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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 2005년 주민투표 이전 대책 | 2005년 주민투표에 즈음한 변경대책 |
구분 | 249차 원자력위원회(1998.9.30.) | 253차 원자력위원회(2004.12.17.) |
주요내용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수용하는 방사성폐기물 종합 관리시설을 건설하되,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10만드럼처분용량)을 2008년까지 준공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2,000톤 용량)은 2008년까지 건설착수 및 2016년까지 준공. |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 시설 건설을 우선 추진. 2008년까지 완공. ○ 중간저장시설 건설 등을 포함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침에 대해서는 국가정책 방향, 국내외 기술개발추이 등을 감안하여 중장기적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 추진 ○ 주민투표 도입, 특별법 제정. |
또한 방폐장 유치에 주민투표제도를 도입하고 특별법 제정을 통해 유치지역 지원을 법률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정부는 2005년 3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제정하게 된다. 이전에도 1994년 1월 제정된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의 촉진 및 시설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방촉법)’이 있기는 하였으나, 굴업도 핵폐기장 백지화에 따라 방폐장 부지선정 주관업무가 당시 통상산업부로 이관되면서 이 법은 폐지되었다. 이후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발주법)에 방폐장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내용이 흡수 통합되기는 하였으나, 방폐장 주변지역의 지원이 법률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생긴 혼란은 계속 반복되었다. 특히 부안 방폐장 논쟁이 한참이던 2003년, 당시 산업자원부장관이 풍문으로 돌던 ‘지원금 3000억원 현금지원설’에 대해 ‘현금지원 불가’ 발언을 하면서 민심이 돌아선 경험을 갖고 있었던 정부는 지역 지원내역을 법제화하는데 노력을 기우리게 된다.
이에 따라 2005년 6월 16일, 정부는 주민투표를 포함한 방폐장 부지선정 절차 전체를 담은 내용을 공고하게 된다. 이 공고에 따르면, △ 후보지의 선정은 부지선정위원회가 담당하며 △ 유치를 원하는 지자체는 8월 31일까지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유치신청을 해야 하며 △ 이후 9월 15일까지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하고 △ 이후 주민투표를 통해 1/3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지역 중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으로는 특별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과 양성자 가속기 유치, 그리고 3000억원의 지원금을 약속하게 된다.
주민투표의 진행과 불법투표 논란
주민투표 진행과정에서 첫 번째 논란에 빠진 것은 사전선거운동 논란이었다.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주민투표운동은 주민투표발의일로부터 주민투표 전일까지 할 수 있으며, 투표발의일 이전의 투표운동은 사전투표운동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전 제주도 주민투표에서 제주시선관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와 관련한 질의를 했고, 당시 중앙선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시기부터 사전주민투표운동이 금지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바 있다.
이에 산업자원부는 방폐장 부지선정과 관련 절차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 6월 30일 질의했고, 지 자체에서 유치신청을 하더라도 부지선정위원회의 부지적합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산업자원부장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대상이 되므로 최소한 산업자원부 장관의 실시 요구 이전에는 주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객관적으로 예상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즉 9월 15일 이전에는 사전투표운동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따라 방폐장 주민투표가 사실상 예상되는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의 사전선거운동이 진행되었다. 설명회장에선 수건, 저금통, 연필꽂이 등 다양한 기념품이 전달되었고, 핵발전소 견학을 이유로 온천 여행을 겸한 지역주민 여행이 제공되기도 했다. 일부지역에선 후보지 부지 인근 지역주민에게 현금을 돌리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모두 선거관리위원회의 느슨한 유권해석에 따른 것으로 실제 유치신청을 한 6개 지역 중 4개지역에서 주민투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주민투표 후보에서 빠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선거운동’ 기간에서 빠진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또한 국책사업 시행에 따른 주민투표이며, 지자체가 유치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진행되는 주민투표이니, 공무원의 역할에 논란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주민투표는 형식상 찬성측 단체 1개와 반대측 단체 1개로 구성된 찬반 양측이 주민투표 찬반을 둘러싸고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영덕군 공무원들이 달고 다닌 리본과 포항시청앞에 걸린 플랭카드. 플랭카드에는 찬성측 주장인 정부지원내역이 크게 씌여있다. 주민투표운동에서 공무원은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국책사업 홍보라는 이름으로 공무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주민투표에 참여했다 Ⓒ 반핵국민행동>
그러나 실제에선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군산의 경우 ‘원자력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공무원모임’이 결성되어 거리 홍보를 진행하는 가하면, 경주에선 통장회의를 통해 홍보물 배포계획, 경주시장 성명서 등을 배포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공무원의 선거 개입과 금권 선거 논란은 막상 9월 15일 투표운동기간에 들어서도 계속 되었다. 주민투표 운동기간이 한참이던 10월, 영덕에서는 농촌지도소 관계자들이 지역주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의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의 절정은 부재자 신고에서 나타났다.
