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 2구간(밀목재-팔공산-서구리재)
♠일시 : 2005. 03. 08 (화) 맑음(안개) 12명
♠구간 : 밀목재(09:30)-880봉(09:55)-사두봉(10:20)-묘지(11:00)
-송계재(11:10)-당재(11:50)-수분령(12: 10~12:40)-밥내재(13:30)
-뜸봉샘삼거리(13:50)-신무산(14:00)-차고개(14:40)-합미성(15:15)
-샘터(15:35)-팔공산(16:00)-서구리재(17:05)
♠도상거리 : 16.9 Km
♠금남호남 2구간
예상보다 적은 인원은 널널한 차내 분위기를 만들며 금남호남정맥 탐사
2구간으로 오른다. 도착한 밀목재에는 고풍스런 새로 지은 집들이 우릴
반기고 1구간 하산때 빗속에 본 신덕산 마을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준다.
그땐 비를 피해 논개사당인 의암사에서 하산 행사를 했었으니까.
밀목재에는 원덕산 마을이 동화댐으로 수몰되면서 이주민들이
신덕산이란 마을을 형성해 사는 수몰민들이 형성한 동네로서 새로
지은 집들은 깨끄름하지만 생활터전이 바뀌어서 뭐해먹고 살까 걱정이
앞선다.

<밀목재의 가이드>

<밀목재를 지키는 약수터>

<정맥으로 이어지는 시그널들>
밀목재에는 장수군에서 매표소를 만들어 놓고 일반 800원의 입장료
를 받고 있으며 장수읍쪽의 동촌마을에는 이조 중엽에 한씨 일가가
정착해 부락을 형성했으며 한때는 동면이라하여 시장이 섰고 지금도
소쿠리전 또는 나물전이 선다고 한다. 황의정승으로 살았다는 황의정골
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고 한다. 장수군은 백제시대에 우평현과
백해군 이라 칭했으나 몇차례 개정을 거쳐 1895년 지방관제를 개칭
하면서 장수군 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 5월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됐다.
덕유산을 비롯해 장안산 팔공산 천반산 영대산 대성산 관주산 타관산
등이 위치 하고 있어 다수의 주민들이 300m 이상의 고원에서 살고
있는곳이다.
장수읍은 400m가 넘는 고원이며 전주와 남원 무주를 잇는 교통
요지이기도 하다. 장수읍 두산리에는 조선조 선조 25년에 왜적 30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7월 칠석날 촉석루에서 개최한 왜군의 승전잔치
장에 나간 주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 것을 기리기위해 지은 논개사당인 의암사가 있고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 그의 생가도 잘 보존되고 있다.
마을에 우리 차가 도착하니 마을 어르신이 나와서 마을 약수터를
가르켜 주며 이 마을에는 장안산에서 나는 고로쇠 약수를 팔고 있다고
하신다. 18L에 25000원 하며 생수병이나 유리병에 넣어서 햇빛이
들지 않은곳에 보관하고 며칠이 지난후 약간 뿌옇게 부유물이
생길수도 있으나 이것은 식물성 섬유질이므로 안심하고 마셔도 되며
한사람이 하루 20L을 마셔도 배앓이를 하지 않는단다 . 관심 있음
연락 하세요 011- 537- 7906 (강우덕)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마루금을 만난다.
잡목숲을 헤치고 10여분 오르니 활공장이 나온다. 활공장까지는
차량도 오를수 있으며 활공장에서 장수읍을 배경삼아 한컷을
남기고 진행한다.

우리가 진행해야할 정맥길은 작은 소나무와 철쭉나무들이 어우러진
길을 헤치고 진행해야 한다. 1 구간때만 해도 실크로드 였다는 대원
의 말도 있듯이 여름에는 잡목이 어우러져 진행이 어려울것 같단 생각
이 든다. 여름에는 산딸기가 지천이어서 쏘주만 있으면 산딸기를 따서
소주병에 넣고 흔들어 마시면 즉석 ‘복분자주’가 될거 같단 생각을
하며 사두봉.(1014 m)에 도착하니 전북 산사랑해에서 세운 입간판이
우릴 반긴다(10:20) 사두봉(蛇頭峯)에는 뱀대가리산인데 뱀대가리는
추워서 없나 묘 2기가 있으며 조금 밑에는 산성터와 돌탑이 기다린다.
사두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갖고 후미조와 거리 조절을
하고 출발한다.


