과정을 말하다가 일상에서의 반복되는 일과 같은 것들을 일컫습니다.
오늘 레지오 단원 여러분들도 각자의 루틴으로 성당에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루틴에 기분 좋은 미소도 하나씩 넣어 두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루틴에 아름다운 칭찬도 하나씩 넣어 두세요. 우리의 루틴에 먼저 하는 인사도 하나 넣어 두면 좋겠습니다. 미소와 칭찬, 인사와 기도가 우리 삶에 쌓여 하늘나라를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향한 비방과 험담과 음해가 아니라 말입니다.
습한 장마철이지만 각자의 루틴을 잘 지켜 마음과 몸의 건강을 잃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미리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읽어보니 더 맘에 와닿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꾸리아에서~
지시사항으로 전단원들이 읽어보라고하면 더좋지싶은데
그것이 지시사항이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
올려주신 훈화 말씀을 보며,
성당에 가는 행위의 루틴에,
하느님의 말씀과 신부님의 강론을 음미하는 맛을 더합니다.
저의 루틴에 다음카페에서 훈화말씀과 복음말씀 읽는거 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