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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까치들을 위한 비망록(備忘錄)
안 휘
형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형과 형수는 분명히 신 새벽에 일어나 집 뒤쪽 과수원으로 올라갔을 터였다.
도시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초가을 아침공기가 차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나를 위해 술상을 차려낸 형수의 성의를 봐서라도 소주를 몇 잔 마실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에 파고 든 피로가 깊었던 탓이었을까. 형과 번갈아 가며 다 해야 겨우 두 병, 평소의 주량으로 보아서도 그렇고, 결코 많은 술이 아니었는데도 머리가 무겁다. 긴장이 풀린 육신 깊은 곳에서 몸살기운 같은 노곤함이 진득진득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깍 깍 까치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아침공기를 타고 앞산까지 날아갔다가 메아리를 꼬리에 매달고 되돌아온 그 소리는 무척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아, 여기가 고향집이구나. 비로소, 고향에 왔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설 추석 명절 때 두 번 삐끔 얼굴 내밀고는 차례 상 앞에서 너부죽이 절 몇 번 하는 것을 끝으로 휭 하니 달아나곤 해온 고향이었다. 그러던 내가 전화도 한 통 없이 늦은 밤 불쑥 찾아오자 형과 형수는 말없이 한참동안을 뜨악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며칠 동안 바람이나 쐴 요량으로 내려왔다는 내 말에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그나마 표정을 가라앉힌 형수가 슬며시 부엌으로 나가서는 덜그럭덜그럭 술상을 차려 내왔던 거였다. 양념고추장을 발라서 지져낸 매콤한 미꾸라지가 술안주로 괜찮았다.
꿈을 꾼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모처럼 깊은 잠을 잔 모양이다. 악몽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친 지가 벌써 몇 날이던가. 내 악몽의 무대는 언제나, 오랫동안 나의 일터였던 룸이었다. 험악한 얼굴을 한,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취객에 의해 패악을 당하거나, 전자오르간과 기타가 내동댕이쳐지거나, 심지어는 얻어맞기까지 하는 대목에 이르면서 나는 흠칫 잠이 깨곤 한다.
사실 룸살롱의 악사로 일했던 십여 년 동안 실제로 그런 행패 비슷한 일을 당한 것은 다 해야 고작 서너 번 정도다. 그런데도 그런 꿈을 자꾸만 꾸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이, 권 부장! 너 지금 당장 잠수 타라(숨어 있어라),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김 형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하늘이 캄캄했었다. 정말로 오지 말아야 할 최악의 상황이 내게 닥친 것이었다. 험악한 유흥업계에 살면서 이런 저런 고초도 많이 겪었으나, 이렇게 도망을 다녀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는 그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동현이 패의 한 녀석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을 것이다. 아니, 동현이가 그 녀석을 영업에 끌어들이지만 않았더라도 괜찮았을 것을..... .
강남 룸살롱 가의 경기는 아무리 경제가 시원찮네 어쩌네 해도 식지 않았다. 밤마다 벌어지는, 깊은 방 그들만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잔치는 자본주의의 꽃으로 살아가는, 소위 '있는 사람들'만의 은밀하고도 오붓한 축제였다.
하지만, 무어든 냄새가 좀 난다하면 기를 쓰고 몰려드는 쇠파리 떼처럼 경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 만큼 돈 먹겠다고 덤벼드는 장사치들이 늘어나고 나면 그게 그거인 법.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영업 경쟁은 끝간 데 없이 치열해지고, 그 경쟁의 와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큼지막한 빌딩 하나를 통째로 룸살롱으로 만들어서 영업하는 업소도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룸살롱들은 웬만한 기업체보다도 더 큰 기업처럼 밤마다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게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뒤처리마저 복잡하게 된 것은 그들 세계의 기준으로 말하면 순전히 재수 없는 일에 불과하다. 동현이 패의 막내 격인 해수라는 아이가 양복쟁이 취객 하나를 골라잡아서 뒤통수에다가 쇠망치를 휘둘렀는데, 그게 잘못 되어서 양복쟁이는 절명을 해버렸고, 그 광경을 숨어서 본 사람이 경찰에다가 불어버린 모양이었다.
형님! 형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동현이 패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걔들이 우리 가게의 영업을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저와는 구체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요. 경찰에 잡힌 해수를 제외한 동현이 패가 모두 다 토끼고(도망치고) 난 다음 경찰이 나를 찾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나는 김 형사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전화에다 대고 그렇게 하소연하는 내게 김 형사는 평소와는 영 딴판인 목소리로 기다려봐, 하고는 전화를 딸깍 끊어버렸었다.
