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첨부(마을전경) |
∙ 마을기본현황
인 구 수(명) |
가 구 수(호수) |
토 지 면 적 (㎢) |
일반작물 |
쌀, 보리 | ||||||||
총 |
남 |
여 |
총 |
농가 |
비농가 |
총 |
전 |
답 |
임야 |
기타 |
특작물 |
참깨 |
273 |
143 |
130 |
72 |
61 |
11 |
2.884 |
0.151 |
0.587 |
1.906 |
0.204 |
주소득원 |
쌀 |
대표 성씨(호수) |
마을공동재산(규모) |
마 을 조 직 |
단체명 |
창립년도 |
회 원 수 |
창립목적 | ||||||
長興任氏(41) |
계곡동국민학교 |
喪 布 契 |
1924 |
55 |
상부상조, 애경사 | |||||||
善山林氏(20) |
|
옥 친 회 |
1976 |
16 |
친목도모 | |||||||
|
|
大 同 契 |
1800 |
160 |
問 啓 |
∙ 마을형성 및 입향
이 마을은 현재 長興 任氏(장흥 임씨) 동족마을로써 입향조는 任瑞圭(임서규)이다. 본래 장흥 冠山(관산)에서 거주하였는데 1400년 말경 연산군독정에 세상을 등지고서 이곳의 산천이 수려하고, 또한 자손이 번창하는 형국으로 많은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여 후학을 위해 여기에 서당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後(후)에 강절, 신기, 태인 등지에 후손들이 분가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지명유래
당산은 마을의 형태가 山字(산자)로써 삼강오륜을 준수하고 마을민의 화목과 상부상조 등 충ㆍ효를 강조하는 상벌재를 채택하였던 마을이다. 마을을 더욱 가까운 의미에서 집안이는 의미로 堂字(당자)를 넣어 堂山(당산)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 문화유적
① 雲谷祠(운곡사) : 당산 678번지에 위치, 1946년 馬山面(마산면) 汭陽祠 (예양사)에서 설단, 1947년에 세워 任謹(임근), 任希璡(임희진), 任自英(임자영), 任湜(임식), 任天鑑(임천감), 任榮吉(임영길), 任浚(임준) 7인을 배향하고 있다.
② 崔孝子門(최효자문) : 通川崔孝子(통천최효자)의 旌門(정문)
∙ 특기사항
面(면)나무로 지정된 수령 200년의 높이 20m, 둘레 2.1m 서어나무 2그루가 서있다.
∙ 인물
任謹(임근)(1494∼1550, 長興人(장흥인), 參奉(참봉) · 林振圭(임진규)(1853∼? 善山人(선산인), 鄕校掌議(향교장의) · 林大春(임대춘)(1716∼?, 善山人(선산인), 贈同知中樞府事(증동지중추부사) · 趙炳台(조병태) (1872∼? , 漢陽人(한양인), 儒林(유임) · 崔炳煥(최병환)(1887 ∼ 通川人(통천인), 孝子(효자)
면지편찬 사료 수집 내용
□ 마을 연혁 (마을의 역사 및 입향조, 마을지명유래)
당산리 마을의 입향조는 장흥 임씨 임서규이시다. 본래는 장흥군 관산에서 거주하였는데 1400년 말경 연산군 독정에 세상을 등지고서 이곳의 산천이 수려하고 또한 자손이 번창하는 형국으로 많은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여 후학을 위해 여기에 서당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 입향조는 통천최씨 이다. 1610년 ( )입향 했고 그다음은 선산 임씨가 1640년경 입향하고 이후 한양조씨, 전주이씨가 순위로 마을을 이루게 살았으며 지금에 와서는 순천김씨, 하동정씨, 함양박씨 여덟 성씨가 살고 있다.
