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香山)
하노이의 호안키엠호수를 둘러보고 쌀국수로 아침 식사를 하고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향산행 봉고차를 탔다. 여행자는 모두 5명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베를린에서 온 청년 미카엘은 건축기사였고, 프랑스에서 온 루벵은 직장여성이었다.
캐나다 청년 크레티앙은 백수였고, 인도계 캐나다 여성 바니는 교사였다.
향산은 월남불교의 성지이다. 이곳은 풍광이 수려하고 청정한 분위기와
신성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로 월남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해마다 1월부터 3월까지 축제 기간에는 국내는 물론 멀리 외국에 사는 월남인들까지
줄지어 찾아온다. 특히 2월 중순에는 축제가 절정에 도달하는데 그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가 구름처럼 모여든다고 한다.
꼭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믿는 종교에 관계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곳을 찾는다.
복을 빌기 위해서, 자식을 얻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다.
이곳은 하롱베이와 함께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세기동안, 이 깊은 산림지대에 사람들이 절을 짓고 여러 세대에 걸쳐
수행자들이 모여들었다. 향산의 산들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모양에 따라
승려봉, 보살봉, 닭봉, 용봉과 같은 기이한 형상을 한 산이 많다.
이곳에는 산과 계곡, 언덕과 강, 개울과 석굴들이 많이 있고 석굴 속에도 절이 있다.
시골길을 두시간 가량 달리니 강이 나왔다.
작은 보트에 3명씩 옮겨 타고 노를 저어 나아갔다.
날씨는 매우 더웠고 강물에 손을 넣어보니 따뜻했다.
사람들이 가슴까지 오는 강물 속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강바닥의 진흙 아니면 뿌리 같은 것을 찾아내 배에 퍼 담는 것 같았다.
나는 캐나다 여성 바니와 같이 배를 탔는데 그녀는 부모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캐나다로
이민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모국어인 인도 벵골어와 캐나다의 공용어인
영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배를 타고 가며 주위 산천을 둘러보니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오리가 강기슭에서 놀고 개구리가 뱃전을 헤엄치고 있었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여 노 젓는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 연방
생수를 마셨다. 곁에 앉은 바니는 살결도 검고 태양에 아주 강해 보였다.
땀이 줄줄 흘러 양산을 펴서 쓰니 훨씬 시원했다.
1시간 정도 저어가니 향산 입구 나루터가 나왔다. 가이드 비엣(越)을 따라 다시
산길을 걸었다. 향산에는 13개의 절이 있는데 모두 향사(香寺)라고 불리지만 각기
절 이름이 있었다.
선산사(仙山寺)!
내가 “선산사라, 허허..”하고 크게 감탄을 하니 서양 여행자들이 뜻을 아느냐고 물었다.
한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월남인 가이드 비엣도 한자를 몰랐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이 땅을 침략했을 때 월남인들의 모든 공문서가 한자였다.
한자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와 이어져있고, 또한 이웃의 중국과 끈끈하게 연결된 것을
알아차렸다. 월남인들을 과거의 훌륭한 전통과 자랑스러운 역사로부터 단절시키려고
한자를 말살시키는 것이 프랑스 식민당국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 되었다고 한다.
한자 사용을 금지한지 백년이 되지 않아 대부분의 월남인은 한자 까막눈이 되어버렸다.
오래된 절의 기둥과 현판에 무수히 적혀있는 한자를 외국인인 내가 읽고 그 깊고
아름다운 뜻을 월남인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월남의 곳곳에 진출해 있는 중국화교들 때문에 한자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고,
최근 중국과의 교역이 크게 늘면서 한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한자는 수천년간 제국의 문자였다. 한자로서 중국, 한국, 일본, 몽골,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 60억 인구의 삼분의 일인 20억 인구가 서로 연결되고 소통되는 것이다.
향사(香寺: Perfume pagoda)
숲속 오솔길을 한참 올라가니 큰 절이 나왔다.
