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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이재기 부장 작성)
헌법재판소가 2014년 연말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편차 3:1이 위헌이라는 결정과 함께 2:1로 조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선거구 재획정과 정치개혁은 2015년 정치권의 최대 과제로 대두됐다. 더구나 선거구 획정시한까지 2015년 12월말로 못박아 선거구 획정을 포함한 정치개혁작업은 정치권이 당면한 초미의 관심사이자 과제가 됐다.
헌재 결정에 따라 농어촌의 작은 선거구 62개는 통폐합 대상으로 떠올랐고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인접 선거구에 크고 작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늦어도 연말까지는 20대 총선거에 대비해 새로운 ‘선거의 룰’을 만들고 동시에 선거구 재획정까지 마쳐야 하는 부담이 있고 선거구 획정의 대상이 된 국회의원들은 처지가 바늘 방석이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등의 선거구 처럼 인구가 부족해서 여러 개 기초자치단체를 한데 합쳐서 겨우 인구기준을 맞춘 선거구들은 또다시 개편 0순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거를 앞두고 직전 해에 열린 정치개혁특위에서도 통폐합 대상이 된 일부 지역구 국회의원이 정치개혁특위 회의장을 찾아가 난리를 피우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이번에는 선거구 재획정 문제가 걸려 상황이 그때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대 총선룰과 관련해 지금까지 형성되고 있는 큰 흐름은 지나치게 많은 국민의 투표가 사표로 버려지는 선거제도를 손질하고 지역감정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입법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사표(死票)도 막고 국민의 지지성향이 좀 더 정확하게 의석배분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가 논의되고 있고 지역감정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줄 방안으로 석패율제가 거론된다.
여야지도부는 일단 석패율제 도입필요성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지만 비례대표제 증원에는 당에 따라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지난달 중앙선관위가 내놓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역구와 비례간 의석비율을 2:1로 조정하는 방안’을 19대 총선득표에 대입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새누리당이 영남지역에서 잃는 의석수가 호남에서 얻는 의석수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는 상당한 찬반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특정 정당이 약세지역에 출마한 후보를 비례대표 상위순번에도 동시 공천해서 지역구 선거에서 차점으로 아쉽게 낙선할 경우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석패율제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공감하고 있다. 도입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선거구 재획정과 20대 총선룰 정비를 위한 정치개혁특위는 여야합의로 구성돼 지난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을 위원장으로 새누리.새정치 각각 9명, 정의당 1명 등 20명으로 구성됐으며 ‘선거구 획정안 마련’과 ‘선거제도 개편’이 주요하게 추진해야할 역할이다.
선거구 획정안 마련은 현역 의원의 지역구가 통폐합되고 선거구 범위가 조정되는 등 민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이슈로서 막상 선거구 획정이 시작되면 적지 않은 진통이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개특위 위원 인선에서 지역구가 조정대상으로 거론된 의원 등 이해관계가 있는 국회의원들은 (위원 선정에서)완전 배제됐다.
선거구 획정이 발등의 불이 된 농어촌 선거구 출신 국회의원들은 정치개혁특위 진출이 좌절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지역구가 공중분해되거나 다른 지역구와 통폐합될 경우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까닭이다. ‘지역구가 사라지면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란 위기감이 높은 상태다.
전남 장흥.강진.영암 출신 새정치연합 황주홍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2014년 12월 3일 ‘농어촌 지방 주권지키기 의원모임’에 참석해 이른바 ‘고향투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고향투표제는 주민등록과 관계없이 유권자 본인의 고향에서도(등록기준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농어촌 선거구 감소를 막을 수 있어 농어촌 주권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도입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현 주민등록 주소지에서 투표할 수도 있고 등록기준지(고향=호적지)에서도 투표가 가능하게 된다.