<긴시간 외로움에 떨었을 돌무더기들>

우리가 지나온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백운산의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이고 그앞에 장안산이 우뚝 솟아 있다. 길에는 잔설과 얼음이
낙엽밑에 복병하고 있어서 조심을 요하며 엉덩방아 찬스를 만든다.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고 하여 땅을 삿다고 표현 하기도 한다. 잔설을
밟으며 진행을 해도 따스한 봄볕이 정맥길을 안내 한다.
사두봉에서 1 시간 정도 진행하니 송계재(바구니봉재)이른다.(11:10)
이곳은 북쪽으로 송계 남쪽으로 방화동으로 나뉜다. 백운 성님은
보이질 않아 심히 걱정이 되어 기다려 봐도 손폰을 쳐봐도 대답은
없고 우야노 !!!
일단 진행을 하여 선두와 같이 기다리기로 하고 당재 가까이쯤에서
긴숨을 몰아 쉴 때 쯤 백운 성님은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다. 잠시 휴식을 갖고 당재에 도착하니 방화동 계곡과
연결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당재에서 한쪽은 벌목을 하여 을시년 스러운 구릉을 넘으니 수분령이
보이고 수분령 내려가는 길엔 벗나무 메실나무 등 묘목들을 심어놓은
농장이 보이고 수분치 주차장엔 우리차도 보인다. 산행중 제일 반가운
건 하산지점에서 우리 차를 보았을때 일거 같다. ‘장수사과는 고랭지에
서 생산되어 육질이 사각사각하고 하루에 사과 한 개 뇌졸증 예방 효
과 있으며 오래 두어도 신선도가 높다’.
수분치 과수원에는 사과나무에 모기장 같은 망을 나무위에 쳐서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작업일듯하고 과수원에는 전정작업이 한창이다.
수분령에 도착하여 버스옆에 옹기종기 모여 노상 런치타임을 갖고
하산주로 마시려고 준비한 광양 특산 메실 막걸리를 반주로하니 기분
금상첨화이다.

<당재를 넘는 울 대원들..>

<금강발원지>

<수분재의(장수) 상징 사과>

<수분재 약수터>


수분령은 장수읍과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멀리 경남 하동포구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상류가 되고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군산 하구언으로 흐르는 금강 발원지가 된다. 이렇게 이름처럼 물을
나누면서 현재는 장수와 남원을 잇는 19번 국도가 지나가고 수분령 약수는
예로부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약수로 유명하고 수분마을뒤에 금강
의 발원지인 뜸봉샘이 있다. 관제성 말대루 막걸리를 ?O으려 약수터가든에
갔으나 막걸리 는 없고 약수터엔 수량이 엄청 많다.

수분령에서 휴식을 취하고 19번 국도를 건너 조금 오르니 잡목사이에
소나무 두그루가 마루금을 안내 한다. 잔설이 깔린 잡목 숲길을
헤치고 나와 밥내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신무산 밑에는 금강
발원지인 뜸봉샘이 있다. 뜸봉샘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수분 마을 뒷산(신무산) 계곡을 따라 2.5km 올라가면 금강의 발원천
이 되는 뜬봉샘(飛鳳泉)이 있다. 이 뜬봉샘에는 근세조선개국조 이성계
와 얽힌 설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전국 명산의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먼저 팔공산(신무산)에 들러, 신무산
중턱, 아담한 곳에 단(壇)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 갔다. 백일째 되는
날 새벽에 단에서 조금 떨어진 골짝에서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
더니 그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하늘로 너울너울 떠가는 것이었다.
봉황이 떠가는 공중에서는 빛을 타고 아련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새 나라를 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귓전을
스친 것이다. 이성계는 정신을 가다듬고 무지개를 타고 봉이 뜬곳을
가 보았다. 그곳에는 풀섶으로 덮인 옹달샘이 있었다.
이성계는 하늘의 계시를 들은 단(壇堂)옆에 상이암(上耳庵)을 짓고,
옹달샘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모셨다 하며, 옹달샘에서 봉이
떴다고 해서 샘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샘이다. 샘아래에는 당재가 있는데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 된다. <장수군지>

