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 ‘늦봄 감기’로 콧물을 훌쩍거리던 박모군(14)은 비염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에 갔다가 뜻밖에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혈압이 150/90mmgh로 심각한 상태였다. 키는 160cm인데 몸무게가 78kg인 비만이 원인이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가람이(8)는 심한 두통과 다리 저림으로 며칠 동안 고생하다 병원을 찾았다. “체중은 정상이었지만 심한 고혈압”이라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정밀진단 결과 신장으로 가는 정맥이 막히는 ‘신장정맥협착증’이 원인이었다.
고혈압은 나이 들면서 생기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이도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20대 남자의 10% 정도가 고혈압이었으며, 3~19세는 정확한 고혈압 기준치가 없지만 어린이 비만이 늘고 있어 고혈압도 높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약 150만 명의 어린이가 고혈압이었고, 이중 4분의 3이 고혈압 진단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의 고혈압 현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대학병원을 찾는 어린이 고혈압 환자가 매년 2배 정도 늘고 있다. 5년 전만해도 대학병원별로 3~5명에 불과하던 어린이 고혈압 환자가 최근 들어서는 13~20여명으로 5배 정도 늘었다.
또 최근 조사에서 우리나라 어린이의 고혈압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이종국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 고혈압 기준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7~19세 소아청소년의 고혈압 기준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3~10mmhg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100명중 혈압이 가장 높은 5명까지를 고혈압 환자로 진단한다. 이 기준이 높다는 것은 우리나라 소아청소년의 혈압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혈압 기준치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는 11세까지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며 혈압의 변화가 없다가 12세에 129mmhg로 급격히 늘었고, 15세에는 142mmhg까지 급증했다. 반면 미국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2~3mmhg 정도씩 균등하게 증가했다. 일본은 13세부터 수치가 급격히 늘었지만 15세에 136mmhg으로 비교적 높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 소아청소년들은 혈압이 높아지는 12세부터 비만을 나타내는 지수도 동반 상승했다.
어린이 고혈압은 기본적으로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식과 운동부족에 의한 비만, 소금의 과잉섭취 등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고 있다. 어린이 고혈압은 치료하지 않고 오랜 기간이 지나면 합병증인 심장혈관 질환, 신장병, 당뇨, 뇌중풍 등 각종 성인병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사춘기 이후 비만아의 고혈압은 성인처럼 다른 질병이 없는 ‘본태성 고혈압’이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혈압이 높을수록 다른 질병이 원인인 2차성 고혈압일 가능성이 높다.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진동규 교수는 “어린이가 혈압이 높은 경우 반드시 정밀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2차성 고혈압은 신장, 혈관, 내분비 질환이나 신경계 질환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사는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소금이 많은 식사를 피하도록 한다. 혈압이 조절될 때까지 경쟁적인 심한 운동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루에 과일과 야채를 4회 정도 먹고, 저지방 유제품을 2번 정도 먹는 어린이는 10대가 되기 전까지 낮은 혈압을 유지할 수 있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남수 교수는 “조기발견을 위해 3세 이상 소아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혈압을 재는 것이 좋다”며 “비만아는 체중 감소로 혈압이 내리는 경우도 있으며, 체중을 조절하면 심장기능이 좋아 진다”고 말했다.
경희의료원 소아과 한미영 교수는 “운동이나 식이요법으로 효과가 없거나 2차성 고혈압, 합병증으로 장기의 손상이 생긴 경우, 또는 혈압이 심하게 높으면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