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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지맥(낙동/아구지맥) 스크랩 안일지맥 01 (삿갓봉~주미재)
조은산 추천 0 조회 134 13.11.25 09: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일지맥 1구간

 

 

2013. 6. 29 (토)

산길 : 삿갓봉~주미재

사람 : 조진대님부부, 이희중, 조은산

거리 : 8.9km

 

 

 

구간거리

삿갓봉~5.3~매봉산갈림~3.6~주미재 / 8.9km

 

접근 : 금강송사무소~삿갓봉 6.0km 01:50

탈출 : 주미재~대광천삼거리 1.7km 00:23

 

Cartographic Length = 18.0km Total Time: 08:30

 

  01(삿갓봉~주미재).gpx

 

 

 

 

 

지맥 8.9km 하려고 접근과 탈출에 7.7km를 걸었으니, 그만큼 오지산골이기도 하지만 당국의 협조가 전혀 안되는 곳이라는 이야기라. 구간을 나누는 계획부터 머리에 땀이 났다. 금강송구역 통제상황을 접하고는 석개재를 출발하여 흥륜사, 용천사로 하산하는 구상을 하기도 했는데 최종 결론은 무더운 여름에 멀리 가기도 어렵고 새벽을 이용하기로 했다. 설마하니 지리산 국립공원처럼 야간에도 근무하지는 않을 것이라.

 

 

결과론으로, 금강송쪽의 통제를 받지 않으려면 석개재를 출발하여 흥륜사로 하산하면 될듯한데 석개재~7.8~삿갓봉~15.2~흥륜사임도, 그리고 흥륜사 탈출이 2.5km해서 25.5km가 나오는데 낙동길과 탈출로 10.3km가 임도이므로 충분히 가능하고 금강송과는 무관하다. 남은 구간도 접근을 보태 18.1km가 되므로 아주 적당해 보인다. 다만, 석개재 접근과 흥륜사 하산 후 교통편이 고민이 된다. 석개재에 차를 대놓고 흥륜사로 내려와 택시를 이용한다면 도무지 계산이 안 나오는 거리라(60km). 우리처럼 차 두 대로 왔다갔다 하더라도 1시간이 넘어 걸리겠다. 기사가 딸린 25인승으로 움직이는 팀이나 안내산악회는 이용해볼만 하다.

 

 

차량회수까지 고려한 우리 계획은 여러모로 적당했는데 첫날 마치고 내려오면서 산림청 순찰에 걸려 이리저리 둘러대느라 껄끄러웠고 차단기 앞 주차문제로 또 한번 쓴소리를 감수해야 했다. 둘째 날도 사유지로 보이는 밭 어귀에다 차를 살짝 넣어놨었는데 밭주인이 전화질을 해대는 바람에 죄송, 미안, 송구 등등 속에도 없는 문장을 동원하느라 욕봤다. 이 동네는 산림청이고 주민이고 간에 왜 이리 불친절한지 몰라.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과 한국등산트레킹센터의 합작인지 공동인지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이틀동안 들여다보니 내건 슬로건은 당연히 자연보호와 금강송 유전자를 보존하여 어쩌고 충분히 수긍이 가고 또 그럴 필요도 있겠다 싶지만, 염불보다는 잿밥 냄새가 더 나는건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1일 80명에 가이더를 딸려 안내하는거 까지는 좋은데,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점심밥은 물론이고, 과일까지 휴대금지 시키고 특정한 팬션, 주막에서 사먹도록 하질 않나. 금강송도 전국 곳곳 싸돌아 댕기는 우리 눈에는 별로 물건(!) 같아 보이지도 않더만... 정작 물건은 둘쨋날 안일왕산에 있는 대왕송이었다. 이름을 알지도 못하면서 나름대로 대왕소나무라 작명을 했는데, 울진사람이 정말로 ‘대왕송’이란다. 그런데 여기는 일반인의 접근이 너무 어려워 관리대상에 넣지 않았다나. 결국은 순전히 사업을 벌리기 위한 사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바라. 아님니? 아님 말고...!

