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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21 출발
텔레반 인질이 석방되지 못한 상황에 이스라엘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모두들 염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났다
일년전부터 계획한 일이라 양보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의 휴가 허락도 간신히 맡은터라 더욱더 열정이 더했다
오후1시50분에 루프탄자 독일 항공에 몸을 실었다
긴 여행에 다소 두려움과 떨림과 흥분이 교차되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외국 승무원들을 보고 드디어 내가
여행길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독일 프랑크 푸르트를 경유해 텔아비브에 간다
무려 비행기로 13시간 30분을 간다
지루하고 힘든 일이다 비행기는 타고 가는중에
계속 기류 불안으로 흔들린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심상치가 않다
순간 잘못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잠도 오지 않는다 승무원들이 음료를 들고왔다
우리나라 스튜디어스와는 다른 나이든 여 승무원이 다가온다
오랜 경력을 가진듯한 모습에 조금은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 안심이 된다
무엇을 드릴까요? 프리스 ..와인한잔 주세요 ...
와인한잔 마시고 푹자고 싶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잠이 안온다 밤이라 밖은 어둡다
비행기에서 나는 소리는 계속 윙윙거린다
일행들을 보니 다들 잠에 취해있다 답답해서 휴게실로 갔다
몇분이 떠들고 있다 그리고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나이든 아주머니가 연신 승무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아주머니 물이 드시고 싶었나보다 계속 물주세요 물 !!
승무원 Why Why?.. 가까이 다가가서 물을 갔다 드렸다 아주머니 눈물이 글썽인다
에효 물도 맘대로 못 마시겠네 ..우린 한바탕 까르르 웃었다
이어서 한 아주머니가 또 화장실에 갔는데 안온다 이상한 생각들어 가봤다
역시 문을 두드리니 고통스런 목소리로 나 지금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나지막한 소리로 아주머니 가운데를 살짝 미세요) ...네
나온 아주머니 얼굴이 사색이다 이래서 또 웃었다
이래저래 해프닝 계속이다 뭔가 도울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어 기내식이 나왔다
치킨과 비프 (소고기) 둘중 하나 선택이다
대부분,,치킨을 드신다 비프를 발음할줄 몰라서인가 보다
어떤 아주머니는 치킨을 영어로 못하자 날개짓을 한다
그랬더니 승무원도 따라 날개짓을 하는 바람에 모두 뒤집어 지는줄 알았다
확실한 바디 랭귀지다
이렇게 시간은 흘렀다 해드셋을 쓰고 23번을 누르니 가요가 나온다
박효신의 사랑은 추억을 닮아가 흐른다
뒤척이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프랑크 푸르트 ..
친구가 배가 아프다고 난리를 친다
기내식에 트러블이 생긴거 같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평탄치 않을거 같은 생각 룸 메이트가 아프면 둘다 고생이다
걱정스레 프랑크 푸르트 공항 도착 약을 먹어서인지 친구는 조금 괜찮은 듯하다
그래도 약간 답답하다며 등을 두드리라고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등을 두드리니까
독일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줄 알고 흘끔거린다
우리 일행중 하나가 사진을 찍다말고 사진의 표제를 이렇게 붙였다
(탈레반도 포기한 여인들)한바탕 웃었다
프랑크 푸르트 공항은 왠지 분위기가 차갑다
질서가 있고 화장실에 가보면 재활용 화장지가 인상적이다
검소한 국민성이 돋보인다 그런데 문제들이 자꾸 생긴다
화장실에 물 내리는곳이 여기저기 각각 다르다 위에도 있다가
발 밑에도 있다가 옆에도 있다가 정신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같은 곳에 위치하면 덜 혼란스러울텐데 아주머니들이 염려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짬을 내 쇼핑을 했다
허리케인 탓이라며 1시간 딜레이가 되었다
우리일행은 의자에 걸터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바닥에 털석 주저않았다 그리곤 낯설은 독일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속을 왔다갔다 했다
시간 안내가 나오고 우리는 2시간 후 텔아비브를 향한 비행기에 올랐다
지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여름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듯이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면 마치 진주처럼 보석처럼 빛난다
지금 난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
다행히 A석에 앉아 창밖을 볼수 있어 행운이다
눈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불빛들이 춤을 춘다
저속에 어떤이들이 살고 있을까 한번도 본적없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내 뒷좌석에 있는 외국 소년이 하이 하고 나를 부른다
나도 맞장구 치며 하이 하니 뻐드렁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나도 웃어주었다
어디 사느냐고 묻는다 난 간단히 소개를 했다
서투른 영어로 손짓 발짓 다하며 그랬더니 그도 열심히 말을한다
반절은 알아듣고 반절은 모르고 그냥 웃으며 고개짓을 해주었다
그는 탱큐를 연발한다 ....
사람들은 모두 생김새가 달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건 같은 맘인가 보다
이렇게 서툴지만 서로 교감을 나눌수 있음에 잠시 나만의 행복을 느꼈다
밤이 소리없이 밝아오고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시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3시간 30분이 흘러 비행기가 텔아비브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착륙하기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텔아비브는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잘 정돈된 거리들이다
버그공항은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살벌한 느낌이었다 검색도 요란하다
온 몸을 더듬는다 기분이 그리좋지 않았다 검색이 심하다 정국 탓이리라
공항에서 50분 달려 예루살렘에 있는 게이트 호텔에 숙박
호텔은 고풍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우리나라 모텔수준이었다
여정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로한 탓인지 잘잤다
다음날 아침 바라본 예루살렘
산위에 지어진 집들이 인상적이다
외적의 침입과 물부족 때문에 산언저리에 집들을 짓고 산다고 했다
국경없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와 예루살렘 경계선을 드나들면서
성지들을 순례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건조함과 사막 물이없고 갈한곳
푸석푸석해서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산
그리고 들 .
