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은 1885년에 청 제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복원된 건물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당시 불탄 경복궁과 다르게 근대건축 양식과 한국 양식을 섞어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근대건축 양식의 실용성과 한국 양식의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어 필요한 건물만 세워졌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임진왜란 당시 파괴된 경복궁 보다 더 아름다웠다. 단군은 경복궁을 한식이 아닌 한식과 근대건축 양식을 섞어 만든다는 것이 찝찝하였지만 한성이 이제 국제 법에 편입된 국가의 국제적인 도시이자 대 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국가의 상징인 궁궐을 근대건축 양식과 한식을 섞어 지은 것이었다. 경복궁은 전쟁이 끝나 착공된 뒤 2년여 만인 1887년에 완공되어 대한제국 황제의 정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군 폐하~ 계시나이까~”
갑자기 대한제국 육군 장관급 제복을 입은 대장 계급의 대신이 경복궁의 문을 열고 단군을 찾았다. 경복궁 경회루에는 대한제국의 단군(일본의 덴노나 러시아의 차르, 독일의 카이저 같이 대한제국 황제의 명칭)과 그의 민씨 황후, 왕위 계승자인 이명복 공, 대한제국 육군 사관인 이재면 참령, 왕위 계승자 이명복 공의 아들 이 척, 이명복 공의 부인인 민자영 공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찍습니다!”
사진사가 "찍습니다!"를 외치자 이하응 단군과 이하응 단군의 가족들은 일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때 부장 계급의 대신이 경희루에 이하응 단군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단군을 향해 소리쳤다.
“폐하~ 폐하~”
대장 계급 대신이 자신을 찾자 이하응 단군은 인상을 찌푸리며 부장 계급 대신을 째려보았다. 부장 계급 대신은 이하응 단군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하응 단군에게 편지 같은 것을 주었다.
“단군 폐하. 소인 대한제국 육군아문 대신 한규설이옵니다.”
대한제국의 군부아문(軍府衙門) 안에는 세 개의 또 다른 군 기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육군아문(陸軍衙門), 해군아문(海軍衙門), 병무아문(兵務衙門)이었다. 육군아문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육군성 같이 육군의 인사나 행정, 장비에 관한 일을 보며 해군아문은 인사, 행정, 장비, 타국 해군과의 순양훈련에 대해 일을 본다. 병무아문은 일종의 병무청으로서 1880년 국민개병제도(國民皆兵濟度) 실시 이후 생긴 기관인데 이 기관에서는 신병 검사와 신병들의 훈련, 신병들의 부대 배치에 관한 일을 본다. 그리고 여기서 황당한 것은 육, 해군, 군무대신이 대장계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규설 대신. 이것이 무언인가!”
단군은 한규설 대신이 주는 문서를 보고는 궁금해서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폐하. 이것은 황해도 군구 사령관이 보낸 것이옵니다.”
대한제국 육군 편제는 군구군, 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 분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제국 육군은 현재 군구 제를 채택하는데 그것은 대한제국군의 독창적인 제도로서 1개 도를 한개 군구로 하여 약 1만에서 5만의 병력을 주둔시켜 각 군구를 방어하도록 하고 전시에는 각 군구에서 중요한 전력을 차출해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군구제도는 문제점이 많았는데 그것은 먼저 만주지역의 군구들은 본토의 군구들 보다 넓어 1만에서 5만 명 정도의 병력 가지고는 넓은 군구 전체를 방어하기가 힘들고 쓸데없는 곳에 포병전력에 배치되어 있어 육군이 강력한 화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군구 마다 자연환경과 경제력이 달라 만약 전쟁이 나면 산악지역에 주둔하던 병사가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전투를 벌일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두개 군구를 한 군구로 묶어놓은 ‘도’도 있어 군구 사령관의 불균형이 있었다. 이런 약점 때문에 미국 웨스트포인트나 영국 왕립군사학교에서 유학을 갔던 유학파 육군 장성들은 군구제도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한규설 육군 대신은 군구제도 자체가 지금 대한제국군에 필요한 제도라고 반박하고 있다.
“황해도 군구사령관?”
“그렇사옵니다. 단군 폐하.”
단군의 자녀들과 왕위 계승자는 단군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 다른 곳으로 갔다.
“무슨 내용인가 한규설 대신?”
“단군 폐하.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온데 황해도 재령에서 사람들이 이미 육군에서 퇴역한 고물인 광정 소총을 가지고 사격훈련을 한다고 하옵니다.”