원래 부재자투표는 선원, 군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등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투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에 따라 부재자투표는 매년 2~3% 정도의 유권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방폐장 주민투표 이전에 벌어진 제주와 청주청원의 주민투표에서도 각각 2.4%와 2.6%의 부재자투표가 진행되었다.
<기존 선거에서의 부재자투표신고인수>
지역 | 16대 대통령선거 (02.12.19) | 17대국회의원선거 (04.4.15) | ||||
선거인수(명) | 부재자 신고인수(명) | 부재자 비율(%) | 선거인수(명) | 부재자 신고인수(명) | 부재자 비율(%) | |
군산시 | 97,371 | 5,377 | 2.7 | 196,229 | 5,397 | 2.8 |
영덕군 | 39,103 | 824 | 2.1 | 38,063 | 838 | 2.2 |
포항시 | 367,116 | 10,740 | 2.9 | 368,905 | 11,562 | 3.1 |
경주시 | 211,302 | 5,054 | 2.4 | 209,781 | 4,923 | 2.3 |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 부재자투표신고인수>
지역 | 선거인수(명) | 부재자신고인수(명) | 부재자비율(%) |
군산시 | 197,122 | 77,581 | 39.4 |
영덕군 | 37,577 | 10,319 | 27.5 |
포항시 | 374,998 | 82,637 | 22.0 |
경주시 | 208,744 | 79,599 | 38.1 |
그러나 앞서 두지역의 주민투표에서 1/3을 넘기기 힘든 투표율을 걱정한 정부의 독려와 군산, 경주를 중심으로 지자체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부재자 투표율이 최고 39.4%에 달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미 주민투표를 진행하기 이전에 1/3을 넘었기 때문에 투표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또한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에서의 부재자 투표는 등기우편을 이용한 거소(居所)투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방폐장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지역은 대부분 농촌 지역으로 관례상 등기우편의 입출입에 동네 이장 등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집배원이 투표용지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공무원들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동네 이장이 얼굴을 보며, 투표용지를 나눠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4개 지자체는 공무원조직을 총동원해 부재자 신고율을 높이는데 매진한다.
<군산에서 발견된 부재자 투표 신고서. 동일필체로 부재자 투표 용지에 서명이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군산에서는 사회복지사들을 동원한 사회복지수급자들에 대한 대량 부재자투표 조직화, 경주에서는 통장 이장 등을 동원한 부재자신고가 이루어졌고, 심지어 이미 사망한 사람이나 전과 등으로 인해 투표권이 회복이 안된 사람도 부재자신고가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2005년 10월 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발표한 숫자만 4개 지역에서 807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전체 24만 8천장에 이르는 전체 부재자신고서를 모두 검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4개 지역 반대대책위는 전체 숫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며,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는 금권, 관권선거에 이어 부정선거라며 강력히 반발한다.