□ 마을 위치 및 환경
○ 자연지리적 환경
당신리는 면소재지로부터 5km 떨어진 북쪽에 위치하여 이곳 흑석산에서 흘러온 물이 당산 앞을지나 계곡천을 이루어 남서쪽으로 흘러 계곡 한복판을 뚫고 성진리를 거쳐 덕정리 앞으로 빠진다. 1960년대 당산리는 원마을이 50호 고봉이가 9호 모동이 4호 비자동이 8호 총 70여호에 450여명이 미맥위주로 살았으나, 1990년대 이후 산업발달로 자기 직장을 찾아 전국으로 분산이 되어 지금은 전부 50호에 80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 교통편은 광주~해남 국도 제 13호선으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는 광주~해남, 해남~광주, 광주여객, 금성여객이 상·하행선으로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운행이 되었고 1980년대는 광전여객, 장흥여객이 10분에서 20분 간격으로 운행을 했으나 광전여객이 거의 독점을 했었다. 그 시절에는 당산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장소에 나가서 차를 타고 다녔으나 1990년대부터 국도 13호선은 해남에서 해남교통 군내버스가 마을앞에 4회 운행하고 장소 경유해서 성전까지 1일 6회 운행이 되어서 1일10회 운행하기 때문에 교통은 좋은 편이다.
○ 풍수지리설(형국, 뒷산, 안산)
- 형국의 이름과 설
당산마을은 형태가 山자로서 삼강오륜을 준수하고 마을민의 화목과 상부상조 등 충·효를 강조하는 상·벌제를 채택하였던 마을이었다.
마을을 더욱 가까운 의미에서 집안이라는 의미로 집당(堂)자를 넣어 당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뒷산이 매마봉이라 하여 매가 알을 품고 있다는 것 같다고 전해지고 있다.
○ 지명유래(산, 바위, 보, 진등, 골, 제(저수지), 포구, 들, 벌...)
1) 참샘 : 마을에서 약 500여미터 떨어진 들샘이다. 들 한복판에 있는 샘인데 물이 아주 많이 나와 당시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아주 편리한 식수이고 모동 4가구는 이 참샘물을 생활용수요 식수였다. 그리고 남은 물은 쐐기들 일부 논을 이 참샘물로 농사를 지었는데 1985년 경지정리 사업으로 샘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물줄기는 그데로 나오나 지하수를 빨아 올리면 안타갑게도 고갈이 된다.
이 참샘 말고도 고봉이샘, 통샘, 지금 상수도로 사용하고있는 큰골샘, 마을 중앙에 있는 중돔샘, 동쪽샘이 있는데 큰골샘은 상수도로 연결이 되고 나머지 샘은 관리가 안되고 있으며 동쪽에 있는샘은 동쪽 10여 농가가 사용하고 있으며 관리도 잘되고 물맛도 아주 좋다.
2) 쐐기들 : 당산마을 사람 식량과 생활비가 이 들에서 80%가 생각이 되는 들이므로 땅이 토땅으로 아주 좋아 밥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비슬안 쐐기들이라고 하면 해남군민 다수가 인정하는 들이다.
3) 보 : 보는 이 쐐기들 농사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보들이다. 맨위에 거수보 보와 보사이 걸쳐서 막았다고 해서 거수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맨 위에 있다고 해서 웃쐐기보, 본래부터 있었다고 해서 본논보, 논이 소멍에 같다고 해서 멍애배비보, 맨 아래 있다고 해서 아래쐐기보가 있었는데 1985년 경지 정리로 인하여 이들 보들이 다 없어지고 지금은 소·대형 지하수가 보 대행을 하고 있다.
4) 덧바위 : 본마을과 고봉이 사이에 고봉이 잔등 맨위에 납작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이름이 덧바위 라고 한다. 바위가 크지는 않지만 이 바위 밑이 옛날 고려장을 하고 위에다 덮어놓은 바위라고 한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고봉이에 거주하고 계신 1883년 3월 22일생이신 임홍장시(고인)께서 이바위 밑이 이상해서 밑을 파내고 보니까 돌은 관처럼 세워서 해놓은 상태이고 여기서 밑에 돌에 덧바위가 올라가있어 한때는 디딜방아 식으로 한사람만 바위에 올라가서 한쪽에 서서 굴르면 돌이 올라가고 굴르지 않으면 제자리에 가라안고 하는 것은 1947년생인 임대식씨도 고봉이서 살았기 때문에 알고 있다. 지금도 이 바위는 여전히 자리에 있다.