그러나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는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 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런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전 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며,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줄을 서고 기다린다
젖과 꿀이 흐르는땅 실제로 이땅에 와보니 황량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는 땅이다
그럼에도 세계강국이고 모든 세계가 이스라엘에 집중되고 있다
인간을 의지하며 살수 없는 이땅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이곳 이땅 ..
하루는 그런 생각에 답답함에 갈급함에 물을 찾으며 지냈다
물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강렬한 태양빛
숨쉬기 조차 힘든 여정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라가며 가슴속에 커다란 감동이 일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치상황
팔레스타인의 가녀린 삶
마호메트 부활시 부활하고 싶다고
예루살렘 성 근처에 묘지를 쓰고 있는 아랍인들...
유대교 종교인들이 눈길을 끈다
더워서 못견딜 날씨임에도 그들은 종교인 의복을 입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검은 자켓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
오후에는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아픔의 역사가 숨쉬는 곳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히틀러의 만행이 보존되어 있는 이곳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을 보는듯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은 어린 영혼들을 추모하는 추모관이었다
죽어간 어린이들 수마큼 불을 켜놓고
어린영혼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동상이 있었는데
설명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며
절규하는 ( 선생님 가기 싫어요 ) 소리에
그들을 가르쳤던 헝가리 교사가
내가 함께 있어줄께하며 같이 들어가
어린이들과 함께 죽었다는 기념비가 있다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뉴스에서 가끔 보아 눈에 익은
통곡의 벽에 갔다
오랫동안 '통곡의 벽'이라 불리고 있는 이 성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 서쪽벽을 일컫는다.
최고 14 m 의 길이와 400 t 이나 되는 돌을 비롯하여
평균 1 ~ 3 t 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높이 16 m의 이 성벽은
헤롯 대왕 때의 것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 건축이 시작되어
약 60여년 동안이나 걸려 지은 것들이다.
이 헤롯의 성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지렛대로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뜨렸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통곡의 벽 아래 부분은 당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 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 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곳은 유대인의 최고의 기도처가 되고 있어
많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모이는 곳이다.
2천년 동안의 방랑생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로의 귀향이라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신앙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특히 안식일이나 절기 때가 되면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우리가 가는 날도 역시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가슴을 치는 사람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 ...
갈라진 벽 틈새로 빽빽이 끼워진 기도제목들 ..
그리고 이곳은 여느 회당이나 마찬가지로 남녀가
각각 칸막이로 나누어진 구역에서 기도한다
1967년 6일 전쟁때 이곳을 탈환한 유대 군인들의 감격은
2천년 만에 예루살렘을 되찿은 유대인 전체의 감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호메트가 다시 부활할 곳이라 여기는 황금의 돔
그곳에 갈때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라
팔레스타인 군인들에게 검문 검색을 받았다
벽 하나 사이를 두고 통곡의 벽에 이를땐 유대인들의 검문을 받았다
참으로 묘했다
무장한 군인들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무표정했다
여기저기서 성년식을 치르는 모습이 보였다
악기를 연주하고 가족들이 축하 꽃다발을 안겨주며
뱅뱅 돌면서 댄스를 추는 모습이
우리나라 성년식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사해 바다 에 갔다
최장 길이 85 Km, 최장 폭 17Km 표면적 약 1,015 평방 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이다.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死海) 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 33%로서 세계적으로 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손발을 휘젖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떠 있게 된다.
혹시 손발을 휘젖다가 물방울이라도 튀어 눈에 들어 간다면
눈이 쓰라려서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 정도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 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체 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사해의 포타슘 매장량은 전 세계가 이곳에서 나는 것만 쓰더라도
100년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 비료들을 만드는데 쓰인다. 사해 주변에는
사해 물을 분석해서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 들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을 보물 저장 창고라고 부른다
사해의 물은 피부병에 특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또한 이곳의 검은 흙은 신경통 등에 특효라고 전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차 사해에 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 근처에는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도 있다.
사막을 끼고 도는 사해 그곳에서 수영을 했다
친구들이 미련하여 수영복을 준비해오지 않았다
나만 준비해왔다
이국적인 낭만의 바다에서 짜릿하게
서툴지만 수영을 하는 맛은 아무도 모르리라
사실 조금은 망서려졌다 쭈빗쭈빗 하는 사이
친구들이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서 풍덩 풍덩 들어간다
다른 팀들
아줌마들이 용감하게 앞 불룩 뒷 불룩 인데도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나도 ..터억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나오니까
친구들이 비명소리를 지른다
앗 정말 입었네 니가 왠일이니??
집안일이다 시침을 뚝 떼고 물속으로 텀벙 .....
내가 못 입을줄 알았나보다 ..
가만히 들어 누우면 그림처럼 파란 하늘이 눈 가득히 들어온다
둥둥 뜬다 한없이 흘러가고픈 마음이 든다
아무리 뚜웅한 사람도 그저 맡기고 눕기만 하면 둥실 둥실 뜬다
2시간동안 그렇게 망망한 바다에 떠 있었다
잠깐 ....
이 대목은 남정네들은 보지 않았음 좋겠다
( 갑자기 물속에 들어간 남녀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른다
사해바다가 치질이 있는 사람에게 특효라더니
너무나 쓰리고 아프다고 난리들이다 .ㅎㅎ
각기 상상하기를.. 진흙 팩을 했다 덕지덕지 얼굴에 발랐다 ..