“광정소총?”
단군은 갑자기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났었다. 약 20여 년 전인 1867년. 정확히 21년 전이었다. 21년 전...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는 조선과 같이 동맹을 맺자고 하였다. 그러나 단군은 동맹 대신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모든 기술적 지원을 해 주라고 요구하였다. 조선의 요청에 영국과 프랑스는 조선에 약간의 군사, 산업, 농업 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그 중 영국제 앤필드 소총 300정도 있었는데 조선은 그 앤필드 소총 300정 중 한정을 분해하여 복제품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광정 소총이었다.
광정 소총이 만들어 진 뒤 광정 소총은 각 군영에 배치되고 지난 1886년 갑신전쟁 때 까지 쓰고 퇴역한 고물이었다.
이 소총이 개발되고 약 20년 동안 이 소총이 구 조선군, 대한제국군의 주력으로 쓰였다. 광정 소총은 1886년에 퇴역한 뒤 예비군에게로 돌려져 예비군과 경무청 주력 개인화기가 되었다. 대한제국 예비군은 겨우 4만, 경무청은 8만 명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소총이 많이 남아돌아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오스만 투르크, 아프가니스탄에 밀수출 되었다.
현재 대한제국 육군은 대한제국-1884라는 신형 소총을 쓰고 있다.
“이보게 한규설 대신. 지금 현재 우리 제국에 광정소총이 몇 정 정도 있는가?”
한규설은 잠시 뜸을 들였다.
“광정 소총이... 약 37만 3000여 정 정도 있습니다.”
“그렇게도 많이 있나?”
“그렇습니다, 폐하. 현재 우리 제국 예비군이 약 4만 명, 경무청 순경이 8만 명 정도 있는데 소총이 고장 나거나 소총의 부속품이 부족해질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소총 24만 3000여 정을 각 예비군영의 무기고와, 경무청 무기고, 한성부 한성진위대 무기고에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단군이 걱정하는 사이 왕위 계승자 이명복 공은 경희루에서 멀리 정자를 바라보았다.
1888년 5월 18일 대한제국 황해도 재령.
재령의 어느 산골에서는 하루 종일 시끄러운 총 소리가 들렸었다. 총 소리는 상당히 컸는데 이 총 소리는 한-청 전쟁 당시 활약하여 2년 전에 퇴역한 광정 소총 소리 같았다. 광정 소총 소리 말고도 1860년대 까지 조선군이 쓰던 개인 화기 조총도 있었다. 그것은 어느 산골에서 많은 장정들이 광정 소총이나 조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보게. 지금 우리 장정들 사격실력이 늘었는가?”
몰락양반인 이차건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몰락양반이 되었다. 1880년대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단군은 양반을 없애고 노비를 해방하는 정책을 폈는데 그 정책으로 이차석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 버리고 집에 딸린 노비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해방되었다. 또 정부에서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여 엽전은 애 궂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예~ 그렇사옵니다. 나으리.”
이차건이 장정들에게 사격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정부를 뒤 엎어 이하응을 왕의 자리에 몰아내 군으로 강등시키고 단군 칭호를 없앤 뒤 만주지역을 청 제국에 할양하고, 독일제국과 그 외 서양열강들과 관계를 끊어 쇄국을 고수하여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자를 왕으로 세워 청 제국의 제후국으로 남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사실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왕을 세워 자신들의 권익과 이익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이차건은 반란이 실패할 경우 청 제국의 도움을 받아 낼 계획도 세웠다.
1888년 5월 18일 청 제국 베이징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1886년. 한청 전쟁이 끝나고 대한제국과 청 제국은 제후국, 상국 관계를 떠나 대등한 관계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외교관계를 맺은 뒤 대한제국은 청 제국의 수도 베이징에 베이징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을 세우고 청 제국은 한성에 한성주재 청 제국 공사관을 세웠다.
“아유~ 드럽게 쓰레기가 많네잉~”
대한제국 공사관의 한국인 청소부는 빗자루를 들고 공사관 마당을 쓸고 있었다. 어제 청국 인들이 공사관을 공격하는 바람에 마당에는 온통 돌과 쓰레기, 술병, 오물이 널려 있었다.
“웬 종이여?”
공사관 마당 한 가운데에 웬 하얀 종이가 있었다. 청소부는 하얀 종이를 주워서 하얀 종이를 펴 보았다.
