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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이단성 비판 1
1. 상식이란,
상식이란, 기본적인 지식의 체계와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상식이 없다면 몰지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상식이 있는 사람만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란 인간 사고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몰지각한 사람을 만납니다. 상식을 벗어난 자기 사고의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는 사고의 틀이 어찌 짜여져 있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으로 고착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그리스도인은 상식을 초월한 사람들이지요. 그리스도로 인하여 순교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육신의 한계를 신앙으로 초월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에는 육신에 매어 달려 있는 육적인 존재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원리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이단이 생긴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토양에서 같은 말씀을 먹고 자라났는데 어찌 이단이 생겨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하게도 이단은 생깁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는 이단아 가룟유다 입니다.
이로 보건데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의 틀이 어떤가 하는 것에서 이단성향이 있다 와 없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상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이단성향은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이 가고 손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대하여 도전해 보고 싶은 도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진리를 받는 사람의 상식이 건전한가의 정도에 따라서 보존 혹은 변질될 수도 있으며 수호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2. 상식에서 본 윗트니스 리의 기독관
윗트니스 리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국인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유전적으로 불교와 가깝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토양에서 역사가 반복되어진 특성이 있으며 불교는 중국의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불교적 사고의 틀을 유전적으로 제공해 줍니다. 중국인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배경에는 불교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 최고로 말하는 지고한 선의 완성은 부처가 되는 것이며, 고도의 마음 정화와 수양을 통하여 결국에는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문화라는 겁니다. 이 문화 속에서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성경을 보았고 성경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하여 신학자들의 책을 섭렵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책에서 만나지는 글들에 대하여는 자신의 사고와 같은 사고나 논조에 대하여는 깊이 빠져 들게 되고 자신의 사고와 논조에 반하는 책들에 대하여는 한 페이지도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책으로 만나는 스승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에 반하여 스승이 있는 제자들은 스승의 책에 대하여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되고 익혀야 합니다. 왜냐면 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자신의 논조와 사상이 다른 스승의 책을 통하여 또 다른 사상과 접하여지게 되고 사상의 폭과 깊이가 넓혀지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자신의 영역 안에서의 사고와 사상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겁니다. 실상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 안에 들어 있는 사고와 사상의 틀을 부수고 정돈하여 바르게 세워 주는 것이 학문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스승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12사도는 상상조차 안 되는 것처럼 스승이 없는 제자는 없는 겁니다.
3. 윗트니스 리의 신학 사상에서 보이는 부처와 아리우스
스승이 없는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자유로운 연구와 해석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고의 영역 안에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 속에서 여러 가지 문화와 입장들에 대하여 만나 보았으나, 결국은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입장에 있는 아리안 주의자들의 책을 선택하였고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양태론을 주창한 자로서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능력을 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보고 있음), 최종적인 십자가에 대한 죽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인정하여 살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다고 주장하였으며 325년 니케야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당하였습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아리우스], (서울 :대한교육출판공사), 1980, p.688.] [교회사 핸드북, [공의회와 신조],David F. Wright, (서울 :생명의 말씀사),1989. p.156.]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었으나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었으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는 논리로, 인간을 내세우는데 있습니다. 이제 윗트니스 리의 주장과 어떤 점이 일치하는지 보십시요. 똑같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인 겁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기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오.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안형식, [인터넷 시대의 영성과 레마선교회의 영성에 대한 비판], 근간. ***
왜 이런 주장이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에게서 나왔을까요? 불교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사고의 틀에서 나온 사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윗트니스 리가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와 같은 존재이며 다만 이름만이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서는 성령이 주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들에게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존재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옥황상제에 불과 합니다. 결국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나, 이름이 바뀐 부처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나 옥황상제를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지극히 인본주의이며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으로 간주합니다.
3.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한국교회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분석
1. 신학 사상의 비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중국적 기독교 사관은, 현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은 정통교회관과 성령관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베뢰아를 비롯한 인본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신학을 퍼뜨린 점을 먼저 들 수 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의 신학의 핵심은 성령의 사역에 해당되는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대치시킨 점에서 크게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삼분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처소로, 혼은 정신이며 더러운 생각과 각종 악이 혼재할 수 있는 좌소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육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할 죄가 기생하는 저급한 처소로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받았을 때 거듭나며 (중생), 그 거듭남이란 영을 말함으로 자신들의 영은 결코 죄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인간론을 말함으로, 인간의 영은 그리스도와 버금갈 수 있는 존재로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추종자들에게서는 성령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생깁니다. 성령의 존재에 버금가는 자신들의 영의 존재가 있는데, 왜 성령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내 영에 거하므로 내가 곧 그리스도의 형제라고 말하며 이른바 [형제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삼은 성경구절은 고린도 전서 15장이며,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을 근거로 하여 "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 를 증거로 자신들의 교리를 발전시켜 인간론과 구원론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1+1+1=1 이라는 등식의 삼일론을 말하며 성부는 성자이며 동시에 "성령이시다" 로 주장합니다. 신론이 망가져 있다는 말인데 이는 성령의 좌소와 사역 그리고 성령의 위상에 대하여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체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한 경험으로 말하고 있음으로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좌소를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끼워서 생각하고 있는 소치를 드러내면서 한 면으로는 아주 중대한 오해를 야기시키는데 철저한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틀 안에 성부 하나님을 끼워 넣는 엄청난 실수와 오만과 무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과 일치하는 주장이 되겠습니다.
증거)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특징은, 인간의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는 용감하게 제외시키고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사고의 영역에서 기독론을 다루고 있는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는 유물사관이 배어져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하여는 심각할 정도로 약화시키고 있는 점입니다. 이 점은 지방교회나 회복교회가 [중국적 기독교]라는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는 증거이지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를 주장하면서도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내 말을 지키면" 이라는 중대한 조건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인 양태가 [말씀] 임을 부인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중대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로서 성도 안에 들어오신다."는 공교한 주장을 함으로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리로 알고 있는 정통교회의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위치는 자신들의 주장에 꿰어 맞추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아주 중대한 근거와 전제를 빼고 해석함으로 성경전체를 자유주의로 해석하며 인본주의적인 토대로 접근하고 있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위상을 가진 천사 정도의 위상으로 존치 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불러도 성령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예수 이름으로 해결됩니다.
위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은 표본이 베뢰아이며,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등장시킨 것은 위트니스 리의 성령론과 교회론의 모호함 때문입니다. 베뢰아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만병통치약이며 만들어져 있는 귀신을 내어 쫓는 처방전입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업적은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신학 사상의 배급]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2. 신학적 근거에 의한 비판
이제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분석하여 비판하여 보겠습니다.