욕심이 많아 얼굴에 덕지덕지한 친구들은
눈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고 수돗물로 씻어내느라 고생들했다
아쉬움 뒤로 하고 바닷물에서 나왔다
무좀. 여드름 .아토피에 좋다고 비누들을 한 보따리씩 산다
난 돈이 없어 사해에 유명한 특산물 비누를 조금 샀다
그리운 얼굴 생각이 난다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여유롭지 못해 많이 사지 못해 아쉬웠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걸린다
사막에서 물은 먹어도 먹어도 갈증이 난다
아!!! 우리집 냉장고 얼음물이 그립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사람을 무척이나 지치게 한다
얼굴이 익었다 모자를 쓰고 썬 크림을 듬뿍 발라도 타는 듯한
태양빛에 가맣게 그을러 간다
다음날 우리는 엔게디 요새를 갔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곳 ..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너무도 놀라왔다
사람이 살수 없을것만 같은 곳에 위치한 요새
깍아지른 가파른 곳에 세워진 성터
엔게디 요새는 나의 뇌리속에서 한폭의 그림으로 각인될것 같다
그곳을 떠나 맛사다에 갔다
과일이 참 맛있다 뜨거운 태양덕에 과일의 당도가 무척 높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자두였다
아랍 상인이 파는 가게가 싸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물건을 샀는데
무화과 사과 복숭아 얼마나 당이 많은지...
종려나무 열매도 꼭 우리나라 대추같아 먹을수록 맛있었다
사과는 아주 작다
맛도 그리 좋지는 못하다
복숭아도 그저 그렇고
그런데 가장 인기있었던 과일은 자두 였다
호텔로 돌아와선 해프닝이 있었다
어떤이가 말한다
호텔에 전자랜지가 있단다
다들 들떠서 컵라면을 먹을까 아님 햇반을 먹을까 기대들이 컸다
그런데 알고보니 귀중품을 넣어두는 박스를 렌지로 착각한거다
우린 모두 우리들의 무식함에 또 한번 웃었다
다음날 갈릴리 바닷가를 갔다
예수님께서 사역의 절반을 하셨던 곳
갈릴리 호수 주변에선 커다란 베드로 고기와 전병을 점심으로 먹었다
우리 입맛에 맞아 실컷 먹었다
여기저기 예수님의 흔적들을 더듬어 보고 다녔다
그분의 숨결이 느껴질 것 같아 묵상하며 걸었다
호수는 잔잔하다
2000년 전의 일들을 물속에 잠잠히 묻은체 말없이 흐르고 있는 호수
금방이라도 그분의 음성이 들릴 것 같아 가만히 귀 기울였다
우리일행은
예수님 당시 타고 다니신 모습 그
대로 만들어 놓은 배를 한척 빌려 탔다
그리고 호수 한 가운데서 배를 띄우고 선상 예배를 드렸다
너무도 은혜스러웠다 어떤 분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도 눈물이 흐르는걸 꾹 참았다
우리는 어두워질 무렵
성지순례의 결정인 곳에 다다랐다 비아돌로로사
라틴어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시던 약 800 m 의 길,
그리고 골고다에서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 까지의 전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시스컨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 마련된 14개 장소는
18세기에 와서야 확정된 것이며,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일부 검증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그길을 걸으며 찬송을 불렀다
곁에는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앞만 보고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 지고 가신 그분의 길을 따라가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사는 목적과 현재 나의 삶의 모습들과 나의 미래에 대한 모습들을 투영해 보았다
배로니카라는 여인이 가슴에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외면한 그 자리에서 용감하게 다가와
손수건으로 그분의 이마의 땀을 닦아 드린 여인
사랑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오후엔 베들레헴 에 들렀다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지니며
아랍어로는 '푸줏간'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그것은 목축업이 활발했던 것과 양을 잡는 날에 행해지던 잔치에 그 기원이 있다.
이곳은 다윗 왕의 고향 (롯, 삼상 16: )이기도 하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 (삼상 16:1)이며,
다윗의 우물 (삼하 23:13 ~ 17)이 있던 곳이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기에 국경을 넘어 갔다
그곳에선 그곳 가이드가 따라붙었다 관광수입을 위한것이라고 한다
국경엔 바리게이트와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버스가 지나가자 멈추라고 신호를 한뒤 차에 올라 한바퀴 둘러보고 가라 한다
우리일행은
나사렛에서 이틀밤을 보냈다
예수님이 자란곳 아름다운 곳이다
안식일이라서인지 차가 없는 도시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엘레베이트 버튼도 누르지 않는다는 안식일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바람이 싱그럽게 불고 한눈에 시가가 보인다
고요하다 차들이 다니지 않는 고요함 아침묵상을 했다
하루동안 성지를 방문하며 뜨거움으로 가득한 시간들을 보내고
드디어 꿈에 도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 (로마)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엔 창밖으로 지중해 바다가 보였다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지중해
이스라엘에 있을때 2시간 정도 머믈렀던 !!!지중해
물 빛깔이 10가지 이상 될거 같았다 그 푸르름이 눈이 부시게
눈물날 정도로 아름다웠던 지중해!!!
지중해를 뒤로하고 3시간 비행을 했다
이태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날씨는 서늘한 편이었다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몹시 분주한 모습들이었고
우리나라와는 일곱 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패션의 나라 이태리
그러나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패션보다는 뭔지 모르게 쫒기는 사람들처럼 다소 여유가 없어 보였다
ROMA 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인 마르스와
인간인 레아 실비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동이 형제 레무스와
로물루스에 의해서 건국 되었다고 한다.