그래도 우선 나는 안심을 했다. 김 형사가 누구인가. 한 두 달도 아니고, 적어도 삼 년은 민 마담, 아니 민 사장의 뒤를 보아 준 경찰이 아닌가. 나를 통해서 건너간 뇌물만 해도 얼마였나. 해마다 연말, 연시, 설, 추석 명절을 거른 적이 없었고 여름 휴가철까지, 번번이 저희 식구들 모두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될 만큼 두둑이 질러 넣어주지 않았던가. 절대로 아무 탈 없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며칠 잠적해 있으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어허 뭐 이런 걸 또.... .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는 말 민 사장께 꼭 좀 전해 줘. 좌우지간 고마워 권 부장. 봉투를 받아 챙기며 내 앞에서 지어 보이던 김 형사의 비굴한 웃음을 떠올리며, 나는 안심 또 안심하려고 애를 썼다.
그 며칠 뒤, 그러니까 어제 오후에 김 형사는 내게 잠수를 타라는 전화를 덜컥 해왔던 것이다. 뭐가 잘못 돌아가는 것인가. 정말로 나는 동현이 패와 직접 관련이 없다. 양아치패들 중에도 비교적 사고를 덜 치는 아이들이었고, 기본을 지키지 않을 만큼 엉뚱한 아이들도 아니었다. 사실 민 사장의 룸살롱 영업부장으로 일을 시작한 이래 아이들을 여럿 써보았지만, 동현이 패만큼 잘 움직이는 아이들은 없었다. 동현이 패들은 무슨 용빼는 재주를 부리는지 빌딩형 룸살롱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적고 시설도 처지는 편인 우리 '블랙홀 살롱'을 매일저녁 꽉꽉 채워주었다. 동현이 패 아이들은 어디서 몰고 오는지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손님들을 줄기차게 데리고 왔다.
오빠. 나는 그저 오빠 덕분에 산다우. 요새 영업이 너무 잘 되는 게 다 오빠 덕이 아니고 뭐겠수? 정말 고맙고,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 이제 삼십 줄에 접어들어 얼굴에 잔주름이 지기 시작하면서 다소 퇴색하기는 했어도 사내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민 사장의 미색과 고혹적인 목소리는 여전하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옛 말이 있던가. 내가 악사로 있던 그 룸살롱에서 일하던 미스 민이 어느 새 민 마담이 되고,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박 사장을 만나 첩 살림을 차리면서 어느 새 민 사장이 되어 가는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지켜 본 나를 그녀는 특별히 배려해주었다. 은행에 예금해놓은 현금이 엄청나게 많은 알부자로 소문난 박 사장을 만난 행운으로 민 마담은 이내 '블랙 홀 살롱'을 차리게 되었고, 그녀는 일터를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궁지에 몰린 나에게 영업부장 일을 맡겼던 것이다.
*
"삼촌! 시장하시죠? 제가 금방 밥상 차려낼 게요. 조금만 참으셔요."
밭에서 돌아온 형수는 내가 잠을 깨고도 빈둥거리고 누워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작은 방 방문을 열어보고는 마치 고함을 지르듯 말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같지 않게, 농촌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큰 목소리로 말하고 살아도 되는 곳이 시골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보면, 목소리 큰 사람 치고 악인이 없다는 말은 또한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이들 둘을 다 도청이 소재한 광역시에다가 유학 보내고, 4천여 평 과수원과 대여섯 마지기 논밭을 일구며 사는 형님 내외였다. 한 동안 이장을 맡아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도 하더니, 그도 힘에 겹고 귀찮은지 다 벗어 던지고, 다시는 맡지 않았다. 심덕이 유난히 좋은 형수는 시집 온 이후에 곧바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빈자리를 너무 잘 메워 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인 나에 대해서도 그만하면 꽤 괜찮은 형수였다. 둘 만 돼도 어려울지 모르지만 까짓 것 삼촌 한 분뿐인데요 뭘. 내가 신세를 져야 할 상황이 될 적마다 형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형보다 앞서서 내 일을 챙기곤 했다.
마당 옆에 설치된 수도꼭지를 틀어 모터펌프로 뽑아 올린 시원한 지하수로 막 세수를 하고 났을 때 형이 들어왔다. 형은 뭔가 못마땅한 일이 있었는지 얼굴빛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순박하긴 해도 고집 또한 만만찮은 형이었다.
"에이, 망할 놈의 까치새끼들. 잠깐 사이에 벌써 사과를 반접도 더 망쳐놓았네."
아침 여덟 시. 서울에서 영업을 뛸 때였으면 한창 잠에 골아 떨어져 있을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형과 형수는 벌써 과수원 밭에서 한바탕 일을 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형수가 차려낸 밥상에 마주 앉으면서 형은 누가 들으랄 것도 없이 까치 얘기를 그렇게 시작했다.
"거 왜 까치집 있던 전봇대 상단부에 무슨 철망 같은 것이 붙어있던데, 그건 뭐예요?"
