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지맥 2구간
2010.01.10 (일)
산길 : 가리재~속사리재
거리 : 5km
구간거리
가리재~1.7~(△1108.2)~2.3~(△970.1)~1.0~속사리재........5.0km
Cartographic Length = 5.8km / Total Time: 02:50
02(가리재~속사리재).gpx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 줄은 알았지만 장딴지까지 푹푹 잠기는 레쎌이 안된 눈밭을 두어시간 헤매고 나니 다들 기진맥진이고, 누군가의 ‘평창송어축제’ 바람에 산길은 남의 일이 되어 버린다. 선두대장이 찍어놓은 발자국 따라가기도 쉽지않은 일인데, “정 할라카믄 니가 앞장서라”는 데야 감히 나설 사람없다.
굳이 고집 피워 당초 목적한 거문리고개까지 못갈꺼야 없겠지만, 나도 어제 영산에 이은 연짱산행이라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죽어라 내달리기만 할 군번도 아니라. 먼 길이라 해도 한두번 더 온다고 내 살림이 파산날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회비 5만원에 5km를 했으니, km당 1만원짜리 산행을 한 셈이다.
누구는 운두령에서 속사리재까지 한방에 뽑는다지만 산길이 어디 맨날 같은가. 또 누구는 부산에서 대관령까지 갔다가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단다. 백두대간이야 물어볼데라도 있지만 지맥길 상황을 어디다 물어보겠나. 한 겨울 송어회맛도 쉽게 갖다 댈만한게 없다.
속사리재까지의 능선에 산 이름은 없고 삼각점만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찾지도 못했다. 잎사귀는 다 떨어진 상태이나 시원한 조망한번 못보고, 지난 차에 선명하게 보이던 선자령, 발왕산도 뿌연 하늘속에 묻혀버렸다.
(시간표)
11:15 가리재
11:44 ×1,153
12:14 △1,108.2
13:33 △970.1
14:05 속사리재
가리치 (990m)
속사리에서 방아다리 약수로 넘어가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이나 간선도로가 아니다보니 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속사리 신약수에서 그런대로 올라가다가 마지막 마을인 가리골에서 경사가 급해진다. 아슬아슬 올라가던 버스는 드디어 급커브 경사길에서 헛돌고 만다.
고개정상에서 약 1km 정도 거리라 걸어 올라가는 우리보다 정작 버스가 걱정이 된다. 눈이 얼어붙어 빙판인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몇십명의 산객들이 내려오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물어보니, 운두령을 잘못 찾아 방아다리에서 버스를 내렸고, 운두령을 찾아가는 길이라는데 도무지 무슨소린지 알아듣질 못하겠다. 어문데다 잘못 내려준 버스기사나, 그렇다고 두말않고 내리는 사람들이나 똑같다는 사람들이라.
고갯마루 양쪽을 다 들여다봐도 발자국이라고는 없다. 눈이 워낙 두터워 어디가 길인지 짐작이 안된다. 눈이 없는 맨땅이라면야 대충 힘으로 밀어붙이며 오르면 되겠지만 무릎까지 잠기는 눈밭이라 아무데나 디딜 수가 없다. 선두대장은 고개너머 방아다리쪽에 들머리가 있나 살펴보러 가지만 그쪽은 더 높은 절개지다.
지난번 내려선 곳의 마주보는 지점. 길인지 불확실하다만 절개지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간다. 워낙 급비탈이라 움켜쥘 나무가 없다면 오르지도 못하겠다. 절개지 상단까지 오르는데 용을 다쓴다. 첫봉인 ×1153봉까지는 계속되는 급비탈이다. 얼마나 숨이 차는지 초장부터 “때리 치우자”는 소리가 들린다.