태어난후 티베레 강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를 암 늑대가
젖으로 키웠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로마를 세운 시조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티베레강 하류에 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7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원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며
특히 바티칸은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카톨릭과 관계된
국제적인 연구·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로마의 주요산업은 관광업으로 연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고대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로
로마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로마는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발칸 반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영향으로 가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보다 겨울이 좀더 따뜻하다.
구 로마와 신 로마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 로마는 건물 자체가 예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르네상스 시대 삼대 거장의 숨결이 머무는곳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적인 도시 로마...
르네상스란 조그만 “부흥 ” “재생” 을 뜻하는 말로서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인간중심의 미술경향을 말한다
르네상스 미술은 1400년대 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를 중심으로 일단의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시도는 로마와 베네치아로 전파되었고 1500년경에는
북유럽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네델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의 미술과 문학을 재음미하였고
해부학이나 투시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체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신이나 절대자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당시 발명된 유화기법도 새로운 양식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회로 칠한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프레스코화나 나무 판자 위에
계란 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그리는 템페라화 대신, 캔버스 위에 그리는
유화를 가지고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부피감을 살리고, 원근법을 이용하여 3차
원적인 공간감을 표현하게 되었다.
초기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에게 있어 특히 가장 중요한 임무를 떠 맡았던
건축가들을 고민스럽게 했던 것은 대성당의 건립이었다.
당시 시대를 움직였던 가장 기초 단위의 힘이 종교였으므로 성당건축은
가장 중요한 미술의 한 영역이었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던 16세기-
이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였다.
르네상스는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미켈란젤로 그는 프레스코벽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를 그렸는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은 그림 내용이 위로 부터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세계 최대의 벽화로서
인류의 종말을 상상 시키는 최후의 심판은 20년 전에 그린 천지 창조와는 전혀 다른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상과 미켈란 젤로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로마에 도착하여 순간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한계를 느꼈다
인간의 무한성 인간이 뇌의 2%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천재들의 화폭은 크고 넓었으며 방대했다
조각들은 살아 움직이는거 같았고 천장 벽화들은 명암이 분명해서
조각품 같이 느껴질 정도로 입체감이 뛰어났다
처음 우리가 간곳은 바티칸 박물관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도착해보니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담 벼락을 돌 정도였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로마교황의 거주지였던 바티칸궁전을 18세기 후반에 개조해 공개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삐냐 정원나온다
정원 한쪽의 벽엔 천지창조등 사진을 걸어놓고 단체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미리 들은 후 박물관을 관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저기서 가이드 들이 설명을 한다
모두들 귀에 헤드셋을 쓰고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들이 진지하다
삐냐정원에서부터 사람들의 모습이 격양되어있다
나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주변이 모두 예술품들인데다 조각품들이 장식하고 있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씨스티나 예배당 안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건물 전체를 화폭삼아 그린 듯한 벽화와 천장이 두 눈에 가득 들어오는데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벽화 최후의 심판이다
씨스티나 예배당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천지창조는 천정화인데 1508년에 시작해서 5년만에 마쳤는데 천장밑에 작업대를
설치하고 올려다보며 혼자 작업을 한 미켈란젤로는 목 디스크와 시력저하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천지창조 완성 후 고향 피렌체에서 보내며 많은
시련을 겪다가 1534년 교황 클레멘토 7세의 부름으로 로마에 왔을때 예순의 나이로
건강도 나빴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렸을때는 전부 나체였는데 후에
다니엘레 다 볼테라에 의해 나체는 모두 살짝살짝 가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체를 감춘 사연은 평등사상에 기초한 미켈란젤로의 사상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너무 감동적이고 느낌이 강해 필설로 표현할수 없을 지경이었다 인간의 무한성을 느꼈다
성 베드로성당
초대교황인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언덕에는 초라한 모습의 성 베드로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명령에 의해 1506년에 착공해 1626년까지 증개축을 반복해 완성시킨 지금의 성 베드로성당은 길이 211.5m,높이가 42m나 된다.
성 베드로 광장
대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베르니니가 1655년부터 12년에 걸쳐 완성한 광장이다.
저 높이 솟아있는 25m 길이의 오벨리스크는 서기 37년 칼리쿨라 황제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광장폭은 240m로 한번에 30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황이 세계에 있는 신도들에게
멧세지를 전하는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는곳이다
꼴로세움
8년만에 건축된 꼴로세움은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4개 층이 서로 다르게 지어졌다.
그 당시에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쉽게 입장할 수 있도록 80개가 넘는
아치 문이 있엇고 관객은 10분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의 해전장으로 사용하다가 배수처리가 어려워 검토장으로 쓰이게 됐다.
지금은 경기장 바닥이 모두 무너져 있지만 예전에는 미로처럼 갈라진
방 위로 천장이 있었고 천장위에 경기장을 만들어 각종 검투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지하에는 검투사 대기실, 무기창고, 동물 우리등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일행 특히 나는 그곳에서도 말을 잃어버렸다
아주 오래전에 그곳을 찾은 관객들이 경기를 보며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귓가에 금방이라도 들릴것 같았다
오래되어 많이 훼손되었지만 지금도 남아 버티고 있는 모습이
그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위용을 뽐내는것 같았다
조상들을 잘 만나 관광수입만으로도 먹고 사는데 걱정 없는 나라 .
잘사는 나라 로마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다가 생각을 멈췄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뜨레비 분수
뜨레비 분수 앞에 있는 젤라떼리아는 아이스크림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양은 적었지만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의 귀여운 모습으로 유명한 뜨레비 분수는
관광객들이 던지는 동전이 분수바닥에 그득하게 깔려 잇다.