부재자 신고 이후 투표과정에서의 부정도 끊이지 않는다. 원래 부재자신고는 투표를 한 이후 다시 우편을 통해 보내야 하지만, 통반장들이 임의로 부재자투표 봉투 보관함을 아파트 입구에 모은다던지, 통장이 임의로 모은 투표용지 수십 개를 갖고 있는 것이 적발되는 등, 투표과정에서도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19년간 추진되어온 정부의 핵폐기장 추진 내용과 결과>
구분 | 추진내용 | 결과 |
1차 (86~89년) | - 문헌조사를 통해 동해안 3개 후보지(울진,영덕, 영일) 도출.(‘86, ’87) - 지질조사 착수(‘88.12) | 주민 반대로 지질조사 중단 (‘89.3) |
2차 (90년) | - 충남도 협조하에 충남 안면도 후보지 추진 - 제2원자력연구소 건설계획으로 추진. | 비공개로 추진됨에 따라 불신 야기. 주민 반대로 백지화 |
3차 (91년~93년) | - 유치자원지역 공모 및 후보지 도출을 위한 용역실시(서울대 등) - 고성, 양양, 울진, 영일, 장흥, 태안 등 6개 후보지 도출. | 주민 반대로 중단 |
4차 (93~94년) | - 영일, 양산, 울진 등 3개 지역 유치활동에 따른 사업 추진. | 주민 반대로 중단 |
5차 (94~95년) | - 10개 후보지역 선정 - 굴업도를 최종 부지로 선정하고 방폐시설 지구로 지정 고시 | 사업추진 중 활성단층이 발견되어 지정고시 해제 |
6차 (‘00~’01년) | - 전국 임해지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부지유치 공모 실시(‘00.6’01.6) - 영광, 강진, 진도, 고창, 보령, 완도, 울진 등 7개 지역에서 지역주민의 유치활동이 있었음. | 유치를 신청하는 지자체가 없어서 공모 무산 |
7차 (‘03~’04년) | - 사업자 주도방식으로 전환, 252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영광, 고창, 영덕, 울진 등 4개 후보부지 발표(‘03.2) - 지자체 자율유치 방식으로 전환. 4개지역이외에도 유치신청시 4개지역과 동일한 우선순위 적용키로 함. (‘03.6) - 부안군 유치청원서 제출.(‘03.7) | 부안군민의 격렬한 반대와 부안 주민투표(‘04.2), 정부 다른 계획 발표로 사실상 백지화 |
8차 (‘04년) | - 방폐장 부지 신규유치 공모.(‘04.2) - 울진, 고창, 군산, 영광, 완도, 장흥, 강화 등 7개 시군 유치 운동. | 지자체장 신청 없어 무산 |
9차 (‘05년) | - 253차 원자력위원회. 중저준위와 고준위 분리. 지원법 제정 등 제도 변경. -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에서 주민투표 진행.(‘05.11) | 경주 89.5% 찬성 경주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 최종 결정 |
1.2.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정책 변화와 시민사회의 대응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 출범과 사용후핵연료공론화TF
2004년 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결정이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정책은 고준위와 중저준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2004년 결정이 있은 이후에도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사항 -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이 논의에 그나마 물꼬를 튼 것은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와 이 산하에 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 였다. 당시 사용후핵연료공론화 TF(이후 공론화 TF)는 원자력학계, 비원자력 학계, 한수원, 시민사회단체, 지역주민 등이 참여한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공식기구였다.
2007년 4월부터 약 1년간 활동했던 공론화 TF는 권고보고서를 통해 공론화 방식을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마련의 필요성과 공론화의 기본 원칙 등을 제시한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2008)의 공론화 원칙>
공론화원칙 (PRESIDENT-Rule) | 내용 |
민주성(Participation) |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공평하게 참여하며, 공론화 결과는 최종 결정에 반드시 일정 수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
책임성(Responsibility) | 참여자들은 각각의 역할에 대해 그 범위와 한계를 확인하고, 공론화를 통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 도덕적, 규범적, 실질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
도덕성(Ethic) | 참여자들은 공론화 과정에 자발적 의사로 참여해야 하며, 의견 개진에 있어 이해 가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
진정성(Sincerity) | 공론화가 형식에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참여자들은 충분 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 조정을 통한 합의적 공론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
독립성 (Independence) | 공론화는 정치적, 재정적으로 이해관계자로부터 독립된 전담기구 혹은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해당 기구 혹은 위원회에 는 공론화에 관한 권한과 책임이 국가 차원에서 위임되어야 한다. |
숙의성 (DEliberation) | 공론화의 목적이 다수의 의견 수렴이 아니라 논쟁과 의견 조정을 거쳐 최선의 정책을 생산하는 데 있음을 인지하고, 정부는 물론 모든 참여자들은 충분한 학습과 진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
회귀성 (Non-linearness) | 공론화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치명적 문제점이 확인되었을 경우 논의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
투명성(Transparency) | 공론화 진행 사항 및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개와 장벽 없는 정보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
이와 별도로 2007년 6월, 산업자원부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입법예고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비롯 중저준위핵폐기물을 관리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준비한다. 처음 제출된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은 △ 국가에너지위원회와 별도 산자부 소속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지선정과 공론화를 진행하고 △ 방폐물 처리의 정의에 저장, 처분이외에 재활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 한수원의 방폐물관리기금 납부를 10년 유예하고, 정부의 기금출자도 가능케해서 오염자 부담원칙을 훼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쌓이게 된다.
