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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개인전
제2회 개인전/팜프렛 표지
현(表現)의 한계성을 극복(克服)하기 위한 집념(執念) -조약돌의 이미지-김남수(金南洙)/미술평론가
한국화(韓國畵)에서 소재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산수경(山水境) 이다. 이른바 산(山)과 강(江)은 총체적 의미의 나의 고향이자 조국이다. 이른바 나를 낳고 길러 준 삶의 터전이요 마음의 고향이 바로 우리의 강산(江山)이다. 비단결처럼 아름답기로는 세계에서 으뜸이라 해서 우리는 금수강산(錦수江山)이라 부른다. 그런데 강산(江山)을 만드는 개체적(個體的) 인자는 하늘과 바다, 구름과 산자락 수목(樹木)과 암벽(岩壁), 바위돌과 조약돌, 모래톱등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자연의 실재적 텍스쳐요, 없어서는 안될 소재(素材)들이다. 그런데 작가 남학호(南鶴浩)는 그의 두 번째 작품전에 “조약돌”을 소재로 한 일련의 연작물(連作物)을 발표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엔 소재주의(素材主義)에 머물러 있다는 단순한 시각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때 묘사기교(模寫技巧)나 방법론(方法論) 등 조형어법(조형어법)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의 훈련이라고 생각한다면 화가에게는 한번쯤 반드시 넘어야 할 프로세스라 보여지며 그의 치밀하고 진솔한 작업태도에 많는 공감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비생명체(非生命體)인 조약돌에서 살아 꿈틀거리며 숨쉬는 생명(生命) 스러움을 우리는 체험해 왔고 가슴 설레이는 향수(鄕愁)와 서정(抒情)이 농축(濃縮)된 동심(童心)의 나래를 하나의 연상(連想)작용으로 경험해 왔다. 거기에는 꿈과 낭만과 선경(仙境)이 있고 억겁이 흘러도 말이 없는 자연(自然)의 신비(神秘)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조약돌의 고장이 파고(波高)없는 잔잔한 남쪽바다의 다도해(多島海)라고 하여도 좋고 집덩이 같은 파도가 부서지고 짜릿한 바닷바람에 향긋한 솔방울 내음이 콧 끝에 스미는 동해안(東海岸)이라고 하여도 좋다. 어린 시절 해조음(海潮音)에 묻혀 살던 바닷가의 추억이 연상으로 떠올라 작가는 “조약돌”을 소재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보는 이에게 지난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소재요 작품이다. “조약돌만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두드러진 까닭이라도 있는지,” 하는 필자의 물음에 작가 남학호(南鶴浩)는 다음과 같은 변(弁)을 늘어놓았다. “저의 그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조(基調)는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말한 「날개가 돋은 사람이 없어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는 선업입니다.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감추어진 미(美)를 그리는 데에도 우리 삶에 허용된 시간이 많지 않는데 어떻게 실체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存在)에 눈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작가는 이어 다음과 같은 자신의 조형관(造形觀)을 피력한다. “자연의 실존물(實存物)인 하나의 물상(物象)에 대하여 인의적인 의미부여는 자연에 대한 불경(不敬)이고, 설사 감상자의 느낌이 작가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창작(創作)이요 예술(藝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벌거벗은 알몸으로 자연(自然)의 진실(眞實)에 접근해 가려는 순진하고 꾸밈없는 작가의 치기(稚氣)를 보는 것 같아서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동양에서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유기적 전체의 한 부분으로 자연 속에서 “나”가 있으므로 그림도 그 속에서 자연스레 그려질 뿐이지 특별히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른바 모더니즘 운운하는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를 기피하는 외곬의 그의 조형사상(造形思想)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회화(繪畵)의 마지막 보루가 자연 진실을 담는 구상(具象)의 영역이요 어떻게 보면 사실주의(寫實主義)를 신봉하는 예술가(藝術家)가 아닌가도 싶다.
사실 예술(藝術)의 의미는 다양한 표현양식(表現樣式)의 공존(共存)에 있는 것이다. 시대(時代)가 그렇고 흐름이 그러니까 스스로 아류(亞流)를 자초한다면 그 스스로가 예술(藝術) 본령(本領)을 거부하는 거나 다름없다. 확고한 자기 신념 속에 독자적인 표현언어(表現言語)를 찾는 작업 그것이야말로 예술(藝術)의 진수(眞髓)를 캐는 작업 일 것이다. 동양화(東洋畵)는 직관(直觀)에 의한 심상(心象)으로 깨치는 예술이다. 해를 보고 달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조약돌을 보고 창조주(創造主)가 만들어 낸 태고(太古)의 신비나 인간의 실존을 깨치는 돌무덤을 쌓고 산신(山神)께 복을 빌고 재앙을 게 해달라는 토속신앙(土俗信仰)도 비록 허황한 것일지라도 기다림이라고 하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이번 전시회 출품을 한 「古솨朝不作(遊戱)」시리즈는 작품「歲月-模樣」「歲月-進行」과 함께 그 모두가 조약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의 구도나 조약돌의 포치(布置), 화면의 분할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표출되고 있지만 빽빽한 밀도감이나 화면전체를 압도하는 양괴(量愧)감은 이름 그래로 돌(石)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특징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청갈(靑渴)색의 톤이 주조를 이루는 색조(色調)위에 가끔 등황색조의 파필(破筆)이나 발묵(潑墨)의 효과가 조화롭게 매치되고 있는 것도 퍽 인상적이다. 이른바 구상과 추상의 접목(接木)이나 교차(交叉)지점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작가 남학호(南鶴浩)의 잠재력이나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특히 이 작가의 기량과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것은 화선지에 모필(毛筆)작업, 혹은 수성혼합의 채색 등을 자재롭게 구사하고 있는 점도 놀랍지만 물기를 한껏 머금은 화선지가 금방 축 쳐쳐버릴 듯한 바탕 위에, 예리한 붓끝으로 파내는 듯한 섬세하고 정교한 운필(運筆)의 묘(妙)는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기에 충분하고 오랜 세월동안 풍랑(風浪)에 부딪치고 씻기어 마치 매끈하게 다듬어 놓은 듯한 질감은 한마디로 돌이 숨쉬고 있는 석리법(石理法)을 깨치는 듯한 착각도 갖게 한다. 언뜻보아 쇠붙이로 깎고 다듬어 놓은 듯 착시(錯視)현상도 엿보이고 있어 작가의 어떤 의미적 배려가 아닌가도 싶지만, 과연 그의 예술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 발전 할 것인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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