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중매(雪中梅)♧
달빛 흐르는 겨울 창가에
흰 눈이 소복소복
꿈결같이 나리면
차디 찬 계절의 끝에선
그대 사랑스런 추억도
먼 풍경 속의 눈꽃처럼 어리고
이젠 그리워 너무 그리워
채워지지 않는 가슴 가득히
젊은 혼(魂)의 불을 사르듯
매화 한 떨기 희열한다.
2.♡봄의 향연♡
하늘이 곱게 바랜 화사한 봄비 속으로
족쇄를 채우듯 사랑의 빗장을 채운다.
서로를 확인하듯 본능이 익숙해 버린
마치 끝없는 쾌락의 극치를 즐긴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고운 선홍빛,
눈부시게 영롱한 채색옷을 입는다.
멈출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의 조화
더운 피를 쏟듯 애틴 꽃잎을 밝힌다.
독이 물든 기억 속으로 파문을 그리며
나려 단장한 임의 품으로 훨훨 안긴다.
3.<폭풍의 언덕>
항하의 바람 갈기를 지나 백고의 슬픈 종을 울린다.
세월은 그저 오고가는 뜻 없는 이야기인 것을
정하나 매여 갈 길을 쉬이 가지 못해 뒤돌아서
포구의 유영하는 달빛만 먼 산 아래 그늘져
적막한 새소리 비운의 향수 가득 날리는
만단향은 처량히 찬비에 젖어 서걱거리고
낯선 장주의 혼은 갯버들 아래 외로이 흔들린다.
건한 남아로서 일장검을 빼어 천하를 휘두르지도
어진 장부로 큰 배포를 어느 누구 펴지도
산산이 깊은 눈물만 하염없이 적시고가는
나릿한 회고의 사념은 적부의 불길 속으로
끝없이 닿는 오장의 괴로운 심사를 정히 도려온다.
4.♡백합♡
그대 나에게로 오시려거든
다소곳이 어여쁜
한 송이 가인으로 하여 나려오소서.
약산 월광에 고이 씻긴
백합꽃
방긋 방긋이 임 보란 듯
사랑 가득한 마음일랑
미로 속으로
아무도 모르게 연지 분바르고
그대 나에게로 오시려거든
다소곳이 어여쁜
하늘빛 그리운 꿈으로 안겨오소서.
5.♧신고반려♧
그대를 기다린 수억년의 꿈에서
또다시 황홀한 해후를 그린다.
장엄히 파도치는 슬픔을 안고 잃어버린 아틀란티스로 떠난다.
휘몰아치는 극광에 넋은 죽어 바람에 흩날린다.
망가진 유토피아 진실도 퇴색한
염부의 춤을 춘다.
사구에 짓눌린 유년 시절은
이젠 눈물로 멀기만 하다!
가고 싶어도 더는 층계를 오를 수 없는
낙화의 꽃잎이 진다.
무언의 더운 가슴을 부비며 이별의 한을 서로 풀어헤친다.
6.♧도솔가♧
억새의 목마름으로 잠든 영혼을 깨운다.
장주의 바람 길을 꿈속에 나닐듯
금오(金烏)는 마의 진을 두르고 달을 쫒는다.
서녘바다는 황금 오라로 온통 물들어
만고의 바랜 벽항(僻巷)도 솔꽃을 뿌리며
이생을 너머 고운 풍진에 가듯
빙인(氷人)의 가락 한량없이 옛 밤을 밝힌다.
7.<오월의 밤>
향기로운 연보랏빛 라일락 꽃내음에 엉겨
자하동 능선을 너머 물찬 산제비 날아든다.
저 노을 꽃 속에 휘몰아치는 꽃비에 젖어
따사로운 봄기운에 화사히 핀 미인이 가인을 맞는다.
하늘 자미궁에서 빗겨난 듯 오색 달빛이
이 몸을 감싸니 화접의 극치를 즐긴다.
산골짜기 맞닿은 얕은 시내를 지나
천리 강을 돌아 마침내 우린 영원한 쾌락의 바다에서 만났다.