뒤늦게 부엌에서, 필경 나물과 함께 밥이 담겨있을 양푼을 들고 나오면서 형수가 형에게 물었다.
"어제 갖다 붙인 인공 까치집이야. 환경단체인가 조류보호협회인가 그런 데에서 하도 말이 많으니까, 전력회사가 까치를 잡는 대신에 전선을 해치지 않는 인공 까치집을 만들어주고 보호한다는 얘긴데, 오로지 저희들만 생각하는 거지. '까치와의 공존'이라나 뭐라나, 우리들 과수농가는 안중에도 없는 해괴한 처사야."
시골아낙 아니랄까봐서 형수는 열무를 넣고 쓱쓱 비벼먹는 것을 좋아한다. 난 삼 시 세끼 다 이렇게 나물만 비벼 먹어도 좋아요,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하며 호호호 웃은 적이 있다.
"슈퍼 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전력회사에서 까치 잡으려고 공기총을 쏘다보니 전깃줄까지 자꾸 망가지는 바람에 그만 두었다면서요?"
형수는 어느새 고추장으로 빨갛게 비빈 열무비빔밥을 양푼에서 한 숟갈 퍼서 입을 딱 벌리고 넣은 다음 우걱우걱 먹었다. 형수는 잔병치레 한 번 안 할 정도로 건강했다.
"까치 피해가 여기도 그렇게 커요?"
내가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형은 까치 때문에 아침부터 저기압인 모양이었다. 형은 얼굴에 또다시 흥분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말도 마라. 이놈들이 얼마나 영악한 지 백방(百方)이 무효인 판이야. 이제 허수아비는 본 체 만 체한 지 오래고, 깡통소리도 들은 삼각거울 폭음탄도 별 무 소용이다. 문자 그대로 과수원은 지금 까치와 골치 아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오죽하면 과수원예조합에서 포상금까지 내 걸었을라구."
"포상금요?"
"궁여지책인데, 까치 한 마리 잡아오면 1천 5백 원씩 주고 있지."
"그래요?"
"그럼.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잡아야 해. 이 놈 한 마리가 과수원에 앉았다 하면 몇 십 개 물건 망치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나 많이 먹어요?"
"아냐. 까짓 것 한 두 개쯤 먹어치우는 거야 무슨 대수겠어? 그런데 이 고약한 놈들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부지기수로 콕콕 입질을 한단 말이야. 그것도 최상품으로만 골라서 그러니 더욱 환장할 노릇이지."
내 기억 속에서 까치는 철저하게 길조(吉鳥)였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해서 늘 기분 좋은 새 취급을 받았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나는 까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고향에 온 포근한 느낌을 받지 않았던가.
지금은 아득한 어릴 적 얘기이지만, 언젠가 가을날에 형과 함께 텃밭 감나무의 감을 딴 적이 있었다. 장대 끝에 매달린 집게 모양의 굵은 철사를 감꼭지가 붙은 잔가지에 끼우고 비틀어 꺾는 것이었는데, 형이 주로 그 일을 했고, 나는 그저 옆에서 따 내린 감을 주워 모으는 역할을 맡았었다. 열심히 일을 하여 막 끝냈을 무렵이었다. 그 시절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셨던 할머니로부터 우리는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를 펴느라고 한 쪽 다리를 약간 치켜든 채, 담뱃대를 휘둘러가며 역정을 내셨다. 고얀 놈들 같으니라고! 까치밥도 하나 안 남기고 다 따버리면 어떻게 해? 댁끼 이 야박한 놈들!
사실 그 당시에는 왜 열심히 일하고서 그렇게 혼이 나야 했는지 우리는 몰랐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와서, 당신이 일을 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미처 일러주지 못했다며 할머니에게 빎으로서 사태가 바로 수습되긴 했다. 그랬어도, 그 때는 그만한 일로 불같이 화를 내시는 할머니가 좀처럼 이해가 안 가던 일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돌이켜 보니까, 그것은 옛날 우리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이었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이었다. 적어도 길조이자 영물인 까치가 먹고살 만큼은 나눠줄 줄 아는 여유였다.
"그런데, 까치들이 왜 그렇게 극성이죠? 전엔 농작물의 해충을 잡아 먹어주는 익조(益鳥)라고 여겼던 것 같은데...... ."
그 즈음, 형은 비로소 흥분을 좀 가라앉힌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제초제, 살충제 따위의 맹독성 농약을 쓰면서 들에 있던 벌레들이 거의 사라져 까치들의 먹이사슬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도 있고, 번식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개체수가 삽시간에 많이 늘어나서 과수원을 공격하게 된 것이라고도 하고..... ."
인간이 까치들과 함께 공존할 방법은 정말 없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룸살롱 악사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했던 가라오케 문화의 홍수가 생각났다. 나 같은 악사들이 노래방 기계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었던 것일까?
