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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 - 산과 바다, 호수가 함께 어우러지며 빚어낸 풍광이 일품
강원도 백두대간의 동쪽 영동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바다가 있고 서쪽에는 평창군과 정선군이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동해시, 북쪽에는 양양군이 인접해 있다. 우수한 문화 사적지와 천혜의 관광자원이 풍부한 관광도시로서 고도의 멋과 전통이 살아있는 예향의 도시이다.
강릉 문화관광 https://tour.gangneung.go.kr/Tours/main.jsp
한국재발견
그곳에 가고 싶다(소금강, 경포호, 선교장, 대관령)
풍경이 있는 여행(대관령 옛길, 경포대, 선교장, 참소리박물관, 오죽헌, 허난설헌, 초당두부)
한국의 미 - 강릉(신사임당-오죽헌, 허난설헌-초당마을)
한국인의 밥상(강릉 초당두부)
강릉8경
강릉 오죽헌(烏竹軒) → 강릉 경포대(鏡浦臺) → 강릉 단오제 → 소금강 → 정동진역 → 선교장 → 대관령자연휴양림 → 경포도립공원
경포팔경
1.녹두일출(綠荳日出) 2.죽도명월(竹島明月) 3.강문어화(江門漁火) 4.초당취연(草堂炊煙) 5.홍장야우(紅粧夜雨) 6.증봉낙조(甑峯落照) 7.환선취적(喚仙吹笛) 8.한송모종(寒松暮鍾)
강릉 굴산사지[江陵掘山寺址] 구정면 학산리 597번지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 강릉팔경 ) http://www.danojefestival.or.kr/
문화재청 한국의 무형유산 강릉단오제 http://www.cha.go.kr/html/heritage/heritage_play17.html
강릉단오제영상 http://www.danojefestival.or.kr/
범일국사(국사성황)이야기, 신주빚기, 국사성황행차
강릉에서 해마다 단오를 중심으로 열리는 전통축제. 지역주민들이 대관령 국사성황과 대관령 국사여성황, 대관령 산신을 모시고 제의를 지낸 후 다채로운 단오명절을 즐기면서 공동체의식을 강화했다.
단오를 중심으로 8일간(본행사)의 축제,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신과 인간의 소통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생을 위한 휴먼드라마이다.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국사성황을 비롯해 대관령 산신과 대관령 국사여성황을 신앙대상으로 하고 유교식 제례, 무당굿, 탈놀음과 더불어 단오민속과 놀이 및 난장이 어우러진 행사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주빚기를 시작으로 4월 보름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시고 내려오는 행사, 5월 3일부터 7일까지 남대천에서 하는 본격적인 단오제로 구성된다.
단오(端午)의 단 자는 처음이라는 뜻이며, 오자는 다섯 오자와 발음이 같으므로 단오라고 하면 초닷새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단오(5월 5일)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맡기 전의 초여름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단오는 수릿날, 천중일, 단양이라고도 합니다. 설,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1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하죠.
강릉단오제는 1967년 1월1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고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명실 공히 인류가 보존하고 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 된 것이다. <단오문화관>
제의의 명칭과 시기
신주근양(神酒) - 대관령산신제 - 대관령국사성황제 -봉안제(奉安祭) - 영신제(迎神祭) -조전제(朝奠祭) - 송신제(送神祭)
대관령 성황사 및 산신각
대관령 성황사는 국사성황당(國師城隍堂)이라고도 하는데, 강릉의 향토와 관계가 깊은 범일국사(泛日國師)를 모시고 있다. 김유신 장군은 대관령 산신으로 대관령 산신각에 봉안되어 있다
강릉단오제 범일국사(국사성황)이야기
또한 마을의 북쪽에 있는 굴산사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석당간(石幢竿)이라고 한다. 하늘의 신령스런 해가 우물로 내려와서 사람으로 태어났고, 죽어서는 성황신이 되어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으로 자리 잡았다는 범일국사. <범일국사 문화축제>
강릉 망월제[江陵望月祭]
쥐불놀이(사진) 이날 불을 놓으면 모든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하여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달집태우기(사진) 달맞이할 때 주위를 밝게 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짚 ·솔가지 ·땔감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에 문을 내서 만든 것을 달집이라 한다.
