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하늘이 파랗게 갠 날, 아이와 함께 칠보산에 갔답니다.
한여름 찜통더위에 수영장에 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를 산으로 끌고 가는 엄마라니!
“수영장은 좀 식상하지 않니?”
“흥”
전에 일산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를 와보니 집 근처에 칠보산이 있어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답니다.
겨울에는 뒤편 주방 쪽 창으로 보이는 칠보산 인근의 눈 쌓인 전망이 산사의 풍경처럼 고즈넉하고요.
녹음이 우거진 요즘은 싱그러운 생명의 기운이 펄펄 넘칩니다.
커피 한 잔 들고 투명한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산과 푸른 하늘과 긴 산책로를 바라보면 아련해집니다.
저 맑은 기운을 받아 마시자! 서둘러 아이를 채근해서 칠보산으로 출발!
와! 잠자리다.
아이가 작은 손으로 잠자리를 잡네요.
실패! 실패! 실패!
와우, 잡았어요.
아이는 요즘 유치원에서 배운 어설픈 영어를 현실에 잘 접목합니다. ‘우와’가 아니고 ‘와우’라고 탄성을 지릅니다.
그래 아무렴 어떻겠니? 인생은 탄성 지를 일이 많을수록 좋은 거란다. 어른이 되면 탄성 지를 일이 잦아드니, 아이 때 많이, 와우, 외치려무나. 아니지 지금도 늦지 않아. 어른이면 어떠하리!
살면서 우리는 자주 감탄사를 연발해야 한다고 저는 저에게 말합니다.
“와우! 보라색 가지 좀 봐!
엄마 잠자리 또 잡았어. 이건 날려주고 또 잡아야지.
엄마 저기 저기 좀 봐 오이,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네. 가지나무는 줄기가 보라색이구나.
엄마, 지난번에 봤던 모가 벌써 저렇게 자랐어요. 작은 모가 어떻게 저렇게 커졌어요, 엄마?”
아이는 기분 좋을 때는 존댓말을 하기도 합니다.
존댓말을 시키려고 해봤는데 잘 안돼서 그냥 놔두었답니다. 왜 아이는 꼭 어른에게 존댓말을 해야 할까? 왜 어른은 아이에게 마땅히 하대해야 할까?
저는 잘 모르겠어서 그냥 엄마도 아이도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산책로를 걷다보면 ‘모기농장’이라는 간판을 붙인 가건물이 나옵니다.
모기 농장이 뭐야? 엄마 저 안에 모기가 가득해서 모기 농장이라고 붙인 걸까? 나쁜 모기들을 모조리 저 속에 가둬둔 착한 농부 아저씨가 있나봐. 어 그런데 저기 봐 문이 열렸네. 모기가 밖으로 다 나오면 어떻게 해? 저 안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엄마 생각에는 모기를 키우는 곳이 아니고, 아마도 목이버섯을 키우는 농장인 것 같은데.
모기버섯? 모기로 버섯을 만들어?
아니 목이라는 이름의 버섯이 있단다.
이제 곧 아이는 긴 산책로를 따라 논에 심은 모가 벼가 되고 쌀이 되는 광경을 볼 것입니다.
쫄랑쫄랑 엄마를 따라 산길을 걷다가 아이는 이름 모를 꽃의 향기를 맡고, 지나가는 등산객이 데리고 온 강아지를 쓰다듬고, 풀냄새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고요해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한참 걷다보면 자그마한 암자가 나옵니다.
‘칠보산은 수원의 보배 우리가 가꾸자’(사진) 입구에 입장허락을 해주는 장승처럼 우뚝 선 현판 좌측으로 무학사가 있고요. 법당은 조용하고 바람이 불면 풍경소리만 뎅 뎅 울리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합니다.
칠보산은 높이 238m로 원래 화성시 매송면에 속해 있다가 1987년에 수원시로 편입되었다고 하네요.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사찰, 장사, 금의 8가지 보물이 많아 팔보산으로 불리다가 이 중 황금수탉이 없어져 칠보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곳은 능선이 완만해서 어린이나 노인, 가족단위 등반코스로 추천할 만하고 자연생태학습장으로도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행코스는 용화사에서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가 용화사로 내려가는 코스와 LG빌리지 쪽 개심사에서 칠보산 정상, 헬기장, 용화사로 내려오는 코스 등 여러 곳이 있답니다.
수원역에서 13-1번 시내버스를 타고 칠보산 입구에서 내리면 개심사 쪽이나 무학사 쪽 코스로 등반할 수 있답니다. 칠보산에는 개심사, 용화사, 무학사, 여래사, 칠보사, 일광사 등 6개 사찰도 있답니다.
저희는 무학사를 끼고 올라가는 길을 택했답니다.
앗 비가 오네요. 잠시 전만 해도 햇빛 쨍쨍하던 터라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잠시 무학사 입구에서 아이와 푸른 나뭇잎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를 봅니다.
곧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햇님이 서서히 ‘입장’ 채비를 하는 것 같네요.
“엄마 발 좀 담그고 갈게.”
긴 장마 뒤끝이라 돌확에 물이 넘칩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등목도 하고 손도 씻는답니다. 먹는 약수터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합니다.
이제 겨우 등산 초입인걸요.
마치 고향처럼 푸근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여름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아이와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합니다. 엄마는 토끼, 딸은 거북이입니다. 딸아이는 엉금엉금, 엄마는 깡충깡충 뜁니다.
딸 : 토끼야 빨리 자야지
엄마 : 아이 졸려 잠이나 자야겠다 거북이 녀석 보이지도 않는군 ㅋㅋ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지나 커다란 나무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만세 만세 거북이가 이겼다. 토끼는 그제야 일어나 분통 터트리며 달려갑니다.
아이는 까르르 까르르 신이 났습니다. 이겼다!
맨발로 다니는 길입니다.
와! 땅의 기운이 몸으로 스며드네요.
아이와 함께 무당벌레도 보고 일렬로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들도 보고 정자에 올라 수원시의 전경도 봅니다.
자연이 주는 위안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입니다. 산에 오르면 여름에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한겨울에는 몸에 열기가 후끈 합니다.
저는 아이가 4살 적부터 동네 산에 다녔는데 감기 등 잔병치레가 거의 없어졌고요. 걱정스럽던 아토피도 거의 나았답니다. 그뿐인가요. 아이가 단단히 여물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온 몸으로 산의 정기를 받아 총명하고, 따뜻한 마음과 여유를 갖고 평화로워지는 아이를 봅니다.
어릴 적부터 사교육에 바쁜 우리 아이들을, 원시의 건강함으로 잠시라도 돌려보내세요.
이곳에서 아이들이 흙과 풀의 향기를 맡으며 넉넉하고 풍성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저는 바랍니다.
이맘때의 아이들에게는 한글과 수학, 영어를 가르치기보다 느끼고 체험하고 뒹굴고 놀면서 세상과 자연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지능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잘 꾸며진 수영장이나 공연장도 좋지만 돈 안들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산으로 놀러 오세요. 땀 흘린 후에 마시는 물 한 모금이 얼마나 단지 아이는 서서히 알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