밥을 다 먹은 형은 밥그릇에 물을 부어서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마시고 있었다. 나는 반 그릇쯤 비운 밥그릇 옆에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
오빠를 고생시켜서 어떻게 해요? 다 가게 일 하다가 그렇게 된 건데. 제가 김 형사를 한 번 만나볼 게요. 별일은 없을 거예요. 시키는 대로 며칠 정도만 시골에 다녀오세요. 서울을 떠나오기 전에 만난 민 사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동현이 패들에게 강도 짓을 하라고 시킨 적도 전혀 없고, 그 아이들이 룸살롱 손님들을 헌팅(호객)해 오면 그 매상에서 15퍼센트 씩 떼어준 것이 전부였다. 부유한 티를 한껏 내며 다니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배고픈 호객 군 아이들에게 더러 강도 짓을 하고픈 충동이 일어날 수는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주변에서는 실제로 그런 강·절도사건이 이따금 씩 일어나기도 했다. 해도, 동현이 패에는 절대로 그런 말썽꾸러기가 있지 않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피곤한 얼굴이구나. 방에서 좀 더 쉬려므나. 아침을 먹은 후, 형은 조합에 잠시 무슨 볼일이 있다며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대문을 나갔고, 형수는 앞마을에 칠순잔치가 있어서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와주러 간다며 나섰다. 그래서 집에는 또다시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안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보았다. 여긴 아직 유선방송이 들어오지 않는지, 화면에서는 억수 소나기가 퍼붓고, 스피커에서는 치치칙 소리만 났다. 텔레비전을 끄고, 나는 다시 작은 방으로 건너왔다.
가방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어 열었다. 아무런 수신 흔적이 없었다. 김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정말 괜찮을까. 아마도 괜찮을 거야. 나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걱정과 자위를 반복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악기를 좋아한 것이 오늘날 내 생활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대신에 어머니를 졸라서 산 싸구려 통기타 하나에 정신이 팔려 참 열심히도 기타연주를 배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정식으로 밴드부원이 되었다. 밴드부에서 내가 맡은 악기는 호른(HORN). 고운 음색이 좋아서 나는 부지런히 연주를 배웠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 혼자의 힘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가정형편 때문에 '대단히 소질이 있다'는 음악선생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대학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너 기타 잘 치잖아. 네 실력이면 충분히 룸 악사가 될 수 있어. 앰프시설이 달린 전자오르간하고, 전기기타 하나만 있으면 된다구. 군대를 갓 제대하고 만난, 강남 룸살롱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던 한 친구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돈까지도 수월찮이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은 더더욱 나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악기연주를 매일 할 수 있는데다가, 돈까지 벌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지 싶었던 것이다.
형이 마련해준 돈으로 악기와 전자오르간을 샀다. 그리고 내게 룸 악사생활을 권한 바로 그 친구의 소개로 오디션이란 것을 거쳐서 일하게 된 첫 가게에서부터 나는 히트를 쳤다. 금세 단골까지 생겨서 오기만 하면 나를 찾는 손님이 늘어갔다.
하지만, 결코 그런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자니 우선 피곤한 일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일이 험악한 시비로 번지는 일은 드문 편이었기에 그럭저럭 견딜 만하긴 했다.
정작 그런 생활의 초기에 나를 심하게 괴롭힌 일은 룸살롱이란 업소 안에서 밤마다 일어나는 매춘거래였다. 그것은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운 갈등을 불러왔다. 내가 맞닥트린 유흥음식점이란 술과 여자를 함께 사고파는 인간시장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맨 처음 충격을 받은 것은 허구 헌 날 그렇게 술을 마시고 몸을 팔면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질경이 같이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한동안, 사람이 어떻게 매일 저렇게 하면서 견뎌내고 살아내는가, 그것부터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현실적응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란 참으로 묘한 동물이다. 군대 사격장에서 처음 총을 쏘았을 때는 그 커다란 소리에 정신조차 멍해진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격하는 동료 옆에서 쿨쿨 잠까지 잘 수 있게 되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던 룸살롱의 매춘도 날이 갈수록 별다른 감흥조차 주지 못하는 현실로 길들여지면서 감각조차 무디어져 갔다.
그런 기막힌 상황을 연출하는 힘은 돈이었다. 그 세계는 돈 이외에 아무런 변수도 작용하지 않는 아주 특별한 나라였다. 손님을 향해 던지는 그 어떤 움직임도 돈으로 시작되고 돈으로 귀결되는 계산법에 의해서 기획되었고 실행되었다.
