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불스 시절 조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여기서 자꾸 조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 2의 조던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조던이 말했던 것처럼 조던은 조던이고, 코비는 코비, 또는 티맥은 티맥일 뿐이다...하지만 가드에서 최고의 롤모델은 역시 조던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던과 함께한 팬들은 최초로 그의 경이적인 득점력과 화려한 기술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가 챔피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인내를 같이 나누어 왔던 것이다.
조던의 염원은 그들의 염원이 될 수 있었고, 조던은 챔피언이 자신의 목표이자 자신과 동거동락하는 팬들의 염원임을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자신의 몸이 젊고 튼튼할 때는 그것을 100%이상 발휘했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왔다.
79년생의 티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혹자는 지금이 전성기일 것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내가 본 바로는 그의 가공할 득점력 이외에, 혹은 득점력에서 조차도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티맥의 가장 큰 매력이다.
팬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염원하며, 그것에 호응하여 티맥도 같이 성장해나갈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 분명하다.
4) No. 1
마지막으로 티맥은 올란도의 No.1이다.
올란도의 배번 1번은 많은 팬들에게 향수와 기대를 주는 넘버이며 지난 몇 년간 티맥은 그것에 훌륭하게 부응해왔다.
오닐의 입단과 더불어 다음 시즌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페니의 입단으로 올란도는 순식간에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매직 이후 최고의 대형 포인트 가드라는 찬사 속에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고,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올란도를 떠났던 페니.
그리고 아직 못다 이룬 1번의 꿈을 언젠가 티맥이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리그에서 이미지 메이킹이 실력 외적 요소로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우리는 조던과 아이버슨, 코비에게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맥그래디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2. A Weakness & My hope
팬의 입장에서 객관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든 일인데,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사실 객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하지만 그것은 제목에서처럼 “실현가능한” 희망이기도 하다.
1) 승부근성
맥그래디에게 매력이었던 겸손한 성품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것은 전투적인 마인드와 연결되어 이기고자 하는 승부근성의 부족을 유발한다.
생각해보면 그의 플레이는 신선하며 깨끗하고 즐거움이 있지만, 치열한 무엇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프로에게 냉정함이 우선이겠지만, 우리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열정을 보고자 한다.
우리는 맥그래디에게 뜨거운 그 무엇인가를 같이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2) 클러치
사실 이 부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팀 득점의 1/3 또는 절반을 차지하는 그의 득점이 과연 얼마큼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티맥은 한번 한번의 공격에는 대단히 효율적이며 또한 굉장한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 전체적으로, 또 나아가 장기 레이스 동안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점은 지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극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3승을 먼저 올리며 2라운드에 한발 먼저 내딛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리 연패하며 1라운드를 탈락했던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암스트롱은 기대 이상의 투지를 보였으며 구든과 기리책 또한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에이스는 큰 경기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어서는 안된다.
남은 게임 중 적어도 한 게임은 맥그래디가 지배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바지에 보여준 놀라운 집중력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의 교훈과 더불어 다음 시즌의 희망임에는 분명하다...
3) 리딩 능력
아직까지 맥그래디는 주어진 찬스를 이용할 뿐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긴 하지만, 던컴처럼 포워드가 아닌 이상 맥그래디는 조금 더 단련할 필요가 있다.
조던의 평균 득점이 조금씩 감소하면서 우승에 접근해 갔음을 상기해볼 때, 맥그래디 역시 자신의 득점을 분산시킬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하다.
리더로서 이미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있는 티맥이지만,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한 층 업그레이드된 리딩 능력이 필요하다.
아폴론님의 컬럼 [리딩가드가 게임에서 중요하다]에서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경기운영은 잦은 패스를 통해 길을 열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가 볼을 잡고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상황을 종료해 버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도 많고 어설프면 욕이라도 하겠지만 이미 그는 그런 수준을 저만치 초월해 있다.”라고 절찬했으며 그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동료를 분발시키며 팀의 유기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세련된 패싱은 아직 미흡하다.
리스 게인스가 어느 정도의 활약을 보일지 미지수이며 그랜트 힐이 부활하지 않는 이상 리딩능력의 발전은 챔피언이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4) 수비
맥그래디의 수비능력은 사실 뛰어난 편이다.
캐리어 통산 스틸 1.31개, 블록 1.26개는 가드로서 대단한 수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에 기인한 것이므로 페이튼의 수비나, 조던, 코비의 수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공격과 수비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며, 조던은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수비수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팀 공격의 핵을 이루며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다재다능함에 비추어 맥그래디는 올 시즌 All NBA Defensive First Team에 이름을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5) 부상
고질적인 등부상...
페니와 힐에게 상처받았던 팬들에게 또 한번 커다란 상처를 주어선 안 될 것이다.
꾸준한 몸관리, 성실한 치료는 그를 최고의 슈퍼스타로 만들어 줄 것이다.