2008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활용 규정이 빠지는 등 일부 수정이 있기는 했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게 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아직도 내용적으로 그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다.
공전의 공전을 거듭한 공론화 위원회
일부 한계를 갖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회였지만, 사회적 공론화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꺾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8년 새로 취임한 이명박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와 관련해서는 전혀 정책 추진을 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8월 6일로 예정되어 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연기사건이다. 2008년 8월 국가에너지위원회 보고를 통해 공론화 추진을 결정한 상태였으며, 2009년 5월에는 공론화 추진의 상세프로그램에 대한 용역 보고서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누가보더라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정상적으로 추진될 상황이었다. 같은 해 7월 김명자 전환경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론화위원회 구성이 완료되고 양재동에 사무실까지 확보하면서 공론화 위원회는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흐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이미 녹색성장위원회 출범을 통해 지식경제부 산하 위원회로 격하되었고, 4대강문제와 미국산 소고기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진영의 거버넌스는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도 마찬가지여서 위원장을 비롯 15명 규모의 위원 중 시민사회진영과 교감이 있는 이는 거의 찾을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갑작스레 빚어진 위원회 출범 연기와 이후 2차례의 연구용역 발주는 결국 비슷비슷한 연구 용역만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늪으로 사회적 공론화를 빠뜨린 것이었다. 2011년 11월 지식경제부는 다시 ‘원자력정책포럼’(추후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으로 이름이 바뀜)을 시민사회진영에 제안했으나, △ 정책포럼이 법률로 지정된 공론화위원회가 아닌 임의단체이며, △ 정책포럼의 성격이 단순한 ‘의견수렴기구’이고 △ 목적이 기존 진행된 연구용역에 대한 의견수렴 및 원자력위원회 안건초안 도출이며, △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의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에 따라 참여하지 않았다.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주요 발표 내용>
일시 | 발표 제목 | 발표자 | 내용 |
1992.1.20. | 한반도비핵화선언 | 남북고위급회담. | 1. 남과 북은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로운 목적에만 사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
1998.9.30. | 국가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 제249차 원자력위원회 |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함께 건설.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2008년까지 준공.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은 2016년까지 준공 |
2004.9.18. | 핵의 평화적 이용 4원칙 | 국가안전 보장회의(NSC) | 1)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할 의사 없음. 2) 핵투명성 원칙을 확고히 유지. 3) 핵비확산에 관한 국제규범 준수. NPT, 한반도비핵화선언 철저 준수. 4) 핵의 평화적 이용범위 확대. |
2004.12.17. | 국가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 우선 추진(2008년 완공) ·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침은 국가정책방향, 국내외 기술개발추이 등을 감안하여 중장기적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 하에 추진. |
2008.12.22. | 미래원자력시스템연구개발장기추진계획 | 제255차 원자력위원회 | · 파이로프로세스(Pyroprocess)를 통한 핵연료 개발 계획 및 이를 활용하기 위한 소듐냉각고속로(SFR) 계획 포함. |
2008.4.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 | 국가에너지 위원회 | · 사용후핵연료 처리, 처분에 있어 다양한 대안설정. · 일부 전문가 그룹의 독단적 결정이 되어서는 안됨. · 밀어붙이기식 접근 방법으로는 정책목표 달성 불가능 ·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전제조건으로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위해서는 객관성, 투명성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
2009.5.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을 위한 프로그램 상세 설계용역 | 경희대학교 컨소시움 | · 사용후핵연료 저장량 조사 및 포화시점 검증 · 사용후핵연료 단기관리 대안 및 시나리오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모델 개발 및 운영방안 |
2009.7.17.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 지식경제부 | · 언론보도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7월 29일 출범 예정. · 위원장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
2009.8.3.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연기 | 지식경제부 | · 지식경제부, 사용후핵연료 브리핑 취소. 8월 6일 예정되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을 무기한 연기. · 7월말 일정이 국회일정으로 1차연기된 상태였으며, 양재동 사무실도 확보한 상태에서 출범 2일전 무기연기. 추후 연구용역 발주. |
2011.8. |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안 수립 및 로드맵 개발 | 한국원자력학회 컨소시움 | ·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년도 2024년. · 사용후핵연료 정책과 병행해서 처분부지 확보 필요. · 이해관계자간 협의를 통한 사회적 수용성 확보 · 방폐물 법/규제 정비 및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위원회 구성 제안 |
2012.8. |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수립과 공론화를 위한 권고 |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 | ·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으로 구분. ·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방안 마련 기준설정 및 이를 충족하는 방안 도출 · 중간저장 시설의 건설·운여에 필요한 규제기준을 법제화하고 저장기간과 절차를 조속히 결정할 것 ·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의 포화시점은 2025년. 2024년 이전 중간저장시설 건설 완료. |
2013.2. |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하고(2013.4.), 논의결과를 토대로 임기내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과 착공 추진 |
2.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쟁점과 과제