내가 기타를 둘러메고 밴드를 찾는 손님의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원하는 노래에 맞춰서 반주를 해주는 것도 돈을 만들어내는 한 수단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나도 그런 유흥산업의 한 부속물처럼 소용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 무대에서 들어오는 나의 수입은 오래지 않아 짭짤한 수준이 되어갔다. 정해진 밴드비용 이외에도, 술김에 만 원 짜리 몇 장쯤 팁으로 던져주는 기분파도 꽤나 많았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했다던가, 나는 그런 생활에 급속도로 익숙해져 갔고, 곧 그 쪽 골목에서 가장 인기 있는 룸 악사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비결은 별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손님 목소리의 음정에 연주악기의 음정을 재빠르게 맞춰주는 능력이었다. 거기에다가 손님이 원하는 박자와 노래의 풍을 찾아서 적절히 대입시키는 기술이었다. 그런 쪽으로 머리를 써서 연주를 이끌어 가는 장점이 내게는 있었다. 그 바람에 대개의 술꾼들은 나의 연주를 좋아했다.
만약 그 무렵 내가 조금만 절제된 생활을 할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일찍, 가라오케의 선풍으로 내 직업이 찬밥신세가 될 줄 알고 대처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우습게 추락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마도, 허구 헌 날 룸에서 손님들에게 받는 일종의 수모와 그로 인한 수치심을 보상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돈을 함부로 쓰고 다녔다. 내 행동의 모델은 밤마다 룸에서 만나는 '부잣집 귀공자들'이었다. 그들이 없는 공간,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들의 흉내를 똑같이 내고 다녔다.
주머니의 돈이 남아날 까닭이 없었다. 흥행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불규칙한 벌이에 걸맞게 불규칙한 씀씀이로 일관했다. 영업이 끝나는 새벽시간에 동료 악사들과 폭음을 하기가 예사였다. 더러 다른 룸살롱으로 가서 부유층 흉내를 내며 호기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 사장, 아니 그 당시 미스 민의 친구였던 선희를 만났다. 조그만 양품점을 운영하는 그녀는 미스 민만큼은 아니었어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선희에게 빠져 들어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선희는 나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자주 만났고, 그 만남은 주로 선희가 리드했다. 사실,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그런 선희가 편했다. 내가 미처 본격적인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선희는 무슨 일이든 빨리 결정을 했다. 나는 그녀가 빼어난 외모에 못지않게 대단히 영리한 여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느낀 대로 2년 뒤, 그녀의 영악하기 짝이 없는 음모 앞에서 철저히 이용당하고, 몽땅 털려 버리는 사건으로 결론이 나고 말긴 했지만...... . 그래도 그 2년은 잊혀 지지 않는 행복한 시간으로 내 기억 속에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
탈탈거리는 오토바이 소리를 앞세우고 형이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봉지를 벗길 때가 되지 않았어요?"
과수원 사과나무에는 잘 여문 열매들이 많이 달려서 생각보다 훨씬 더 풍작을 이루고 있었다. 씨알도 굵은 편이었고, 때깔도 괜찮았다. 낙과를 하나 주워서 베어 물어보니 맛도 참 달았다. 마지막 착색을 위해서 봉지를 벗겨 햇볕을 보게 해야 할 것 같아 보이기에 내가 그렇게 말했다.
"글쎄다. 이놈의 날씨가 가을답지 않게 비가 많아서 말이야. 봉지를 벗겨야 할지 어떨지 감 잡기가 쉽지 않구나. 며칠만 더 두고 볼 참이다."
아침나절 까치 때문에 상했던 형의 기분은 한결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까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과수원은 허수아비에다가 만국기 줄처럼 걸린 줄에 즐비하게 매달린 오색 비닐종이와 깡통 따위로 어수선했다. 한 때는 사람의 길흉을 예고하는 영물로서 인간의 벗이었던 까치가 어느 날 갑자기 적으로 변해버린 초라한 흔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
과수원 농사는 옛날 같지 않게 이제 거의 기계영농이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과수원 일이란 농약 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손으로 해야 할 일들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제일 거북살스러운 농약살포마저도 소형 트랙터에 장착된 살포기계를 이용함으로써 훨씬 쉬운 일이 되었다. 지난 날 언젠가 형이 수동식 분무기로 농약살포를 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던 일을 생각하면 그건 너무나 다행이다 싶은 일이었다.
과수원 옆 울타리를 따라 듬성듬성 세워진 전신주 가운데, 정말로 까치집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철망이 올려붙여져 있는 전신주가 있었다. 그 곳에 까치가 살고 있는지 아닌지, 형은 적잖이 신경을 쓰는 곱지 않은 눈빛으로 그 전신주를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러던 잠깐 사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디에선가 까치 두 마리가 호르륵 날아와 눈치를 살피며 그 전신주의 철망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저 망할 놈의 까치새끼들!"