관광객들이 던지는 첫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두 번째 동전은 평생의 연인을 만날 수 있도록..
세 번째 동전은 이혼을 바랄 때 던진다고 하니...
세번째 동전은 던지지 마시기를...
우리 일행중 한분이 동전 던지다가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했다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일행은 허리춤 단속에 맘을 온통 쏟아야했다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 모습처럼 보따리 단속 때문에
촌스러움의 극치를 겪어야 했다
또 한곳의 명소를 찾았는데
그곳은 진실의 입이라고 일컫는 곳이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주인공 둘이서 서로 진실을 알기위해 손을 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짓을 말하면 그 사람의 손을 사자가 물어버린다는 우스운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유명해진 곳이라 한다
우리가 도착해 구경할 때 오른편 벽에는 온갖 낙서가 다 되어있는데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글씨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글로 된 낙서이다
내가 왔다 갔다하고 이름 쓰여진 낙서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시 당국에서 한번 지웠지만 여전히 한글로 된 낙서는
많은 부분을 차지해 현지 교민들도 부끄러워 할 만큼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배낭여행 온 한국 대학생들이라고 덧붙히는데 쓴 웃음이 나왔다
얼굴이 뜨끈해짐도 느꼈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이라고 이름 붙혀진건
과거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관이 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유명한데
이 계단은 젊은이들의 데이트장소로 유명하나 날이 더워서인지 계단에 앉아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참으로 많았다
한쌍의 연인들의 찐한 키스가 역시 연인들의 명소인것을 대변하는것 같았다.
광장앞에 똑바로 뻗은 거리는 명품샵들이 즐비하게 늘어 선
꼰도띠 거리인데
아이쇼핑를 한 후 날씨가 너무 덥고 피곤해서 귀가길에 올랐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이드의 순발력으로
한국에서 준비해온 비디오 (로마의 휴일)를 버스에서 볼수 있었다
로마에서 마지막 밤엔 중국식 음식을 먹었다
깍두기가 나와 얼마나 많이들 먹었는지 아마도 평생 이 맛을 잊지 못하리라
아참 로마의 특징 중 소나무를 들수 있는데 소나무가 위로 올라가다가
우산처럼 아래로 내려온다 시내를 돌다보면 그런 소나무를 많이 만나는데
로마에서만 볼수 있는 소나무 모습이라고 라고 한다
이태리에서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
중간 짤랐음..
로마에서 피렌체로 출발
아침이다 비가 올 듯한 날씨다
키가 큰 종려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지중해의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득 덮는다 호텔식 아침
우리일행은 어제 늦은 귀가에도 아랑곳없이 아침 일찍 식사를 해야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웅성 웅성 소리가 난다
그쪽을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웨이터와 안좋은 얼굴로 마주하고 손짓 발짓을 하고 있다
달려갔더니 이그 ...일행 분들이 이스라엘식을 먹다가 유럽식 음식을 먹으니
빵도 맛있고 음식이 입에 맞았나보다
먹었으면 그만이지 가방에 쑤셔 담을건 뭐란 말인가!!!!!
빵을 가방에 집어넣다가 들킨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심이 후하다 그래서 괜찮았는데 여긴 아니다
망신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나의 아침은 바게트 빵에 두꺼운 치즈를 넣고 우유와 콘프로스트
각종 야채를 넣어 먹었다 카프치노 커피한잔을 하고 하루 일정을 출발했다
버스 투어가 시작되었다
가이드가 한국 소식을 들려준다 억류되어있던 텔레반 인질들이 전원석방
우린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나 기뻤던지
우기라서 그런지 창밖엔 넓은 나뭇잎들이 말라 늦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운전기사가 한국 가요를 좋아한다며 가요를 들려주었다
가슴이 뜨겁게 그렁 그렁 거렸다 따라 부르며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같이 따라 불렀다 이숙에 진정난 몰랐네 김추자 노래 조용필 노래 이어진다
장덕 소녀와 가로등 조덕배 그대 마음에 들어오면 ..
두오모 성당과 피렌체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렌체
이탈리아의 중부에 위치해 있며, 14-15C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이다.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라고 불리울 정도로
로마에 이어 역사와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11세기~16세기에 걸친 많은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세계 예술 유산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이다.
식품·가구·의료·자동차 부품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상업이 매우 발달한
신흥공업 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이다.
피렌체 시의 중심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과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깜빠닐레)이 식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단테의 생가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일정이 빠듯하여 세세히 구경할수 없었던게 너무 아쉬웠다
밀라노
이탈리아의 경제적인 중심지 밀라노
우리들 귀에 익은 도시라서 관심과 호기심이 많이 갔다
해발 122m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예로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현재도 19세기 후반에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공업으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우리에게 밀라노 패션쇼로 익숙한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 유명하다.
밀라노의 중심가는 두오모 광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은 거대한 아케이드로, 전통있는 유명한 카페와 부티끄가 줄지어 있다.
이 곳에서는 또한 연중 수많은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보기 위해 베네치아에서 부와 예술인들을 만들어 낸
피렌체로 3시간 30분을 버스로 이동했다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연록색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두오모 성당은
‘꽃의 성모 성당’이라 불리워진다고 한다.
건축기간이 140년이나 걸렸다하니 그 규모란 어마어마할 수 밖에...
꼭대기의 원형돔인 큐풀라까지는 300계단을 올라야하는데
문득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가 생각났다.
단테의 생가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국인들로 가득 찬 광장 한복판에 내가 서 있음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노천카페에 장식된 꽃들이 정겨움과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로움을 준다.
