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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인터뷰 - 바리톤 장철(Jang Cheol)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이탈리아 <리치니오 레피체> 국립음악원 졸업
이탈리아
수상경력
마리오 델 모나코 국제성악콩쿠르 1위
움베르토 죠르다노 국제성악콩쿠르 1위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성악콩쿠르 잔도나이 부문 우승 및 특별상
쟈코모 라우리볼피 국제성악콩쿠르 2위 외
연주 경력
오페라 <리골렛토>, <라 트라비아타>, <팔리아치>, <돈 조반니>, <라 보엠>, <이순신>, <춘향전> 등 다수 작품 주역
- 음악극 <어느 병사의 이야기>, 음악시 <나폴레옹 송시> 등 주역
- 국악음악극 <금시조>, 국악교성곡 <만수산 드렁칡>, 국악칸타타 <세종대왕>, 간가 <사철가> 외 다수의 국악곡 협연
- 14회의 독창회와 10회의 2인 음악회 외 한국과 유럽에서 천여 회의 연주회 출연
현 서울오페라앙상블 음악감독&크로니스앙상블 예술감독
위클리 인터뷰 - 바리톤 장철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시절(그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죠^^) 어느 날 우연히 다락방에서 아주 낡은 클래식기타를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전혀 연주를 못하시니 아버지 것은 아니었고 아마 누군가 버리듯 놓고 간 거였나 봅니다.^^
TV에서 본 건 있어서 대충 폼 잡고 줄을 튕기며 놀다가 저도 모르게 그 기타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어느 새 매혹되었습니다. 주변에 기타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서점에서 기타 교본을 사다가 독학으로 배웠죠.
기초부터 차례차례 기타 교본들을 떼어 나가다가 테크닉 교본과 함께 사온 ‘코드 만드는 법’이라는 교본을 공부하면서 기초화성법을 익혔습니다. 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방학 후로는 노래를 들으면 책 없이도 코드를 진행하며 연주와 반주를 할 수 있겠더군요. 나중에 음대에 들어가 화성학을 배우는데 대학 화성학이 그 때 독학했던 내용 그대로여서 수업이 참 쉬웠습니다.^^
결론은… 어릴 적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다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거죠.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아주 어릴 적에는 만들기를 좋아해서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었습니다. 과학자가 되면 멋진 프라모델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그림을 잘 그려 화가를 할까 했었는데, 다락방에서 튀어나온 그 기타 덕에 중학교 시절부터는 음악가를 평생 꿈으로 삼았습니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아주 공부 잘 하고 성실하고 얌전하며 탈선이나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하는 범생이였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줄곧 우등생에 반장이었죠. (전혀 못 믿으시는 눈치?ㅋㅋ)
늘 갖고 놀던 기타 덕에 행사나 소풍 때는 인기 짱이었구요.
그랬던 제가 고3 때는 반항아가 되었습니다. 전교 학생회장과 연대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1학기 중간고사에 백지 답안을 냈어요. 학교에서나 집에서 난리가 났었죠. 저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결사적으로 반대 하셔서 저 나름 반항을 시작한 거죠.
반 년 넘도록 투쟁한 결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서울대 떨어지면 집에서 나간다는 각서를 쓰고 성악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법대를 가든 음대를 가든 서울대 합격 인원만 채우면 됐던 고등학교 측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구요.
그 때가 고3 가을이었고 석 달 동안 미친 듯이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석 달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역시 고3 때 음악 전공을 허락 받기 위해 벌였던 불굴의 투쟁 내역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도망쳐 학교 근처 당구장과 오락실 등을 전전했는데, 범생이로만 살아오던 제게는 모든 것이 놀라운 문화적 충격이었지요.^^
음악을 전공하게 된 후로는 바로 맘 잡아서 고3 때 치던 당구 실력이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나의 첫 연주는?
아마추어로서의 첫 연주는 중등부 때부터 매년 출연하던 교회 문학의 밤 행사와 학교 학예회였고, 전공자가 된 후에는 교내 연주 외에도 여기 저기서 작은 공연들을 많이 했지요. 오부리라고들 하는…ㅎㅎ
이탈리아 유학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칼라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 메노티의 오페라 <전화>가 프로 오페라가수로서의 첫 오페라 무대였습니다. 그 첫 오페라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자신의 연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얼마 전에 가요 콘서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토크를 하며 혼자서 가요 열다섯 곡인가를 불렀는데 그 곡들 중에 송창식씨의 ‘담배가게 아가씨’가 있었거든요. 객석 호응이 장난 아니었지요.