천정사(天鼎寺)!
하늘천, 솥정, 절사 아닌가? 한자를 읽으니 바로 그 의미가 한폭의 그림처럼
떠올랐다. 하늘 높이 솥처럼 우뚝 버티고 있는 절...
천정사 앞에서 가이드가 영어로 하늘 높이 솟은 어쩌구, 마치 솥처럼 생긴 어쩌고
한참 설명해도 서양인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고 있었다.
절의 현판에 향천보찰(香天寶刹)이라고 적혀있다.

‘그윽한 향이 온 하늘에 가득한 보배로운 절’이라는 의미라고 내가 한자를 보고
설명해주니 서양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교가 중국을 통해 한국과 월남에 전해졌기 때문인지 절은 한국이나 중국, 월남이
거의 비슷했다. 절은 그 자체가 건축이며, 종교이고, 예술품이어서 과거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문화재이기도 하다. 대웅전 현판에 적힌 ‘대웅보전’은
세계각국이 공통인 것 같다.
절기둥에 세로로 열자씩 한자가 적혀있었다.
至心歸命禮 지심귀명례
海德光明佛 해덕광명불
프랑스 여성 루벵이 뜻을 물어왔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도
문장 전체의 뜻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설명해주었다.
“섹스(성교)를 하기 전에 충분히 애무를 해주어야 하고,
여자가 달아올라 괴성을 지르기 전까지는 절대 삽입하면 안되느니라...“
루벵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런 말이 적혀 있단 말입니까?”
“그럼요. 불교는 바로 생활종교입니다. 경전은 훌륭한 성교육의 지침서이기도 하지요.”
그럼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루벵이 가리키는 것을 읽어보았다.
生死讀誦經 생사독송경
甚得大吉利 심득대길리
역시 무슨 뜻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한자를 안다고 떠벌려 놓고 뜻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섹스를 할 때는 마치 내일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라.
그러면 크게 행복하고 이익이 올 것이다.“
루벵이 고개를 연방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큰 진리의 말씀이 있었구나.”
루벵이 또다시 “그러면 저것은 무슨 말입니까?하고 묻자,
“아이고! 화장실에 좀 가야겠습니다.”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중국은 월남을 천년이상 직접 통치했다. 중국이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여러 나라로
쪼개져 세력이 약해졌을 때에만 틈틈이 월남은 독립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월남북부지방은 중국의 영향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어
마치 중국의 어느 지방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남부지방은 3백년 전만 해도 크메르제국(캄보디아)의 땅이었고, 남방계
힌두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월남의 북부와 남부는 기후나 민족, 종교, 문화, 관습 등이
전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35도가 훨씬 넘은 무더운 날씨 속의 산행은 땀이 줄줄 흘러 매우 힘들었다.
같이 갔던 서양인들도 모두 치쳐서 더는 못 가겠다고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가이드 비엣이 말했다.
“전번주에 스위스에서 온 여행자들은 이런 날씨에도 무려 5시간이나 산을 타던데요.”
평지의 나라 프랑스에서 온 루벵이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스위스는 험준한 산악국가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프로 등산가들이에요.
우리와 비교하면 안된다고요!“
더 이상의 산행을 중단하고 숲 속 시원한 노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수박까지 먹으니 정말로 살 것 같다. 아, 정말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로고...
이런 천혜의 과일 때문에 이런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구나.
첫댓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게 예를 올립니다>가 갑자기 <“섹스(성교)를 하기 전에 충분히 애무를 해주어야 하고,
여자가 달아올라 괴성을 지르기 전까지는 절대 삽입하면 안되느니라...“ >로 황당하게 플이되는 그 대목이 재미 있군요.
김현거사님.
아직 초보인 저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을 찾아보니
생사독송경 심득대길리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이 경을 읽으면
크게 길하고 이로어 복을 받으리..라는 의미네요. 조현두.
코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