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깔고 나브랑납작하게 엎딘 마을로 들어서려면 신작로 입구 한쪽 모퉁이에 자리한 대낮에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상엿집을 지나야 했다
내 어릴적 기억으로는 산그늘을 등에 업고 골짝 어귀에 있었는데 언제 그곳으로 옮겼는지 어느해부턴가 낯선 집한채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상엿집을 지날때면 저승빛도 채 갚지 못한채 이승의 고된 삶을 접고 칠성판 걸머진 亡者의 저승길을 배웅하던 상여꾼들의 구슬픈 만가(輓歌)소리가 목줄기를 휘감는듯 서늘한 기분에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곤 했다
제방뚝 길게 늘어선 개울물 따라 세월도 함께 흐르고 뒷집 할머니 할아버지. 중풍으로 돌아가신 사촌 큰 아버지 큰 어머니.. 언제나 볼때기에 심술 한덩이 달고 다니던 작은 다리 건너 소장수집 할아버지가 차례로 꽃상여 타고 떠난후부터는 음습한 그곳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넓직하게 새로 만든 다리를 건너 동네에 들어서면 산기슭에 나직나직 엎드려 있던 농가들은 간데 없고 새로 지은 반듯한 양옥집들이 어색하게 화장한 촌색시처럼 논 밭 사이를 비집고 넓직하게 들어섰다
또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면 그때서야 빈 집 지키는 개짓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몇년전 궁색한 시골 살림 탈탈 털고 청소부를 한다는 아들을 따라 도회지로 떠난 명자네 집을 지나다 보면 잡풀 가득한 빈 뜨락으로 버스럭...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명자네집과 알콜쟁이 홍서방네 집을 거쳐 뼁끼칠로 어설프게 분단장한 고향집 대문앞이다
예전 동네 사람들의 시도때도 없는 마실과 6남매의 분주한 드나듬에 돌쩌귀에 불이 나던 대문은 빈 젖가슴 늘어뜨린 어미개만 어슬렁 거릴뿐 지나가는 사람은 커녕 그림자도 구경할수 없는 한적함에 옛날의 분주함을 짐작조차 할수 없으며 할일을 잃은 양철로 덧댄 대문은 햇볕에 제 몸을 뜨겁게 달구고 밭일 나간 안 주인이 돌아오면 환한 미소 묻힌 나붓한 얼굴로 반긴다
20년전 한 계절을 꼬박 질좋은 진흙에 볏집을 섞어 치대고 또 치대어 곱게 빚은 흙벽돌로 정성스레 지은 촌가의 이음새 성깃한 붉은색 스레이트 지붕위엔 거칠것 없이 내리쬐는 7월의 태양이 또르락... 따그락... 주머니속 유리구슬 부딪치듯 맑은 소리로 뒹굴며 한낮의 무료함을 달랜다
마당쇠 삼베 바지처럼 바람 구멍 숭숭한 담벼락을 돌다보면 이른 장마에 몽그라진 토담 귀퉁이로 멀대처럼 키 큰 빨간 다알리아가 흔들흔들 바람과 연애질을 하고 있다
사방 팔방 거칠것 없이 열어 젖힌 문으로 뒷산 타고 놀러온 실바람 게으른 동료들을 불러 모아 농번기철 바지런한 아낙네의 발걸음처럼 치마자락 팔랑이며 바쁘게 넘나들더니 토방집 사랑방엔 서늘한 바람이 든다
따르릉..따릉... 큼지막한 아라비아 숫자를 배꼽처럼 달고 있는 효도 전화기의 경쾌한 소리에 늘어지던 한낮의 적막이 파르르..긴장한다
자다가 떡 얻어 먹네그려... 승질 급한놈 지랄할까봐 얼른 손 바닥에 침발라 성긴 머리 쓱쓱 문질러 뒤로 넘기고 마루밑에 뒹구는 한짝은 보라...한쪽은 노란색, 짝짝이 쓰레빠 꿰어 신고 달려 갔더니 세 머스마 손에는 검정 비닐이 하나씩 들려 있다
"시커먼 봉지는 뭐야?"
"삼겹살이랑 두꺼비 댓병... 너 유식이놈 알지? 왜 있잖냐.. 키 작고 곱상하게 생긴놈.."
"알지~ 동네 반장이 갸도 모르면서 반장 노릇 하것냐?"
"허긴... 니가 모르는 놈이 어디 있을라구.. 그늠이 푸줏간 하는데 특별히 부탁한 생 삽겹살이여...꿔어 먹으면 맛 쥑인다~~~"
"그려? 그럼 오늘 삼겹살한테 함 죽어볼까~~"
동네 가운데를 끼고 산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는 예전엔 길이 좁아 겨우 한 사람이나 지나다닐 정도였지만 얄미운 애기씨 엉덩이만한 땅뙈기에 소출도 별로 없는 밭 농사를 짓는다고 경운기가 드나들다보니 소형차 한대 정도는 드나들만큼 넓혀져 있었다
빨간 프라이드는 햇빛에 그을린 시커먼 남자셋과 여자를 짐짝처럼 흔들며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산내길을 조심스럽게 기어 들어갔다..