 

 

 

금강소나무숲길

산림청은 2010년 ‘금강소나무숲길’이란 이름의 탐방로를 조성했다. 금강송(金剛松)은 금강산에서 경북 영덕까지 백두대간 자락에 나는 소나무를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 때 강릉·삼척·봉화 등 강원도와 경북 일대 금강송이 대량 벌채된다. 이들 지역에 나 있는 임도 대부분이 일제가 금강송을 강탈하려고 낸 길이다. 그러나 소광리 금강송만은 무사했다. 워낙 오지였기 때문이다. “기차도 봉화까지밖에 안 들어왔으니까요.” 백병산과 삿갓재 기슭 솔숲은 면적이 서울 여의도보다 8배나 큰 1800㏊다. 수령 200년이 넘은 금강송만 8만 그루 이상이 있다. 금강송은 다른 소나무보다 나이테가 3배 촘촘하다. 하여 뒤틀림이 적고 단단한 데다 송진이 적어 쉬 썩지도 않는다. 궁궐을 지을 때 금강송부터 찾는 이유다.

 

 

 

 

당국의 협조만 있으면 원점회귀 코스로 아주 조은데...

 

 

 

 

 

금요일 21시 반쯤 부산을 출발해 소광리 마지막 민가 앞. 샛재에서 내려온 임도와 만나는 대광천삼거리에 차를 대니 새벽 1시 반쯤 된다. 부산에서 거리는 260km 정도인데 시간은 엄청 걸린다. 울진은 서울이든 부산이든 고속도로가 연결이 안되므로 접근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울진에서 불영사계곡을 지나 답운치로 가는 36번국도. 왕복 2차선이나 급커브가 여러군데 있으므로 무작정 밟다가는 계곡으로 떨어지는 수가 있다. 구불구불 돌리고 틀고 하면서 불영사 앞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소광천 삼거리다. [금강송숲길] 대형 안내도가 있어 금방 알아본다. 울진에서 여기까지는 국도라 그런대로 조심하면서 올만하다.

 

 

여기서 소광리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더 문제인 것이 그 길이가 자그마치 11km라. 한나무재 갈림길인 소광2리 삼거리까지는 차선이 없어도 아스팔트 포장이고, (울진 군내버스가 여기까지 들어온다) 이후는 시멘포장, 비포장에 잠수교 같은 작은 다리를 수없이 건너고 우당탕 거리며 한참을 올라간다.

 

우측 다리 건너로 주미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민박집인지 몰라도 잘 지은 집 한 채있다. 하얀 개가 멀뚱히 내다보기만 하고 짖지는 않는다. 조용히 차 의자 눕히고 몸도 눕혔다. 혹시나 싶어 방충망을 잘라 왔는데 창문을 다 닫아도 덥지 않다.

 

 

 

04시쯤 지나가는 차 소리에 잠이 깨어 짐을 챙기고 있노라니 고문님 차였다. 신경수 선배님이 함께 오셨다. 선배님은 안일지맥에서 분기되는 응봉산 줄기인 강원도계를 따라 올라가다가 죽변 어디로 떨어지는 ‘울진분맥’인가를 하신단다. 내 차는 여기다 그대로 두고 고문님 차로 올라간다. 늘 그랬듯이 들이밀 수 있는데까지 가고 보는, 차단기만 없다면 삿갓봉까지 올라갈 조진고문님 스타일이다.

 

800m 올라가니 지형도상 ‘대광천’이고, 우측으로 민가 몇 채가 보이는데  바로 '화전민 이주정착지'다.  그 뒤로 보이는 임도가 안일지맥 능선(대밭목이)을 넘어 덕풍 용소골로 이어진다.  신선배님은 여기서 하차다. 북동으로 올라가는 계곡(임도)을 따라 강원도계 분기봉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다. 산중 1박 하실거라는데 배낭이 묵직해 보인다. 

 

 

화전민이주정착지

 

화전(火田)의 특성상 가옥들은 뿔뿔이 흩어져 집을 짓고 살아갔다. 넓은 소광리에도 어디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화전민들은 골골 화전을 할 수 있는 곳에 터를 닦았다. 골짜기 이름과 화전의 불빛만으로 저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짐작하고 연락을 했던 그들에게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시기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였는데, 공비들은 산골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집합시킨 다음 정치사상교육을 시키면서 인민유격대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기도 하며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겐 총검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이후 공비들을 소탕한 정부에서는 산골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화전민을 한곳으로 모을 것을 계획하게 된다. 공비들이 흩어져 있는 화전민의 민가에 숨어들어 생활이 가능하고,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정확한 피해를 알 수 없는 등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일정한 부지내에 집을 지어주고 생계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약속하고 화전민들을 대거 이동시키는데 그곳이 바로 대광천에 위치한 화전민촌이다.