(1) 신론
① "성경 말씀의 권위를 믿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어진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아버지라고 불리어진 그 아들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져야한다....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아들은 영존 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7. P. 64, 1-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더욱이 고린도후서 3장17절에서는「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는 주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데 일치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또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한다. 그 영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영이 성령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어지고 주님이신 그 아들은 또한 그 영이시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임을 의미한다"(7. P. 64, 11-17 ; 윗트니스 리 주장).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의 ①, ②, ③ 주장은 전통적인 아리안 주의의 양태론입니다. 아리안 주의를 그대로 옮겨서 사용하고 있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들은 체현이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되셨음을 공교하게 말합니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샤벨리안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그 하나님의 체현이다" 곧 근본 하나님이신 성부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체현하시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③에서 이들의 주장은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윗트니스 리의 교도들은 4세기 이단의 전형적인 주장을 현대에 배포하고 있으며 이는 인본주의적인 성경접근과 자유주의 성경해석을 적용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위험성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주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평신도 교회라는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하였으며, 교파와 교단으로 특정 지어진 교회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있던 한국의 종교기독인들이 위트니스의 추종자들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⑥ "여호와이신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그 영, 출애굽기 3장 15절과16절은 여호와이신 그리스도가 삼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한다.「삼일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세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유일한 하나님이 삼일(三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셋-하나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한 분이나 셋이며 셋이나 한 분이다. 그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한 하나님이시다(마28:19). 이것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16. p.9, 하1-9 ;윗트니스 리 주장).
위트니스 리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라는 말로 비참한 설명을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가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지극히 무지함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으며, 지극히 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열거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함을 자신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셋인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인 하나님이 되시는지와 하나인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셋이 되는지 알 수가 없으며 이것을 신비하다"고 말함으로 더 이상의 삼일론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위의 주장에서 감히 [우리는] 이라는 말로 모든 기독인들을 기만하고 있는 오만함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3) 구원론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왜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것일까요.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이지요.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깃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인 겁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지요.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방교도들을 살리는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체로 들어 오셔서 자신들을 영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고 다만 아직 인간인 몸으로는 죄를 지을 수도 있으며, 인간의 한계인 죄의 문제는 자신들의 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혼은 생각이며 그 생각 중에는 악한 생각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아직 극복해내지 못한 어린 신자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의 영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실체까지를 포함하여 넷으로 구분합니다. 즉, 영과 혼과 육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합하여 넷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증거) ② "그 분은 주, 말 씀, 영이라고 불리우는 한 분 인격이시다. 주님은 또한 생명이시며(요14:6), 말씀과 영이시다(6:63; 롬8:10), 주, 말씀, 영, 생명은 하나 안에 있는 넷이다"(28. p. 48, 하 2-4).
이들은 위의 논리로 그리스도를 자신과 동기화를 시키고 있으며 동기화 시키는 과정의 필수요건으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으로 말했다가, 한 분의 인격으로 말했다가 동시에 넷으로 말하면서 혼란을 증폭시키고 이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약한 탓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은 이들이 어떤 구차한 논리로 지방교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증거) ⑤ "신약은 우리에게 완결된 영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분명히 계시한다(롬8:2;9-11). 디모데 후서 4:22절은 주께서 우리 영에 계신다고 말한다. 복합된 생명주는 영이신 완결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사람이지만 신성한 영이 우리에게 더해졌다"(27. P. 145, 5-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신성한 영, 신성한 영이 더해진 우리의 영" 넷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 혼돈으로 연결되어지며 오리무중인 이들의 말장난은 어디까지 계속할 것인가! 다음은 이들이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을 보면 산 너머 산입니다. 아주 험한 험산 준령입니다. 이들이 찬송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과 자신을 동질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충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
1절, 이제 우리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되었네. 부활하신 하나님 사람 승천하여 그 영되셨네.
2절, 승천하신 예수로부터 내 영 안에 그 영이 임했네. 그의 모든 실제 이-제 우리 체험 되게 하셨네.
3절, 예수 그리스도의-영 모든 성분을 포함하였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 감춰져
4절, 이 영 안에 포함돼 있네 죽음의 효능 부활의 능력. 승천 보좌 권위와 왕국 하나님의 모든 성분이
5절, 이 영이 그 모든 성분을 내 영 안에서 역사하시네. 그의 기름부음 통하여 나도 주의 풍성 누리네
6절, 나의 모든 비결 되-신 만유 포함한 그 영 인하여. 하나님 내 모든 것 되어 내 안에서 역사하시네.
(위트니스 리, [성령], (서울:한국복음서원) 1989, p.48)
(4) 삼위일체론의 요소.
삼위일체론을 말할 때에는 중대한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견인해 가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풀어져야 하는 요소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상호내재 하신다고 설명으로 생략하는 것으로는 삼위일체론이 되지 못합니다. 이 요소가 설명이 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이단적이라고 말하며, 이와 유사한 다른 근거를 제시할 때 이단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양육되어지고 성장하며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처소로 말해집니다. 모든 종교에는 종교의 배경이 되는 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경에는 어떤 기준으로 구원이 말해져야 하고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양육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기본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을 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조건이 말씀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말씀되어지고 있는 구원의 조건은 창조주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를 율법이라고 말하며 복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의 삶은 수천 년을 통해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을 통과하여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근거되지 않는 말은 철학이라고 말하며 인간수양이라는 뜻으로 "도"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귀와 절과 각이 서로 맞게 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되어진 내용이 신약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에서 인용되는 글이 구약에서 출처되어집니다. 성경의 저자는 각 각이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어진 분들이 성경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시차와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여 기록된 예언이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저자들을 성령께서 감동하셨기 때문이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풀기 위하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말씀이 뿜어져 나오거나, 성령에 감동되어 글이나 책을 써서 펼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거나 글을 읽은 분들의 생각의 틀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의 틀이 퍼지면서 사상으로 발전됩니다. 따라서 사상을 추적하면 어떤 생각인지가 나오며 과연 성령의 감동을 입은 생각에서 나온 글인지, 아닌지가 분별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지요.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입니다.
(5) 지방교회의 "삼신론" 이라는 신조어에 대하여
기독교내에는 삼신론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구분 못하는 자들에게서 양태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3세기에 일어난 샤벨리안 주의이며 그 유명한 "성부고난설"입니다. 양태론이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존재양태에 대하여 구별을 하지 못할 때에 빠져드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샤벨리우스(Sabellianismus)를 따르던 분별력이 없는 자들을 통하여 사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샤벨리안 주의 혹은 양태론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사벨리우스 항목], (서울 : 교육출판공사, p.478.)
삼신론이란, 고조선 시대의 삼신 사상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천제 (환인), 천주 (환웅), 단군을 일컬어 삼신으로 불렀습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김연진씨를 비롯한 지방교인들의 삼신론 사상은 고조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며, 단군교와 밀접하지 않고는 삼신론을 말하는 기독교인은 없다는 점을 알아 두어야할 것입니다.
지방교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기독교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삼신론" 이라는 말로, 원세호 목사와 최삼경 목사를 조사한 통합측 교단의 이단심사위원들은 근거도 없는 지방교인들의 신조어를 양성화 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뢰와와 이명범씨의 레마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던 통합측에서 베뢰와와 레마선교회의 원조격인 지방교회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6)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의 영향
워치만 니의 영향을 받고 김기동 목사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세워서 귀신론을 널리 펼쳤으며, 평신도였던 베뢰아 1기생인 이명범씨는 레마 선교회를 창설하여 평신도로서 성경 사역을 빌미로 하여 워치만 니의 사상을 고급 베뢰아로 발전시켜 각 교단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베뢰와의 귀신론을 주창하는 인사들은 각 교단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실정에 있으며 워치만 니의 사상과 환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는 주역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기복사상이 퍼졌고, 물질만능주의와 혼합되어 있는 인위적인 영성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지방교회 및 평신도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와 워치만 니가 고후 3:17을 등장시켜서 인위적인 성경해석으로 접근하도록 운동한 덕분이지요. 그래서 베뢰아 및 이단들은 [자유적인 성경해석]을 외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용감한 평신도 및 교역자들에게서 자유주의신학이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예수복음]이 주창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 흥부네 집의 박씨가 자라나게 하며 [대박]이 터지는 [세상복음]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워치만 니의 사상을 퍼뜨리고 있는 지방교회에서 줄기차게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내재하신다는 주장을 못 버리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이미 김연진씨와 지방교인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빌면 재림주이며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실체 그대로 자신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구별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님으로 내 안에 깃들어 계시는데 어찌 나를 심판하시겠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지요.