강릉 소금강(강릉팔경)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형상이라 하여 ‘청학산’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율곡 이이가 강릉에 머무는 동안 금강산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산세라 칭하며 ‘유청학산기’를 남겼을 정도로 천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1970년 명승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
강릉 소금강 청학제(靑鶴祭) 소금강(小金剛) 지역에서 매년 10월 둘째 주말에 열린다. 축제는 1975년에 소금강이 오대산국립공원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례를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강릉시립박물관
시립박물관 역사문화관과 향토민속관이 있다. 이곳은 대현 율곡 이이선생님과 신사임당의 유훈을 전승하고, 전통문화 계승과 시민의 정서함양을 위해 영동지방의 향토 사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강릉시립박물관은 지난 1992년 11월 15일 개관하여 그 후 1998년 오죽헌과 통합하고 2002년 대관령박물관을 흡수하면서 규모가 더욱 확대되어 오죽헌의 역사성과 박물관의 사회 교육적 성격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릉 한송정[寒松亭]
경포 8경 중 제1경 녹두일출(綠荳日出) 녹두정에서 동해 바다를 뚫고 솟아 오르는 아침해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을 말한다
경포 8경 중 제8경 한송모종(寒松暮鍾) 한송정은 지금의 비행장 동쪽에 있다. 신라불교의 중흥기에 한송정에서 해질 무렵 치는 종소리가 경포호의 잔물결을 타고 신선이 놀던 경포대까지 은은히 들려오던 옛 정치를 회상한 것이다.
강릉향교
강릉향교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사성(四聖)·십철(十哲)·육현(六賢)을 봉안한 대성전(大成殿 보물 제214호)과 우리나라의 18선현(先賢)과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를 봉안한 동무, 서무가 있고, 강론을 하던 명륜당과 학생들이 기숙을 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다.
강릉 해운정[海雲亭]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해운정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이 별당 건축은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이 1530년(중종 25)에 강원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 한다.
객사문(客事門) [국보 제51호]
객사는 옛날 중앙에서 오는 관리나 내빈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시설이다. 강릉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세워진 목조건물. 처음 지어질 당시, 객사의 이름은 임영관이었다. 지금의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 가는 길에 들러서 쓴 친필이다
경포도립공원(강릉팔경)
경포대(鏡浦臺 강릉팔경 )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경포대(鏡浦臺)라는 것은 ‘여름밤의 밝은 달과 담소의 맑은 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경포호를 배경으로 한 관동8경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경포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경포대 벚꽃축제>
경포호(鏡浦湖) 수면이 거울과 같이 청정하다
옛날 이곳에 모녀(母女)가 살았는데 하루는 노승이 시주를 청하니 철이 없고 성질이 괄괄한 딸이 인분을 떠서 노승이 들고 있는 쪽박에 던졌다. 노승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돌아섰는데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허겁지겁 노승을 쫓아가 딸의 무례함을 사과했더니 『너의 집 문 앞에 키가 넘도록 물이 차리라 어서 몸을 피하여라』라는 말을 남기고 노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해질 무렵이 되니 노승의 말대로 명주도읍지의 일부가 물바다로 변하면서 많은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물을 피하여 달아나던 어머니가 문득 집에 있는 딸 생각이 나서 물을 헤쳐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몸이 굳어 만들어진 애미바위가 호수 한 가운데 있다. 그의 집터는 호수로, 최부자집 창고 쌀은 적곡((積穀)조개로 변했다는 전설. 지금도 경포호에는 조개가 많이 나는데, 이 조개는 신비한 면이 있어, 흉년이 든 해면 조개가 더욱 많이 나고, 풍년이 들면 적게 난다 한다. 맛이 달고 향긋하여 흉년이 든 해면 이 지방 민초들이 기근을 이기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힌다.
경포호는 호수 주위의 오래 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유명하다. <경포해돋이축제>
경포호수 가운데 바위섬이 있고, 그 바위섬 위에 작은 정자(月波亭 월파정이란 이름은 경포호에 비친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것에 비유하여 지어 졌다)가 하나 있습니다. 이 바위는 각종 철새들이 찾아와 노는 곳으로 '새바위'라고 하며,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鳥岩) '이란 글씨가 남아 있다.