길이 끊어지는 곳에 차를 세우고 물곬을 건너 좀더 깊숙히 들어가 자리를 펴고 잡추렴한 것들을 꺼내보니 시뻘건 삼겹살,상추,비린내가 날듯한 덜 익은 풋고추와 비닐 봉지에 담아온 고추장 된장...종이컵 등 오만것들이 다 있었다
골짜기에서 내부는 바람에 잡풀들이 나붓거리고 뜨거운 태양조차 눈치보는 서늘한 계곡에서 연기에 콜록 거리며 눈물 콧물 범벅으로 먹는 삼겹살은 환상이었다
방금 밭에서 따온 야들야들한 상추에 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겹 한점 척~~올려 놓고 시뻘건 시골 고추장 쓰윽 발라서 볼때기가 터지도록 한입 가득 넣으면 꼬돌거리며 씹히는 맛이란 둘이먹다가 누가 죽어도 모를맛이었다
두꺼비 한잔 꿀꺽하고 맵싸름한 풋고추나 솜솜한 솜털조차 벗겨지지 않은 오이를 쓱쓱 옷에 문질러 아작 베어물면 입안 가득 상큼함이 가득하다
흐~~~~ 누가 이 맛을 알리오...
한병..두병...세병...너댓병의 두꺼비가 작살나고...
아쉬움에 입맛 쩝쩝... 어느놈 승질이 제일 급한지 가늠하는데 그중 가장 순딩이인 삼식이가 개울에 어항을 놓았다며 뜀박질로 뛰어가더니 두꺼비 세병과 피래미 몇마리를 건져왔다
돌위에 구워먹는 물고기는 삽겹살과는 또 다른 맛으로 부드럽고 담백한... 한 마디로 최상의 맛이다
넷이서 얼마나 급히 먹었는지 이번에는 안주가 바닥났다 서로 눈치만 보다 결국 삼식이가 또 일어난다 녀석..하는 짓이 땀직하여 밉지가 않단말야..
셋중 가장 뺀질이인 오식이가 잠깐 집에 다녀 오겠다며 일어서니 젤로 시커먼 달식이하고 둘만 남았는데 어째 분위기가 요상타?
엎어지면 쌍코피 터질만큼 가까운 거리건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오지 않는 두녀석...
전화를 하니 한놈은 통화가 안되고 한놈은 술취해 집구석에서 퍼져 자고 있단다
에라이...좁쌀뱅이 같은 놈들...잘먹고 잘 살아라...
별 볼일 없어진 둘은 할수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차를 돌리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던 차가 운전수 술냄새에 맛이 갔는지 그만 풀구덩이 언덕 밑으로 꼬라박히고 말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무리 용을 써도 빨간 프라이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사람도 차도 한나절 뙤약볕에 다글다글 달구어져 뚜껑이 열릴 지경이였다
흐미~~ 사건은 사건이다 깊은 산골짝에서 남녀가 술냄새 풀풀 풍기며 버얼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으니 지나는 사람이라도 본다면 분명 야시꾸리한 소문이 온동네 짝자그르 퍼질텐데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아무리 용써봐야 도저히 안될것 같아 사람을 부르기로 하고 자꾸만 벗겨지는 쓰레빠를 손에 쥐고 늘쩡거리며 땡볕아래 벌거벗은 길을 걷자니 발바닥이 따끔거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까짓 발바닥이 대수겠는가?
"야! 띠발아 일어나!"
집에서 퍼져 자는 오식이놈 엉덩이를 걷어차 깨웠더니 비몽사몽이다 대충 설명하고 트랙터를 몰고 올라가라 이르고 집으로 들어와 쭉 뻣어 얼마를 잤는지 모르겠는데 꿈속에서 누군가 자꾸만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5살짜리 조카가 전화 받으라고 깨우는 것이었다
혹시나...싶어 내려앉는 눈꺼플을 까뒤집으며 전화를 받았더니 이런 떠그럴.... 이번에는 트렉터가 꼬랑창에 빠졌다는 것이 아닌가 해서 포크레인을 불렀는데 다른곳에서 작업중이라 저녁에야 도착한다고 안주는 필요없으니 두꺼비 두병만 가지고 오라는데 나도 술이 덜 깬 상태라 정신이 흔들거려 그곳까지 또 걸어가야할 생각을 하니 화딱지가 머리끝으로 슬슬 기어 올라온다
포크레인까지 등장??? 사건은 사건이구먼... 할수없지.. 어차피 공범이니 끝까정 함께 할수밖에...