4. 지방교회가 이신론이라는 근거
워치만 니의 경륜을 인용한 지방교회의 김연진씨는 다음과 같이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하나님이요, 그 영은 실제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87-경륜, 15쪽).이제 주(主)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이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님을 증명한다. 주(主)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그 영이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여기에서도 성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성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87-경륜, 15쪽)."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 누차 말씀드리지만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에 대해 무지할 때 양태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태론이 아닙니다. 위 인용문의 출처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87-경륜, 15쪽)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책의 내용이 [경륜적인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다뤘다는 말입니다. 본질적인 삼위일체는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영원토록 구별되고 독립되십니다.
그러나 성경본문에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시고 아들이 성령인 것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려하다가 나온 해석 관점이 바로 구속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경륜적인 삼위 일체인 것이지요. ["양태론이 아닙니다. 21631번 글을 형제 님이 남겨 주셨습니다.2003-04-20 오전 11:12:48에 작성된 이 글은 9번 조회되었습니다.] (출처 뉴조게시판)
위의 해설에서 주장하기를 몇 번을 말해도 이해가 안되지요? 하면서 자신들의 해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들도 이해가 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위의 내용은 전형적인 양태론이며 이신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이신론이다, 양태론이다 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해석으로] 경륜론을 등장시킵니다.
경륜론이란 인간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륜론의 해석 근거를 고후 3:17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주장하는 것은 고후 3:18절입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지방교회는 삼위간에 대한 구별을 못하고 있음을 자신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히 고민하여 경륜론을 내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성령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워치만 니의 고민에 의하여 해석되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에게서는 성령께 감동되어진 흔적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인간이었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령의 사역을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위적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하 감옥에서 고민하다가 나온 사상. 그래서 이들을 [중국적 기독교] 혹은 더욱 세분하여 [중국적 예수교]라고 분류합니다. 이들에게는 실상 삼위일체론이 없습니다. 각각 떨어져 있고 두툼하며 비싼 책만이 존재하는 겁니다. 이단들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겉은 같은 데, 속은 전혀 다른 사상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이단성에 대한 비판은 이단사상에 대한 비판입니다.
4. [지방교회의 중점 교리 분석과 비판연구]
현금에 한국인을 극도로 긴장하게 한, 대순진리회의 성전건축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생명수 부활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요동하고 있다. 이는 대순진리회가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천도교와 단군교를 혼합한 유사종교이기 때문에 대순진리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의혹의 눈총을 받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늘 한국 교회의 주변에 맴도는 하이에나와 같은 이단종파들로 인하여 한국 교회의 신학사상은 누룩이 든 빵과 같이 심히 부풀려져 있는 상태에 있다. 과연 순수한 기독교 사상이 이단들의 오도된 성경접근 방식과 인위적인 해석방식을 얼마나 많이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자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한 개혁주의 사상은 지상교회 부흥이라는 명분 하에 꿩잡는게 매라는 식의 인본주의와 적당한 자유주의를 도입하여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교회로 흘러가고 있다. 예배가 그렇고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도 그러하다. 교회의 행사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교단을 초월한 독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헤비메탈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설교시간을 토론식 설교라는 이름으로 토론회로 둔갑시킴으로 예배의 경건함과 최소한의 엄숙함마저 던져 버리고 있는 교회들이 늘고 있으며 이들은 그러한 형태의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애써 광고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 예가 예수촌 교회이다.
김기동, 이초석, 이태화, 이명범, 윤석전 목사로 이어지는 베뢰아의 행진은 한국 교회의 영성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지경에 있으며 예태해의 빈야드 운동, 류광수의 다락방, 박철수의 새생활 영성훈련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기독교의 영성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여 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러 베뢰아를 출산한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지방, 회복 교회의 교리를 분석하고 비판하여 경종을 울리는 것은 한국교회를 위하여 지극히 당연하며 평범한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비판방법은 지방교회 측의 중요한 핵심 교리인 체현, 분배, 회복, 지방, 상호내재, 신화, 삼일, 경륜론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비판한다. 아래에서 사용하는 비판의 출처는 원세호 박사로부터 허락을 득한 것이며, 원세호 박사의 [지방교회 비판 변증서 1, 2, 3 권]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4-1. [회복론]
모든 이단들이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정통교회를 율법적이라 혹은 전통의 사슬에 매여 있다. 혹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한다 등등의 주장으로 정통교회를 치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통교회를 음녀, 바벨론으로 도전하며 세웠다. 과연 그러한가? 아래에서 이어지는 이들의 교리는 오직 지방교회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작업으로 윗트니스 리의 론을 구체화 하고 있는 작업이다.
증거) 11. 지방파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
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사역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교회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드려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 몸으로서의 교회 사역이 완성되는 그 날에 신부로서의 교회가 나타날 것이다"(15. p. 64, 하 4-8줄, 워치만 니 주장).
② "하나님 자신도 하실 말씀이 없을 것인 즉 이는 그 날에 가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15. p. 87, 5-7줄, 워치만 니 주장).
③ "교회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오늘 있는 것이다"(22. p. 71, 18-20줄 워치만 니 주장).
증거) 지방교회와 회복론
① "지방교회는 그의 본성을 가진 참된 합일의 입장 위에 서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예수의 간증을 지녀야 한다...이것이 교회생활 안에서의 주의 회복이다"(32. p. 66, 하 1-8).
② "그의 창조의 목적은 교회를 낳는 것이었다. 구속에 있어서도 그의 목적은 교회에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은 전파하는 일,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 등의 모든 사역이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복음전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도들을 양육시키는 것도 양육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서 보면 모든 역사와 사역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구속을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교회 건축을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이다"(22. p. 69, 10-21줄, 워치만 니).
③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인간이 사탄의 모든 일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그러한 교회이다"( 15. p. 57, 하1-6줄, 워치만 니).
[비판]
워치만 니는 정통 교회를 사탄의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지방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내어 걸고 미혹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도록 방조하셨다는 말인가?
오직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율법을 내려 주셨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사건 이후로 노아의 홍수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한 번도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시고 있지 않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제사를 드리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말씀(율법)을 내리신 적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교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성막을 세우게 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시작은 광야교회인 성막으로부터 시작한다.(행 7:38)
그렇다면 그 이전의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는가? 제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하였다.