 

전액 국비로 지어진 이곳은 기와집 11동을 지어 22세대 약 140명이 함께 거주하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각 가옥은 동일하게 생겨 다른 가옥과 구분하기 위해서는 번호로 인식되었으며, 지금도 1번집이었던 곳에 그 흔적으로 푯말이 부착되어 있다. 학교가 없어 이곳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개울 13개, 재를 2개 넘어 삼근초등학교 소광분교를 다녔다.

 

화전민정착촌에 있는 빛네농장(054-782-1164. 011 514 8284 민박, 식당)에 예약을 하면 금강송 당국의 통제를 피할 수 있다. 산림청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생업을 제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 또한 농장에서 제공하는 봉고나 트럭도 이용가능하다. 지역주민은 임도 차단기 열쇠를 갖고있다.

 

 

 

 

다시 온 만큼 더 올라가 샛재임도 삼거리에서 1.5km 지점에 차단기가 막혀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가 없다. 근처에 따로 주차할만한데도 없고 차단기 바깥쪽 갓길에 조금의 여유가 있어 차를 대놓고 들어간다. 이게 조금 실수였다. 관리초소 직원이 나중에 전화를 걸고 난리를 친 것이다. 지가 주차할 자리에 차를 댄, 말하자면 호랑이 콧구멍 앞에다 차를 박아 놓은 셈인 것이다. 그럴줄 예상하고 고문님은 전화기를 미리 OFF해 배낭에 담았다. 그 직원보다 고문님이 한 수 위다.

 

 

 

 

 

 

 

05:10 관리사무실

05:36 미인송

06:26 임도 탈출

06:46 지맥 마루금

06:57 삿갓봉

07:56 미인송 갈림길

08:56 △990.0m

09:53 폐헬기장

10:34 대밭목이 임도(용소골)

10:57 강원도계 분기봉

11:37 ×867

13:18 주미재

13:40 대광천삼거리

 

 

 

 

 

 

 

 

 

관리사무실(560m)

차단기 안쪽에 ‘금강송생태경영안내소’ 간판을 건 사무실. 사람은 없다. 맞은편에 대형 주차장이 있으나 차단기 안쪽이라 차를 넣을 수가 없어 차단기 바깥쪽에 차를 댈 수밖에 더 있나. 그러나 금강송숲길 지침(?)에 의하면 한참 아래에서 차량이 통제되므로 여기까지 올라 온 것만 해도 간이 배밖에 나온 행동인기라.

 

우리 산행 중에 안내소 직원이 전화를 수십통 하고, 경찰에 차적조회까지 했다나... 전화기를 꺼놓길 잘했지 받았더라면 난리를 쳤지 싶다. 뭔 호들갑 용천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소나무 전시실]이 있으나 무심히 통과한다. 무심한거 보다 적군 출현에 더 신경이 쓰이는 바라 지체할 필요가 없다. 바로 앞에 ‘500년 보호수’가 있는데 별로 볼품이 없어 보인다. 혹은 시선을 끌지 않아서 500년을 버틴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속된 말로, 잘 생겼으면 언 넘이 잡아먹어도 잡아 먹었을꺼라...

 

 

 

 

 

 

 

 

 

 

 

미인송

 

 

 

미인송 (682m)

관리실에서 20분 걸려 미인송 팻말을 만난다. 팻말을 꽂아 놨으니 그런가 싶지, 아무 표시가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겠다. 주변에 그와 비슷한 소나무가 한 둘이라야지. 명찰에는 ‘전국 최고의 소나무로 미인송이라 부른다’ 흠~, 구라가 심하구나.

 

미인송 앞에서 임도가 왼쪽으로 굽어가고 우측 골짜기로 샛길이 보인다. 여기서 골짜기로 올라가면 안일지맥 마루금을 만나게 되지만, 출발점인 삿갓봉까지 왕복 2.8km나 되는 거리라 너무 멀다. 우리는 계속 임도행이다.

 

30분 꾸준히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낙동정맥 능선이 나타난다. 앞에 가는 사람들 머리위로 떠 있는 반달은 무더운 오늘 날씨를 알려주는 듯하다. 급경사에는 시멘포장도 되어있어 차단기만 없으면 내 차도 올라오겠다.