황주홍 의원은 3월 10일 공직선거법 제37조 2항에 ‘선거권자 중 등록기준지에서 투표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당 선거의 선거일 전 30일까지 관할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방안의 찬성론자들은 갈수록 감소하는 농촌인구, 이에따른 지역구 감소로 농어촌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대표성이 현격히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고향투표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황정근 변호사는 ‘선거구 지역 대표성 살리는 법’ 제하의 글에서 고향투표제를 일컬어 “몇개의 시군을 강제로 묶지 말고 인구가 남아도는 대도시에서 선거인구가 모자라는 농어촌 고향으로 선거인을 꿔주자는 것이다. 일종의 사이버 게리맨더링이다”는 찬성논리를 펴기도 했다.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갈수록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의회의 지역대표성을 강화하는 개혁은 필수적인 과제가 되고 있고 이런 차원에서 고향투표제도 대안으로 검토해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첫째, 선거구는 유권자들의 선택사항이라고 하지만 입후보자 입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출향인사나 그 2세들을 고향으로 끌어와야 머리수를 채워 선거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후보자간 과도한 경쟁 유발가능성이 농후하고 이 경우 불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입후보자 입장에서는 지역구 유지를 위해 뛴다고 하지만 ‘고향을 선택해주세요’라는 호소 자체가 선거운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구민의 민의가 왜곡될 우려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급격히 산업화되는 시군의 경우 인구구성이 외지인 대 토박이가 비슷하거나 역전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지역출신을 투표권자로 불러들임으로써 선출되는 국회의원이 바뀌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외지인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던 것이 토박이 지지후보로 바뀌게 되면 대변되는 민의 또한 달라질 것이다.
셋째 투표는 고향에 가서 하고 실 생활의 터전은 주민등록지로 유지할 경우 표를 몰아준 유권자에 대한 책임정치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제도 도입의 취지가 다분히 인구부족으로 폐쇄될 위기에 처한 지역구를 살려내는데 목적이 두어졌기 때문에 새로 유입된 유권자는 머리수를 채워주는 사람들로 인식될 여지도 없지 않다.
넷째 선거구 획정 자체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으레껏 총선거나 각급 선거가 있을때마다 정치개혁특위를 만들어 선거구를 획정하게 된다. 선거관리의 편의성을 높이고 선거구가 제대로 획정되지 않았을 때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선거구 획정과 별도로 사전에 신고를 거쳐 다른 선거구에 선거인으로 등재하는 행위는 선거구획정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와함께, 주소지 선거구에 투표해도 되고, 고향에 투표해도 된다면 고향투표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는 얘긴데 이는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고향투표제는 세계적으로 채택된 선례가 없는 제도라는 점도 법개정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시행되거나 채택된 선례가 없는 제도”라며 “부작용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권과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화와 농어촌 인구 감소에 따라 점감하는 지역대표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양원제로의 개헌 등 2가지 대안을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전자는 당장 20대 총선에서부터 실시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정치권에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해 둔 상태인데다 전술한대로 정치권에서도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는 1등 후보자에게 던진 표 외에는 의석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표로 버려지게 된다. 그러나, 선거구에 따라서는 당선자와 차점자의 득표차가 10표 안팎인 곳도 있고 박빙선거가 많을수록 사표수도 증가한다.
반면에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에 지역구 후보자와 함께 비례대표 후보자를 동시에 공천하면 비례대표로 당선한 입후보자는 광역이긴 하지만 지역대표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구미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양원제는, 개헌논의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20대 총선 전 급진전될 확률이 낮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1987년체제가 출범한 지 30년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각 분야 변화.발전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해 계기만 마련되면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인구비례로 하원의원을 선출하고 인구와 무관하게 각 주마다 2명씩의 주 대표를 선출해 상원을 구성하고 있다. 상,하원 모두 해당지역 주민의 권익을 대변하지만 상원의원들은 인구수가 적어 과소대표의 우려가 제기되는 델라웨어나 몬태나, 하와이 같은 작은 주의 지역 대표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기왕에 제시된 고향투표제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선거.의회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해 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