따라서 교회 이전의 시대과 교회 이후의 시대를 총망라해서 오직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혹은 말씀을 통해서 믿음에서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으로 구원에서 영생으로 이르게 하심이 증명된다. 그 믿음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 보내신 아들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롬 10:9,10, 요 3:15,16,36)
이어서 워치만 니의 인본주의사상은 계속하여 자유주의 해석으로 입맛대로 해석하면서 지방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회복이라는 명제를 설정하고는 밀어붙이기 한 판으로, 한 편으로는 정통교회를 사탄의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지방교회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현세적인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③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인간이 사탄의 모든 일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그러한 교회이다"
워치만 니는 말하기를 그의 특이한 교회론을 말하면서 교회란, ③ "교회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오늘 있는 것이다" 고 주장하였다. 워치만 니가 말하고 있는 교회란, 오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현실의 지방교회를 내세에 나타날 새 예루살렘 교회를 동일시 하고 있는 시대착오 적이며 광오한 교회론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윗트니스 리의 시각에 현세에 집중되어져 있으며 오직 지방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광분되어 있음을 증명해준다.
특히 워치만 니의 후계자인 윗트니스 리는 이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간증과 체현, 그리고 삼위일체론을 삼일론으로 둔갑을 시킨 삼일론이 양태론임을 염두에 두고는 삼신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공격하면서 삼일론이라는 맹랑한 양태론의 아리안 주의를 도입하여 지방교회를 세우는 목적의 당위성에 대하여 황당한 말로 설명하고 있다.
4-2. [체현론]의 교리와 비판
윗트니스 리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라고 보고 있으며, 이 실체가 자신들에게 들어 오는 과정을 체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체현의 교리와 과정은 먼저 몇 개의 전제를 필요로 하는데 ,
하나님의 법궤 안에 들어 있는 금 항아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고, 금 항아리에 들어 있는 만나를 예수그리스도의 실체로 설명한다. 이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날에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6)와 요한복음 6장 48-51절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를 근거로 하여 아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자신들의 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분배하여 나누어서 체현하는 것의 근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다 버린 요한복음 6장 47절 말씀은 확고한 전제 하에서 요한복음 6장 48-51절 말씀을 서술하고 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가 오직 믿음이다.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의 정의에 대하여 확실하고도 분명한 정체를 명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기 전에는 오직 말씀으로 계시되셨다.
1) 먹는다
증거) 4.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방법과 그 목적
① "어떻게 그 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로 그 분의 말씀을 읽음으로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라 '오, 주 예수여 당신은 하나님의 생명의 체현이십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으로 기도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굶주리면서 먹기를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오, 주 예수여! 라고 부르라 조금이라도 다만 시도해 보라 이와 같이 주님을 먹으면 먹을수록 당신은 더욱 그 분을 먹기 원할 것이다"(30. p. 27, 하 2-11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주님은 만족시켜주는 음식이시다. 그 분은 생명이시오 생명의 떡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먹는 것으로 인해 산다. 사탄은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에 관해서 그들을 속였다. 이것이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이유이다..."(32. p. 27, 9-12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③ "예수님을 먹는 방법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 하시도다(롬10:12). 우리 모두는 달콤함과 즐거움으로 그 분을 불러야 한다. '주 예수여, 당신은 너무 달콤합니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나의 생명으로 취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오 주님 당신은 내게 생명의 떡이십니다. 이와 같이 그 분을 먹기를 시도하라...(요6:57), 우리가 예수님을 먹을 때 우리는 그 분으로 인해 살게 된다"(32. p. 28, 3-11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④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은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음식으로 취한 하나님을 표현한다. 우리의 음식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안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이 표현되지만 그러나 그 분의 표현은 특징 있는 우리 존재 안에서 이루어진다"(10. p. 12, 6-8줄 ; 윗트니스 리 주장).
2) 마신다.
증거) 3. '공기'같은 존재인 그리스도를 마시려고 그 이름을 부름
①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그 영이시다(고전15:45 하 ; 고후3:17).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체현된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 안에서 그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 분은 그 영, 즉 공기 같은 그리스도이다"(10. p. 87, 2-4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려고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시인하는데 주문처럼 외우라고 권하고 있다. 목탁을 치면서 경을 외우듯 하라는 소리인데, 이는 윗트니스 리가 중국의 불교권의 문화를 유전으로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목탁을 치면서 금강경을 외듯,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양할 것을 권하고 있다.
3)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먹어 치우는 순서
증거) ① "예를 들어 그것을 설명해 보겠다. 만일 여러분이 수박을 산다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먹어 소화시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여러분 안으로 역사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첫째로 여러분은 수박을 산다. 둘째로 그것을 여러 쪽으로 자른다. 셋째로 이 수박이 여러분의 위로 들어가기 전에 즙이 될 때까지 씹는다. 수박이 조각들이 되고 조각들이 즙이 된다. 그러면 이것들은 각각 다른 세 가지인가, 한가지인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삼일성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임을 확신한다" (7. P. 65, 9-17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아버지는 온전한 수박으로 설명된다. 아들은 조각난 수박으로 성령은 수박의 즙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제 여러분은 요점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아들도 된다. 그리고 아들은 아들일 뿐만 아니라 성령이 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수박은 먹기 위한 조각도 되며 우리 안에 있는 즙도 된다. 그 수박도 먹혀진 후 없어진다. 본래 수박은 식탁 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먹은 후에 그 수박은 온 가족 속에 있는 것이다" (7. P. 65, 하1-2; P. 66 1-5줄; 윗트니스 리 주장).
③ "우리의 하나님은 삼일의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안으로 분배되실 수 있다. 수박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려면 먼저 쪼개어져야 한다. 이 조각들은 씹어 먹을 때 즙이 된다. 온전한 수박, 조각들, 및 즙은「수박의 삼일성」으로 간주 될 수 있다. 수박이 그 과정을 거쳐 즙이 될 때 그것은 우리 안으로 쉽게 흡수되어 바로 우리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을 통해 과정을 거치셔서 이제 그 분은 그 영 하나님이시다. 오늘 날 그 영은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수박의 즙과 같다. 우리 모두는 성령을 마셔왔다 (고전12:13), 성경은 우리가 한 아버지나 한 아들을 마셨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온전한 수박이나 수박 조각들은 마실 수 없으나 그 즙은 마실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인 그 영을 마실 수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 날 즙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다"(40. P. 11. 7-9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이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위와 같이 조각조각내어 먹어 치웠다. 목탁을 치면서 주문을 외우는 승려들과 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골백번씩 부르면서 주문을 외라고 가르친다.
과연 예수님의 이름을 외는 것이 기도이겠는가? 골백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이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조각내서 씹어 먹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은 이들 믿음대로라면 이들 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지방교도들은 예수님의 몸이 되었고 실체가 되어 있다.
왜 이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한가? 윗트니스 리는 중국적인 사고의 방법으로 성경을 풀었고 이해했고, 불교의 문화권이라는 틀 안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마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달은 싯타르타처럼 말이다.
윗트니스 리는 해탈하여 부처가 되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고 깨달음을 널리 반포하기 위하여 정통 교회를 음녀, 바벨론으로 비유하면서 지방교회를 세웠다.
보라! 오늘날의 종말론자와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결국 종말론자들도 윗트니스와 워치만 니의 책을 보고는 해탈의 경지에서 종말론파를 만들어 냈다.
윗트니스 리가 수박을 쪼개서 분배한 결과이다. 이제 또 어떤 이단이 나올 것인가!!!