 

 

 

 

 

 

 

 

 

임도는 여기까지.

 

 

임도 탈출

미인송에서 50분 걸려 다시 임도가 왼쪽으로 급하게 도는 곳. 나름대로 연구한 삿갓봉 최단 접근 지점이다. 고도 917m. 차단기가 있는 관리사무실에서 5km에 1시간 23분 걸렸다. 임도는 왼쪽으로 굽어져 올라가고 골짜기 물이 내려가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는데 다리 천장에 붙은 커다란 말법집이 보인다. 혹시나 살펴보니 벌이 없는 폐가라. 우측 골짜기로 들어갔다.

 

여기서 계속 '임도사랑'을 외치다가는  신세 조지는 수가 있다. 이 임도는 구불거리며 4km 가량 남진을 한 후에 임도삼거리(소광 석포 전곡)에서 낙동정맥 능선에 올라 다시 삿갓재로 돌아온다. 결국 삿갓재로 가기는 간다마는 여기서 6km가 넘는 거리다.

 

 

골짝으로 파고 든다

 

 

 

 

 

낙동정맥  삿갓재

 

 

 

지맥 마루금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하나 숲이 소밀지 않아 올라갈만 하다. 15분 동안 고도 120 가량 밀어 올리니 안일지맥 마루금. 삿갓봉에서 260m 거리다. 다시 돌아 올 지점이므로 배낭 벗어놓고 빈몸으로 올라간다. 묵은 수렛길을 따라가면 삿갓재 임도로 연결이 되고 잠깐 올라가면 삿갓봉이다.

 

 

 

삿갓봉(1119.1m △장성456)

고시지명은 아니나 ‘삿갓재’ 뒷봉이라 삿갓봉으로 통한다. 강원도 삼척시와 경북 봉화군, 울진군이 나뉘는 봉우리. 낙동정맥 석재개에서 온 경북(강원)도계는 삿갓봉에서 동으로 방향을 바꾸고, 안일지맥과 함께 가다가 북쪽 응봉산으로 갈라진다.

 

석개재에서 7.8km, 답운치까지는 17km가 넘으니 낙동정맥 이 구간도 만만한 구간은 아니라. 당시 기록을 찾아보니 11시간 정도 걸렸다. 그것도 임도의 협조를 받았으니 그랬지 임도가 없다면 당일로 어려울지 모르겠다.

 

정맥 할 때는 임도를 따라 통과한지라 기억에도 없다. 물론 올라왔던들 기억하겠냐 마는, 울타리를 두른 산불감시 시설이 있고 삼각점도 있다. 안일지맥은 곧바로 동쪽이다. 풍성한 미역줄나무를 스틱으로 헤치니 그런대로 뚜렷한 길이 나타난다.

 

 

 

 

 

 

 

 

 

 

 

 

5분을 내려오니 아까 올라와 배낭을 벗어둔 자리로 원위치 했다. 삿갓봉 찍고 오는데 20분 걸렸네. 혹시나 배낭을 누가 업어갈까봐 사모님이 지키고 계셨다. 수렛길 바닥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출발에 앞서 고문님이 ‘진드기컨트롤’ 약제를 팔, 어깨에 분무해 주신다. 07:30 출발

 

 

 

 

진드기컨트롤

 

 

 

 

 

 

 

 

수렛길을 따라 5분가량 더 가다가 수렛길은 왼편으로 넘어가고 능선길을 걷는다. 생각보다 달리 길은 선명하다. 강원도계, 경북도계 리본도 간간이 걸린걸 보니 도계와 안일지맥이 겹치므로 오지의 지맥보다 발길이 더한 모양이다. 하늘 높이 솟은 금강송이 온 산을 뒤덮다시피 한다. 한 그루만 따로 있으면 탄성을 지르며 더 눈길이 가겠지만 모든게 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눈길이 가지도 않는다. 잘 나고 못난 것이 다 상대적인 것이라.

