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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스케치
김 진 원
이른 새벽 눈을 떴다. 2011년 마지막 남사모 모임 날이란 생각에 잠이 확 달아났다. 오늘 총회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하는 날이기도 하다. 누가 새로운 회장님이 되실 것인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 산성에 오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꽤나 차갑다. 일기예보는 영하 10도 이하라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것이라 했다. 옷깃을 파고드는 매운바람이 대단한 아침이었다. 집 앞에 있는 차로 갔다. 그러나 황당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5 년여 무사 무탈하게 굴러가던 내 차. 시동이 안 걸린다. 시간이 없다. 모임 약속시간이 열 시인데. 어쩌란 말인가? 당황한 난 와이프를 전화로 불렀다. 이래 저래하니 나를 남한산성까지 데려다달라고 했다. 화급하게 와이프가 내려왔고 난 그 차에 몸을 실었다.
산성 남문관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서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종화 사무총장의 사회로 연말 정기 총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그동안 수고한 신청회장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회장 추천에 들어갔다. 이런 저런 분들의 이름이 나왔다. 결국 신청회장의 강력한 추천을 밀어낼 대안이 없었다. 제 3/4대 회장을 역임하신 전보삼 교수님이 또 다시 남사모를 이끌 중책을 맡으셨다. 자리한 회원 모두의 만장일치 박수소리는 매우 크게 들렸다. 수고하심은 봉사다. 진정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모두를 위한 수고를 봉사로 생각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주신 전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많은 분들 특히 전교수님과 김남일박사의 큰 수고로움이 깃든 남사모 15주 년 사 책이 나왔다. 회원들은 살짝 감격해하며 책을 손에 넣었고 돌아가면서 본인 또는 다른 회원의 글을 낭독하는 것으로 공식 모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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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산성 인물
■ 제16대왕 : 인조(1595-1649년. 재위 :1623-1649년.5월. 집권 26년2개월.55세를 일기)
● 인조반정의 명분
첫 째: 명에 대한 의리를 져 버리고 대명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
둘 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형제를 죽이고 불효를 했다는 것. 그러나 광해군은 대북파들이 인목대비를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물리치고 영창대군을 죽이는 것도 반대 했다. 그리고 청과 명에 대해 중립적인 외교로 실리를 취했으나, 인조는 대명 사대주의에 빠졌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했다. 인조반정으로 정인홍, 이이첨 등은 사형을 당했고, 대북세력 200명 모두 숙청당함. 인조는 친명 사대주의를 표명하여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려 했으나 이괄의 난, 청의 침입 등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결국 청과 군신관계를 맺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다. 이괄의 난은 인조가 한성을 버리고 도주했을 정도로 조선 조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괄이 북방 주력부대를 이끌고 내려옴으로써 변방의 수비에 허점이 생겨 후금의 침략을 용이하게 했다.
● 병자호란(1636년) : 1636년부터 정묘조약 때 맺은 '형제의 맹약' 을 군신관계로 개악하고자 하면서 황금과 백금 일백 냥, 전마 3천 필, 정병 3만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후금의 요구사항이 터무니없이 늘어나자 조선은 화의조약을 깨고 후금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개칭하고 태종은 황제의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해 12월1일 청태종은 청군 7만, 몽고군 3만, 한군 2만 등 12만을 이끌고 압록강을 쳐내려 왔다. 청군은 임경업이 지키고 있던 의주 백마산성을 피해 직접 한성으로 진군하였다.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한편 청군은 12월16일 남한산성에 도착했고, 청 태종은 1월1일 군사를 20만으로 늘려 남한산성 밑 탄천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후 별다른 싸움 없이 40여 일이 경과하자 성안의 식량은 떨어지고 군사들은 피로에 지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강화도가 함락됐다는 보고가 있자 성안은 술렁대기 시작했고 인조 는 별수 없이 항복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의 요구사항은 총11 가지였다. 청에 대해 신하의 예를 갖추고, 명과의 교호를 끊을 것 ,청에 물자 및 군사를 지원 할 것, 청에 적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말고 곡물을 보낼 것 등이었다. 이 조약이 체결되자 1637년 1월30일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서문으로 나가 한강 동편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춘 뒤 한성으로 되돌아 왔다. 이로써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청나라에 복속하게 되는데, 이 관계는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할 때까지 계속된다. 병자호란을 통해 굴욕적인 역사를 남기게 된 것은 당시의 집권당인 서인과 인조가 지나친 대명 사대주의에 빠져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광해군의 실리주의 노선을 제대로 살렸더라면 변란은 물론이고 그 동안 중국과 맺어 오던 군신 관계를 청산하고 국력을 신장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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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모 회보는 매달 산성과 관련된 인물을 선정해 이 면에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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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 연재