윗트니스 리는 현재 한국의 지방교도들에 의하여 반 그리스도가 되어 있다.
4-3. 합병 및 상호내재 (여기에서는 인간과의 상호내재를 다루며 다음 장에서 다룰 삼일론에서 신론에 해당되는 상호내재를 다루려고 한다)
증거) ⑤ "신약은 우리에게 완결된 영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심을 분명히 계시한다(롬8:2;9-11). 디모데 후서 4:22절은 주께서 우리 영에 계신다고 말한다. 복합된 생명 주는 영이신 완결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사람이지만 신성한 영이 우리에게 더해졌다"(27. P. 145, 5-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1.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
2. 그리스도의 영
3. 복합된 생명주는 신성한 영
4. 신성한 영이 더해진 우리(지방교도)의 영
위에 열거되어 있는 영들이 지방교회에서 주창하고 있는 영들이며 이 영들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실체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하게 판단한다면 이들에게는 성령이 없다!!!
본인은 확고하게 수십 차례에 걸쳐서 아버지와 아들의 영은 성령이시다 라고 못을 박았다. 위에서 윗트니스 리가 인용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아버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성령이라고 확언하였다.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도들은 예수님의 실체가 자신들에게 들어 오셨다고 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예수님의 실체가 성도 안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윗트니스 리는 성경을 자신의 머리로 멋대로 유추해 내고 있다. 과연 추측하여 [신합일] [합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해졌다고 미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장 30절의 말씀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라고 했다. 어디 성도에게 실체로 들어가셨다고 했는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잘 못 풀었다 실수 했다의 차원이 아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성경을 변개하고 있는 것이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의 존재를 예수님의 실체라고 말하고 사이비 지방교회를 세웠다. 성령의 존재를 성령으로 말하는 정통교회를 음녀, 영적인 바벨론으로 정죄하고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실체라고 풀어내고 불교의 시각으로 자신들도 수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실체가 될 수 있다고 풀어냈다. 그 증거가 지방교회이다. 과연 지방교회가 기독교인가?
과연 지방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인가? 성경을 변개하는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짐승들의 무리들이 아닌가!!!
아래의 내용을 보라!
4-4. 신화론
1)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순서 (신화론)
거듭 당부하건대 누구든지 (지방)교회의 <신화>관련 주장을 판단하려면 그 이전에 위 <확증과 비평> 2002년 특집호 내용 전체를 두 세 번 읽어보기 바란다. 아래에서는 일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위 책의 첫 번째 글인 'Becoming God' 중에서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 중 일부를 인용 소개해 보겠다.
# 우리는 하나님이 된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난 이후 우리가 전적으로 거룩케 되며, 변화되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때까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saturated), 침투됨(permeated)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이 되는 신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인성(humanity)이 제해지거나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신분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토록 피조물과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화>는 우리가 신격(Godhead)의 일부가 될 만큼 높여지거나 하나님의 비고유적인 속성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충분하게 신화된 이후에도 우리는 무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며 무소 부재하거나 전능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계시는 조건인 스스로 존재함의 경지에까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위 책, 17쪽).
[비판]
1. 사도바울은 이미 오래 전에 지방교도들과 같은 자들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다음과 같이 두려워 떨면서 경계하며 오직 복음만을 전했다고 못을 박는다. (고전 2:3)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5)
바울 사도는 오직 복음과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 11),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고전 2:12)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고전 2: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고전 2:14)
어느 한 군데에서도 성도가 예수님의 실체로 인하여 중생 혹은 깨달음 혹은 성화가 된다는 말씀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중생이 되고 예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예수님의 마음까지 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고전 2:16)
2. 결국 이들은 하나님이 되었다. 윗트니스 리가 교주가 되어 세운 지방교회를 통하여 이들은 하나님이 되었다. 만세이~~~
그런데 위의 내용을 보면 말로만 하나님이 되는 것이란다. 능력도 나타나지 못하고 성격이나 등등 체질이 전혀 변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실체가 침투되고 적셔져서 [기분학상] 하나님이 된단다. 하나님이 되는 방법이 말에 있는가? 기분에 있는가? 최면에 빠지게 하면 하나님이 되는가? 분명히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나타나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고전 4:20)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지방교회의 교리와 윗트니스 리가 말하려고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싯따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고 해탈하여 부처가 된 것처럼, 윗트니스 리는 유전된 불교의 문화권이라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경을 보고 파고파고 또 파서 마침내 성경을 뚫어 내어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하나님이 되었다. 윗트니스 리가 찢어발기고 파고 또 파서 뚫어 낸 성경은 성경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성경 구절만 뜯어내서 자신의 교리를 만들 때에 근거자료로 사용하였다.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된 것처럼 인간도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는 단계별로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그려 내고 있다.
그리고 지방교회를 세워서 자신이 수양을 하여 깨달아 하나님이 된 것처럼 너희도 수양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높은 사탄의 씨를 영혼에 가지고 있는 교만한 자들이 지방교회에 기어 들어가서는 마침내 하나님이 되고 말았다면서, 정통교회 목사를 피조물 중의 하나로 보고, 목사제도와 교회제도를 비웃고 있는 중이다.
저들은 정통교회들이 교파를 만들어내고 분리하고 한 것이 참된 거듭남이 없는 사악한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슬며시 성경을 변개시켜서 지방파를 쏘옥하고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들의 뿌리에서 베뢰아파와 구원파와 종말론파가 나왔다. 가히 이단들의 묘판이며, 이단 양성소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되어서 한국교회의 기독사상을 외곡하고 있으며 참된 기독교인으로 가는 길을 막아 서고 있는 사탄의 자식들이다.
2) 완성된 온전한 사람
*** 결론적으로, 원세호 님을 포함한 이단 감별사들과 (지방)교회측의 <신화>(Deification)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상이점은 이것이다. 즉 (지방)교회 측은 우리 안에 오신 주님 자신인 <생명>(요14:6)과 주님 자신의 우리의 영 혼 몸 안에서의 증가인 <생명의 성장>(요10:10하 골2:19)을 관심하는 반면, 원세호 님 등은 자신들의 교단 교리에 묶여 생명과 생명의 성장에는 인식과 체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혹자는 천국 가는 것이 믿음생활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마7:21). 그렇다면 오늘 날 이 많은 소위 크리스챤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매우 의심스럽다. 또 원세호 님을 포함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예수 믿는다고 한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의 참된 의미인가? 신약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이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어떤 단계에까지 도달하는 문제이다. 즉 사람이 주님 자신을 생명으로 영접하여 그의 영이 <거듭나고> 이 생명이 우리의 존재 안에서 자라심으로 그의 혼이 <성화 되고> 마침내 우리의 몸도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형되는 <영화>가 성취되는 것이다. 지금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되시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히2:10).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은 피조물인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다(엡1:4-5).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생명 되신 주님 자신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고(요3:6) 날마다 증가되시어 우리의 혼을 거룩케 하시고(엡5:26), 새롭게 하시고(롬12:2), 변화시키시고(고후3:18),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롬8:29), 마침내 우리의 몸까지도 영화롭게 하심으로만 성취된다(골2:19, 롬8:23, 빌3:21). 이러한 온전한 구원의 성취는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있어 온전한 사람(a perfect man)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엡4:13). 이것이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람이 하나님(하나님-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으로 충만한 <한 온전한 사람>(a perfect man)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의 왕국의 실제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영원토록 만물을 다스리고 이들을 통해 표현되신다(창1:26). *** *** ***
[비판]
여기까지에서 이들은 신화 (하나님 화)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의가 무엇인가? 중국인 그리스도를 등장시키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아니면 자신들이 이미 그리스도화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온전할 수가 없는 존재이여 [한 온전한 사람]으로 부를 수도 없다. 이들이 한 온전한 사람의 상태를 성화(sanctification)로 말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한계를 전혀 망각한 그릇된 주장이다. 혈육이 있는 인간은 범죄 할 수밖에 없으며, 범죄를 하였을 때마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어야 한다. (히브리서 7장 이하를 보라)
이들은 어디에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가 빠져 있다. 믿음이 빠져 있는 기독교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너무도 분명하게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그리스도만큼 이라는 말씀과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다는 한계설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하는 말씀에 대한 강령을 받는다.