순식간에 형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달음에 과수원 아래에 있는 집까지 뛰어갔다. 까치들은 우리의 움직임에 아랑 곳 하지 않고, 마치 전신주에 마련된 새 아파트를 살피러 온 신혼부부처럼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런 가운데도 꽁지를 톡톡 치듯이 흔드는 모습이 여간 경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형은 뜻밖으로 손에 공기총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조합에 다녀온다더니 아마도 공기총을 가지러 갔다 온 것이었던가..... . 공기총을 열중쉬어 자세로 뒤로 감추어 든 형은 울타리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조심스럽게 전신주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까치들은 여전히 철망 집 언저리에서 바지런을 떨며 노닐었다. 나는 졸지에, 과수원 한 가운데 주저앉아서 이윽고 한 판 벌어질 형과 까치들 사이의 전투를 숨죽여 관전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더러 그렇게 까치사냥을 해본 솜씨였다. 사정거리를 확보한 형은 과수원 울타리 아카시아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눈치가 무척 빠르다는 까치를 향해 총신을 서서히 내밀었다. 까치들은 공짜로 생긴 철망 집에 정신이 팔렸던지 형의 조준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형이 드디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를 떠난 산탄(散彈) 총알들은 두 마리 까치들을 명중했다. 놀라서 푸득 하늘로 솟구치던 까치들은 이내 허공을 가르며 과수원 밭 안쪽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까치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한 놈은 머리에, 그리고 다른 한 놈은 배에 피를 흘리며 파닥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웬 일이었을까. 총에 맞아 숨이 넘어가고 있는 그 까치들의 모습은 내 마음 속에 슬픈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순간적으로 깊이 새겨졌다. 정말 저렇게 총을 맞고 죽어야 할 만큼 저들은 큰 잘못을 한 것인가. 아니, 죽어 가는 까치들은 행여 그 잘못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형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죽어 가는 까치들을 근처 사과나무 밑에다가 던져놓았다.
"사과 추수할 때까지는 이 짓을 계속해야 할 판이니, 나 원 참."
형에게 있어서도 까치 잡는 일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농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공연한 수고였기에...... .
총을 든 채, 형은 과수원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과수원 안쪽에 놓인 들마루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하얀 구름이 드문드문 흘러가는 가을하늘은 눈이 시도록 푸르렀다. 잠시 피로가 스며들어 아릿해진 눈시울이 스르르 감겼다. 한 줄기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적금을 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함께 예쁜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해요. 어느 날 새벽, 살고 있던 자기의 원룸으로 나를 불러 함께 잠을 잔 선희는 그 아침에 내게 중요한 제의를 해왔다. 민 사장, 아니 미스 민의 소개로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못 된 날의 일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이 들긴 했어도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정기적금을 들어서 나중에 레스토랑을 차리자는 그녀의 제안에는 청혼의 뜻이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음 날 오후, 우리는 2년 기한의 8천만 원짜리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한 달에 모두 3백여만 원이 넘는 적지 않은 목돈이 들어가는 적금이었다. 그 중 내가 책임지기로 한 돈은 2백만 원이었다. 선희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오빠. 이 적금통장은 바로 오빠와 나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에요.
뭐랄까, 결말은 비록 서글펐더라도 그 무렵이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2년만 지나면 나는 선희와 번듯한 레스토랑을 오픈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근사한 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으리라.....그런 꿈같은 기대로 인해 견디기 힘들만큼 가슴이 벅찬 시간들이었다.
말이 그렇지, 매달 그렇게 큰돈을 적금으로 붓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내핍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씀씀이를 줄여야 했고, 심지어는 먹는 것마저도 아낄 궁리부터 먼저 해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이었다. 훨씬 더 기능이 좋아진 노래방기계에 의해 룸살롱의 악사들이 슬슬 무대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유흥주점들은 아예 룸마다 최신식 노래반주기에다 고급 멀티비전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손님들은 그런 집들만 골라서 찾아 다녔다. 시대 흐름에 의해 밀어닥친 천재지변이라고 할까, 그것은 어떤 힘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해일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때 강남 룸살롱의 필수요원으로서 가치를 높게 인정받았던 악사들은 그런 파도에 하나 둘 씩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열심히 모아서 집칸이라도 장만한 사람은 일찌감치 딴 궁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도 저도 아니게 살아온 치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막막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나는 그런 대로 괜찮은 편에 속했다. 룸살롱 악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나에게 미처 노래방시설을 하지 못한 업소들에서는 흔쾌히 일자리를 주었다. 물론 수입은 그 전과 다르게 약간 씩 떨어지기 시작했을망정.... . 그래도 매달 들어가는 적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 되지 않는 달에는 다른 사람에게 꾸어서라도 채워 넣을 정도로 나는 착실하게 적금 넣을 돈을 선희에게 주었다.