대관령[大關嶺]
횡계~강릉 구간 고속국도 50호선 영동고속도로가 2006년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길이다.
기존의 구불구불한 대관령 구간을 직선화함으로서 통행시간을 크게 단축시켰으며, 겨울철 대관령의 고질적인 폭설에 대비하기 위하여 첨단 제설시스템을 설치한 고속도로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개장한 대관령자연휴양림(강릉팔경)이 있다(1989)
대관령 옛길(명승74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http://www.tagstory.com/video/100054326
대관령 옛길은 겨우 한 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조선 중종 때 강원도 관찰사로 온 고형산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지금처럼 널찍하게 길을 닦았다고 한다. 강릉에 살던 율곡 이이는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곶감 100개를 챙겨 대관령 옛길을 지났다. 굽이를 넘으며 힘들 때마다 곶감을 한 개씩 먹었는데 대관령을 다 넘고 보니 딱 한 개가 남았다 하여 대관령을 아흔아홉 굽이라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는 사친시를 이 대관령 옛길에서 지었다
강릉의 문턱인 대관령은 큰 고개라는 이름처럼 옛날에는 힘들게 넘어야 하는 곳이었다. 지대가 험난해 대굴대굴 구른다 하여 ‘대굴령’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고 한다
대관령박물관 성산면 어흘리 374-3번지
전시관은 전통적 사방을 상징하는 좌 청룡, 우 백호, 북 현무, 남 주작의 4개 전시실과 토기실 및 민속품이 전시된 우리방의 2개 전시실을 포함한 총 6개의 전시공간이 있으며 방마다 특정적인 장식과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기 시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총 2,000여점의 유물이 관람하기에 편리한 동선구조와 더불어 전시되어 있다,
대현율곡이이선생제[大賢栗谷李珥先生祭]
‘제49회 대현율곡이이선생제’가 25일 오후 6시 강원 강릉 오죽헌 문성사에서 서제를 시작으로 26일 오전 10시에는 본제가 거행되며 다양한 문예행사와 경축행사가 이어진다.
율곡학국제학술강연회와 전국율곡사상선양웅변대회, 백일장 등을 개최하는 것을 비롯해 올해 율곡제 기간 동안 휘호대회, 율곡사상선양강연회, 한시백일장 시상 등 다채로운 문예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옛 강릉시청∼오거리∼강릉역에 이르는 시가지 일원에서는 ‘율곡선생 장원급제 삼일유가행렬 재현행사’가 펼쳐져 향토 선현의 정신을 이어받고 문향 강릉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게 된다.
삼일유가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고향에 돌아와 사흘동안 시관과 선배, 친척 등을 방문하는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지난 2006년 처음 재현된 이후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율곡선생은 과거에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했다고 하여 ‘구도장원공’으로 추앙받고 있어 삼일유가 행렬의 의의를 더하고 있다.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
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 하여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삼경(三更 밤11시~01시)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빨리 급제한다고 해서 붙였다고도 한다. 고려 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다.
첫째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렀다는 설이며, 둘째와 셋째는 왕실에서 폐사시켰다는 설이다. 왕실에서 폐사시킨 이유 중 하나는 안질에 고생하던 어느 왕이 한 점술가의 말을 믿고 폐사시켰다고 한다.
그 점술가는 왕의 병이 정동쪽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들어가 용왕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절이 서울의 정동쪽에 있어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늘 먼저 받으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주장에 따라 폐사시켰다고 한다. 1956년 경덕(景德)이 중창한 뒤 관세음보살이 늘 머무는 곳이라 해서 절 이름을 낙가사로 바꾸고, 옛 이름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고도 부르기 시작하였다.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운정동 288-1
김시습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강릉시 성산면 청간사(淸簡祠), 기념관 바로 뒤편에 있는 창덕사(彰德祠)와 함께 강릉에서 김시습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 강릉 경포대 선교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자료의 수집·보존·관린 및 전시와 관련된 대국민 교육 실시·자료 홍보와 각종 간행물의 제작 및 배포의 기본적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한편, 매월당의 문학사상을 통한 절의정신을 계승한 수많은 의병 순절 독립운동 우리 7천만 겨레의 절의의 전당입니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이 일로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한 김주원은 명주(暝州:강릉)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동해안 일대의 강릉·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 등을 식읍(食邑)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그후 김주원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강릉김씨의 효시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묘는 실전(失傳) 되었고 현재 전해지는 것은 조선 명종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손 김첨경에 의해 다시 복원된 것이다.