5) 가재골 : 본 당산마을 동쪽으로 약 3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자개골이라고 한다. 이골짜기에 가면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돌을 들어올리면 가재가 많이 있을뿐만 아니라 형국이 자개형국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6) 배나무골 : 이곳에 가재골을 지나서 동쪽으로 약 450여미터 떨어져있는데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 이곳은 아그배나무가 많이 있어서 배나무 골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7) 계뱅이 : 예부터 이곳을 계뱅이라고 불렀지만 이곳은 계뱅이가 아니고 곡식이 고봉고봉 쌓여 있다고 해서 고봉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8) 뒷머리등 : 마을 옆 청룡등을 뒷머리등으로 부르고 있었으나 이곳은 쥐가 곡식을 찾으러 기어 내려오는 형국이라고 하여 뒷머리등이 아니라 쥐머리등이라고 하며 위치가 좋고 형국이 좋다고 하여 이곳에 묘가 많이 있다.
9) 동백정 : 당산과 신기사이에 동백정이라고 있는데 이곳은 수 백년된 동백나무가 많이 있다. 그리하여 동백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동백나무는 그데로 있다. 또한 이곳에 옛날사람(건달)들 씨름장도 있었다고 한다.
10) 선돌 : 당산마을 입구에 높이 1.7m, 둘레 150cm 되는 돌이 서있다.
이 돌도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정확한 자료가 없어 옛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던 것만 기록합니다. 이 돌을 옛날에 한번 옮겨 놓기도 했답니다.
돌을 옮겨 놓음과 동시에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이 돌을 다시 제 자리로 옮겨 놓으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이 돌은 보존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바로 당산 앞들 이름이 이 돌의 이름을 따서 선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지명에 관련된 설화
- 쑥구렁 : 화락동 뒷산 넘어 일제때 숯을 굽던 숯구렁을 일컬어 쑥꾸렁이라 부른다.
○ 행정구역 변천과정
당산리는 1789년경 간행된 호구총구에 비곡면의 한마을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동리, 춘언리, 신광리, 동백리, 모동리를 병합하여 계곡면에 편입이 되었으며 그때부터 계곡면 당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운곡사가 있으며 또한 지명상 절터로 수숫절터, 운대암터 등이 있다.
□ 마을 현황
○ 마을 성씨분포
성 씨 |
세 대 수 |
성 씨 |
세 대 수 |
성 씨 |
세 대 수 |
장흥임씨 |
27 |
선산임씨 |
11 |
통천최씨 |
5 |
한양조씨 |
3 |
전주이씨 |
1 |
순천김씨 |
1 |
하동정씨 |
1 |
함양박씨 |
1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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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조직
이 장 |
임 대 식 |
새마을이지도자 |
임 형 배 |
개발위원장 |
임 삼 주 |
부 녀 회 장 |
최 금 례 |
노 인 회 장 |
임 호 종 |
청 년 회 장 |
|
○ 민간조직
- 대동계
옛부터 마을 전체가 대동계에 조직이 되어있는데 조직년도는 너무 오래되어서 자료가 없으나 98세 2007년도에 돌아가신 임병섭씨 께서도 본인도 아주 어려서부터 대동계가 있었다고 하셨고 대동계 책자에 보면 병섭씨도 모르신 분들이 책차에 기록이 되어있고 옛날부터 그 좋은 창호지가 손때와 손길에 달아서 대동계 책자가 훼손 된걸로 보면 삼백여년 이상 되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또 민간 조직으로서는 아주 엄격한 조직이다. 부친이 살아계시면 장자는 대동계에 가입을 못하며 부친이 돌아가셔도 삼년 탈복을 해야 대동계 승계를 받을 수 있으며 가입 조건은 장자는 부친의 대를 이어 받는다고 하여 간단한 안주와 주류를 준비해가지고 승계를 받으나 차남은 부친이 생전에 계서도 결혼만 하면 대동계에 가입 할 수 있으며 가입당시 대동계 자산의 일부와 주류, 안주를 준비하여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준비해온 안주와 주류를 어르신들 앞에 상을 차려 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또 대동계 운영은 마을사람 2인이 1년을 맡아 유두명절, 칠석명절에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사람들의 단체심과 화목을 보여주기도 하며 옛날부터 내려오는 대동계 날은 음력 섣달 초사흔날이 곗날이다.