여기 한 온전한 사람으로 말하고 있는 이들 지방교도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윗트니스 리에게서 나왔다.
과연 인간이 온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있어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화가 되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곧 예수님들이 아니겠나.
이들의 위대한 스승인 윗트니스 리는 중국인 그리스도로서 그 이름은 윗트니스 예수이다.
이들에게서 베뢰아와 구원파가 나왔다. 정통교회를 음녀, 혹은 바벨론으로 부르며 증오하는 종말론자들이 어디에서 나왔나? 이들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곧 이단의 양성소이다.
이제 이들을 왜 적그리스도라고 하는지에 대하여 강호 제현들께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셨으리라고 믿는다. 이들은 한국 교회의 적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미미하기는 하나 세계를 이단화 시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수님들이다.
3) 지방교회의 한계와 본인의 입장
지방교회의 한계는 어디인가? 평신도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성경접근 방식은 자유주의이며, 성경해석방법은 인본주의이다. 이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에 대하여 양면성이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고 있다.
본인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공격은 과거 최삼경 목사와 원세호 박사를 공격한 공격의 내용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는데, 삼실론 이단, 혹은 복수성령을 주장하는 이단이라는 공격으로 본인을 압박하였다. 본인은 이들의 공격에 맞서 [나의 삼위일체론]을 내어 놓으면서 성경적인 근거에서 출발되었고 성경적으로 검증되었으며 변증가들의 변증되어진 내용을 나의 삼위일체론으로 정립하여 우리 교단 총회게시판과 기독신문게시판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이들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로 풀고 있는 이단성을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양태를 존재양태로 풀었으며 삼위 하나님의 본체의 존재방식을 존재양식으로 구별하여, 존재양식과 존재양태에 대하여 알기 쉽게 정돈하여 주었다.
다시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 될 때에는,
1.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될 때에는 구원, 선택, 예정, 섭리, 심판 이라는 고유한 양태로 계시되시고 있음을 밝혔으며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양태는 말씀으로 계시된다고 확실히 밝혔다.
3. 성령 하나님의 존재양태는, 진리의 영으로, 아들의 영으로 (행 16:7, 롬 8:9, 갈 4:6, 빌 1:19, 히 9:14),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구분 없이 ( 요 14:16, 26, 요 15:26, 요 14:17, 롬 1:4, 롬 8:2, 고후 3:3, 엡 1:13, 히9:14, 히 10:29)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통칭되고 있으며 성도에게 충만하심을 통하여 내주하심으로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견인해 가시는 것으로 계시되시고 있음을 밝혔다. 성령께서 성도를 덮어씌우심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내주하심으로 인격과 판단 가치관 등에 대하여까지 전인적으로 섭리하시고 있음이다.
성경에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으로 [성령]으로 계시될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 혹은 아버지의 영이라 구분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음은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지방교인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육신에 머물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보내시는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로 해석함으로 인하여 성령의 존재양태를 훼손하고 있다.
이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보지 못했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과 똑같은 양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조차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재림주이시며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으며 (요 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요 3:16 과 행 11:17, 행 19:2, 6을 각각 비교하여 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이 답답하여 실체로 임하시겠는가? 말씀대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안 믿으면 심판이며 영원한 형벌이다. 인간 하나의 존재가 무엇이란 말인가!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유대인들마저 내어 치시고 언약을 세우지 않았던 이방인에게 구원을 내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영생의 길이 제시되어 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경에 기록된 대로 문자적인 내용대로 믿어야 할 것이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을 때에 비로소 성경에 대한 이해가 가슴으로 정리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령 충만에 까지 가야만 한다.
죄로 죽을 인생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게 하셨고, 믿게 하셨다. 그렇다면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지방교도들은 지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평신도적인 성경접근 방식과 해석 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근거가 없고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제 각각의 성경해석으로 말미암을 때 결국 최종적인 구원에 영향이 미쳐진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 책임은 스스로가 질 수 밖에 없다. 비린내 나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인생은 죄의 공장 밖에 될 수가 없으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간과 환경의 차이일 뿐, 누구나 다 똑같다. 그래서 복음은 죄 사함에 대하여 첫 번째로 말씀하시고 있다. 죄 사함의 방법이 십자가의 대속이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가? 그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나는 누구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여기에 대한 답이 오직 성경에서 나온다.
헛소리꾼에 불과한 지방교도들이며 착각하지 말라!!! 그대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 자로서 한 구덩이에 빠져 멸망당할 자들에 불과하다.
*** 위에서 인용한 인용문은 원세호 박사님의 허락을 받고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에서 발췌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5. 지방교회와 적그리스도
언제는 복수성령을 주장하는 이단이라고 본인을 몰아 부치기에, 윗트니스 리의 글로 반박하여 손보아 주었더니 쑥 들어가서는 고만 이름을 살짝 바꾸어 나왔다.
삼신론자라고 몰아 부치면서 본인을 이단이라고 하더니, 양태론 속에서 사신론을 주창하고 있는 윗트니스 리의 글을 올려서 다시 반박했더니 이제 삼신론이라는 말은 빼고 다신론 어쩌고 하고 있다.
정통교회와 정통신학자들은 하나의 줄기로 간다. 신학사상이 그러하고 신학사상의 사조가 그러하고 논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지방교도들의 스승인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안 해도 될 터치를 상당부분 해 왔기 때문에 그 사상이 여러 줄기가 얽혀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통신학자들의 경우에는 성경이 멈추면 그 자리에서 멈추나,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멈추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 깊이 들어가서 성경을 해부하고 억지로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교묘한 논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회복, 지방, 합병, 분배, 실체, 신화, 경륜, 체현, 삼일론으로 집대성되었다. 가히 성경을 해부하여 조각조각 꿰어 맞춘 결과로 나온 인본주의 해석이며, 자유주의해석이며, 이성주의적인 해석이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이성의 끝자락에는 이들이 자라 나온 대륙의 환경특성과 유물론적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져 있고, 불교적 사상의 시각이 기독교와 접목되어져 있음이 발견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성령을 이해하지 못하며 성령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음이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양식과 인간에게 내주하실 수 있는 영으로서의 존재양태를 가지고 있다. 오직 성령만이 인간의 내면에 내주하실 수 있으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계시된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경우에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의 고착으로 인하여 성령의 존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성령에 감동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오직,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계시된 부활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에 머물러 있다. 유물사관의 영향이다.