[안녕하시옵니까, 황제폐하. 대청 제국 황제폐하 만만세~ 저희는 청 제국에 맞서는 조선 조정을 타도하기 위해 군사를 교련하고 조선군 무기고의 무기를 털어 조정을 타도할 준비를 하는 조선인들이나이다. 현재 이하응이라는 작자는 자신을 대국의 천자와 비슷한 단군이라 칭하고 백성들의 웃어른인 양반들을 탄압하고 6년 전에는 양반을 아예 없애버렸나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못난 천민들과 서자들을 관직에 대거 등용 하였나이다. 또 지난 갑신전쟁에서 아국이 승리한 이후 몇 몇 중국 본토의 항구와 만주 지역을 빼앗아 자신들의 영토로 삼고 황제폐하의 국가에 14억 냥이라는 엄청난 양의 배상금을 물어냈나이다. 이하응라는 작자는 점령지의 주민들을 탄압하고 창녀로 삼으며 어린 대국의 아해들에게 쇠뇌 교육을 시키고 있나이다. 폐하. 폐하의 군대가 우리 아국을 침공하여 이하응이라는 작자를 혼을 내시고 상국의 힘을 만 천하에 보여주시옵소서...
단기 4221년 5월 13일
조선국 양반 연합 회장 이차건]
“씨... 씨방 뭐여~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나...”
청소부는 하얀 종이를 들고 주머니에 넣어 공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1.
청소부는 공사를 겨우 겨우 찾았다. 그리고는 공사에게 하얀 종이를 주은 이야기를 하였다.
“뭐... 뭐라고!”
청 제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 김영정은 편지를 보고 버럭 화를 냈다.
“이보게. 이거 어디서 발견했나?”
“아... 이거요... 이거 공사관 마당에서 청소하던 도중에 발견 했습니다요~”
“그래? 나 이거 참 살다 살다 황당한 일은 다 겪어 보는군... 공사관 마당에서 이런 괴 편지를 발견하다니... 진짜 또 전쟁 나다가는 본국으로 소환되겠군... 이차건... 이 새끼 이름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아~ 신문에 많이 나온 놈이지. 그래... 이 새끼 아주 웃긴 인간이야... 청 제국에 저번 갑신전쟁에서 빼앗은 영토를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청 제국에 배상금 12만 냥을 내야한다고 주장하더군... 아이고 많아~ 그렇게 많은 돈은 청국 뙤놈들에게 바쳐야 한다니~ 이런 새끼들 때문에 위대한 제국이 개판 되는 거다~ 내가 저번 전쟁에서 내 손으로 청국 군대를 죽이고 항복 시키고 그랬는데 그런 용사들의 수고는 생각도 안하고 이런 개 같은 생각을 하다니... 이런 썩어빠진 사대주의자들...”
김영정 공사는 반청주의자였다. 김영정 공사는 청 제국 주재 공사가 된 것이 처음이었다. 김영정 공사는 공사를 하기 전에는 군인이었다. 김영정 공사는 1822년 생으로 184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조선군 군관(朝鮮軍 軍官)이 되었다. 조선군 군관이 된 뒤 김영정 공사는 1863년에 이하응이 왕으로 즉위할 때 김영정은 41세에 장군이 되었다. 장군이 된 김영정 공사는 이하응의 근대화 계획에 참여하여 근대화 된 신식 군대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새로운 육군 병기를 개발하는데 주력하였다.
1880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김영정 공사는 대한제국 육군 대장(大韓帝國 陸軍 大長)이 되어 평안군구 사령관이 되었다. 1884년 청 제국과의 전쟁이 터지자 평안군구 군을 이끌고 청 제국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만 많지 신식무기의 수가 적은 평안군구군은 회군에게 박살나고 의주를 빼앗겼다.
의주를 빼앗긴 뒤 김영정 공사 휘하의 평안군구군은 의병을 모집하고 독일에서 수입한 독일제 소총으로 병사들을 무장시켜 의주를 재탈환하였다.
이 때 공로로 김영정 공사는 육군 대장에서 육군 원수(陸軍 元帥)로 계급이 올려졌다. 육군원수가 된 김영정 공사는 평민과 포수로 이루어진 50만 대군을 이끌고 만주지역을 총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군대는 실전부족으로 많은 병력을 잃어버렸다.