지금도 이날은 웃어른을 공격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는 풍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마을 초상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임사가 빨리 술 1상자를 가지고 가서 맹인 앞에 술을 따라 올려 애도이 표시를 하며 시대의 변함에 따라 경로사상이 흐트러지고 있으나 당산마을 대동계 만큼은 옛 것을 그데로 간직하고 있으며 앞으로 운영이 잘되게 질서가 잡혀 있다.
○ 역대이장
연 도 〜 |
이 름 |
주 요 사 업 |
비 고 |
1963~64 |
임 오 진 |
|
|
64~66 |
임 학 봉 |
|
|
66~67 |
조 성 영 |
|
|
67~72 |
임 회 선 |
|
|
73 |
임 경 식 |
|
|
74~75 |
임 안 석 |
|
|
75~76 |
임 순 배 |
|
|
77~79 |
임 송 원 |
|
|
80~83 |
임 봉 호 |
최초 간이상수도 시설 |
|
84 |
이 원 식 |
|
|
85 |
임 순 배 |
10월 경지정리 시작 |
|
86 |
임 종 운 |
5월 경지정리 마감 |
|
87~90 |
임 회 선 |
|
|
91~94 |
임 형 철 |
|
|
95~96 |
임 종 승 |
|
|
97~99 |
임 형 배 |
|
|
99~2001 |
임 권 진 |
|
|
2002~03 |
임 삼 주 |
|
|
04~05 |
임 권 진 |
|
|
06~07 |
임 동 규 |
회관,우산각 건립 |
|
08~ |
임 대 식 |
회관 앞 자,우 조경 |
|
○ 소명된 과거 조직(예 4H, 예향단 등)
구 분 |
조 직 연 도 |
회 원 수 |
주 요 사 업 |
비 고 |
4-H |
1960 |
30 |
마을 식수 걸러내기 |
도시로 이주 성원수 감소로 소멸 |
예향단 |
1960 |
50 |
초등학교 학생으로 일요일 아침에 봉사 활동 |
학생 수 감소로 소멸 |
|
|
|
|
|
○ 마을 협동작업
- 공동작업(울력) : 마을에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은 울력으로 해왔으며 옛날에는 불참한 가정은 불참대가로 백미 1되를 받아 왔으나 지금은 자율적으로 잘 하며 백미 1되는 없어졌다.
- 품앗이 : 못자리, 상자넣기, 고추모심기, 김장하기 등 일력이 많이 필요한 일은 남녀 가리지 않고 품앗이를 한다.
○ 문화생활 : 처음 사용자
구 분 |
구 입 년 도 |
성 명 |
회사명 / 품명 |
비 고 |
자 동 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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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토 바 이 |
1983년 |
임대식, 임순조 |
|
구입처 강진 |
자 전 거 |
|
임복상 |
|
고인 |
경 운 기 |
|
임상현 |
|
|
이 양 기 |
|
|
|
|
T V |
1970 |
임경식 |
|
고인 |
트 렉 터 |
1985 |
임현조 |
|
|
기타(냉장고) |
|
임경식 |
|
고인 |
○ 마을개발사업 (새마을운동: 내용, 결과 등)
- 도로 : 모동에서 아랫배나 무골로 가는길 1960년대 사람만 다니는 길인데 마을주민들의 땅을 양보 받아 삽과 지게로 울력으로 구루마 및 리어카만 다니게 길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1985년도 경지정리 하면서 길도 넓어져 자동차도 다니고 콩크리트 포장도 되었다.
- 안길확장 :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말 임형도씨(고인)가 자기 땅을 많이 양보해 가면서 골목길을 넓혔다. 이를 본받아 자율적으로 땅을 양보해 골목길이 넓어짐과 동시에 마을에서는 토담을 뜯어내고 브로크로 담을 쌓아 지금은 자동차가 골목마다 활발하게 다니고 있다.
- 지붕개량 : 1975년도 새마을 사업으로 자재를 지원받아 품앗이로 볏집 지붕을 걷어내고 당시 임오진씨(고인)께서 지붕을 맡아서 스레트로 개량이 되었다.
○ 생활변천
- 시장 (생활권) : 우리마을은 계곡면 인데도 시장은 강진군 성전면에 오일시장을 많이 다녔다. 또 강진읍장을 많이 다녔으며 해남읍장을 보는 주민은 아주 소수였다. 지금도 성전 오일장은 맥을 이어가고 있다.