보현사[普賢寺]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多包)집이다. 법당 내에는 토제(土製)의 3존불이 봉안되었는데 근년에 도금을 다시 하였다. 또 이 절 경내에는 보물 제191호로 지정된 보현사 낭원대사오진탑(朗圓大師悟眞塔)과 보물 제192호로 지정된 낭원대사오진탑비가 있다. 대관령 휴양림 성산에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가 수월하다.
선교장[船橋莊 강릉팔경] http://www.knsgj.net/
플래시 애니메이션 http://www.knsgj.net/data/data4.php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며 10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예전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명명되었다(옛 지명은배다리)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대서 옛날에는 선교장을 ‘배다리집’으로 불렀습니다. 선교장 터는 하늘이 족제비 떼를 통하여 점지했다는 명당이다. 선교장의 행랑채는 길이가 매우 길어서(23칸에 방이 20개), 마치 사람이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랍니다. '줄행랑'이란 용어가 이곳 행랑채에서 생겼다는 설도 있다
선교유거(仙嶠幽居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幽) 집)라는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은 남자와 손님이 출입하는 이 집의 공식 대문이고, 솟을대문이 없는 오른쪽의 평대문은 여자와 가족이 출입하는 대문이라고 합니다.
건물 앞 동판(銅板)을 너와처럼 이은 차양(遮陽)시설을 두어 햇빛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채양시설은 조선말기 러시아식의 건축물로 러시아공사관이 묵어갔던 공사관이 답례로 지어준 러시아식 테라스가 있다. 직사각형의 댓돌은 궁궐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활래정 연못에 복원된 목교가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목교는 활래정 옆 연못 내 작은 섬과 마당을 이어주는 다리로 6·25전쟁 직후까지는 남아 있었지만 이후 망가져 철거됐다
소돌해변 스카이어촌체험(아라나비) 주문진읍 800-6번지 (소돌해변)
소돌마을 http://www.ktv.go.kr/vodplayer.jsp?cid=365632
세계최고의 안전시스템으로 구축한 대한민국 토종 브랜드이다. 특허실용신안을 출원한 2건의 안전시스템과 교통안전공단의 시설 안전검사를 합격하였다.
아라나비 소돌점이 위치한 소돌항에는 아들바위공원과 자연산함지박회센타가 있고 주문진해수욕장이 위치해 있으며, 주문진항과 5분거리에 있다.
송담서원[松潭書院]
신사임당[申師任堂]
아들바위공원
이 공원이 있는 마을이 소돌(牛岩)인데, 마을의 전체적인 형국이 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소돌의 상징은 아들바위공원에 있는 소바위이다. 검고 각진 바위의 모양이 거대하고 힘이 센 수소와 닮았다. 이런 여러 형상의 바위들을 구경할 수 있는 아들바위공원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돌로 다리를 연결해놓아 바위의 생김새를 살펴보며 이 바위 저 바위 건너다니는 재미가 있다.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인사구(강릉시 강동면 하시동)
곰솔식재림과 갯매꽃군락이 발달하고, 해란초 등 25과 56속 62종류의 식물이 분포한다. 멸종위기 야생동물로는 1급종인 수달과 2급종인 삵, 물수리등 3종과 큰집게벌레, 모래거저리 등 사구성 곤충 7종 등 총 239종의 야생동물이 서식 또는 도래하는 지역으로 동해안 경관변화와 해수면의 변동기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고, 자연생태계도 우수하며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노선이다.
주변에 하시동 고분군(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 풍호리는 호수를 끼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얕은 언덕에 위치한 무덤이다. 구조와 유물을 종합해 볼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죽헌[烏竹軒 강릉팔경]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문성사(文成祠) 율곡선생의 시호(諡號)인 '문성'(文成)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율곡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어제각이 있었으나 어제각을 북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였다. 문성사 현판은 박정희대통령 글씨이다. 문성(文成)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율곡기념관 사임당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딸 매창, 셋째 아들 율곡 이이, 넷째 아들 옥산(玉山) 이우(李瑀)는 학문적, 예술적으로 성취를 이룬 인물들이다. 율곡기념관에는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이 전시돼 있다.