유물사관의 사고는 인간이성으로 치달리게 하며 결국은 성령께서 말씀을 멈추신 부분에까지 들어가서 예수님의 실체라는 고착되어 있는 사고의 틀로 해석하여 성경을 발기발기 찢으며 해석하였다. 결과 이들의 사고의 틀로 해석된 이성적이며 인간적인 교리가 나오게 되었으며 지방교회에서는 인간적인 교리를 성경에 해당하는 권위를 부여하며 열심히 믿고 있는 중에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해탈하여 부처가 되었다는 싯타르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불교의 시각으로 살펴 본 성경에서 깨달음을 얻어 예수님의 실체가 되었다는 윗트니스 리나 [본질]이 같고 [과]가 똑 같다.
사탄이다! 지방교회를 세워서 포교를 하며 정통교회를 음녀로, 영적 바벨론으로 몰며 교회를 훼방하고 있는 윗트니스 리와 그의 추종자들은 정확히 말해서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6. 위트니스 리의 성령관 비판
책을 저술하는 저자의 입장 표명이 가장 확실한 부분은 책표지에 등장하는 몇 소절의 글에 있다. 윗트니스 리의 [성령]의 표지에는 두 개의 주제가 표제어로 기록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관한 자신의 무지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이다.
6-1. "성경이 그 책이듯 오늘날 하나님의 영은 그 영이다. 그 영은 만유를 포함한,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 영이다. (<= 성령이 무슨 과정을 거치셨는가?)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여호와의 영이며, 성령이며, 아버지의 영이며, 실제의 영이며, 보혜사이며, 능력의 영이며, 예수의 영이며, 생명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분의 영이며, 주의 영이며, 주 영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영원한 영이며, 은혜의 영이며, 영광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며, 일곱 영이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칭호 중에서>
[비판] 성령이 무슨 과정을 거치셨는가?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대하여 구분조차 못하고 있는 무식자이다. 성령이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대하여 아버지의 영으로 확실히 구분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마치 소금을 정제하듯 설탕을 정제하듯, 과정을 말하는 윗트니스 리의 의도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제되는 과정을 통하여 성령이 되셨다는 주장을 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면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 하는 이원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윗트니스 리에게는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 밖에 보이지 아니하며 성령은 조사에 불과할 뿐이다.
윗트니스 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그가 성령에 대하여 전혀 체험이 없고 성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온전히 무식자임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 안에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은 성령과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과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에 성령은 아들이신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을 수 있다." (윗트니스 리, [성령], (서울:복음서원, 1989) p. 191)
윗트니스 리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직 삼일론에 매달려 삼위의 하나님을 삼일로 묶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윗트니스 리는 다음의 말로 그의 모호한 삼일론에 대하여 기가 질리게 만들고 있다. "이 구절은 (요 14장 26절을 연구할 때) 아버지가 그 영을 보내셨을 때 아들인 그 영을 보내셨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ibid, p.191)
처처에 윗트니스 리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무식한 변론으로 일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각으로( 유물사관과 불교권의 문화에 기인한) 성경을 이잡듯 뒤져서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양태론을 펼치고 있으며 아리안주의이며,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사고로 성령을 풀어대고 있다. 윗트니스 리의 사상에는 성령이 들어가 있지 않다. 다음의 증거는 윗트니스 리의 성령에 대한 체험 혹은 성령관의 현주소를 확고하게 밝히는 증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6-2. "성령 안의 침례는 비밀이다. 워치만 니가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전도의 왕 스펄젼도 방언을 말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그의 저서를 많이 연구했다. 그러나 그가 방언 말했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성령의 침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무디는 위대한 전파자였다. 그의 저서에서도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제시 펜 루이스를 안다. 그녀는 십자가에 대한 많은 글을 썼다. 그녀는 영국에 있었던, 방언을 말하는 것을 강조하는 소위 오순절 운동을 극구 반대했다. 엔드류 머레의 역시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도 그가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당신에게 방언을 말하지 않은 많은 영적인 거인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방언을 말하지 않는다면 성령 안의 침례를 받지 못했다고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 안의 침례 중에서>
[비판] 윗트니스 리는 "성령 안의 침례는 비밀"이라는 말로 자신과 자신의 스승인 워치만 니를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성령의 체험(세례)를 받으면 다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무식한 자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윗트니스 리는 쟁쟁한 설교가와 석학을 예로 들면서 의도적으로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무시하고 있다. 마치 성령의 세례를 받은 분들 가운데에서 방언을 하는 분이 있다면 무식한 자로 오인되도록 의도적으로 짓누르고 있다. 윗트니스 리의 말을 빌면 성령을 체험한 분들은 무식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윗트니스 리는 이렇듯 그의 말재간으로 성령의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에 대하여 근심하거나 혹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위트니스 리가 앞에서 열거한 신앙의 선진들이 성령의 체험이 없어서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 분들은 오히려 자신의 체험한 것이 독자들에게 알려지면 교만해질까 두려워 했던 분들이다. 스펄젼은 그의 설교노트 "영혼의 상처"에서 J.C.Hare 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소개하면,
" 보혜사는 세상으로 확신케 하려 오셨다. 보혜사!
나의 형제여, 이런 사렴을 띠고 오신 분을 보혜사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당신을 위로하느 대신 당신의 죄악을 확신케 함으로써 당신에게 수치와 혼란을 주고 말할 수 없는 고뇌와 낭패에 떨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결코 그렇지 않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죄를 깨닫게 해주신 성령이 단호히 증거할 것이다. 그들은 그가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그가 보혜사 되심을 증거해 준다고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만일 죄의 깨달음과 확신이 다른 방도로 이루어진다면 분명히 우리를 수치심에 짓눌리게 만들고 말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삼키우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므로 그 날개 위에 회유와 위로를 싣고 다가온다. 그가 우리에게 확신시키는 죄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이다ㅏ. 다른 모든 죄에 대한 확신은 소망이 없다. 여기에는 소망이 확신에 수반되고 또한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안히나 죄를 깊이 느끼고 실제적으로 깨닫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다른 죄로 더불어 이 죄악을 옮겨버리심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스펄전, [스펄젼의 설교노트] 데이빗 풀러편, 김형대역, (서울:생명의말씀사,1979,) p.359.
이는 확고히 말하건데 헤어와 스펄젼 두 분은 성령의 체험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성령을 체험하지도 못한 위인이 어찌 성령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윗트니스 리의 저서인 [성령]에는 성령이라는 이름만 나올 뿐 전부 예수 그리스도로 도배가 되어 있다. 윗트니스 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삼일론을 통하여 교묘하게 성령론을 배설하여 놓았으나, 어디에서도 성령론은 없다.
그리하여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대하여 치졸한 방법과 조악한 말로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종속된 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샤벨리안 주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리 가도 아리우스적인 양태론이요, 저리가도 샤벨리안적인 양태론이다. 쓰레기같은 윗트니스 리의 저서인 [성령]은 1989년도에 15000 이나 했다. 당시 부목의 월급이 40만원 일 때이다. 이런 정도의 말장난꾼이나, 말재간꾼은 교회 역사에 보면 널려있다.