순간 성악가 그만두고 가수 할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그러나 무척 진하게 스치더군요.ㅎㅎ
지금이라도 가수 데뷔, 늦지 않았을까요?ㅋㅋ
•자신이 연주가로서 가장 연주해보고 싶은 연주 또는 작품이 있다면? 그 이유는?
할 수만 있다면 늘 독창회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장르를 아우를 생각이기에 독창회보다는 ‘가수 장철 콘서트’ 라고 해야겠네요.^^ 우리 가곡이 주가 되겠지만요.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좋은 뜻을 가지고 여러 해에 걸쳐 한국가곡 만으로 수 차례 독창회를 열었었습니다. ‘바리톤 장철의 우리 노래 이야기’ 시리즈였는데 결국 예산 문제로 계속하지 못하고 있죠.
당연히 돈 받고 노래하는 게 프로 성악가인데 우리는 돈 쓰며 노래하지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부분은? 또한 연주하기 전에 특별히 준비하는 것이 있나요?
연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중과의 교감’입니다.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을 느끼고 함께 음악의 감동을 나누는 그 진한 기분을 즐깁니다.
연주 전에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습니다. 좋은 연주를 위해 끝까지 집중하면서 무대를 즐기려 노력합니다.
•자신만의 징크스는 ?
무대 리허설입니다.
당일 무대 리허설을 하고 나면 실제 공연 때 힘듭니다. 그래서 당일 리허설은 가급적 피합니다. 목이 약한 탓이지요.
유학 시절 지나친 연습과 잘못된 발성 시도로 성대가 거의 파열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많이 힘들죠. 그 부상의 후유증으로 한 쪽 성대가 아예 움직이지 않거든요.
왼쪽 성대 근육이 크게 부어 왼쪽 성대를 늘 압박하기에 그쪽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덕분에 무대에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순간 소리가 사라지지요.
성악가가 한 쪽 성대 만으로 노래한다는 건 한 팔로 싸우는 권투 선수와 같은 경우라 늘 긴장하여 초집중 해야만 노래가 가능합니다. 참 많이 힘들어서 이제는 노래를 그만 할까 하는 마음도 늘 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노래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직도 열심히 노래하고 삽니다.^^
이런 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공연 관계자들이 연주 당일 리허설을 계속 요구할 때는 참 힘듭니다. 특히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은 대개 그렇더군요.^^
•자신의 삶 혹은 연주 활동에 힘이 되어주는 요소가 있나요?
착하고 예쁘게 잘 커 준 제 아이들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2백점이라죠.^^
큰애는 연기와 무용을 전공해 한예종 연기과에 다니며 뮤지컬배우를 하고 있고, 작은애는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모델을 하고 있어요. 모델도 하지만 아직 전공은 미술입니다. 피는 못 속이지요?^^
•음악을 하는데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뭐 대단한 큰 일보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별일 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이 가장 행복한 거니까요.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기쁨과 슬픔들을 가감 없이 노래에 담고자 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꼭 클래식 음악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비 오는 걸 참 좋아합니다. 빗소리도 좋고 비 오는 걸 바라보는 것도 좋고…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그래서 고 김현식씨의 ‘비처럼 음악처럼’입니다.
요즘엔 소중한 친구가 저를 위해 만들어 준 ‘비가 그치면’이라는 연주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나의 '인생작품' 이 있다면?
예쁜 두 아이들.
•자신의 음악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그 이유는?
카멜레온색.
제 음악은 그때그때 바뀝니다. 같은 곡이라도 청중과 무대에 따라 바뀝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깊어지며 계속 바뀌는 걸 느낍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클래식이라 하지만 그 색깔까지 바뀌지 않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하면서 보람을 느꼈을 때는?
제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청중을 볼 때.
청중과의 교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게는 가장 큰 보람이지요.
새 곡을 불렀는데 그 곡을 쓴 작곡가가 기쁨과 만족의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연주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의 순간이었죠.
•음악 이외에 관심있는 분야는?
문학입니다. 책 읽는 걸 어릴 적부터 많이 좋아해 명작들을 일찌기 다 읽었고… 이제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영화 감상도 좋아합니다. SF 쪽을 특히 좋아해서 이번에 어벤져스 아주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앤트맨하고 데드풀이 기다려지네요.^^
•자신만의 감성 충전 또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시간 나는 대로 탁구를 칩니다. 35년쯤 되었네요. 흠뻑 땀 흘리며 운동하고 나면 활력을 얻습니다.
탁구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연륜이 좀 있다 보니… 현재 오픈 4부 정도의 실력입니다.