- 식수 (옹달샘 → 개인 지하수 → 간이 상수도)
옛날에는 개인샘 일명 작두샘이라고 하여 개인집에 많이 있었으며, 샘이 없는 집은 중돔은 중돔바가지 샘물을 동쪽은 동쪽바가지 샘물을 길러 먹다가 1978년 마을뒤에 있는 옹당샘을 이용하기 위하여 밑에다 저장탱크를 시멘트로 크게 만들어 간이상수도를 집집마다 연결해서 사용하다가 1996년 행정당국의 지원을 받아 현대식 물탱크로 교체가 되었으나 송수관은 그데로 사용하고 있다.
- 연로 (화목, 연탄, 보일러, 전기판넬, 태양열)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철나무를 베어서 땔감을 마련하다가 1980년대말 연탄보일러로 집집마다 교체를 했고 지금에 와서는 기름보일러로 교체를 했으나 지금을 아끼기 위해서 옥매트나 전기장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 버스운행 (처음 버스타는 곳 → 현재)
마을위치·자연지리적 환경 설명 그데로다.
- 전기 : 가정마다 초꼬지 불을 쓰다가 1974년 5월 20일경 전기시설로 구 계곡동교 지금 해남 청소년수련원에서 점화식을 했다.
- 전화 : 1973년도 당시 이장이었던 임경식씨(고인)집에 행정전화 1대가 가설되어 마을사람이 사용하다가 1982년대 가정마다 전화시설이 되었다.
○ 교육
- 서당 : 고봉이에 계신 임홍장씨(고인)께서 주변 사람을 모아놓고 천자문, 축우, 하거집, 개몽편, 독문선집, 명심보감, 소학을 가르쳤다.그 때 배웠던 분들 연세가 70~80세가 되었다.
- 야학 :
- 학교 : 지금 연세 75세 이상은 계곡 성전국민학교 지금의 계곡초등학교로 다녔고 그 이하는 계곡동교 지금의 해남 청소년 수련원을 다녔는데 학생수 감소로 1992년 2월 28일자로 지금 계곡초등학교로 통폐합이 되었으나 지금 우리마을에는 초등학생이 한명도 없다. 중학교는 옛날부터 강진군 성전면에 있는 성전중학교를 다녔다.
□ 산업
○ 농업
경지정리가 다 되어 당산 앞 일부 논은 태인 저수지물로 농사를 지으며 나머지 논은 소·대형 지하수로 농사를 짓고 있다.
- 경작수리시설 :
- 경지정리 : 1985년도에 경지정리가 90% 다 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이후로 다 했다.
- 경지면적변화 :
- 농기계 임차료 변화 (과거 〜 현재)
- 병충해 방제법
○ 축산 : 임현조 한우 10두 2006년부터 사육
임동규 한우 5두 1980년부터 사육
임삼주,박중기 한우 1두씩 사육
○ 양잠 : 우리마을에 최초로 누에를 길러 명주실을 뽑아 명주 베를 하신분이 임본촌 할머니다. 1889년생이신 임본촌 할머니가 17세때 1906년 명주베를 시작하여 1998년 윤봉임씨가 끝을 맺어 명주베 시작 92년만에 끝을 매졌다.
○ 상업
- 정미소 : 1960년대 정봉두씨(고인)께서 발동기를 돌려 쌀 방아, 보리 방아를 찍었으나 이 후 가정용 정미가 나오는 바람에 정미소가 없어졌다.
- 발동기 : 고인이 된 이원재씨가 1960년대 처음 사용하였다.
- 주막집 : 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없어졌다.
- 점방
○ 수산
○ 광공업
□ 민속
○ 마을신앙 (도체, 용왕제, 솟대, 중구제 등)
- 유래
- 시기
- 내용
- 참여자
○ 전승되는 노래 (상여소리, 들노래, 모찌는 노래 등)
- 본 가사
무거운 지게를 짊어지고
매마봉 상사바위로 우리들이
가는곳에 잔디풀도 안남은다.
흙이 묻은 질목짝을 손으로
털털 떨며우리들이 가는곳에
잔디풀도 안남은다.
- 해설
옛날 배고픈 시절 멀리 산에서 나무를 해 짊어지고 오다가 부르는 일꾼들의 신세를 한탄 하는 노래다.