7. 지방교회에 대한 각 교단의 이단 확인.
7-1. 지방교회(위치만니, 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연구기관: 예장(통합),예장(고신)
통칭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라 불리는 이 단체는 위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사상을 전파, 보급하는 곳으로 구원론, 교회론 등의 문제로 인해 이단 규정된 곳이다.
흔히, 이단 또는 사이비 하면 헌금강요, 가정파괴, 성폭행, 사회혼란 등을 일으키는 단체(또는 사람)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단 문제는 신학적(교리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절대 기준에서 어떻게 벗어 났느냐의 문제가 이단, 사이비를 규정하는데 잣데가 된다는 것이지, 윤리적, 도덕적으로 빗나간 현상 때문에 이단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헌금강요 등 불건전한 현상들이 정통교회보다는 이단자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식교나 지방교회 등과 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별다른 흠을 찾ㅇ르 수 없는 곳도 이단이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선해도 올바르지 못한 성경의 내용을 전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위트니스 리(이상수:1905~)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위트니스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 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권익원)씨의 지도 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위트니스 리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 (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예장(통합))
워치만 니에게는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위트니스 리이고, 하나는 스티븐 강이다. 그런데 둘다 미국에 건너가 위트니스 리는 LA 근교의 아나하임(Anaheim)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스티븐 강은 미국 동붕 자리잡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자방교회는 위트니스 리 계열에 속한다. 현재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하여 카나다, 일본, 브라질, 영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서독, 홍콩, 스위스 등의 나라에 퍼져 있다.
그런데 한국 지방교회는 서울대 사대 출신인 이희득이 전시간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초대교회가 그 지역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 처럼(예: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등)오늘날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예;서울교회, 대전교회 등), 자기들의 교회가 모이는 곳이 지방교회의 '집회소'이다.
워치만 니는 결국 기성교회 조직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므로, 형제 운동을 전개하여 계급없는 교회를 이룩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신자들에게 '형제'호칭을 묵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기성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의 표어내지는 이른바 계급교회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을 예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 같다.(예장(고신))
7-2. 윗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개요
지방교회 신도를 구분하는 특징중 한 가지는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 하며 스스로 분리되려 하는 이곳은 구원론, 교회론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다.
지방교회는 현재 한국에 90여 지부가 있으며, 신도 수는 3만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신자는 '12단계 기초과정'과 그후 '40단계 진리공과' 등의 과정을 통해 지방교회 사람드로 변하게 된다. 1년에 한 번 전국 규모의 집회가 있지만, 은밀히 개최하기 때문에 지방교회 신도가 아니면 언제 그 집회가 열리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최근에는 집사, 장로 임직식 교육을 전담하는 '성경진리사역원'이라는 자체 교육원을 개설하기도 했다. 출판사 '한국복음서원'을 통해 그들의 사상이 전파되고 있다.
"지방교회는 중국인 워치만 니(Wachman Nee, 1903. 11. 4∼1972. 6. 1)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동역자였으며 후계자인 윗트니스 리(Witness Lee, 1905∼)가 이끌고 있다.
교세는 중국대륙을 제외한 전세계에 1,100여 교회가 있고 한 교회에 평균 100명 정도로 전부 11만명 정도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는 한국인으로 중국에 있던 권익원이란 사람에 의해 1966년에 들어왔고 198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15개 집회소를 위시하여 전국에 60∼70개의 집회소가 있으며, 2,000여 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한국복음서원을 두고 지방교회의 모든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우주적인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날 때에는 한 지방, 한 교회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교회는 지방이름을 붙여 단순히 00교회이어야지 어떤 교파별 명칭을 갖는 것은 죄'라고 여긴다. 그들 교회를 지방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방교회는 또 회복교회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이 초대교회의 본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배 내지 집회의 형식은 일반교회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지방교회에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기존 교회처럼 목사, 전도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저서, 예를 들면 「라이프 스터디」와 같은 것 등 한국복음서원에서 출간한 도서들에는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그 모든 서적, 출판물의 구입, 광고 게재 등을 금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예장 통합 76회 보고 내용)
이단성 연구 보고서(77회)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윗트니스 리(이상수: 1905∼)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윗트니스 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윗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 권익원)씨의 지도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로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 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문제점
▶ 신론의 문제점
가. 윗트니스 리가 신인합일 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 10),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같은 책, p.10)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내주하는 그리스도」p.10., 「하나님의 경륜」, p.244).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고 엄격한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나.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는 구약에서의 하나님에게는 신성만 있었으나(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15) 성육신의 과정을 통고하여 '사람과 함께한 하나님' 즉 '하나님-사람'이 되었다가 부활을 통하여 인성을 포함한 영으로 변형되므로써(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105∼107)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으로 세 인격이 한 영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는 말이다(같은 책, p.110).
윗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으로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것이다.
▶ 기독론의 문제점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예수) 인성이 아들의 명분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부활이 필요했다.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에 따르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73)고 하여, 인성을 입은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될 필요가 있었는데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같은 책, p.76)고 한다.
윗트니스 리의 기독론은 결국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신인합일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서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인간론의 문제점
영, 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 인간의 타락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어 전인적인 타락이 부정된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 자신인 생명 나무'를 취하지 않고 '사탄인 선과 악과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사탄을 몸 속에 받아 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p.130., 윗트니스 리, 「사람의 영」, p.45).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이라는 세 부분으로 창죄되었다는(「하나님의 경륜」, p.136) 삼분설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순수한 사람은 중립이었으며(같은 책, p.127) 몸도 아주 선한 것이었으나 사탄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몸이 사탄의 거처가 되었고 따라서 부패되어 흉하고 악마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같은 책, p.127) 몸도 아주 선한 것이었으나 사탄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몸이 사탄의 거처가 되었고 따라서 부패되어 흉하고 악마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같은 책, pp.129∼130). 이 사탄은 육신에 거처를 정하고 혼에 영햐을 준 다음 혼을 통해 영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같은 책, p.138), 성령이 사람의 영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사탄이 매일매일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다고 한다(같은 책, p.139).
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하는 영은 죽을지라"(겔 18:20)는 성경말씀과 다르다. 또한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탄이라는 등 잘못된 주장을 함으로 결국 윗트니스 리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허황된 사변과 논리일 뿐이다.
▶ 교회론의 문제점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하며 기성교회 목사와 예배 등 대부분의 제도를 부정한다. 기독교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보아 기성교회는 타락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도 않고 불태워질 것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주의 회복에 관하여」, pp.12∼13., 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p.94∼97, p.103., 윗트니스 리, 「그리스도냐 종교냐」, pp.210∼211., 윗트니스 리, 「일곱 영」, pp.10∼11, p.49).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하고(워치만 니, 「사역의 재고」, pp.240∼244, p.251, pp257∼269),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며(워치만 니, 「그리스도인 50 필수과정 1」, pp.7∼18., 윗트니스 리, 「진리공과 - 제 1단계-제 3권」, pp.86∼89.,「진리 시리즈 2-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을 위해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주문처럼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138., 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27∼28, pp55∼61, p.83, p.93, p.110, p.115., 윗트니스 리, 「일곱 영」, p.117).
연구결과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 [예장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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