 

미인송 갈림길(983m)

아래 금강송숲길 임도 ‘미인송’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온 곳이다. 지형도에도 점선이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금강송탐방로라 길이 뚜렷하다. 안일지맥 접근을 미인송에서 여기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겠다만, 출발점 삿갓봉 찍고 오려면 너무 멀다. 표지판의 거리가 1.4km라 왕복하면 2.8km, 실제 3km가 더 된다.  [삿갓봉1.4km, 미인송0.8km]

 

일대의 소나무 전부가 쭉쭉빵빵 잘 빠진 몸매를 자랑하고 있으니 오히려 요상하게 틀린 나무가 더 눈길을 끈다. 어디서든 튀려면 남과 달라야 한다?

 

 

 

미인송 갈림

 

 

 

   

 

 

낙동정맥 능선

 

 

갈림길

990봉 직전에 아까 미인송 갈림길과 같은 그림의 탐방로 안내판이 있다. 직전의 미인송 갈림길까지 1.4km, 금강송초소까지 2.3km를 표시했다.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990봉이다.

 

 

990.0m (△장성319)

하늘이 뻥 뚫린 봉우리지만 숲이 둘러싸 조망은 없다. 따가운 볕을 피해 좀 내려와 앉아 쉬었다 간다. 870쯤 되는 다음봉에서 북으로 숲이 트이면서 응봉산이 보인다.  

 

 

 

990봉

 

 

 

 

 

 

응봉산

 

 

 

 

 

 

 

 

 

 

산죽 전멸

 

 

내리막이 되면서, 바짝마른 대가 나온다. 산죽이다. 건드리면 툭 부러진다. 한두 놈이 그런게 아니라 일대 전체가 다 그렇다. 희한한게 다른 풀이나 나무는 멀쩡하게 푸른데 산죽만 전멸했다. 전문가에게 불어보니, 뿌리혹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이고, 산죽은 숙근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하나가 걸리면 모두가 연쇄반응을 한다.

 

여기 죽은 놈 한두 뿌리 캐가서 산죽이 씰데없이 넘쳐나는 곳에 뿌리면 산죽제거가 쉽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전문가선생은 까딱하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가 있고 이미 학자들 간에 연구가 되고 있는 사항이란다.

 

 

폐헬기장(914m)

오래된 보도블럭 몇 장이 흩어져 있어 헬기장이었던가 싶은 봉이다. 선두대장님 배낭을 내리더니 빵을 하나씩 나눠주신다.

 

 

폐헬기장

 

 

 

 

 

 

대밭목이

 

 

   

대밭목이(804m)

저 아래 대광천에서 우측으로 갈라져 나와 올라 온 임도. 북으로 넘어가면 덕풍계곡 용소골이다. 신경수선배님이 여기로 올라오신 모양이다. 건너편 비탈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고개 좌우로 대나무(산죽)가 많다고 대밭목이가 된 모양이다.

 

 

건너편 절개지로 올라서면 산죽밭이 넓게 펼쳐진다. 여기 산죽도 박테리아의 영향을 받았는지 죽지는 안해도 색깔이 누런게 조만간에 자빠질거 같다. 그렇게 죽었다가 또 살아나고 하는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나. 산죽밭 끝지점에 [응봉4-2] 긴급구조 말뚝이 박혀있다.

 

 

 

 

  

 

 

 

 

응봉산(도계) 분기봉

 

 

경북-강원도계 분기봉(930m)

울진 서면과 북면, 삼척 가곡면이 갈라지는 3면봉이다. 올라선 정면으로 가면 강원도계 응봉산이고, 안일지맥은 우측 내림길이다.

 

 

신경수선배님이 가신 능선이 울진분맥(?)인지 모르겠으나 강원도계를 따라 가곡천의 하구인 월천해수욕장까지 23km 정도 되는거 같은데 선배님은 30km가 넘는다 하셨다. 어디로 가신건지 나중에 물어보자. 어쨌든 남동쪽으로 벼랑이라 조망도 바람도 시원해 한참동안 앉았다 간다.

 

 

도계와는 정반대 남쪽으로 내려서면 길은 다소 흐려졌다. 도계쪽 발길이 더 많은 모양이라. 뾰족솟은 앞봉은 보기보다 높지 않고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졌다.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 뿌옇게 동해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급격히 떨어지는 비탈이다.

 

 

 

 

 

 

 

 

 

 

 

 

 

 

 

 

×867봉에 또 앉았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걸린 채 거의 파묻히다 시피한 최중교리본을 발굴(?)해 내 새 가지에 걸어줬다. 오늘 내일 최중교리본 보수작업만 10개가 넘는데 수리비는 어디다 청구를 하노?