1779년 정조의 능행과 남한산성 김문식(서울대 규장각) 1. 머리말 1779년(정조 3) 8월, 정조는 도성을 벗어나 남한산성과 이천을 경유하여 여주에 있는 효종의 寧陵을 참배하고 돌아왔다. 총 7박 8일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정조가 영릉을 참배한 것은 효종이 서거한지 2周甲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재위 24년 동안 총 66차례의 능행을 했으므로, 능행 자체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 앞서 정조는 1777년에 永陵과 弘陵을 방문한 것에서 시작하여, 1778년에는 2차례, 1779년에는 4월까지 이미 2차례의 능행을 다녀온 바 있었다. 그러나 1779년의 능행은 정조에게 최장거리 여행이자 여주를 다녀오는 유일한 여행이었고, 이동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남한산성에서 보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조의 능행 중 7박 8일이 소요된 여행은 두 번 있었다. 1779년 여주 능행과 1795년의 화성 행차가 그것인데, 후자는 정조가 생모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행차하여 사도세자의 묘소인 顯隆園을 참배하고, 화성행궁에서 혜경궁의 회갑잔치를 열었던 뜻 깊은 행사였다. 조선시대의 왕릉은 도성 인근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능행이라 해봐야 당일에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길어도 3일 내지 5일이 소요되는 정도였다. 당시 여주에는 효종의 寧陵과 세종의 英陵이 있었는데, 이들은 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왕릉이었다. 그런데 여주 능행이라 하더라도 남한산성, 이천, 여주에서 숙박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5박 6일의 일정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일정을 7박 8일로 늘였고, 그 중 4박 5일을 남한산성에서 보냈다. 이 때의 능행은 120주기를 맞은 효종의 능을 참배하는 동시에 남한산성을 방문하여 산성의 상황을 점검하고 군사 훈련을 실시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1779년 정조 능행의 실상과 의의를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능행의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행사 준비, 본 행사, 행사 마무리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3장에서는 정조가 능행 중에 취했던 조치들을 대상에 따라 山林, 유생과 무사, 백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4장에서는 정조의 능행이 가지는 의의를 정리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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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정기 총회 결산
참석자
무순/ 전보삼 공석봉 문제길 신청 최종섭 정완길 심교준 배윤옥 신창규 이종화 신동수 정재열 김남일 김진원 이영남 김내동 손종구 박용규 김애숙 주선진 /20명
수입 : 20명× 1만원= 20만원
지출
식대 : 정식 20명×10,000=20만원
막걸리 : 10병× 4000원=4만원
합=24만원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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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모는 회원님들의 연회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새마을 금고 9002-1443-9250-8 김진원남사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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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동정
* 그동안 수고하신 집행부(회장 신청)가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 성되었습니 다. 수고하신 전임 임원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신임 임원진으로 전보삼 만해기념관 관장님이 회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되셨습니 다. 신임 회장 님은 사무국장으로 김진원 작가를 지명하셨습니다.
* 2012년부터 년 회비는 3만원. 당일 활동 식사비는 2만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 2012년부터 새로운 남.사.모 소식지가 발행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 랍니다. 표 지. 사진으로 본 하루. 모임 스케치. 이달의 산성 인물. 회보 연재. 2012년 월간 계획표. 광고 등 총 8면으로 제작됩니다.
* 1월 14일 남사모 임원회의가 남문관에서 있었습니다.
* 다음 카페[남사모 청년포럼]에 소식지 열람 방이 개설되었습니다.
* 사무국장 김진원 이-메일 : kimjw59@naver.com 전번:010-7502-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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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남사모 월간 행사표(예정)
월 별 |
오 전 |
오 후 |
1월/29일 |
시산제 |
신임 집행부 발표 및 월간 행사소개 |
2월/26일 |
산성 탐방 |
세미나 (내부 강사) |
3월/25일 |
산성 탐방 |
세미나 (내부 강사) |
4월/ 28일-29일 |
1안) 행궁 stay 2안) 산성 야외 stay |
토요일 오후 행궁 입성 일요일 오후 출성/ 세미나/초빙강사 |
5월/27일 |
16주년 기념행사 오전 세미나/초빙강사 |
축하 공연 |
6월/24일 |
산성 / 박물관 /유적지 탐방 (외부 행사) |
문경 고모산성/문경새재/ 사극 촬영지 |
7월/29일 |
산성 탐방 |
세미나 (내부 강사) |
8월/26일 |
산성 탐방 |
세미나 (내부 강사) |
9월/23일 |
산성 탐방 (추석 관계로 셋째 일요일) |
세미나 (내부 강사) |
10월/28일 |
산성 탐방 |
세미나 (초빙 강사) |
11월/25일 |
산성 / 유적지 탐방 (외부 행사) |
수덕사/해미읍성/서산 삼존마애불 |
12월/30일 |
산성 탐방 |
총회 및 송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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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과 광고면은 싣지 않았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수고하셨읍니다.
새해 복 많아 받으세요!!!
내일이 시산제 네요.
올려 주신글 잘 보았습니다.
애 많이 쓰셔서 올려 주신 덕분에 ...
감사합니다. 낼 뵙지요.
사무국장님 수고가 많습니다.
여러가지로 힘들텐데 수고 많이 하셨네요.
남사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