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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문학」창간호. 권두수필 풍류인생(風流人生) 조효현(曺孝鉉) 풍류(風流)란 무엇일까. 풍(風)은 바람이요, 유(流)는 흐름이니 흐르는 바람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는 달관(達觀)된 모습을 이르는 말이런가. 아니면 그 바람은 흐름의 방향에 따라 동풍(東風), 서풍(西風), 남풍(南風), 북풍(北風)이라 하니 천지사방(天地四方) 어디로든 무소불통(無所不通) 막힘이 없는 달인(達人)의 모습을 두고 이르는 것이런가. 그 또한 아니면 계절에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바람이라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철마다 제 이름들이 뚜렷하니 이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을 두고 이름인가. 어찌됐던 우리 인생도 바람처럼 흐르지 않던가. 무(無)에서 유(有)로 왔다가 다시 공(空)으로 유전(流轉)하는 인생여로(人生旅路)에서 속(俗)됨을 벗어나 맑은 바람(風)처럼 유유자적하며 한 세상 흐를(流) 수 있다면야 왜 아니 좋을 것이며 그런 인생을 어찌 아니 멋있다 할 것인가. 하여, 사전(辭典)에도 풍류(風流)를 “속된 일을 떠나서 풍치가 있고 멋있게 사는 일이라”고 풀이 했던가 보다. 뿐만 아니라 일설(一說)에는 “선인들의 유풍(遺風)도 풍류”이며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화조풍월(花鳥風月)도 풍류”라 하니 그러고 보면 시(詩)를 짓고 글(書)을 쓰고, 그림(畵)도 그리고 조각(彫刻)도 하고, 노래(樂)도 부르고, 춤(舞)도 추는 행위가 다 풍류가 아니랴. 즉 선인들의 소박(素朴)한 풍속(風俗)을 따름도 풍류요, 만고강산(萬古江山) 유람(遊覽)하며 산천경개(山川景槪) 좋은 곳에 앉아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김도 풍류이고, 기생 명월(明月)이가 목석(木石) 같은 왕족(王族) 벽계(碧溪)에게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하는 명시(名詩)를 지어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도 풍류이며, 임제(林悌)가 생자(生者)도 아니고 사자(死者) 황진이(黃眞伊)이의 무덤가에 가 앉아 정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었느냐 홍안은 어디가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하는 너스레도 풍류이다. 기실, 임백호(林白湖)는 기생 한우(寒雨)에게 북창이 맑다거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하는 시조를 지어 주고 기생 한우는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여 잘까 하노라. 하며 화답을 하니, 당시 사람들이 “백호(白湖)야 말로 조선 제일의 풍류남아다”라고 하여 명성이 오늘 날까지도 자자(藉藉)하지 않던가. 그 밖에도 풍류인이라 하면 가까이 근세인 중에 ‘한국의 주선(酒仙)이라 하던 번영로(邊榮魯), 영화에 미쳤다던 나운규(羅雲奎), 하루에 담배 이십 갑을 피웠다던 오상순(吳相淳), 조소와 독설로 일생을 살았다던 이상(李箱), 사의 찬미를 부르며 헌해탄에 몸을 던졌다던 윤심덕(尹心悳), 등등 정평(定評)이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풍류인이 어디 따로 있을 것이랴. 그 명성(名聲)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풍류인도 수없이 많기야 하다만 이름 없는 풍류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다. 그렇다고 하여 풍류(風流)와 속(俗)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 함은 아니다. 다시 말해 풍류가 아님을 풍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풍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멋이 풍류라고 해서 “똥물에 무자맥질을 하면서 내 멋이다”고 우긴다고 해서 그게 풍류라고 할 수야 있겠는가. 목불식정(目不識丁)의 목불인견(目不忍見)을 어찌 풍류라 할 것이랴. 적어도 속(俗)됨을 벗어나서 이성적(理性的) 사고(思考)에 의한 지적(知的)행위(行爲)라야만 풍류라 할 것이다. 아무려나 우리 인생, 이 풍진세상(風塵世上)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풍류라도 있으면 왜 아니 좋을까. 천성으로 타고난 풍류인도 멋있는 인생이다만 스스로 속된 일에서 벗어나 풍치 있게 살려는 풍류인도 그만 못지않은 멋있는 인생이다. 그러거니 이 인생도 ‘풍류’이고자 한다. (풍류문학. 1998년 2월.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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