○ 전통음식
- 이름
- 재료
○ 전승놀이
- 놀이방법
○ 관혼상제 방법
□ 마을자랑
○ 마을 인물 (효행, 선행, 열녀, 주요공직자, 체육인, 언론인,
산업계, 금융계, 미담 등)
○ 마을 문화유적 (불교, 유교, 간신앙, 패총, 가마터, 추모비,
만호비, 오래된 집 등)
○ 마을 상징물 (숲, 노거수, 바위)
○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 전설, 중요사건)
○ 마을 특산물
○ 마을 가공품
■ 효자, 효녀, 열녀비 및 공적비 조사서 (군단위 이상)
명 칭 |
위 치 |
비 문 내 용 |
소유자 또는 연고자 | ||
주 소 |
성 명 |
연 락 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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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편 조사서 (선대인물-사망자, 현대인물-조사시점, 생존자로 구분)
1. 충렬지사 (열사, 의사)
2. 효행 (군단위이상)
3. 정계 (국회의원, 지방의원(예 통일주체국민회의), 기초의원(예 군의원, 도의원)
4. 관계 (5급이상)
5. 법조계 (판사, 검사, 변호사, 지청장, 고시패스 이상)
6. 경찰 (경감이상)
7. 학계 (초 · 중 · 고 교장, 대학총장, 학장, 교수, 박사 이상)
8. 군관 (중령 이상)
9. 경제계 (상장기업장(종업인 30인이상 기업), 국장급 이상)
10. 언론계 (지방지 · 중앙지 이상, 피디, 아나운서, 사장)
11. 금융계 (조합장 · 지점장 이상)
12. 체육계 (도대표 이상)
13. 문화예술계 (도선 입상자(화가,서예가), 문단등단 시인,수필가,소설가,인간문화제)
14. 의료계 (전문의 이상, 의학박사)
15. 공공기관 (의료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철도청, 농진공, 한전 등 군 단위장, 5급이상)
16. 독지가 (지역사회 공로자)
17. 명인 (장인)
18. 사회단체장 (임의단체 보조금 받는곳, 군단위 이상 각종클럽, 예총, 적십자 등)
19. 기술사
20. 기타 (농 · 축 · 수 임협장, 국가고시 합격자)
21. 연예인
※ 마을 총회
총회 횟수 : 년 2회
계최시기 : 유월 유두날과 섣달 초사흔날
참석자격 : 호당 1명으로 하며 대부분 세대주가 참석한다.
총회내용 : 경과보고, 잡비사용보고 등을 하고 12월 총회에서는
2년마다 이장 선출, 새마을지도자 선출, 대동계 임사 선출을 하며 마을에서 시정해야 할 부분과 기져야할 내용들을 토의한다.
옛날에는 구장이라고 하면서 1년 품삭이 보리 60kg 여섯가마니와 나락 55Kg 여섯가마니를 호당 날파해서 주었으나 2004년부터
행정당국에서 주는 보수로 이장 책임을 다하기로 하고 마을에서
호당 날파해서 주는 보리와 나락은 이때부터 받지 않았다.