2.1. 논의의 시작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앞서 매우 길게 지난 20여년동안의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와의 논쟁으로 살펴본 것처럼 이 문제는 ‘처음 시작한 문제’가 아니다. 짧게는 2007년부터 6년째, 길게는 1989년부터 24년째 진행 중인 사안이다. 또한 여기서 다루지 않았지만,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각 지역에서의 갈등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가장 큰 쟁점은 ‘논의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라는 매우 원론적인 질문이다.
그간 몇 차례 정부-원자력계-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논의를 했던 것을 바탕으로 볼 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공론화의 필요성’과 ‘상호 신뢰’일 것이다. 그간 핵발전소 건설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시민사회진영과 지역주민들이 왜 ‘사회적 공론화’에 동참해야만 할 것인가? 바꿔말하면 그간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건설을 지속해 온 정부와 원자력계로 인해 많은 양의 사용후핵연료가 생성된 것인데, 이에 대한 책임을 처음부터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해 온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들에게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지고 올 감정적, 이성적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단지 국가에너지정책의 필요성 혹은 전력정책의 필요성이라고만 항변한다면 논의는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다. 물론 이 말을 맞는 말이지만, 그간 사용후핵연료의 처분방식과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정부와 원자력계에도 문제의 원인제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핵폐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양측간의 불신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이기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갖고 있는 내면적 의미(예를 들어 신규 핵발전소를 더 짓기 위한 술책? 같은 것들 말이다.)를 유추하게 되는 것도 생기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시작은 매우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접근하되, 이 논의에 함께하게 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논의에 집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등 소위 ‘반핵진영’에만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 원자력계 내에서도 기술적, 정책적으로 풀어야할 이 문제를 ‘왜 비전문가이며, 권한도 없는 일반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부처간에도 관련 R&D와 정책추진을 둘러싼 잡음은 그간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자칫 한 부서만의 사업으로 사회적 공론화가 고착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정부 내부의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2.2. 한미원자력협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논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마침 한미원자력협정 만료를 앞둔 시점이다. 2014년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은 한국과 미국 양국의 대통령 선거와 겹치면서 협상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론화위원회 활동시기와 논의일정이 겹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주요 정책 결정 중 하나는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볼 것인가? 혹은 자원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행 법상에서 사용후핵연료는 분명히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이 ‘폐기물’을 재활용(재처리)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교과부의 계획에는 이를 바탕으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와 고속로 건설계획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아직 구체계획이 수립되지 않았으나, 향후 습식재처리(Purex)까지 추진해야한다는 주장까지 원자력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Wait and See’를 고수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기본 골간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이에 따른 사용후핵연료 증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핵폐기물 문제를 연계할 것인가는 매우 오래된 주제이다. 2003년 부안사태가 발생한 이후 정부와 부안대책위, 시민사회진영과의 논의에서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핵폐기물 문제를 연계할 것인지는 중요 쟁점이었다. 또한 2007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문제를 먼저 매듭짓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신규핵발전소 건설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연계시키는 의미는 논의에서 다루어야할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정하는 문제와 관련있다. 예를 들어 향후 발생할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서는 중간저장시설 등을 논의함에 있어 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앞으로 발생할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정확히 계산하기 힘들고, 신규 건설 여부가 확실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향후 발생량을 포함시켜 논의할 경우 이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용인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반핵진영이 받아드리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논의는 현재 신규 건설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늘리는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한바 있다. 이에 따라 삼척, 영덕 등 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 작업이 진행되었고, 현재 지식경제부의 예비고시까지 공표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올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발표를 앞두고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들 신규지역의 핵발전소 건설을 ‘유보’하기로 발표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핵발전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는 논의와 맞물린 것으로 올해 상반기까지는 관련 논의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핵발전소 건설 중단(혹은 무기 연기)는 정부가 낼 수 있는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신뢰조치로서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 정책이 계속 추진되고 있고 신규 건설을 비롯한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 상황에서 반핵진영과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이성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이기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미 그간 경험한 것처럼 지역에서 신규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테이블에선 핵발전소 유지에 필수적인 사용후핵연료 저장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이것이 공론화의 주요 원칙으로 잡은바 있는 진정성과 신뢰조치를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유연하고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2.3. 사용후핵연료 포화시점과 공론화 논의구조, 그리고 공론화의 시점