×1,153m
네발짜리 아이젠은 아무 역할도 못하고, 선두대장의 발도장에 맞춰 넣어보지만 굳은 눈이 아니라 이마저 쉽지는 않다. 그나마 첫 오름이라 쉼없이 꾸준히 밟아 30분만에 올라섰다. 첫봉이자 오늘구간 최고봉이다. 왼편 방아다리쪽으로 뻗는 능선이 세력이 더 커, 역으로 진행시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이제 줄곧 남으로 일직선으로 뻗는 능선이고 큰 기복도 없어 보인다. 눈 위로 삐져나온 이파리를 보니 산죽밭인 모양이나 골 따라 길을 찾기도 쉽지 않을만큼 눈이 두텁게 깔렸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바람이 없다. 지난 차 목골재 전후로 찬바람을 얼마나 맞았던지 볼떼기가 다 얼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자켓마져 벗어 담을 날씨다.
△1,108.2
바닥은 돌인지 흙인지 풀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능선길이다. 거저 완만해서 좋다. 한동안 완만하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올라서면 ×1118봉이고 삼각점은 30m 가량 남쪽으로 △1108.2 표기되어 있어 여기저기 눈을 걷어내 보지만 산죽만 나올 뿐 삼각점은 못 찾는다. 눈을 걷어낸 자리에 적당히 둘러앉아 점심들을 꺼낸다.
(가리재 오르던중 버스가 헛돈다)
(들머리)
점심을 먹는 동안 진행계획이 거의 확정이 된다. 아까부터 누군가 운을 띄운 속사리재에서 그만하고, 송어회 먹으러 가자는 얘기다. 특별이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없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굳이 눈길 핑계 댈일도 없이, 어차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선 길인데 평창송어를 접해볼 기회가 쉽게 오겠나.
작전을 바꾸니 발걸음도 편해진다. 급할 일 없고 느긋하게 유람이나 하자 싶은데, 딱히 볼만한게 없다. 온천지 하얀 눈을 덮어쓴 산길 밖에는.
눈에 띄는 지형지물도,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없다. 하얀 눈밭에 선두그룹이 찍어놓은 구멍에 발 갖다넣기 바쁘니 어문데로 빠질래야 빠질 수도 없다. 앞사람의 발도장에 내발로 확인도장 찍는 격이다.
×1001봉에 리본하나 걸고, 내림길에는 수북한 낙엽을 밀고 내려가듯 눈을 밀며 내려간다. 그 와중에 몇몇은 더덕줄기를 찾아내고 채취작업에 들어간다. 바짝 말라 비틀어진 줄기를 보고 찾아내는 눈이 신기하기만 하다.
△970.1 (도암25)
왼쪽으로 나무가 가리긴 하지만 발안골 마을과 영동고속도로가 보이다가 살짝 올라선 봉우리에서 장님 문고리 더듬듯 발로 비비면서 삼각점을 찾아낸다. 통나무로 대충 엮은 의자가 있다. 후미까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유있게 하산한다.
뚜렷하게 살아있는 능선길은 우측으로 휘돌아 내리고, 속사리재 오르는 도로가 발 아래 와있다. 묘터에서 비로소 활짝 열린 조망한번 바라보고, 내려가면 능선도 아닌 비탈길에 산불초소가 있다. 이어 도로에 내려선다.
속사리재(770m)
용평면과 진부면의 경계인 6번국도. 용평의 속사리 마을이름을 그대로 딴 고개다. 옛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국도인데, 차량통행은 별로 없어 보인다.
송어회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에 있는 송어횟집 팔석정으로 이동해 벌건 속살의 송어회로 푸짐한 뒷풀이를 했다. 담백한 맛으로 씹을 것도 없이 살살 녹는다. 맑고 차가운 강의 상류에서 잡힌다는 송어(松魚)는 연어와 같은 과(科)다. 연어와 마찬가지로 강에서 태어나고 바다로 나갔다가 3~4년 후 알을 낳으러 강으로 돌아오고, 산란 후에는 생을 마감한다.
(속사리재)
송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