오빠, 큰일 났어요. 선희가 없어졌어요. 민 사장, 아니 그 시절 민 마담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적금 만기를 꼭 두 달 남겨놓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없어지다니? 전날 따라 새벽까지 손님이 있어서 날이 다 샌 아침에 해장국도 생략하고 숙소에 돌아와 두어 시간이나 잔 것 같은데, 민 마담이 전화를 걸어와 잠을 깨웠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사우나를 함께 가기로 약속이 돼있어서 선희네를 갔더니, 빈집이에요. 이 무슨 소리인가. 나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면서 달력을 보았다. 선희를 만난 날에 어김없이 조그맣게 표시해둔 빨간 동그라미가 나흘 째 비어 있었다. 집주인은 뭐라는데? 그러면서 나는 며칠 전 아침결에 내 품에 안겨서 사랑한다는 내 말에 부끄러운 듯 생긋 웃어주던 선희의 얼굴을 생각해냈다. 어제가 원룸 임대기일이었는데, 오후에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와서 모두 실어갔대요...... .
선희는 국내에 있지 않았다. 선희의 잠적사실과 함께 그 전날 적금이 중도 해약됐다는 것까지를 확인한 그 며칠 뒤 민 마담이 마당발을 휘둘러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선희는 다른 남자와 함께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고, 거기에서 어디엔 가로 다시 떠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저게 다 뭐야?"
거의 비명에 가까운 커다란 목소리의 주인공은 형이었다. 눈을 뜨고 들마루에서 몸을 화들짝 일으켜보니, 눈앞에는 기막힌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까치 떼였다. 언뜻 세어보아도, 백여 마리는 족히 될 것 같은 까치 떼가 철망 까치집이 설치된 전신주 주변으로 막 몰려오고 있었다. 깍 깍 까악..... . 더러는 전깃줄에 앉기도 하고, 또 더러는 전신주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는 그들 중 몇몇은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웬 까치 떼죠? 왜 이렇게 떼로 몰려온 걸까요?"
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에 총을 든 채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고개를 내려 사과나무 밑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기 저 죽은 까치들 때문이야. 저놈들이 조문(弔問)을 한다더니, 정말이네. 이를 어찌해야 좋지?"
"조문이라고요? 까치가?"
어이가 없었다. 한낱 텃새일 뿐인 까치가 죽은 동료 까치를 찾아와 조문을 한다? 그러는 사이에 형은 들고 있던 공기총을 들마루에 내려놓고 과수원에 그물망처럼 쳐진 줄을 세차게 흔들었다. 줄에 매달려 있던 깡통들이 떨거럭 떨거럭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줄에 매어져 있던 오색 비닐종이들도 그 소리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훠어이! 훠이! 이놈의 까치 떼! ....너, 거기 들마루 밑에 양재기 좀 꺼내어서 두드려라. 이거 큰일 났다!"
나는 들마루 밑에 놓여있던 쭈그러진 양푼을 꺼냈다. 닳고 삭아서 여러 귀퉁이가 부서진 빨래방망이 하나가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때댁 땍땍....찌그러진 양푼은 별로 큰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까치들을 향해 껑충껑충 뛰면서 나는 방망이로 열심히 양푼을 두드렸다.
*
강남 아리랑치기 살인사건은 조직폭력배들의 짓, 동현파 두목 조동현 서울지검 특수부에 의해 검거, 배후 및 관련인물 추적수사 중....
시골이라 한낮이 넘어서야 배달된 조간신문 사회면에서 큼지막한 제목으로 뽑힌 기사제목을 발견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가 어떻게 돼가는 것인가? 다행히 과수원으로 몰려온 까치들이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십여 분만에 물러간 다음에도 형과 나는 한동안 과수원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뒤늦게 집으로 돌아와 신문기사를 발견한 나는 한결 힘이 빠진 형에게 놀란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을 했다. 그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까닭에 내가 아직껏 악사로 일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형에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늦은 점심 밥상 앞에서 먼저 식사를 마친 형은 어느새 이 만큼 물러나 앉아 있었다. 또다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내가 수저를 내려놓았을 때, 밥상을 치울 양 밥그릇을 포개어 거두고 있던 형수가 갑자기 뭐가 생각났다는 듯 다가앉았다.
"그건 그렇고, 삼촌. 올해 넘기면 안 되는데. 연초에 보았던 신수에도 그렇게 나왔잖아요. 올해 넘기면 장가가기 쉽지 않을 거라고. 어디 따로 보아 둔 색시 없어요?"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젠 다 지나간 얘기이지만, 선희에게 홀려서 2년 동안이나, 아득바득 벌어들인 돈 모두를 털어 바친 사연을 형수가 알면 얼마나 한심해할까 생각하니 눈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아직 없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형수는 농담인 듯 웃음을 섞어 말을 던졌다.
"그럼 내가 어디 마땅한 시골색시라도 있나 찾아볼까요?"
그 말에 나는 흐스스 열 쩍은 헛웃음을 치고 말았는데, 형은 형수와 나와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 저 만큼 무표정하게 앉아서 다른 생각에 젖어있었다.