피렌체시가지가 한 눈에 뵈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랐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것은 복제품)과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거리의 화가를 구경했다 그
리고 ..우리 카페 인물 사진실에 올려놓은 조각상 앞의 사진을 한컷 찍었다
이 모든 것이 피렌체의 중세 귀부인의 모양처럼 우아하다.
얼굴에 살짝 스치는 피렌체의 바람이 참 멋스럽다
스위스 편
피렌체를 지나 스위스를 향했다
국경을 통과할 때 별 검색없이 지나고 있다
경찰들이 몇몇 있고 스위스 국기가 흔들리고 있다
간단한 서류를 보여주고 몇마디 물음에 답하고 통과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우리도 남북이 이처럼 서로 왕래할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었다
사회복지 제도가 잘되어있는 잘사는 나라 스위스
아름다운 고도와 꽃으로 둘러쌓인 알프스의 나라
나라전체가 꽃으로 둘러쌓인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뿐 아니라
중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도시곳곳을 장식한 발코니의 꼿들과 알프스에서 볼수있는 고산지 꽃들
만년설의 뒤덮힘 유럽의 지붕 융푸라우와 필라프스. 티틀리스 리기와
같은 많은 산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공예 등 스위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빨간 지붕들이 인상적이다
호수와 산 그림처럼 아름답게 이어진다
가이드는 여기서 감탄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여행지중 스위는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기에 설레임이 컸다
이탈리아 북부지역 잔잔한 호수를 끼고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평풍처럼 들려진 집들과 이어지는 풍경들
저기 저 아름다운 마을 앞에 나는 서있고 싶다는
싯귀가 떠올랐다
구름이 흘러가고 키가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에 나는 서있고 싶다
안개도 지나가고
바람소리 그윽한 이곳에 나는 서있고 싶다
낯선이들의 숨결이 머믈다 가는곳 이곳에 서서
햇살에 마음을 비추고 싶다
휴게실에 들러 약간의 과자류와
진한 커피한잔을 마시고 햄버거를 사서 먹었다
휴게실엔 세계에서 온 다 국민들이 서로 눈 인사를 나누며
간식거리를 사기위해 줄지어 서있다
휴게소를 출발하여 차창밖에 펼쳐지는 수채화를 감상하며
한참을 갔다
인터라겐에 도착
인터라켄에 도착 브리엔체 호수가 보이고 카지노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었다
달팽이 슾에 소고기 감자로된 현지식
짜다 음식이 모두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산허리마다 대리석 바위들이 반짝인다 햇살을 받아서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어쩌면 저리도 대리석이 흔할까 ??
저거 우리나라에 조금이라도 옮겨다 놓을순 없을까
쓸데없는 욕심이 생겼다
인터리켄 ost 역에 도착
그 유명한 알프스 산행이 있다 가슴설레인다
인터라겐에서 빨간색 열차를 타고 70분 동안 알프스 정상에 오르다 보면
야생들꽃들이 500여종이 잔잔하게 피어있다 올라가는중 만나는 마을들은
그림속의 수채화다 300m에 달하는 폭포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알프스의 하이디를 만날것만 같은 느낌이든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정상에서는 스위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의
산과 호수를 볼수 있었는데 알프스의 정원이라는 소문답게
너무도 아름다웠다
융프라우
유럽의 지붕인 융프라우 정상은 융프라우 요흐 라 부르며 처녀를 뜻하는 융프라와
봉우리를 뜻하는 요흐의 합성어이다 이름에서 느낄수 있듯이 융프라으 요후는
높이 3454m 에 이르며 눈으로 덮힌 산봉우리와
그림같은 호수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다
융프라우요흐를 오르는 톱니바퀴 기차는 14년에 걸쳐
아이아이거와 뮌히를 관통하는 터널작업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무한성을 또 한번 느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까지 올라가기 위해 톱니바퀴로 레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빨간색 기차로 중간쯤 올라가다가 노랑색 기차로 바뀐다
기차색깔도 녹색의 자연과 어울리며 묘한 조화를 이루고
우리들을 유혹 했다
융푸라우 정상에 올라가 유럽 최정상에 얼음궁전과 스핑크스 테라스를 보았다
얼음동굴은 동굴 사면이 얼음으로 되어있어서
그곳을 지날 때 어린시절이 생각나 발 미끄럼을 타며 갔다
전망대 스핑크스 테라스로 나서면 쌓여있는 눈에 반사되어
눈부신 빛속에서 웅장히 그 자태를 드러내는 융프라우
영봉과 크고작은 빙하를 볼수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설경이다 신의 아름다운 창조를 느끼게 한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상에 오를때 순막힘이 느껴졌다 산소부족 이라 한다
어지럼증도 느꼈다 그래도 꾹 참고 아름다운 절경속에 서있었다
제네바
세계 평화의 도시 제네바
스위스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로 국제 적십자사 본부와
국제연합(UN)유럽본부등 주요 국제기관이 위치해 있다.
따라서 크고 작은 각종 국제회의가 1년에 700여건 이상 개최되며,
다인종, 다국적 사람들로 가득한 국제도시이다.
또한 프랑스에 가장 인접해 있어 가까이 프랑스령에 있는
몽블랑과도 쉽게 연결된다.
인구 16만,고도 375m로 국제도시지만 고층빌딩은 거의 없고,
관광객들을 위한 미니열차가 시내를 운행한다.