청 제국에게 거의 두들겨 맞다 시피 한 대한제국에 독일제국이 대한제국에 대한 군대 파견을 선포하고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청 제국 성경성을 공격해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자 김영정 원수는 다시 평안군구 군을 이끌고 대규모 반격을 감행하여 청 제국 만주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고 북부로 진격하였다.
청 제국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뒤 김영정 공사는 육군아문 대신과 군부아문 대신이 되어 국방력 강화를 꾀하였다. 김영정 공사는 육군아문 대신과 군부아문 대신을 지낸 뒤 1888년 4월. 베이징 주재 대한제국 공사가 되었다.
“망할 놈들... 내가 이 공사 직을 때려치우고 다시 군문에 복귀하면 너희 사대주의자 새끼들을 완전 빈대떡으로 만들어주마...”
김영정 공사는 이를 갈며 전산실로 갔다.
2.
“충성!”
전산실에는 무관 한명과 육전대원 4명이 전신과 여러 통신장비를 다루고 있었다. 김영정 공사는 하얀 종이의 내용을 본국에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제군들. 지금 이 괴 편지의 내용을 본국으로 알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게. 우리가 이 사실을 덮어두면 대한제국은 양반 놈들이 판을 쳐 다시 청의 제후국이 되어야 하네. 제군들! 빨리 이 사실을 정부에 알려 정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게. 이것은 꼭 중요한 일이네. 빨리 보내게!”
육전대원들은 하얀 종이의 내용을 보며 본국에 전신을 보냈다. 김영정 공사는 겨우 한숨을 쉬며 전산실을 나갔다.
1888년 5월 18일 대한제국 황해도 해주.
해주에는 조그마한 상선들이 드나들었다. 상선에는 길다 란 나무 상자들과 화약이 담긴 통들이 있었다. 긴 나무상자에는 영어 알파벳들과 숫자들이 씌어져 있었다. 조그만 상선에 탄 청국 상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주패놀이(일종의 고스톱 같은 도박판)를 하였다.
“이보슈~ 청대인~”
거지 옷을 입은 자가 작은 상선에 탄 청국 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청국인은 거지 옷을 입은 자를 알아보고는 상선으로 오게 하였다.
“이보시게 청대인. 지금 웬체스터 총하고 앤필드 총이 있는감?”
그 거지는 몰락양반인 김기성이었다. 김기성은 안동김씨 김좌근의 친척이 되는 자로 1880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단군이 양반 제를 없애자 이차석의 조선국 양반 연합에 들어가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조선국 양반 연합에 들어간 김기성은 무기와 군수품을 구입하는 직책을 맡았다.
“아~ 대인께서 원하시는 웬체스터 총하고 앤필드 총이 있습니다. 그리고 콜트 회전식 총이라고도 있는데 이 총은 다시 장전하지 않고 5, 6발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앤필드나 웬체스터 같이 총알을 일일이 장전할 필요가 없지요... 또 화약도 많이 있습니다.”
"알겠네. 총 몇 정인가?“
“앤필드 총은 200정, 웬체스터 총은 400정, 콜트 총은 180정이 있으며 리볼버 총 70정, 화약 8통이 있습니다.”
“청대인... 화약이 왜 이렇게 적은가?”
“그게 총하고 군수품을 너무 많이 실어 화약을 실은 게 적습니다.”
“그런가 청대인. 군수품은 어떤 거 있는가.”
“탄약집하고 폭탄이 있습니다.”
“알았네. 지금 수레가 왔으니 수레에 이 무기들을 실어주게.”
이미 상선 밖에는 이미 수레 14기와 장졸 33명이 있었다. 장졸 33명은 상선으로 가서 웬체스터 소총이 담긴 상자들과 앤필드 소총들이 담긴 상자들을 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폭탄과 화약, 각종 군수품들을 수레에 실었다.
1.
“엥? 저건 또 무시다냐?”
대한제국 육군 병사 두 명이 대한제국-1884 소총을 들고 항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상병님. 항구에 웬 소총 상자단가요?”
대한제국 육군 황해군구군 병사인 성유성 일등병은 상선에서 소총상자를 내리자 옆에 있는 양연종 상등병에게 웬 소총상자냐고 물어보았다.
“소... 소총상자?”
