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오행 중 물(水)에 해당하는 임(壬)과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흙(土)에 해당하는 진(辰)이 합쳐진 해로, 2012년 올해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게 결코 쉽지 않은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진년(壬辰年)의 기운 자체가 축축한 진흙탕과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깊은 바닷물 속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辰) 속에 희망을 상징하는 나무(乙木)의 기운이 싹트고 있어 일말의 긍정적 전망을 품어볼만 하다는 점이다.
12地支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진(辰)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상서롭다는 ‘전설의 동물’ 용(龍)을 가리킨다. 예로부터 용은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다 하여 왕이나 우두머리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12지지에 등장하는 12개 동물의 합산물인 용의 용모를 우리는 실물이 아닌 그림을 통해 많이 보아왔다. 특별히 올해는 ‘흑룡(黑龍)’의 해다. 용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통상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동쪽의 木局을 상징하는 청룡靑龍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의 이미지와 가장 가깝고 친근하다. 바다와 날씨를 다스리는 청룡은 오랜 수행의 결과물인 여의주를 지니고 있다. 유일하게 번식을 하는 용으로 아들 응룡을 키우다가 그 아들이 청룡이 되면 일선에서 물러난다.
서쪽의 金局을 상징하는 백룡白龍은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용이며, 남쪽의 火局을 상징하는 적룡赤龍 또는 화룡火龍은 불을 다스린다. 풍룡風龍은 바람을 다스리며, 응룡應龍은 어린 용으로 하늘을 날며 비를 관장하는데 이 응룡이 1000년 동안 수련을 쌓으면 청룡靑龍 혹은 지룡地龍이 된다고 한다.
지룡은 지맥을 지키는 용이다. 날아다니는 능력을 잃어버린 이 지룡은 자신의 영역에 사는 생물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 그리고 9000년간 수련을 쌓으면 하늘로 올라가 황룡(黃龍)이 된다고 한다. 중용中庸을 나타내는 황룡은 용들 중 가장 강력하며 신적인 존재로서 황제를 상징한다.
반면 아직 승천하지 못한 용은 반룡(蟠龍), 하늘에 오르기 전에 숨어있는 용은 잠룡(潛龍)이라고 한다. 세간에서는 대권에 도전하는 예비 주자들을 잠룡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水局의 상징으로서 올해의 주인공인 흑룡黑龍은 어떤 존재인가. ‘북방의 어둠을 다스리는’ 용이다. 오행에서 검은색은 ‘지혜’와 ‘고귀함’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가 덧입혀져 2012년 올해는 ‘상서로운 해’가 될 것이라고 야단들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들에 의한 마케팅 수단이자 우리들의 바람일 뿐, 오히려 역사 속의 임진년은 유난히 큰일이 많았다.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1712년에는 조선과 청나라 간 국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백두산에 정계비가 세워졌다. 직전 임진년인 1952년에는 한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일본과 독도영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2012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서양의 점성술사들도 올해는 유달리 변수가 많은 해로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마야력(曆)에서는 2012년을 대변혁의 시기로 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새해를 맞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 못지않게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국내외로 많은 변수와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대외적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으며, 우리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른 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떻게 급변할 지는 그 누구도 예상을 못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몰려 있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치르고 나면 과연 얼마만큼 재정적으로 거덜이 날까 염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2012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고 어둡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처럼 연약한 인간에게 경이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자연현상이나 인간현상을 관찰하여 미래의 일이나 운명을 내다보고 예언하고자 하는 점술(占術)이 원시사회부터 성행했다.
사주학(四柱學)에서는 입춘이 새해다. 새해가 밝으면 신년운세를 보는 것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앞일을 미리 알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다. 새해 운세풀이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토정비결’은 예언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한다. 덕을 쌓고 악행을 멀리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에너지를 전한다. 점괘나 운세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고 문헌에 의하면, 세상을 어지럽히다가 영웅에게 퇴치당하는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 흑룡의 팔자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2012년 신년 벽두에 흑룡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다시 흑룡이 등장하는 난세가 오고 있으니 매사 경계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는 어쩌면 진흙탕처럼 혼탁하고 혼미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인지도 모른다. 검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흑룡의 신비스러운 경외심을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 삼아 강하고 날렵하게 현실을 헤쳐 나가라는. 그래서 마침내 흑룡처럼 ‘나만의 전설을 만드는 해’로 삼으라고 우리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 같다.
바라기는, 흑룡이 올해 어둠을 잘 다스리고 상서로운 기운을 정말 몰고 와 주기를 간절하고도 조심스럽게 소원해본다.
첫댓글 저도 기원해요~
올해 나만의 전설을 만들어 보겟습니다. 많은 힘을 좀 보태주시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