제네바에서는 도심을 구경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알프스 산에 매료되어서인지 제네바에서의 느낌은 그저 그랬다
저녁을 먹고 호텔 투숙
아침에 아름다운 도시를 떠났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소녀가 떠올랐던 스위스를 떠날 때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 식당에서의 육개장 맛도 잊지 못하리라
프랑스
알프스를 떠나 TGV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기차를 타고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엔 해바라기 포도 옥수수가 반겨주고 있었다
날씨는 쌀쌀했다
떼제베 기차를 탔는데 가운데 좌석이라 마주보고 놓여진
식탁위에 아침에 호텔에서 마련해준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바게트 빵 그리고 우유 각종 쨈을 발라먹는 맛
스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낯선 이국 에서의
기차 여행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2007. 9.1 빠리 도착
프랑스는 북쪽과 서쪽으로 대서양에 남쪽으로는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는
3면이 바다인 나라로 대체로 온난한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고한다
광범위하게 따져 인구 1300만 명이 거주하는 빠리는,
대표적인 명물 노틀담과 에펠탑, 일출, 일몰 그
리고 밤마다 변하는 세느강과 강변의
황홀한 아름다움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19세기의 넓은 가로수 길.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박물관과 공원, 정원, 산책길 등
빠리 곳곳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독특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묘사하기에 내 필적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사계절 모두 매력적인 도시라고 하는 파리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귀에 익었던 샹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파리의 전철시스템은 아주 편리하며
교통수단이 교차되는 곳 500m이내에는
항상 지하철역이 있다고 한다
장미빛 인생과 까멍베르치즈, 보브와르와 드뷔시 그리고 에펠탑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
첫 번째로 콩코르드 광장을 걸었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이 광장은 프랑스혁명 광장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고서 처형된 사람은 1,119명이라고 한다.
1794년 말경 공포정치가 끝나고 명칭이 콩코르드 광장으로 바뀌었으며
이집트의 총독이 루이 필리프 왕에게 3,200년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증정하여 이 광장에 세워졌다고한다
개선문에서 루브르궁(박물관)으로
내려가는 샹제리제 거리의 끝단에 위치하고 있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이다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 까지의 상제라제 거리 84000평방 미터의
콩코드 광장의 원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이었다가
1792년에는 레볼뤼시옹 광장으로 지금의 이름으로 확정된 것은 1830년이라고 한다
광장 정면에는 오른쪽에 부르봉 궁이 있고,
왼쪽에는 해군본부가 있다.
낮에는 프랑스식 요리를 먹었다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식당은 비좁고 빨간 조명등이 켜져있어 어두웠다
식탁도 빨강색이다 맛은 별로 였다
상젤리제 거리
파리의 대표적인 거리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은 12개의도로 중 하나이며
콩코르드 광장까지 약 2킬로 쇼핑가와 은행가 영화관 항공사 등이 있는 화려한 도시다
상제리제 거리는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에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의 거리이다.
상제리제 거리는 파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이 2킬로미터의 대로로
거리에는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그리고 멋있는 노상카페들이 즐비하다.
프랑스인들의 여유와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40만점의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
파리가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내부는 고대 그리스 로마관
그리스 미술 전시실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스의 승리의 여신상을 비롯한 대리석 또는 청동 조각들
보석 도자기등을 볼수 있었다
로마전시실에는 귀족들의 장례에 사용된 부부의 석관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청동관 금은 세공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고대동방 이슬람관에는 기원전 7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문명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서 볼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관 에는
드농관 쉴리관 이슬리 외관 등이 있었다
중세 예술이 숨쉬고 있는 이곳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의 문화 예술품들은 만나볼수 있었다 ,
고대동방 이슬람관에서
제일 눈에 들어오는 미술품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모나리자 미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과 비너스상이었다
한동안 모나리자 미소 그림 앞에서 서있었다 다행히 사진을 찍을수 있었다
파리의 개선문은 지름 240미터의 원형 광장에 서 있는 높이 50미터의 건축물로
나폴레옹이 1806년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착공되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프랑스 역사의 영광의 상징물인 개선문은 상제리제를 비롯한 12개 대로가
출발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1920년 이래로 1차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의 밑에
묻히게 되었고 매일 저녁 6시 30분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에펠탑
파리의 상징 에펠탑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를 위해 에펠이
설계하여 세운 기념탑이다.
매년 1억 5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에펠탑을 방문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소이다.
에펠탑에는 총 3개의 전망대가 있는데
제1전망대는 51미터, 제2전망대는 파리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제3전망재는 274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889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프랑스인들이 기금을 모아 세운 역사적 배경이 있다.
자국을 사랑하는 프랑스인의 힘이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지금도 이런 철강구조물을 예술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져 느낄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 많은 철을 녹여 예술적인 모양을 만들었을까
프랑스인의 창조력과 발전된 철강산업의 저력을 느낄수 있었다.
우리일행은 옵션으로 에펠탑에 오르게 되었다
조금 비싼 가격이었지만 무리를 해서 오르게 되었다
조금 떨렸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서다
막상 오르고 나니 너무도 잘왔다는 생각이었다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세느강이 흐르는 모습
가장 높은 곳에 이 탑을 세운이가 집무실로 사용했다는 곳 잘 보존되어있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무한성을 또 한번 느꼈다
저녁 10시가 되어 어둠이 내린탓에 에펠탑 정상에서의 파리 야경은
볼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에펠탑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는 너무 아름다웠다
총 3개층 321미터의 높이인 에펠탑은
밤에 조명을 받아 영공을 지나는 비행기안 창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조명을 뽑내고 있다고 한다
세느강 유람선
세느 강 유람선 중에서 가장 오래된 바토 무슈, 1000명이 탈 수 있다
꽁페랑스 항구에서 출발해 꽁고드광장-오르세미술관-뽕네프다리-시청사-노트르담 대성당
-아랍문화원, 자유의 여신상을 거쳐 에펠탑으로 다시 돌아온다.