양연종 상등병은 상선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세... 세상에... 소총 밀수입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양연종 상등병은 등에 맨 대한제국-1884 소총을 벗고 소총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를 잡고는 머리를 개머리판에 대고 소총 상자를 싣는 장정들을 향해 조준하였다. 조준을 하고 나서는 노리쇠 손잡이를 당겨 소총을 장전하였다. 성유성 상병도 소총을 들고 장정들을 향해 장전하였다.
“꼼짝 마 새끼들아!”
양연종 상등병이 장정들을 향해 꼼짝 말라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장정들은 오히려 소총상자에서 앤필드와 웬체스터, 리볼버 권총을 꺼내 성유성 일등병과 양연종 상등병을 위협하였다.
“이봐! 사실 우리가 수가 많아... 멍청한 놈들... 그리고 이 총은 웬체스터하고 앤필드인데...”
“뭐... 뭐라고? 느그들은 아직도 그런 고물을 쓰냐!”
양연종 상등병은 장정들이 고물 소총을 쓴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자 김기성은 앤필드 소총 한정을 꺼내 양연종 상등병, 성유성 일등병을 향해 조준하였다. 김기성은 20초도 안되어 앤필드 소총의 탄약을 장전하였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광정 소총과 앤필드 소총이 성능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그 하응인가 뭔가 하는 인간들 쫄개지?”
김기성이 단군의 이름을 말하자 양연종 상등병은 화를 냈다.
“뭐라고! 야 이 씹 새끼들아! 하응이? 아니 너희들은 단군 폐하보고 하응이라니... 저 확...”
양연종 상등병의 말이 끝나고 김기성은 계속 양연종 상등병과 성유성 일등병에게 비아냥 거렸다. 그 때 해주 주민들이 몰려들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봐, 이봐, 이봐... 너무 화를 내면 안 돼지~ 그리고 너 불쌍하겠다, 이 천한 것들아...”
“뭐... 뭐라고!”
김기성이 천한 것들이라는 말을 하자 작가는 화를 내며 김기성의 근처로 왔다.
“이봐 김기성! 뭐! 천한 것들? 도대체 뭔 개소릴 지껄이는 거여! 그건
2000년대에 개그콘서트라는 막 극에서 세바스찬이라는 영국 귀족 대사라고!”
작가는 김기성을 주먹으로 패 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가에게 한방 맞은 김기성은 겨우 일어나 다시 앤필드 소총을 들고 양연종 상등병과 성유성 일등병을 향해 조준하였다.
“거기 꼼짝 마라!”
갑자기 순경 10여명이 광정 소총을 들고 나타났다. 원래 대한제국에서는 육군과 해군, 육전대, 경무청이 소총을 보유하는데 경무청은 평소에는 순찰이나 도둑 방지, 범죄조사 등의 일을 보지만 전시에는 준군사 기관으로 조선시대 당시 경찰 기관인 포도청, 암행어사 같이 군사와 경찰업무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1880년.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 포도청과 암행어사는 폐지되어 경무청으로 바뀌어 경찰업무를 시작하였으며 1881년에는 해안경비대를 창설하여 해안경비업무를 시작하였다. 경무청이 생긴 이후 경무청의 임무는 국민을 감시하는 업무에서 벗어나 국민의 복지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갑신전쟁이 끝나고 경무청은 경무청을 육군의 준 군사기관으로 바꾸어 순경들에게 소총을 갖추게 하여 만약에 일어날 시위와 폭동, 데모, 반란 진압에 투입시키고 전시에 후방의 전력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런 제길! 전부 죽여 버려!”
순경들이 사격자세를 취하자 33명의 장졸들은 소총으로 경찰들을 죽여 버렸다. 순경들은 총 한번 못 쏴보고 쓰러져 죽어버렸다. 그리고는 양연종 상등병과 성유성 일등병을 사살하고는 광정 소총 10정과 대한제국-1884 소총 2정을 노획해 소총 상자에 넣고는 수레에 실어 재령으로 도망쳤다.
1888년 5월 18일 대한제국 황해도 해주 해주경무청.
해주 경무청의 이경석 경무 청장은 해주경무청 소속의 순경 10명과 황해군구 병사 2명이 괴 장정들이 쏜 총을 맞고 죽었다는 사실에 책상에 손바닥을 내리치며 화를 냈다.
“이런 제기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런 개 같은... 도대체 어떤 새끼들이 경찰을 죽이는 거야! 게다가 황해군구 병사 2명이 죽었으니... 황해군구 사령관이 뭔 경찰이 사람도 못 죽이냐고 하겠군... 아무리 경찰이 준 군사기관이라 하지만... 광정 소총 탄약을 제대로 생산하지 않는 판에...”