어제각(御製閣)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율곡 이이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를 소장하라고 정조가 지어 준 것이다. 벼루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쓰던 것으로, 1788년(정조 12)에 정조가 이이의 유품이 강릉에 있다는 말을 듣고 가져오게 하여 보고 어제어필(御製御筆)한 것을 새긴 것이다. 토지양여서는 1579년(선조 12) 이이가 해주 석담에 있을 때 친필로 작성한 문서로 그의 소유 토지를 이종(姨從)인 권처균(權處均)에게 양여한다는 내용이다.
오죽헌⋅박물관
이곳은 대현 율곡 이이선생님과 신사임당의 유훈을 전승하고, 전통문화 계승과 시민의 정서함양을 위해 영동지방의 향토 사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율곡(栗谷)이란 "밤나무골"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율곡이 어릴 때 어떤 도인이 나타나 율곡을 위해 밤나무를 천 그루인가 심어 잘 가꾸어 내가 세었을 때 수가 맞지 않으면 이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는데 이에 율곡의 부모가 천 그루를 잘 기르던 중 확인하던 그날 한그루가 부족했는데 옆에 있던 웬 나무가 "나도 밤나무요" 라고 외쳐 하늘의 뜻이라 느낀 그가 호랑이로 변해 사라졌다고 하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호를 율곡 이라 지었다.
임영관지[臨瀛館址] 용강동 58-1 강릉부(江陵府)의 객사(客舍)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가 묵었던 장소로 조선시대에는 객사의 건물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전대청(殿大廳)에는 왕의 전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던 곳이며, 사신 및 외관이 왕에게 글을 올리거나, 왕이 내리는 향을 맞이하는 의식, 관찰사 순행시 지방관이 연명(延命) 등을 행하였던 곳으로서 우측의 동대청(동대청은 문무 구별 없이 정2품 이상의 고위 관리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과 좌측의 서헌(서헌은 정 3품의 관리들이 묵던 숙소)에 비해 지붕이 한단 높게 지어졌다.
공민왕의 친필로 전하는 임영관 현판이 임영관의 철거시 객사문에 걸었던 것을 2006년 10월 임영관 복원 준공 후 본래의 위치인 전대청에 옮겨 걸었다
정동진[正東津]
정동진역은 1994년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잘 알려지자 청량리역에서 해돋이열차가 운행되면서 유명한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인근에 정동진, 등명 등 소규모 해수욕장과 모래시계공원, 정동진조각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매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모래시계 공원에서는 모래시계 회전행사와 해돋이 행사를 하고 있다.
<정동진역 해돋이 - 강릉팔경>
정동진 해안단구[海岸段丘]
해안단구는 해안 연변을 따라 분포하는 대지상(臺地狀) 또는 계단상(階段狀)의 지형으로, 대체로 표면이 평탄하고 주위가 급사면이나 절벽으로 끊긴 계단의 형태로 발달한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강동면 정동진리의 안인해수욕장에서 옥계면 금진리의 옥계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해안단구이다.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 초인 200만~250만 년 전 지반의 융기작용에 따라 해수면이 80m 정도 후퇴하면서 바다 밑에 퇴적되어 있던 해저지형이 지금과 같은 위치로 육지화되었다.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해수면에 내려가게 되면 계단모양의 언덕으로 육지화 됩니다.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물속에 잠기지 않고 계단모양으로 계속 남게 됩니다. 이것이 해안단구입니다.
정동진 헌화로(獻花路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1996년 3월에 강동면 심곡리~옥계면 금진리을 잇는 해안도로가 강릉시에 의해서 개설된다.
주문진항[注文津港]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항구
주문진해변[注文津海濱]관광지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413177
1982년 강릉시 송정동에서 손성목(설립자) 관장이 “참소리 방”으로 설립된 이래 약3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주요 소장품은 뮤직박스, 축음기, 라디오, TV, 자동차, 에디슨의 발명품 등 5,000여점으로 소장품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의 사립박물관이다.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은 13,220여평방미터 규모로 전시품의 성격에 따라 4개의 독립 전시관과 330여평방미터 규모의 전용 음악 감상실이 있으며 3층에는 경포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에디슨사이언스뮤지엄은 1,2층으로 되어 있으며 에디슨 발명품, 유품, 생활용품 등 에디슨의 발명품이 3개의 전시관에 있다.