한 때는 오픈 2~3부 정도 되었었는데 지금은 몸이 불어 힘드네요. 생활체육 탁구 체계를 아는 분은 대략 아시겠지요.^^
•아티스트로써 슬럼프 등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유학시절 목을 다쳐 거의 일 년 가까이 노래를 못하던 시절에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당시엔 정말 뭐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지요.
목은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래가 웬만큼 가능해진 후부터는 갑자기 새벽기도가 힘들게 느껴져 더 못 나갔다는 건 인정하기 창피한 연약한 인간의 현실.ㅎㅎ
•어느 날 음악을 관둔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음악을 그만둘 리는 없습니다만… 나이가 들어 무대와 강단에 서지 못하게 되면 작은 무대가 딸린 조그만 카페를 갖는 것이 꿈입니다. 커피 내리다가 기분 내키면 누가 좋게 듣든 말든 또 노래하겠죠.^^
•음악 이외에 취미 또는 특기가 있다면?
취미로는 탁구를 치고… 뭐든 손으로 만들고 만지는 건 잘 합니다. 그림과 조각, 공예 같은 거.
목수를 했어도 잘 살았을 겁니다.
•클래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구가 멸망해도 부점 하나 바뀌지 않을 질긴 녀석.
•자신의 좌우명은?
범사에 감사.
인생의 모토는’ 좋은 사람이 되자’ 입니다.
•30년 후 나의 모습은?
머리카락이 없을 겁니다. 대머리는 격세유전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그러시기에 저는 가망이 없습니다.^^
혹 좀 남아 있어도 온통 은발이겠지요. 지금도 거의 은발이니까요.
•다음 생에 다시 음악을 한다면? 지금 장르와 파트를 떠나서?
지금의 장르를 떠난다면… 가요를 할 것 같네요.^^
기타 치며 자유롭게 노래하는 포크나 락발라드 가수가 될 겁니다.
•자신의 롤 모델 또는 존경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지만, 제 인생에서 롤모델로 따르고 싶은 존경하는 음악가는 테너 안형일선생님입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동료,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대부분의 성악가들은 기악이나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에 비해 공부를 참 쉽게 합니다. 그만큼 노력도 덜 하겠지요. 목소리야 타고날 수 있지만 실력과 지식은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노력하여 공부한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발성이 어렵고 호흡이 힘들고 노래가 잘 안 된다고 투덜거리는 후배가 있다면 딱 한 마디, “나도 노래하고 살아” 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대 하나로 노래하며 살아온 선배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하면 안되죠.ㅎㅎ
•연주가로서의 나 자신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껏 최선을 다해 잘 해왔다. 그 집중력을 잃지 말고 생애 끝까지 잘 해내기를!
혹시 간절히 바라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솔직하게… 온전한 두 성대로 남들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싶네요. 언제 소리가 없어질까 두려워 긴장하지 않고 튼튼한 목소리로 맘놓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늘 부럽습니다.
저 외의 다른 성악가들은 성대 두 개가 온전히 작동하지요. 그게 얼마나 큰 복인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들 노래하고 있구요…
알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일입니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앞으로 음악 계획은?
장르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목표입니다.
본분은 오페라가수지만 꾸준히 우리 가곡과 국악과 가요를 겸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입니다.
음악은 결국 같은 것이니까요.
•나에게 음악이란?
내 노래는… 내 가장 아픈 곳을 혹독하게 쥐어짜야 하기에 남들보다 백 배는 힘든, 남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너무나 힘겨운 작업이지만… 그렇게 아파도 절대로 놓을 수는 없는… ‘평생 웬수’ 입니다.
PS. 마지막으로 위클리 클래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위클리 클래식이 품고 있는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그 가치와 방향에 공감합니다. 클래식이 느리고 답답하지만 고귀하고 영원한 것인 만큼, 위클리 클래식의 느린 행보와 꾸준한 인내 이후에 맞이할 고귀한 결실을 기대합니다.
2018. 6.
위클리 클래식과의 인터뷰 전문
첫댓글 선생님,
울림 좋고 깊이 있는 선생님의 노래 소리가 한쪽 성대로 내는 소리였다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음악이 "평생 웬수"라는 말씀에 음악에 대한 사랑과 고된 노력이 함께 느껴지며 뭉클하네요~
늦깎이님, 말씀 고맙습니다.^^
성대가 양쪽 다 온전했으면 훨씬 좋은 소리로 노래했을 텐데 아쉽죠.ㅎㅎ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같은 음악은 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힘든 만큼 느끼는 것도 많아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