그간 정부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포화시점과 관련해서 수차례 연기를 해 온 바 있다. 1994년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추진하면서 1995~2000년에 저장고가 가득찬다며, 유명 연예인을 앞장세워 ‘더이상 멈출수는 없습니다’라는 TV CF까지 했으나, 굴업도 백지화이후 압축기술이 발달되었다며, 2010년, 2008년으로 수차례 변경된바 있다. 아직까지 경주핵폐기장은 완공되지 않았지만, 2010년 울진핵발전소의 방폐물 1천드럼을 옮겨온 것 이외에는 어느 발전소도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포화상태에 이르지 않고 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는 2016년부터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가 포화된다고 밝혔으나, 2012년 8월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5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사이 조밀저장에 대한 기술적 진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포화년도는 사회적 논의의 시점을 정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엄밀히 계산되어야 할 문제이다.
또한 2025년 포화시점 역시, 임시저장고 증설이 이뤄질 경우(물론 이것 또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야 가능한 일이다.) 급격히 늘어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단지 **년에 포화가 되니 **년까지는 논의를 완료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접근보다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정부의 계획이 2013~2014년 2년에 걸쳐 공론화를 완료하고, 이후 실행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잡고 있는데, 이는 자칫 고정된 논의시점으로 인해 공론화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될 확률이 높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사회적으로는 민감한 주제이나, 국민들의 이해가 깊지 못하고 그간 문제 확산이 충분히 되지 못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특정 시간에 맞춰 논의를 종결짓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2.4. 임시저장 확대는 안되나? 중간저장의 필요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포화시점 및 논의 시점과 관련해 현재 정부 계획이 놓치고 있는 또 한 가지 문제는 그 논의의 시작을 중간저장부터 시작하려는 경향이다.
현재 한수원과 정부는 ‘임시저장’, ‘중간저장’, ‘영구처분’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방안을 분류하고 있다. 현재 핵발전소 내에 저장하고 있는 방식은 임시저장이라 설명하며, 그 외의 저장 및 처분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사용후핵연료는 ‘중간저장(Interim Storage)’과 ‘영구처분(Disposal)’만 구분되어 있으며, 기술적으로도 임시저장과 중간저장은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임시저장시설이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상의 ‘관계시설’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제2조(정의) 이 영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9. "영구처분"이란 방사성폐기물을 회수할 의도 없이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10.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이란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된 핵연료물질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핵분열시킨 핵연료물질을 발생자로부터 인수하여 처리 또는 영구처분하기 전까지 일정 기간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2조>
제9조(관계시설) 법 제2조제10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란 다음 각 호의 시설을 말한다. 4. 원자력발전소 안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시설·배출시설 및 저장시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9조> |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 처리 혹은 처분하기 위해 관리자가 인수하기 이전에 발생자가 한시적으로 저장하는 것’으로 임시저장을 규정하고 이를 엄격히 중간저장(발생자로부터 인수하여 저장하는 것)과 구분 짓고 있다. 1차적으로 현행 법밖에 존재하고 있는 임시저장의 개념을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더 나가서는 임시저장 역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의 주요 옵션으로 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공론화의 충분한 논의시간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도 최종처분의 기술과 부지 조사가 되지 못했으며, 중앙집중식 중간저장 방식 채택시 생길 부지선정 어려움과 환경적 논란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적극적으로 고려될 옵션임에도 그간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의 반발과 이에 따른 추가적인 논의가 필수적이지만, 이 역시 기술적인 검토를 통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논의범위와 주요 쟁점 흐름도>
3.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전제조건과 원칙
3.1.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공론화의 전제조건 : 신뢰 조치 확보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혼란과 갈등 속에 시작하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일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와 관련해서 정부가 시민사회진영과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자세일 것이다. 한 차례 정도 정부와 시민사회진영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전체를 포괄하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쟁점사항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의 일종의 ‘탐색전’ 성격이 강한 자리였다.