3. History (※ 발췌, 편집 - 출처 미상)
1) 사촌 빈스의 그늘을 벗어나 에이스로
00-01 시즌을 앞둔 오프시즌은 대어급 자유계약 선수들이 많아서 이들이 어느 팀으로 이동하느냐가 가장 관심거리였다.
팀 던컨, 그랜트 힐, 에디 존스 그리고 트레이시 맥그래디.
트레이시 맥그래디의 향방은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팀 던컨은 올랜도 매직이나 샌안토니오 스퍼스 잔류가 예상되었고 그랜트 힐은 올랜도 행이 기정사실화 되었으며 에디 존스는 마이애미로 갈 것이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맥그래디는 여러 팀들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사촌 빈스 카터와의 혈연을 앞세운 토론토 랩터스와 마이애미, 시카고, 올랜도가 맥그래디를 영입하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특이한 것은 맥그래디는 가는 곳마다 마치 그 팀으로 진로를 정한 것으로 보였다.
토론토 구단은 카터와의 혈연 때문에 남을 것으로 낙관했고 시카고는 엄청난 환영행사에 시카고 컵스 경기 시구까지 하게 하며 환심을 샀고 알론조 모닝과 전화 통화 후 마이애미 행으로 기우는 듯했다가 결국은 올랜도와 6년간 6,750만 달러에 덥석 계약을 했다.
과연 맥그래디는 어떤 선수이길래 그렇게 많은 팀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을까...
2) 고교 최고의 스타 트레이시 맥그래디
1979년 5월24일 플로리다 주 바토우에서 태어난 맥그래디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플로리다에서 지내왔다.
바로 현재 맥그래디가 뛰고 있는 올랜도와 태어난 바토우,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지내온 오번데일은 1시간 거리도 안되는 인근 지역이다.
오번데일 고등학교 3학년 당시 24.0득점 15.0리바운드 7.0블록슛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던 맥그래디는 1996년 여름에 열린 아디다스 ABCD 캠프에 참가해 16.5득점 7.8리바운드 2.1가로채기 2.1블록슛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고 고교 리쿠르팅 전문 평가 기관들에서 선정한 랭킹에서 1989년 샤킬 오닐 이후 처음으로 모두 5위안에 든 선수가 되었다
선생님과의 문제를 일으키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더햄에 위치한 카톨릭 계 기숙학교 마운트 자이언 크리스찬 아카데미로 전학을 간 맥그래디는 엄격한 학칙을 가진 그곳에서 많은 절제심을 키웠다.
그 학교의 교칙은 이성교제, 귀걸이, 개인 TV 등을 금지하고 있었다.
맥그래디는 “그 학교로 전학간 이후 나는 크리스챤이 되었다. 물론 완벽하게 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긍적적으로 변했다. 만일 그 학교에 머물지 않았다면 귀걸이도 했을 것이고 교회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9위로 뽑힌 다음 맥그래디는 마운트 자이언 크리스챤 아카데미에 30만불을 기부했을 정도로 그 학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맥그래디는 고교 졸업반 시절 27.5득점 8.7리바운드 7.7어시스트 2.8가로채기 2.0 블록슛 56.4% 야투성공률 38.9% 3점슛 성공률 79.1%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며 USA 투데이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AP 통신에서 선정한 노스캐롤라이나 주 올해의 선수와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3) 고등학교에서 NBA로
1997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랩터스에 전체 9번으로 뽑힌 맥그래디는 고졸 루키가 겪는 부진을 역시 겪었다.
1996년 우승팀이자 1997년 준우승팀이며 명장 릭 피티노가 이끄는 켄터키 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던 맥그래디에게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바로 1995년 케빈 가넷, 1996년 코비 브라이언트, 저메인 오닐이 대학을 거치지 않고 뛰어든 전례가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있는 NBA였다.
맥그래디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코비는 이제 너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격려를 해주었고 저메인 오닐은 많은 감독들은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많은 출장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를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저메인 오닐에게 많은 조언을 듣고 고심을 하던 맥그래디는 릭 피티노가 켄터키 대학을 떠나 NBA 감독으로 가게 되자 주저없이 NBA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냈다. 203cm, 95kg에 포인트 가드에서 파워포워드까지 소화할 수 있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점은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당시 드래프트는 팀 던컨의 드래프트라 불릴 정도로 던컨이 1번으로 지명되는 것이 뻔했다. 또 키스 밴 혼, 론 머서 같은 유망주들이 많았다.
이런 유망주들 속에서도 맥그래디는 토론토 랩터스에 9번으로 뽑혀 NBA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코비, 가넷, 오닐이 루키 시즌을 별다른 소득없이 보냈듯이 맥그래디의 루키 시즌은 보잘 것 없었다.