갑신전쟁이 끝난 후 대한제국군의 주력 소총 광정은 주력소총 자리를 대한제국-1884 소총에 넘겨주었다. 그 이후 광정 소총은 경무청과 예비군에 넘겨져 경무청과 예비군의 주력소총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대한제국-1884 소총이 주력소총이 된 뒤 광정 소총의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탄약을 생산하지 않았다. 경무청과 예비군에서는 광정 소총이 지급된 이후 신나게(?) 사격훈련을 하다가 탄약이 지급되지 않자 1달에 2번꼴로 사격훈련을 하게 되었다. 탄약을 아끼기 위해 시위 진압 때는 군대에서 하는 백병전을 벌여 시위진압을 하였다.
탄약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까닭에 예비군의 사기는 많이 떨어져 훈련 시간에 주패놀이를 할 정도가 되었다. 군부아문에서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대한제국-1884 소총을 예비군과 경무청에 지급할 생각을 하였으나 방산 업체에서는 세계 총기시장 독점을 하기 위해 새로운 소총을 개발 한다고는 대한제국-1884 소총 생산을 줄여나갔다.
소총 생산이 줄자 군부아문에서는 군부아문 소속 무기 공장을 지어 소총을 생산하려고 하였으나 정부에서는 무슨 헛 짓거리냐며 공장을 못 짓게 하고 방산 업체에 협박을 해 대한제국-1884 소총을 생산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방산 업체에 광정 소총의 탄약을 대량으로 생산하라고 하였으나 방산 업체는 광정 소총의 탄약을 팔 경우 싼 값에 많은 양의 탄약을 팔아 손해를 봐서 광정 소총 탄약의 생산을 줄여가며 탄약 한달에 한번 씩 1000발을 정부로부터 비싼 값에 값을 받아내었다.
“이보시오. 이경석 청장. 계시오?”
누군가가 손으로 문을 똑똑 두드리며 들어왔다. 그는 황해군구 사령관인 여성명 대장이었다.
“이경석 청장. 반갑소이다.”
여성명 대장은 이경석 경무 청장에게 반갑다고 하고는 이경석 경무 청장과 악수를 하였다.
“이경석 경무 청장. 근데 우리 황해군구 병사 2명이 괴 장정들의 총을 맞고 죽었다면서요? 그리고 대한제국-1884 소총도 도난당하고...”
“아... 저희 순경 10명 죽고 광정 소총 10정을 도난당했습니다요...”
“유감스럽습니다... 근데 경무청 순경들은 요즘 사격훈련을 제대로 못한다면서요? 그 망할 방산 업체에서 예비군과 경찰들에게 한달에 한번 씩 1000발 정도만 팔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아... 아니 어떻게...”
이경석 경무 청장은 여성명 대장이 자신에게 꾸지람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여성명 부장이 하는 소리는 꾸지람이 아니었다.
“요즘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방산 업체의 폐해가 심하더군요... 신형 소총을 개발하는 것은 좋지만 그 것을 다른 국가에 팔려고 하다니... 진짜 한심합니다. 다행히 만상산업에서는 광정 소총의 탄약을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이고 신형 소총을 개발하여 정부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진짜인가요?”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신문에 나왔는데...”
대한제국에는 총 8개의 방산 업체가 있다. 먼저 송상상사의 계열사인 ‘송상산업’이 있는데 이 송상산업은 대포와 대한제국-1884 소총을 생산하는 회사로 1866년 당시 군기시에서 광정 소총을 개발한 이후 송상이 군기시의 위탁을 받아 광정 소총을 대량으로 생산한 조선 최초의 방산 업체였다.
송상 대방 이순덕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신제품을 개발하도록 하여 청국이나 러시아 부근에 수출하였다. 그러나 이 이순덕 대방의 행동 때문에 1886년 갑신전쟁이 끝난 이후 군무아문은 적은 양의 대한제국-1884 소총을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고 1달에 한번 꼴로 광정 소총 탄약 1000발을 비싼 값에 구입하였다(1877년 창립).