 

 

867봉에서 내려가는 길 역시 금강송 군락이다. 쭉쭉 뻗은 금강송길에 배에 힘을 주며 복식호흡을 해본다. 하얀 꽃뭉치를 단 작은 잎의 나무가 궁금해 삼규한테 카톡으로 보냈더니 ‘꼬리진달래’란다. 이런 흔한 이름도 여태 모르고 다녔다니, “구절초를 모르는 무식한 놈, 너와는 절교다” 자꾸 삼규한테 카톡질 해대다가 드디어는 이런 답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꼬리진달래

 

 

 

 

 

 

 

 

 

 

 

 

 

면계는 정면 봉우리를 넘어가고, 지맥은 우측 비탈이다

 

 

 

도경계 분기봉에서 서면과 북면의 경계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앞길이 바위와 황장목이 어우러진 절벽으로 변하고 마루금은 우측 비탈로 떨어진다. 바위절벽에 금강송이 어울린 풍경은 가히 仙界라 할만하다.

 

 

앞서 내려가시던 고문님이 멈칫거린다. 독사 한 마리가 사람을 보고도 피할 생각이 없다. 스틱으로 살짝 건드리니 마지못해 움직인다. 덩치도 쪼깬한 놈이 간만 부었나.

 

 

울창한 금강송숲 능선에 자리를 깔고 점심상을 폈다. 30분 정도 더 가면 산행이 끝날거 같은데, 간식을 워낙 잘 먹어선지 배는 고프지 않다만 지금 먹지 않으면 도시락 그대로 들고 내려갈 판이라. 12:08~12:36

 

 

 

 

 

 

 

 

아구산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잠깐 열린 숲 틈으로 아구산이 보인다. 두 개의 봉우리 중 우측이 삼각점이 있는 정상인데 여기서 보기는 왼쪽이 쪼께 더 높아 보인다. 그 우측으로 안일왕산이 있을텐데, 몸을 더 빼다가는 아래로 떨어질까 무섭다. 페인트로 누렇게 띠를 칠한 금강송이 있다. 저 아래 안내문에는 유전자 확보용 씨받이 소나무에 흰 페인트로 표시를 했다던데 노랑색은 또 뭔고?

 

 

대광천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이 나타난다. 오늘구간 어디를 봐도 민가 한 채 밭 한 뙈기 보이지 않고 오직 산과 숲만 보이는 깊고 깊은 深深山川 疊疊山中 이다.

 

 

 

 

 

 

 

 

 

 

 

 

 

 

 

 

 

주미재

 

 

주미재 (585m)

소광리 대광천삼거리에서 북면 두천리 찬물내기로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다. 주미재라는 이름이 확실치는 않지만 고문님이 이정표에 그리되어 있더란다. 흙길 고개지만 지도에는 [917] 번호가 붙은 지방도로다. 산림청에서는 지도에 번호까지 붙은 도로를 금강송을 지킨다고 막아버렸다.

 

 

금강송숲길 1구간에 속하는데 해설을 보면

“1구간은 옛날 울진 앞바다에서 생산된 해산물, 소금 등을 지게에 지고 보부상들이 울진에서 봉화로 다니던 옛길 13.5㎞를 복원한 길(두천리~소광2리)이다” 인데, 여기서 말하는 옛길은 조금 더 가서 샛재를 말함이고,  이 임도는 그 이후에 개설된 것이다.

 

 

우측(서)으로 몇 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산불감시] 빨강 깃발이 달린 SUV 한 대 넘어온다. 순진한 척하면서 태워줄려나 기대반으로 인사를 건네니,

 

뭐하는 사람들이냐? 도대체 어디서 내려왔느냐? 허가는 받았느냐? 집중포화가 쏟아진다.

우리야 계속 순진무구한 백성이 될밖에.

 

“낙동정맥 삿갓봉에서 저리 가다가 그리 넘어 가려다가 이리 떨어졌는데 여그가 어딘지 어쩌고 횡설수설...”

“고마 씨끄럽소, 퍼뜩 내리가이소!”

 

꼬랑지 팍 내리고 슬금슬금 내려가니 차를 몰고 뒤에 졸졸 따라온다. 그럴거 같으면 태워주기나 하지.