형수가 밥상을 챙겨 부엌으로 가는 사이에 나는 신문을 들고 작은 방으로 옮겨 앉았다.
휴대폰을 꺼내어 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여섯 번 울리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저희 고객께서는 전화를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남길 말씀이 있으시면 삐 소리가 난 다음...... .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리다이얼. 똑 같은 응답이 반복된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수 없이 삐 소리가 난 다음 녹음을 했다. 형님, 저 권 부장입니다. 신문에 난 것 보았습니다. 메시지 확인하시는 대로 연락 좀 주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잠시 그러고 있던 나는 다시 민 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다가 일어난 모양으로, 민 마담은 졸음이 그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 권 부장오빠야. 김 형사 연락됐니? 만나봤어?"
"아, 오빠. 그러잖아도 오빠에게 전화할 참이었어요. 김 형사 연락이 안 돼요. 휴대폰도 안 받고, 경찰서에서도 자리에 없다며 전화를 안 바꿔 주네요. 어떻게 된 일이죠?"
"글쎄, 내가 전화를 해도 그렇더구나. 더 좀 알아봐 줄래?"
"알았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났을 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신문에는 얼굴을 앞으로 푹 숙인 채 수갑을 차고 있는 동현의 사진이 기사와 함께 나란히 실려 있었다. ...서울지검에 따르면, 동현파 두목 조동현은 강남일대를 무대로 아리랑치기 전문 강도단을 조직, 주로 취객을 상대로 수 십 차례에 걸쳐서 강도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
아닌데. 이건 아닌데. 나는 신문기사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동현이 패들은 강도짓을 일삼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수사를 맡은 곳이 경찰이 아니고 서울지검이라는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지금 당장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사건해결의 유일한 끈으로 존재하는 김 형사에게서 연락을 받기 전에는..... .
단순히 식곤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에도 명절을 앞두고 고향집엘 오면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삭막한 객지생활에 찌들었던 육신도 고향에 오면 저 먼저 알고 안온함에 젖어들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하곤 했었다. 신문기사를 두어 차례 더 읽던 나는 불현듯 달려드는 졸음에 몸을 맡겼다. 괜찮을 거야. 암, 괜찮고말고. 내가 우선 죄가 될 만큼 잘못한 게 없고, 그리고 우리를 봐주는 김 형사가 있지 않은가. 괜찮을 거야.
결코 길지 않은 시간 그렇게 졸음에 취해있을 즈음이었다. 방문이 와락 열리고 어디선가 차갑고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꼼짝 마라! 도망갈 생각 말고 순순히 나와!"
눈시울을 눌러 붙은 잠 귀신을 떨쳐내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을 때는 가죽잠바를 입은 건장한 사내 둘이서 방문 밖에서 여차하면 뛰어 들어올 자세로 문설주를 잡고 서 있었다.
"왜 그러시죠?"
그러자, 문 왼쪽에 서 있던 사내가 신발을 신은 채 방안으로 뛰어 들어와 날랜 동작으로 내 손을 뒤로 돌려, 손목에다가 수갑을 채웠다. 그러는 동안, 문 오른 쪽에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좀 전에 느닷없이 들려와 졸음을 깨우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을 형법 제 114조 범죄단체의 구성 혐의로 체포합니다."
범죄단체 구성? 내가 뭘? ....... . 아닌데? 그런 낱말들이 내 입 속을 맴돌았지만, 한 마디도 밖으로 토해지지는 않았다. 가죽잠바의 사내들은 거칠게 나의 양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아니, 삼촌! 이게 웬일이에요? 도대체 삼촌이 무슨 죄를 졌길래.... ."
형수였다. 형수는 마당 한쪽에 서서 흙빛으로 변해버린 놀란 표정으로 울먹이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형은 그 사이 과수원으로 올라가 있었던지, 보이지 않았다.
가죽잠바들에게 두 팔이 잡힌 나는 시동이 걸려있는 지프차 뒤 칸으로 거칠게 밀어 넣어졌다. 지프차는 예의 그 가죽잠바들이 내 양쪽으로 들어와 앉아 문을 닫자마자 앞으로 쏜살같이 내닫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낯익은 고향마을 풍경이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 차창으로 흘러가는 고향마을 풍경 사이로, 공기총 산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파닥파닥 죽어가던 까치들의 모습이 되살아나 자꾸만 겹쳐 보이던 그 까닭은....? 尾
<2003년도 스토리문학관 신인문학상 수상작>
2013.09.12. 01:38 퇴고 한 판
첫댓글 읽다가 나갔습니다 읽다가 부르면 나가고 또 들어와 읽고 그렇게 됩니다 집에 있으면,,,
그렇지요. 전 혼자 있어도 낮시간에는 그렇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