2013년 3월 현재 시점에서 핵발전소 지역을 보자면, 영광에서는 영광 3호기 제어봉 안내관을 둘러싸고 원안위, 지식경제부 그리고 지역대책위가 대립하고 있고, 경주에서는 월성1호기 수명연장 및 방폐장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은 올해 4월 고리1호기 계획예방정비와 원자로 헤드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예정되어 있고, 울진 4호기는 증기발생기 세관문제로 1년 넘게 발전소가 정지해 있다. 삼척과 영덕에선 제6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핵발전소 건설이 ‘유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매입을 위한 사전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쪽에선 대립과 갈등, 한쪽에선 대화라는 이상적인 그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의 담당자로서는 방사성폐기물과 핵발전소 운영, R&D, 규제가 다른 부처와 다른 과의 소관이겠으나, 민간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정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의 의견과 요구, 현실이 다르며, 이들 지역의 하나의 잣대와 내용으로만 본다면, 말그대로 ‘사회적’ 공론화로 요원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꿔말하면 찬핵/반핵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진다면, 이 결과는 어느 누구도 쉽게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공론화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는 점에서 신뢰 확보를 위한 조치를 고민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3.2. 공론화 추진의 원칙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면 둘째로 필요한 것은 이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투명성의 확보일 것이다. 이는 어느 공론화 기구에서나 강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지만, 그간 핵발전을 둘러싼 여러 갈등에서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에서 발표했던 PRESIDENT-rule 역시 제대로 검토해 볼만하다. 민주성, 책임성, 도덕성, 진정성, 독립성, 숙의성, 회귀성, 투명성의 8가지 원칙은 어느 것 하나 버린 것이 없는 중요한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간 연구 용역을 통해 대부분의 원칙들은 재 언급이 되었으나, 회귀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어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회귀성(공론화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치명적 문제점이 확인되었을 경우 논의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이란 말그대로 논의를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인 결함 이외에도 논의과정과 절차에서의 흠결, 애초 잡았던 원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만든 원칙이다. 바꿔 말해 어떠한 논의와 결정도 문제가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와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부담감 많고 골치 아픈 논의를 선뜻 자임할 사람과 조직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4. 소결 : 아직은 안개 속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올해 4월부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추진하겠다는 기존 정부의 발표를 100% 신뢰하지 않는다. 2009년 그랬던 것처럼 시작 며칠전에 모든 계획이 중단된 사례도 있을뿐더러, 책임있는 부처의 장이나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서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와 관련한 대통령의 의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안면도와 굴업도, 부안의 항쟁이 있을 때마다 주무부처의 장관은 여론의 집중공격을 받았고,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매번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일은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정책현안이었고,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또한 그 결정 여부에 따라 파급력도 하나의 부처가 아니라 전 부처에 걸쳐있으며, 핵재처리와 같은 문제는 국제적인 사안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나갈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 이해당사자의 숫자도 많고 갈등의 골도 깊다. 또한 이를 비춰볼 때, 명백한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시민사회진영과 지역주민들이 핵폐기장 문제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외쳤던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19년간의 갈등, 은폐된 정보와 3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결정된 방폐장과 공기를 넘겨 8년째 진행되고 있는 방폐장 건설공사와 부실논란 등 과거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걸어온 잘못된 길을 다시 밟고 싶지 않다면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고난의 길’은 ‘훨씬 쉬운 길’일지 모른다.
과거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교훈을 얻고 합리적인 해법을 얻기 위해 아직은 안개속에 감춰져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계획이 이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130405_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있어 시민사회와 지역의 쟁점과 과제_ver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