사랑과 죽음이 끝나는 그곳에
나는 네가 되어 너는 내가 되어
알 수 없는 미지의 여행을 떠난다.
춘화에 침낭의 사향이 불타오르고
향기로운 서기에 육계에 살이 녹는다.
8.♧상사화‧2♧
달빛 갠 물결에 하얀 등을 밝히 듯
더는 기다리며 무뎌지는 사랑 앞에
하루 만이라도 함께 할 수 없나요.
오랜 천년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한송이 이름 없는 슬픈 꽃이 되어
멍든 가슴에 고운 핏빛으로 번져
잊노라 잊노라고 돌아서 가노라면
굳이 떠나지 못해 서성이는 마음은
오직, 진정으로 사랑한 그대이기에
찬바람 흔들리는 먼 별빛 너머
아무런 뜻 없이 눈물을 감추며
그리운 향수에 미쳐 불러 보아요.
아니라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나보다 아파하는 그대모습 왜인지
9.♧아방궁♧
아방궁이 화려하기는 미색과 음악이 제일이기에
주야장상 팔색조 날아와 다양한 울음을 지저귀니
그 중 간간히 천상의 소리가 귓가에 나린 듯
휘영청 달 밝은 무림 산중에 잠 못 들어 하노라
10.<농염(濃艶)>
쇠 불도 당기면 빼라고
바늘귀가 실을 원하듯
애틋한 청춘의 사연을
그 뉘가 알랴
서린 한파가 대수일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제때 궤야 보석같이 빛나거늘
음양의 조화로운 이치를 탓하지 마소서
거시기와 음식은 식기 전 먹으라고
겨울과 어둠이 짙을수록
더 달아오르는 몸을 어찌할까
11.<육도송>
태방산 미월에 쫒고 쫒는 구름사이 꿈인가 가릉빈가 노랫소리 어여쁘다.
내 안에 깊이 박힌 사랑굿을 읊는 듯 한(恨) 많던 눈물의 세월이 흐른다.
파란만장한 변방을 건너 올 제 천만 년을 하루같이 못 잊어 울던 여인아
언제인가 약속도 빛바랜 그리움에 하늘 저 멀리 서리 찬 달빛만 춤춘다.
12.♧極樂♧
梨花 百日紅이 春風에 飛天하니
胡蝶과 烏鵲이 歡喜雀躍이라
十方에 臥龍이 忽然 紫雲을 뿜으니
淸한 嬌聲이 極樂의 道를 이룬다.
프로필
- 제 1회 사람과 환경 등단작가 문학상 우수상
- 문예춘추/문학세계 당선/문예사조 당선/백두산문학 당선/현대시선 당선
현) 여정포럼 언론특별위원회 부위원장
e-mail: diamond67@paran.com
hp: 010-9286-3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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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12월의 찬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너무 기쁜 소식이 있다면 어디선가 당선을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시를 오래 전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이번만큼 보람되고 뜻 깊은 없
을 것이다. 사회에서나 사업을 하면서 여러 성공을 할 수 있겠지만 훌륭한 문인으로
써 좋은 상을 받는 다는 것은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일 것이다. 사람은 어디
에 자신의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나 생각한다. 가장 고귀하고
이상적인 것에 뜻을 두고 정진하는 사람은 그것을 닮아가고 점점 더 가까이 가지 않
나 본다. 요즈음 같이 바쁜 세태에 자기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 점검하는 것도 한층
생활을 윤택하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인연이란 소중하고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는가에 따라 아름답고 그리움의 존재가 될
것이다. 좋은 상만큼 좋은 인연과 더 나은 시가 앞으로 많이 창작되기를 바라는 개
인적인 마음이다. 얼마 전 예술문화 행사에서 인연을 맺은 임미정과 이진경과 서로
의 존재를 더 귀하고 가치 있게 이어가기를 바라며 바래지 않는 오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덧붙어 이번 당선에 관심과 고운 평을 해주신 심사 위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