이곳에 전시된 기기들은 생생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98%나 되며 아메리칸 포노그래프(전세계 6대 중 유일하게 현존)와 같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기기도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베어드의 30라인 텔레비전)을 비롯하여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인 유성기 1호(틴호일:1877년)부터 오늘날의 오디오까지 세계 오디오의 발전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당두부(마을)
16세기 중엽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 ~ 1580)이 삼척부사(정3품, 오늘의 시장)로 있을 때였다. 당시 관청 앞마당에 샘물이 있었는데 물맛 좋기로 이름이 나서 이 물로 두부를 만들고 바닷물로 간을 맞췄다.
갈아진 콩을 올이 촘촘한 천으로 걸러 콩물만 빼낸 다음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로 끓이면서 젓는다. 두부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불을 지피는 과정에서 불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과 간수 맞추기이다. 간수가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순두부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딱딱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수는 바닷물을 미리 떠다가 불순물을 가라앉힌 다음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두부였기에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자 허엽은 자신의 호를 따서 "초당두부"라 이름을 붙여 이 두부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 샘물이 있던 자리는 강릉시 초당동이며, 그 곳에는 지금도 허엽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조선의 사대부가 두부 만드는 '잡일'을 하였을 것이라는 발상은 무리가 있다. 초당동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전쟁 중 두부를 쑤어 시장에 내다파는 집이 한두 집 생겼는데, 전쟁 후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가정 경제를 이끌기 위해 아녀자들이 밤새 두부를 만들어 대야에 이고 강릉 시내에 나가 팔았던 것이 차츰 이름을 얻어 지금의 유명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맞다.
강릉 초당의 바닷물은 농축 없이도 콩물을 두부로 굳힐 수 있을 정도로 마그네슘과 칼슘이 많다는 의미이다.
원조집은 초당할머니순두부. 위치: 허균 생가 가는 길 초당골 순두부촌 033-652-2058
원조 옛날집 초당순두부 120년(1박2일팀 촬영).
칠사당[七事堂] 명주동 38-1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32년(인조 10)년과 1726년(영조 2)에 크게 중수하였다. 1866년(고종 3)에 진위병의 영(營)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소실되어 강릉부사 조명하가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있었고 뒤에 강릉군수의 관사로 쓰이다가 6·25전쟁때 민사원조단에서 임시로 사용하였고,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었다. 강릉단오제위원회 음력 4월 5일 옛날 관청이었던 칠사당에서 신주빚기행사가 이루어진다. 강릉시장으로부터 쌀과 누룩을 받아 단오술을 빚는다.
통일공원 안보전시관
통일공원은 청정한 동해바다와 해안의 수려한 경관, 해돋이등 눈요기 거리와 통일.안보교육장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레저관광의 명소로 각광받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슬라아트월드[Haslla Art World] http://www.haslla.kr/
"소나무 정원" "시간의 광장" "습지 정원" "논밭 정원" "바다의 정원" "놀이정원"의 테마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비탈면과 산의 높이를 그대로 이용하여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며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각도로 길을 내고 예술정원을 꾸몄다.
허난설헌생가 터
도문대작[屠門大嚼] 1611년(광해군 3) 허균(許筠:1569~1618)이 전국 8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 《도문대작》이라는 제목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으므로 도문(도살장의 문)이나 바라보고 대작(질겅질겅 씹는다)하며 자위한다는 것으로, 가당치 아니한 것을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천년의 밥상 -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품평서: 허균의 <도문대작> 中 방풍죽
http://home.ebs.co.kr/reViewLink.jsp?command=vod&client_id=ebscampaign&menu_seq=5&enc_seq=3103667
홍장암(紅粧岩)|
경포 8경 중 제5경 홍장야우(紅粧夜雨) 홍장암에서 안개 낀 비오는 날 밤이면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한다. 꽃배에 임을 싣고 가야금에 흥을 돋우며 술 한잔 기울이던 옛 선조들의 풍류정신을 회상하기 위한 기념으로서의 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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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맛집
강릉 맛집 감자 옹심이 강원도 정선군·영월군 등지에서 시작된 요리다. 감자를 갈아 물기를 꼭 짜낸 뒤 가라앉은 녹말가루와 섞어 새알처럼 작고 둥글게 빚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끓는 육수에 넣어 끓이면 완성된다.