세느 강 위의 선상 주택에서 살고있는 이 사람들이 파리의 원주민이고,
이들을 로마 시대에 빠리지라고 불렀으며 이 이름에서 오늘의 빠리 시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세느 강 안에 있는 시떼 섬에 노트르담 성당, 그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알렉산더 3세 다리, 세느 강의 다리중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며 1900년에 완공된 것으로
아르누보 스타일의 가로등이 참 예쁘다.
파리의 연인 드라마로 유명해진 다리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를 바라보며 세느 강에도 있고,
진짜 오리지날 자유의 여신상은 룩상부르 공원에 있다.
연인끼리 짙은 애정표현을 하면서
밀어를 나누고,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즐기며, 중후한 노신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친구들과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어 제끼는 모습들 그
리고 유람선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 그들이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워 보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군데 군데 샹송에 맞춰 댄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유람선이 통틀어 20개가 운행된다고 한다 1층 레스토랑으로 꾸며있고
거기서 식사를 즐기며 유람을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강 근처에는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긴다
한가롭게 진하게 포옹하고 키스하는 연인들의 자유스러움이 보인다
퐁네프 다리를 지날 때 에펠탑에 불빛이 들어오며 불쇼가 이어졌다
다들 박수를 치며 유람선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퐁네프 다리는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소설
퐁네프의 연인들이 소재로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짚시들 아니.. 지금 말하는 노숙자들 사이에 일어난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로도 나와 많은 호응을 받았던 소설의 배경지
그곳을 지날 때 주인공들이 생각났다
아직도 그곳엔 짚시들의 모습이 보였다
음악을 사랑하고 멋을 아는 민족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프랑스인들
패션감각이 뛰어난 나라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옷차림이 참으로 멋스럽다
9월2일 아침
몽마르뜨 언덕에 들렀다
길은 그다지 비좁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엔 많은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소매치기 조심 그래서 다들 허리춤을 움켜쥐고 올라갔다
테르트르광장, 샤크레퀘르 성당.
교회는 몽마르트르에 함께 위치하여 오래된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길과 로마교회모습,
계단 한켠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젤을 펴고 그림그리기에 열중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유화를 그리는 화가 저마다 그림그리기에 열중한 이름모를 화가들..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의 정체성을 함께 느낄수 있는 곳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오래전부터 우리들 에게 익숙한 이름의 언덕
그곳에서 사진을 몇장 찍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순교자를 묻던 곳이라고한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272년 성(聖)도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곳이며,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 성당은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로트레크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어
인상파·상징파·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으나, 20세기부터 점차 몽파르나스로 옮겨갔다.
그러나 언덕 위에 세워진 사크레쾨르 대성당(1910년 완성)은
순례지로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으며,
또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다.
그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아직도 가난한 화가들이 많이 찾아든다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와 공항으로 왔다
프랑크 푸르트로 가기 위해서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김밥을 먹었다
우리 집을 간다는 설레임에 다소 피곤한 몸이지만 즐거워진다
프랑크 푸르트를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50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잠을 청했지만 잠은 안온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를 서로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패키지 여행이라는게 쉽지는 않다
모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13일 동안 함께 한다는게 어려웠다
순간 순간 나타나는 사람들 모습 때문에 고달픈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를 성숙케하는 시간들이리라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직면해 보는 시간도 있었다
지나치는 모든 풍경들만큼이나 다양한 그들의 얼굴들을 지켜보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또 한번 실감했다
프랑크 프르트에 도착해선 옆 친구가
아직 선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있다해서
같이 쇼핑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눈을 감고 여정들을 뒤돌아보았다
이스라엘에서 느꼈던 순간 순간들의 정리된 감정들 경건한 모습들
거리들의 회색빛 느낌들 사막들 광야들
우리 인생에도 사막이 있고 광야가 있다 삶의 여정이 그 역사속에 있고
지리적인 요소속에 있었다
그 광야를 통과하면 푸른 초장이 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 요건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이스라엘에서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며 갈급한 심령을 느꼈고
로마에 가서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설명할수 없는 크고 거대함
인간의 능력들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로마를 거쳐 스위스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고
신이 주신 축복에 한없이 부러움을 느꼈다
풍족함과 젖이 꿀이 흐르는 땅 스위스
천연의 자연적 풍성함을 갖춘 곳
스위스에서 멈추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스위스를 떠나 프랑스로 가서 거기선 자유로움 그리고 약간의 거만함을 느꼈다
자신감이 넘치는 오만함도 느꼈다
곳곳에 우리들에게 알려진 명소들을 보는 즐거움도 커다랗게 남았다
이제 여행을 마치며 날개를 접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유럽 여행,,,,나에게 주어진 삶의 소중한 선물 ,, 일생에 커다란 추억한 웅큼 안고 왔다
인천 공항에 도착할때까지
나는 창밖을 주시하며 생각의 끈을 붙들고 있었다
2007. 9.3 12시 인천공항 도착
햇살이 밝다 눈부시다
새벽이 동트고 있다
몸은 무겁다 눈꺼풀도 아래로 내려온다
푸석해진 얼굴사이로 낙잋은 한국방송이 들려온다
1시간 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반가운 멧세지이다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모습이 있다
잠시나나 동거동락했던 일행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리라
인생의 한 정점에서 만나 정을 나눈 모두들
이제 떠나리라 각자의 집으로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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