<신무산에서>

신무산에서 대축목장 철조망길을 따라 지리하게 30여분 진행하니
대성고원 이라는 표지서이 나온다. 정맥길 지도상에는 장수읍과
산서면을 잇는 13번 국도인데 산서면쪽 대성리 지명을 따서 대성고원
라 불렀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알길은 없다. 차고개에는 넓은 화단원
이 잘꾸며져 있고 여름이면 기화요초가 만발 할만도 한데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정상주 할려고 수분령에 사온 막걸리를 무겁단 핑계로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팔공산을 향해서 출발 한다.
차고개에서 20여분 진행하니 합미성이다. 합미성에 대해서는 장수군지
에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게제되어 있다. 장수군의 장수읍 대성리
팔공산(1,151m) 중턱에는 합미성이 있다. 후백제시대의 산성으로 둘레
400m, 높이 7m의 석성이다. 당시 군량미를 이곳에 모아두었다 하여
합미성(合米城)이라 부른다.

<차고개>

<차고개 에서 휴식 취하는 대원들>

<합미성>
합미성에 올라 옛 후백제의 기상을 생각하며 군량미 보관을 이곳에
했다는 미심적은 감도 있지만 팔공산을 향해 오를길을 바라보는
눈길들이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은 오르지도 않고 멀고 힘들다고만
하는 맘들이 아쉽다. 오르고 올라도 1013봉은 멀고 다리는 풀려올
찰라 우린 희망을 보다!! 샘터가 있는 우회길. 중간쯤 샘터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에 휴식을 취하니 이런걸 꿀 맛과 비교하랴 산행중
휴식은 다음 진행에 활력소가 된다고 쉴때는 가장 편한 자세로 쉬는
게 도움이 된다.

<샘터에서 산토끼가 먹던 달콤한 샘물과 휴식>
샘터에서의 휴식도 잠시 조릿대 사이로 잘난 길을 진행하니 한결 션한
맘이지만 다리는 다들 맘대로 되지않은 대원들 그래도 정맥 종주를 위해서
오늘도 정맥길을 매진 할뿐이다. 팔공산에 오르는길은 급경사 길이며
정상의 철탑을 목표점으로 하여 오른다. 정상에 오르니 돌아온 정맥 구간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맥길이란게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라는 진리. 가까운 길을 멀리 물길을 피해
이곳까지 왔나보다 라 생각하며 우리의 홍일점이신 권여사님께서 주신
방울 도마도를 한입에 넣고 상큼함을 느끼며 오늘의 최고봉에서 한컷 남긴
다. 정상에는 철탑만이 덩그러니 지키고 옆엔 헬기장이 있다.



<팔공산 정상에서 대축목장과 신무산이…>
헬기장을 돌아 내려서니 눈과 얼음길은 베낭속의 아이젠을 다시 꺼내
챙기게 한다. 넘어져 엉덩방아의 시림 보다는 귀찮아도 장구를 채워
안전에 대비 하는게 산악인들의 준비성 이다.
팔공산에서 서구리재 까지 한시간여의 길은 온통 하산주인 막걸리 생각뿐인
능선길이다…
서구리재에는 개 짓는소리가 요란하고 우릴 반겨주는 붉은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관광 백두 산악회 전용버스와 김기사가 끓이는 막걸리 찌게 향이 넘 좋
다. 서구리재는 터널 상부에 동물 이동통로를 만들어 동물보호에 한몫하고
있다.


<서구이재의 돌지 않은 물레방아>
<서구이재 동물 이동 통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