두덜 두덜 올라 갔더니 세상에... 트렉터는 중간도 못 올라가 꼬랑창으로 큰 몸통을 옆으로 뉘운채 완벽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고 두놈은 두덩에 누운 소처럼 팔자 편한 모습으로 사이좋게 댓자로 누워 있더니 벌떡 일어나 술병을 나꿔채며 해벌죽거린다 좀전까지 금방 뒤집어질 것처럼 지랄하더니 사내놈이 뒤변덕스럽기는...쯧...
"안주도 같이 처먹어라"
조카들이 먹던 치킨을 빼앗다시피 가져온것을 건내주니 안주는 필요없단다
"니들 깡술 먹으면 몸 베린다 쪼금이라도 안주는 먹어야지"
웬개가 짖느냐는듯 들은척만척 병 나발을 불고 있다
"으구~ 무식한 인간들아.. 취해서 어뜨케 가려고 또 처먹냐? 근데 오식이는 멀쩡허네? 저 큰덩치랑 같이 넘어졌으면 충격으로 어디가 부러져도 부러졌을낀데.. ."
"내가 순발력이 좋잖냐~ 바퀴가 아래로 빠지는 순간 얼렁 뛰어 내렸지"
"허~~ 장허다..니 집에 가면 마눌한테 죽었다고 복창해야겄따?"
한참을 노닥거리고 있으려니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함께 포크레인이 보무도 당당하게 풀숲을 헤치며 들어오더니 체머리 흔들듯 앞머리를 방정맞게 흔들며 길을 만들고 있었다
와~~~ 대단하군... 좁은 길이 금방 대로로 변하다니...
그런데... 그런데 말이유...
길도 없는 산골짜기로 덜덜 거리며 트렉터가 들어가고 포크레인이 또 들어가니 노다지 금광이라도 발견했는줄 알고 동네 사람들이 줄줄이 골짜기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난감할수가...
그런데... 또 그런데 말이유... 동네 사람들틈 중간에 뒷짐지고 올라오시는 저분은...바로 아버지가 아니신가?
흐윽... 클랐다.. 진짜 클랐다 숨을곳도 없고..어쩌지??
"니가 여긴 웬일이냐?"
"네...친구들이랑 계곡으로 놀러왔다가 갸들이 술이 취해서... 운전을 제대로 못해서...고랑창에 빠져가지구...할수없이...어쩌구...저쩌구..."
히유... 등줄기로 흐르는 땀은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국 동네사람들 구경하는 가운데 트렉터가 일어나고 빨간 프라이드가 들려 나오고...
그후... 소문?? 나도 모른다 왜냐면....휴가 끝나고 서울로 귀가할 동안 귀 막고 다녔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넓혀진 골짝길은 아마도 그때 포크레인이 만들은 바로 그 길이라지?
그때 사건은 지금도 가끔씩 심심하면 입살에 오르 내리는 훌륭한 안주감으로 씹히고 있음이니...오호...애재라...
첫댓글 재밌는 추억이네요
추억의 창고를 열면 각각의 보석들이 반짝반짝~~ 그래서 저는 마음이 부자랍니다~ㅎㅎ
같은 시골뜨기로서 공감!! 시인? 수필가? 어느쪽을 택해야.......할듯. 신춘문예 당선작 꼭 살펴보겠슴다
미역국은 좋아하지만 미끄럼틀은 어지러워서 싫어해요 예전엔 욕심을 부렸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가는대로 쓰고싶으면 쓰고 말고싶으면 말고~~ ㅎㅎㅎ
아... 길다~~~ 글재주도 좋으십니다... 근데 순딩이, 삼식이는 카페에서 자주 뵌 분들이네요... 그럼 이분들이???
ㅋㅋ~등장 인물의 실명을 바꿔서 쓰다보니 어케 그렇게되었네요
갈매기님 말씀 따라 수필가로 등단 하셔야 겟습니다^^ 글솜씨 까정이리 좋으심 질투 나는디요^^ 지도 시골 촌놈이라서 더욱 점감이 갑니다^^* 좋은글 잼나게 단슴에 읽었답니다^^
이런 자작글은 명품자작글 장작글^^
ㅎㅎㅎ너 댓병의 두꺼비까정 작살 내시고도 아쉴 정도면.........
오리지날 촌에서 자란지라 정겹게 느껴지네요 상엿집도 이젠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지고... 그렇치만 추억은 어디갈려구요.. 간만에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였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진짜 재미나게 사시나봐요 ㅎㅎㅎ글을 재미나게 쓰셔서 정감이 넘치네요 ㅎㅎㅎ
시골의 추억이 없는 저는 부럽기만합니다 ~~~ 수필가수준 이시네~
흐흐흐^^ 가지가지를 합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읽고 댓글 역시 송화님은 멋진인생 사셔요 여자대장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