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요엘의 성취가 사도행전의 오순절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까요?
“요엘의 예언은 이중적입니다.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증거로 요엘은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날에는 단지 15개국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실제로 만민에게 성령이 부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즉 오순절을 능가하는 더 큰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은 언제일까요? 그 날은 교회사의 중간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게 될 것입니다”(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pp.240~241).
변승우목사는 요엘의 예언이 오순절에 모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성취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데, 결론적으로 변목사는 자기 교회에서 대부흥과 대추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오순절 성령부음의 사건이 (1) 15개국 사람들에게만 부어주었다는 것과 (2) 마지막에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먼저 성경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행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1) 성경은 오순절의 성령부음을 요엘 선지자의 성취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 행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다른 번역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동번역]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 일에 대해서 예언자 요엘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KJV] But this is that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 Joel;
[NIV] No, this is what was spoken by the prophet Joel:
즉 “말씀하신”이라는 단어는 “흐레오”로서 분사 완료형으로 “말하다, 명령하다”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일은(this) 하나님이 요엘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이 일”은 앞의 오순절 성령부음의 사건에 대한 내용을 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 방언이 터지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여 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군중들에게 베드로가 하는 말입니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이 요엘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그 구약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변승우목사는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성경에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내용은 단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렇다면 본문의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이 어느 성경에 나타날까요?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즉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이 요엘선지자에게 이미 말씀하셨던 것의 성취이며,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그 성령이었습니다. 이것을 변승우목사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2) 변승우목사는 그 예언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증거가 15개 국가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아마 변목사는 문자적인 지명을 일일히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서 15개국이라고 하였던 것 같은데, 물론 그 지역 숫자도 정확한 15개국이 아니며, 단지 여러 지역의 명칭을 실제적인 예로서 열거한 것이며, 또한 변목사는 상당히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천사가 일일이 가르켜 주며, 성경해석의 다림줄을 갖고 있다는 변목사의 해석은 참으로 황당합니다.
혹시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을 국가로 계산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15개 국가가 되는지 한번 만나서 묻고 싶습니다,
행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행 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 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성경은 15개국이 아니라 천하각국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각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하각국”이라는 헬라어 본문은 변목사에게 헬라어 사전이 있다면 “하늘 아래의 모든 국가”라는 것을 확인하기 바랍니다. 변목사는 하늘 아래 15개 국가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헬라어 원문 : 파스(every) 에드노스(nation) 호 휘포(under) 호 우라노스(heaven)
또한 만인에게 성령을 부어준다는 것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성령을 부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소수의 사람에게만 성령을 주었습니다. 사사나 선지자, 왕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성령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부어준다는 것입니다. 15개국 사람에게만 부어주었으니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해석에 기가 막힙니다.
(3) 말세에
변승우목사는 “말세에” 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이 요엘의 예언은 종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사건이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졋으며 교회사 중간이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세에”라는 단어는 “에스카토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끝, 마지막”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나중, 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다음 성경의 예는, “에스카토스”가 “나중”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성경적인 증거입니다.
마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에스카토스)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에스카토스)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또 “에스카토스”는 마지막 종말적인 말세가 아니라, 예수님 당시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얼마든지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스카토스)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스카토스)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성령이 성경을 가르쳐주며, 천사가 가르쳐 주며, 성경해석의 다림줄을 갖고 있다는 변승우목사는 기껏 손가락으로 지역 명칭을 세어서 15개국이므로 만국이 아니라고 해석을 하는지요? 그것도 정확히 15개국이 아님을 스스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예언과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된 오순절의 성령부음 사건을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변승우목사의 해석에 참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한 황당한 성경해석을 하는 이유가, 큰믿음교회에서 보여주는 기적과 표적을 아마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예언적 성취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그러한 의도라면 사이비집단의 해석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는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