다음 만상상사의 계열사인 ‘만상산업’은 기관포와 수류탄을 생산하는데 만상의 만상산업은 최근 송상이 광정 소총 탄약 생산량을 줄여 예비군과 경무청에서 탄약 부족이 심각해지자 최근에 전 만상 대방 임상옥의 후손 임상후가 만상에서 직접 광정 소총 탄약을 생산하여 많은 양을 정부에 싼 값에 팔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만상산업에서는 신형 소총을 개발하여 예비군과 경무청에 팔겠다고 발표하였다(1879년 창립).
세 번째는 ‘군광산업’으로 군기시 출신의 무기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소규모 방산 업체로 군기시산업은 수적으로나 규모로나 자본으로나 규모가 작으나 정부에서 특별 하사금을 내려 새로운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군광산업은 최근에 세워진 소규모 방산 업체라 특별히 개발한 신제품은 없다. 그러나 군광산업은 탄창을 넣는 소총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1887년 창립).
네 번째는 ‘해상조선’으로 이 방산 업체는 군함을 건조하는 방산 업체이다. 해상조선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증기기관과 신형군함 건조 기술을 배운 자들이 중심이 된 방산 업체로 이 업체에서는 장갑함이나 순양함, 어뢰정, 장갑을 덧씌운 판옥선 등의 군함들을 건조하며 이 업체에서는 ‘태조대왕’ 급 경순양함과 ‘해전’ 급 장갑판옥선을 건조한다(1882년 창립).
다섯 번째는 ‘이운사’로 실제 역사에서는 이운사가 관·민 합작으로 세워져 해운업을 하는 회사로 나온다. 이 소설에서 이운사는 해운업과 기관포 생산, 함포 탄약 생산을 한다(1879년 창립).
여섯 번째는 ‘화포산업’으로 이 화포산업은 이름과 같이 주로 대포나 함포, 대포·함포 탄약을 생산한다. 이 화포산업은 고 품질의 대포·함포를 생산해서 화력과 성능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회사이다(1878년 창립).
일곱 번째는 ‘외화증기’로서 외화증기는 방산 업체이긴 하지만 방산 업체 보다는 민간 철도회사로 잘 알려진 회사이다. 외화증기는 주로 증기기관차를 생산한다. 외화증기가 개발한 무기 중 열차포가 있는데 이 열차포는 포의 길이가 총 250mm나 되는 대형 열차포이다. 이 열차포의 크기가 얼마나 엄청나던지 이 열차포 하나를 움직이는데 기관사 10명이 필요하고 경비병력 4000명, 관측병 10명, 포탄을 장전하거나 포를 다루는 병사 100명이 필요하다.
또 이 열차포가 포탄 한발을 발사하면 병사의 고막이 터져버릴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귀마개를 써도 고막이 터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외화증기는 열차포 말고도 수송열차나 ‘움직이는 병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침대차가 있었다. 외화증기는 이 열차를 군부아문에 납품하려고 하나 수송열차나 침대차는 별 인기가 없는 품목이라 수송열차와 침대차는 민간에 많이 팔리고 군대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총 8개의 방산 업체로 이 방산 업체들은 몇 몇 폐해를 일으키는 업체만 빼고 대한제국군의 국방력 강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신문에서 만상대방 임상후가 직접 글을 올려 신형 소총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합니다. 근데 걱정되는 것이 만상산업에서 잘 만든다는 무기라 해 봐야 기관포와 수류탄 입니다.”
“그게 뭐 어째서요? 대장님.”
“그게 아니라... 만상은 개틀링 기관포 복제품이나 개틀링 기관포의 성능을 업그레이드 한 신형 기관포, 수류탄을 만든 경험만 있지... 소총은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소총 만드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상에서 미국의 콜트 회전식 소총 같은 소총을 개발한다고 하지만...”
“네. 하지만...”
“그게 사격 자에게 상당히 위험한 총 입니다. 총을 따로 따로 일일이 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거 쏠 때에 사격 자가 다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열강들은 콜트 회전식 소총을 일반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만은... 우리 제국이 이 총의 약점을 보완해서 새로 생산에 군대에 팔아서 각 군영에 지급하면..”
“그렇군요...”
“아!”
여성명 대장은 뭔가 잊어버린 듯 ‘아!’를 외치며 말했다.
“물론 콜트 회전식 소총 같은 것을 만들어 군대에 팔면 각 군영에만 지급할 것이 아니라 경무청과 예비군에도 그런 총을 지급해야지요. 예비군은 낡은 소총을 보유하는 군대가 아니라 신형 소총을 보유하는, 후방을 보완하는 군대가 되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