게다가 너무 운동능력을 믿는 플레이를 하며 무리한 블록 슛을 시도하다 부상까지 당하기도 하는 등 11경기를 왼쪽 발목과 아킬레스 부상, 오른쪽 발목 부상, 오른손 타박상 등으로 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키 올스타전에서 부상으로 출장을 못하게 된 데릭 앤더슨(당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을 대신 출장해 10분간 9득점을 기록하는 좋은 활약도 보였다.
결국 맥그래디는 64경기에 출장했고 그 중 17번을 선발 출장해 18.4분간 뛰며 7.0득점 4.2리바운드의 평범한 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11경기에서 맥그래디는 선발로 33.3분간 출장하며 11.2득점 8.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성장을 예고했다.
“코비의 루키 시즌도 그렇게 훌륭하진 않았다. 코비는 적응에 실패하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번 시즌엔 올스타가 되었습니다”라며 맥그래디는 루키 시즌의 부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4) 미완의 대기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스윙맨으로
두번째 시즌은 맥그래디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 시즌이었다.
토론토가 전체 4번으로 지명한 앤트완 제이미슨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보내고 트레이드해온 빈스 카터는 바로 맥그래디와 먼 사촌간이 되는 선수였다.
빈스 카터의 가세는 맥그래디와 토론토 랩터스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카터는 18.3득점 5.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맥그래디는 49경기에서 22.6분간 출장해 9.3득점 5.7리바운드 1.06가로채기 1.35블록슛을 기록하는 성장을 보였다.
결국 직장폐쇄로 50경기로 단축된 98-99시즌에서 토론토는 23승27패(승률 .460)를 기록하며 16승66패(승률 .195)를 거둔 97-98시즌보다 2할6푼5리나 높아진 승률을 거두었다.
99-00 시즌 3년차가 된 맥그래디는 리그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맥그래디는 79경기에서 15.4득점 6.3리바운드 3.3어시스트 1.91블록슛 1.14가로채기를 기록했고 특히 마지막 30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해 17.7득점 8.3리바운드 4.0어시스트 2.13블록슛 1.35가로채기를 기록했고 토론토는 45승37패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물론 토론토는 뉴욕 닉스에게 0승3패로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만일 맥그래디와 카터는 90년대를 풍미한 조던과 피펜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게 되었다.
5) 고향팀 올랜도로의 이적, 그리고 올스타급으로 성장
토론토에서 3시즌을 보낸 맥그래디는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고 그의 거취는 던컨, 힐과 마찬가지로 팬들과 NBA 관계자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사촌 카터가 토론토에 남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토론토에 잔류하겠다던 맥그래디의 마음은 이미 다른 팀들을 향해 있었고 특히 고향과 가까운 올랜도는 가장 구미가 당기는 팀이었다.
고등학생 때 까지 그의 어머니 멜라니 윌리포드는 올랜도 인근의 디즈니 월드에서 일했고 맥그래디가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한 선수가 과거 올랜도에서 포인트가드로 뛰었던 앤퍼니 하더웨이였기에 맥그래디가 올랜도로 이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고등학교때는 페니 하더웨이의 멤피스 대학 등번호였던 25번을 달았고 NBA에 들어와서는 페니가 올랜도부터 달았던 1번을 달고 뛰었던 맥그래디는 올랜도로 이적 후 주저없이 1번을 선택하며 올랜도 팬들에게 과거 페니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내가 원할 때면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언제나 돌파해서 쉽게 덩크를 했다. 하지만 이곳 NBA는 다르다. 모든 선수가 빠르고 운동능력이 있다. 만일 뭔가 특별해 지길 원한다면 다른 움직임과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라며 이미 NBA의 생리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한 맥그래디는 “모든 선수가 경기장 밖에서는 좋은 친구이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다르다. 가정을 가진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싸운다. 나도 그런 선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티맥(T-Mac)’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맥그래디는 긴 팔을 가진 203cm의 장신 슈팅가드에 101cm의 높은 점프력과 포인트가드까지 소화하는 볼핸들링에 야투 성공률과 슛거리마저 길어져 이제 사촌 카터의 그늘을 벗어나 올랜도의 진정한 에이스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스윙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outro]
분명히 말하지만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객관적일 수 없다.
사과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며 또는 모든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특정 플레이어를 좋아하는 것은 매니아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한 취향으로서 존중되어져야 한다.
특정 플레이어를 좋아한다고 라이벌을 폄하한다거나 하는 흑백논리로 치닫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많은 매니아께서 알고 있는 사실인 바, 그렇기 때문에 티맥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 없이 풀어 나갈 수 있었다.
코비와 맥그래디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은 채임벌린과 러셀 중 하나를 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저명한 컬럼니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나서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코비를 선택했을 경우에도 그러할 것이고, 티맥을 선택했을 경우에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티맥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미 3개의 링을 차지한 코비에게는 티맥에 비해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도전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드디어는 승리하는 그 모든 과정을 팬의 입장에서 같이 울고 웃으며 즐길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