※ 훈·포장을 받은 사람
성명 |
생몰연대 |
서훈연대 |
훈장종별 |
공적내용 |
임병호 |
1937 |
1999.8.31 |
국민훈장동백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정호 |
1940 |
2002.8.31 |
황조근정훈장 |
국가 교육 발전 |
민병진 |
1939 |
2001.8.31 |
황조근정훈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송전 |
1940 |
2000.3.29 |
홍조근정훈장 |
국가 사회 발전 |
임옥규 |
1942 |
2005.2.28 |
황조근정훈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기주 |
1947 |
2004.6.30 |
옥조근정훈장 |
국가 치안 발전 |
임권홍 |
1946 |
2008.8.30 |
홍년훈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종배 |
1939 |
1998.12.22 |
녹조근정훈장 |
국가 사회 발전 |
임경배 |
1937 |
1998.8.30 |
국민포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형식 |
1939 |
1998.11.30 |
근정포장 |
국가 사회 발전 |
최종오 |
1948 |
2000.8.30 |
근정포장 |
국가 사회 발전 |
임권신 |
1936 |
1992. |
근정포장 |
국가 사회 발전 |
임운중 |
1942 |
1999.8 |
국민포장 |
국가 교육 발전 |
임중재 |
1927 |
1980(고인) |
근정포장 |
국가 교육 발전 |
※ 마을발전의 유공자
성 명 |
생몰 연대 |
공적 사항 |
임형도 |
1938생(고인) |
1960년대 마을 안길이 리어카도 제데로 다닐 수 없는 것을 임형도씨(고인)께서 자기 땅을 양보하여 골목 길을 많이 넓혔다. 당시 새마을 지도자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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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자(금자.효부.열녀)
성 명 |
생몰 연대 |
선행 구분 |
표창 종류 |
선행 내용 |
이경님 |
1917.3.10 |
효,열부 |
해남 향교 |
혼자되어 시부모님께 효도 |
이효례 |
단기4339.12 |
효부 표창 |
해남 향교 |
혼자되신 시어머니께 효도 |
조상돈 |
단기4333.11 |
효자 표창 |
해남 향교 |
혼자되신 어머님께 효도 |
※ 효자,효녀,열녀비 및 공적비 조사서 (군단위 이상)
명 칭 |
위 치 |
비문 내용 |
소유자 또는 연고자 | ||
주 소 |
성 명 |
연 락 처 | |||
효·열비 |
계곡면 당산리 모동 |
효열비 |
계곡면 당산리 |
김관임 |
532-6429 |
※ 주요 공직자
성 명 |
입사·년·월·일 |
최종 직위 |
주요 경력 |
임병호 |
1957.3.31 |
초등교장 |
고흥 덕흥초등학교장, 곡성 죽곡초등학교장 |
임정호 |
1965.4.20 |
중등교장 |
나주 봉황중학교장, 여천 교육청 장학사, 보성 장학사 |
임옥규 |
1970.3.1 |
중등교장 |
해남계곡중학교장, 해남여자중학교장 |
임형식 |
1963.4.25 |
서기관 |
국방부, 서울시병무청, 마포구청, 종로구청, 서울시청 |
임송전 |
1965.7.7 |
부이사관 |
목포시청, 목포시 공영개발 사업소장, 경제 사회 국장 |
임종배 |
1964.5.30 |
사무관 |
전남도청, 광주시청, 장흥군청, 진도군청, 해남군청 |
최종덕 |
1973.9.4 |
현. 사무관 |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 감사 과장 |
최종선 |
1976.12.16 |
현. 사무관 |
김포기 고용지원 센터 소장 |
임평수 |
1979.11.20 |
현. 사무관 |
전북대 산악 협력 과장, 전북대 상과 행정 실장 |
임원배 |
1973.10.15 |
현. 변호사 |
1973.10.15 군법무관고시 합격, 사법 연수원 수료, 1985.2.1 변호사 개업 |
임현희 |
1995.10.15 |
현. 검사 |
95년 사법고시 37회, 대검찰청 검사 |
임병숙 |
1986.5.1 |
현. 경감 |
전남 경찰청, 서울 송파 경찰청, 서울 지방 경찰청 |
최치수 |
1990.3.1 |
현. 장학사 |
서울시 남부교육청, 서울시 교육 연수원 교육 연구사 |
최소영 |
2003.9.30 |
현. 교수 |
회계사 근무, 세무대학 교수 |
임현기 |
1995.2.3 |
현. 세무사 |
광주 세무서, 광주 지방 국세청 |
임충우 |
2009.1.1 |
현. 사무관 |
중령 예편, 성남 중대장 |
임성준 |
2003.9.28 |
현. 회계사 |
하나 안전 회계 법인 |
임세음 |
2002.12.15 |
현. 기자 |
한국 방송 공사 기자, (현) 국회 출입기자 |
임경준 |
1997.2.22 |
현. 교수 |
조선대학교 의학과 박사 |
민선영 |
2008.2 |
현. 박사 |
조선대학교 가정의학과 박사 |
임기주 |
2006.7.15 |
현. 예절사 |
성균관대, 제 1회 예절사 합격 |
임권신 |
1951.3.1 |
서기관 |
전남도청, 여수시청, 시인, 국선입상 세게 국제 시인 문학 박사. 발명특허 37종 신청 및 등록됨 세계 인물록 등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