 

 

 

 

대광천삼거리

 

   

 

대광천삼거리 (490m)

임도 입구에 차단기가 닫겨 있고 아줌니 한 분이 근무중이다. 도랑 건너편에는 내 차가 빤히 보이지만 따라 온 산림청근무자에게는 내 차라는걸 숨겨야할 상황이라 그늘에 앉아 차단기 임도지킴이 아줌니와 실없는 대화를 나눈다. 산림청 근무자가 떠나길 기다리는데 이 양반 떠날 줄을 모르네.

 

앉아있다 보니 많은 행렬이 내려온다. 전부 안내원을 동반한 금강송탐방객들이다. 결론은, 여기 이 시간에 안내원 없이 따로 서성대는 사람은 주민이나 근무자가 아니면 전부가 간첩이라는 얘기다.

 

 

근무자가 떠나면 차를 뺄 요량으로 아줌니와 별시리 친한척하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진짜로 친해졌다. 두어 마디 들어보고 바로 내가 "마산댁 아니냐?" 하니 진주란다. 진주 어디냐 하니,  친정은 사천인데 울진 골짜기로 시집을 와 얼마라도 벌어볼 작정으로 산림청 일용직으로 근무를 하는데 큰 벌이가 될게 있나. 얼음물과 커피를 주고받으며 나눠 먹고 근 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산림청 근무자가 떠나는걸 보고- 일어섰다. 이 아줌마 우리가 일어나니 아쉬워 죽을라하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두 손을 흔들어 댄다.

 

 

내 차를 몰고 고문님 차 회수하러 올라갔다. 차단기 앞에 있는 고문님 차를 돌리려는 순간 관리실 직원이 뛰어 나오더니 사무실로 체포되어 들어간다. 굳이 나까지 합세할 필요는 없는거 같아 멀찌감치서 기다리니 한참만에 방면되어 나오시는데, 온갖 공갈에 잔소리를 퍼부어 대다가 인적사항을 적으라며 주는 용지에 고문님 주민번호를 보더니 -연세가 지보다 많은지라- 슬그머니 언성을 낮추더란다.

 

  

 

 

 

 

 

 

 

 

 

 

소광리 계곡을 내려오면서 어제 들어 올 때는 밤중이라 보지 못했던 황장봉계 표석을 찾아봤다. '황장금표'라 하기도 하는 이런 표석은 백두대간 황장산, 치악산 등 여러곳에 있다. 어명이 아니면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할만큼 엄중히 관리되었다.  

 

 

 

 

 

대흥교

 

 

 

대흥리

우여곡절 끝에 차를 빼내고 내일 날머리인 대흥리로 넘어간다. 대광천에서 찻길 거리가 자그마치 30km 가깝다. 내일 구간 산길의 두 배다. 불영사 앞을 지나고 울진읍에 가까운 울진읍 대흥리다. 국도변에 대흥리 마을회관이 있는데, 왼쪽 길은 입석동 가는 길이고, 대흥리는 우측이다. 언덕을 살짝 넘으면 다시 갈라지는데,  우측 다리 건너쪽이 신림고개이나 그쪽은 계곡이 없어보여 직진 교회시설인 ‘대흥수양관’ 팻말을 따라 들어가다가 대흥교 앞에 공터가 있어 자리를 잡았다. 다리 아래는 암반이 욕조처럼 파진데가 있어 목욕하기도 그저그만이다.

 

 

집에서 장만해 온 닭백숙을 뎁혀 뜯어먹고 찹쌀 닭죽을 한 그릇 먹으니 배가 아구산처럼 솟아올랐다. 고문님이 갖고 오신 막걸리에 Blue Label이라 적혀있다. 죠니워커도 아닌 것이 막걸리에 블루라벨이라니, 그게 신기해 두어 잔 마셨더니 내 얼굴은 Red Label이 된다. 문득 텐트바깥 도로 차단막에 ‘조심을 생활화 합시다’라는 문구를 보고 고문님이 희중아우더러 조진대, 조은산이니 당신도 조씨로 맞추자며 “조심을”로 이름을 바꾸란다. 그리하여 이희중은 오늘부로 ‘조심을’이 되었으니...

 

 

 

사모님 머리 앞 부분에 "조심을..." 문구가 보인다.

 

 

 

 

닭백숙 -조은마누라 제공

 

 

 

 

막걸리 Blue 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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