강릉 맛집 서지초가뜰 서지(鼠池)'는 쥐가 곡식을 보관하는 형상(모양)을 일컫는 말. TV에도 많이 나오고 서지초가뜰은 배용준의 여행안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소개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강릉 커피 축제 강릉시는 안목해변과 사천해변 등 강릉지역 커피명소 5~6곳을 중심으로 한 제1회 강릉커피축제를 개최했다(2009년)
강릉해살이마을 개두릅축제 4월말 개두릅이 채취되는 시기에 행사가 개최되는 개두릅 축제는 음(엄)나무의 순인 개두릅을 테마로 하여 개두릅 따기, 개두릅음식, 문설주만들기 체험등 다양한 체험들을 해살이마당에서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경포 8경 중 제2경 죽도명월(竹島明月) 호수 동쪽에 있는 섬모양의 작은 산으로서 산죽이 무성하여 죽도라고 불렸는데 현 현대호텔자리이다. 동쪽 수평선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의 달빛이 죽도의 대나무 사이를 뚫어 그 빛이 호수에 비칠 때 일어나는 그림같은 장관을 죽도명월이라 하였다
경포 8경 중 제3경 강문어화(江門漁火) 강문은 경포대에서 동쪽 호수 하구에 있는 곳으로서 호수와 바다를 상통교류 하므로 강문이라고 했다. 오징어 잡는 고깃배의 불빛이 마치 항구의 불빛처럼 휘황찬란하게 보이는데, 그 빛이 바다와 호수에 영도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경포 8경 중 제4경 초당취연(草堂炊煙) 초당은 호수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세가 호수와 바다보다 낮은 듯 보인다. 해가 서산마루 시루봉에 기울어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데 이 때 가가호호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노을에 물들어 평화로운 농촌을 연상케 하는데 그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경포 8경 중 제6경 증봉낙조(甑峰落照) 해가 서산마루에 기울어질 무렵이면 채운이 시루봉(경포대 북쪽에 있으며, 그 생긴 봉우리 모양이 시루와 비슷하다) 북쪽 봉우리에서 경포 호수에 반영되는 일몰의 낙조가 잔물결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경포 8경 중 제7경 환선취적(喚仙吹笛) 신선경인 듯 하면서도, 속세를 떠난 속세인 듯 하면서도 신선경으로 생각되는 곳에 옛신선들이 바둑 놓고 피리불며 즐기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을 말한다.
남대천[南大川] 강릉시 남쪽에 있는 강으로 대관령과 삽당령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성산면 오봉에서 합쳐져 강릉시를 지나 동해로 들어간다. 한국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장소로서 10월 말~11월 초순 사이에 남대천 둔치와 부대행사장에서 매년 연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천년의 밥상] 제22편 송강 정철을 감탄케 한 강원도의 맛: 꾹저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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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은 1580년. 나이 마흔 다섯 되던 해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고, 그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겠다는 다짐으로 오른 강원도 800리 순방길은 고스란히 <관동별곡>이란 가사문학으로 탄생된다.
그리고 그가 내금강을 거쳐 강릉에 다다랐을 때, 거센 파도로 출어(出漁)를 하지 못한 백성들은 그에게 대접할 음식을 구하지 못해 고심하다 강릉 연곡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그에게 끓여 대접한다. 그 맛에 감탄한 정철은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지만, 저구새(물수리)가 ‘꾹’ 집어먹는 고기라는 말만을 듣게 된다.
이에 정철은 그 자리에서 물고기의 이름을 ‘꾹저구’라 지었으며, 그 일화는 지금도 강릉지방에 전해져 내려온다. 이후 이곳을 지나는 묵객(墨客)과 선비들이 꼭 한 번씩은 찾는 별미가 되었다는 ‘꾹저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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