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뱃값을 올리면서 담배제조․판매사에 대한 손실보전 방안은 마련한 반면, 담배재배 농가의 피해보전 대책은 전무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9월 발표한 담뱃값 2000원 인상안에 포함된 출고가 및 유통마진 인상분(232원)은 KT&G와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 필립모리스, 제펜토바코인터내셜널(JTI) 등 국내외 4개 담배 제조사 등과 판매사의 매출감소에 따른 손실보전용으로 연간 1조원 가량을 제공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안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잎담배 경작농민들을 위한 피해보전 대책이 인상안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농사짓기 어렵기로 유명한 잎담배재배는 독한 향이 나는 담배더미에서 파종․수확․선별까지 전 과정이 직접 손으로 처리하는 고된 작업이다. 수십 년간 터전을 잡고 농사를 일궈온 담배농가들의 피해는 고려치 않은 채 담배제조사의 손실보전책만 마련한 정부정책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세게 비판받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광림 의원(새누리당․경북 안동시)은 16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담배 판매량이 감소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잎담배 경작농민에 대한 피해보전은 누락되었다”면서 “정부는 지난 2002년과 2004년 담배값을 각각 200원, 500원씩 인상하면서 연초 재배농가 피해 지원을 위해 담배 한 갑당 10원, 15원씩을 ‘연초안정화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한 바 있다”고 언급한 뒤, “하지만 지난 2008년 연초안정화기금 항목을 제조․판매사 이윤으로 전환한데 이어, 이번 2015년 인상안에도 해당 항목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담배 제조사 판매사 유통마진으로 전환된 연초기금
지난 2002년 당시 담배값 200원을 인상하면서 새롭게 생긴 연초안정화기금은 5년이 지나 2007년 목표액인 4100억원을 달성했다. 이후 2008년, 정부는 기금목표액 달성으로 없어지게 된 연초기금 15원을 담배제조사 판매사의 유통마진(이하 유통마진) 몫으로 전환시켰다. 원래 935원이던 유통마진이 15원 증가해 950원으로 담배제조사 판매사의 이윤으로 할당된 것이다. 연초안정화기금 15원이 없어지게 되면 담배값 15원을 인하하는 게 합리적인데 정부는 아무런 설명 없이 제조사와 판매사의 몫으로 돌려놓았다. 이렇게 부당귀속 되어 KT&G등 담배제조사 판매사가 가져간 총 금액은 4,500억원에 달한다.
이번 2015년 담배 인상안도 2008년 당시처럼 이유를 모른 채 담배제조사 유통마진 인상분(232원)이 책정되었다. 현재의 담배가격 신고제도 하에서는 담배제조사가 세금․부담금의 정도, 판매량 증감 등에 따라 임의로 가격 조정할 수 있다. 때문에 세금․부담금의 무분별한 귀속은 정부가 담배제조사 간의 담함을 유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공정경쟁 저해를 조장한 것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잎담배농가보호를 위한 약정을 어긴 KT&G
담배농가는 1977년까지 전국적으로 1억9000만평의 경작면적과 20만명의 농가수를 보유했던 호시절이 있었다. 1978년에는 전체 농산물 수출액의 10%를 차지해 산업화를 이끈 외화소득의 주역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KT&G가 발족되면서부터 그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1년 당시 경작면적 7200만평, 농가수 2만900명이던 담배농가 규모는 같은 해 KT&G 민영화 이후, 2013년에는 경작면적의 6분의 1(1100만평), 농가 인구는 8분의 1(3700여명)이 줄어든 상태다.
반면 2013년 KT&G는 설립된 지 26년 만에 당기순이익 5,013억원, 영업이익률 37%로 삼성전자(15%)의 2배이고 NHN(네이버), 강원랜드 등과 영업이익률 1위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위치까지 성장했다. 특히 KT&G는 지난 2010년 입담배 경작면적 1900만평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여 93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성과는 민영화 이전인 2000년 12월에 KT&G가 잎담배 경작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경작면적을 자연감소 수준이상으로 감축하지 않겠다고 체결한 약정을 스스로 파기하고 얻은 결실이다.
KT&G가 잎담배농가보호를 위해 합의한 약정을 어긴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지난 2000년 정부는 KT&G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잎담배농가 보호를 위해 최소 비중 50%이상의 국산잎담배를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담배 상품의 특성상 국산잎담배 사용이 곧 국산품 이용이라는 정서가 강해 시장점유율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2001년까지만 해도 75%이던 KT&G의 국산잎담배 사용비중은 2007년 60%로 감소했고 2013년에는 37%로 떨어졌다.
KT&G가 잎담배농가와 국산잎담배를 50%이상 사용하기로 합의한 데는 치밀한 손익계산이 내포돼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청사 내에서나 공공기관 매점, 고속도로 휴게소, 군대 PX 등에서 외국산 담배 판매가 금지돼 있거나, 소매점 스스로 판매를 자제하고 있다. 덕분에 외국담배와의 경쟁에 밀리지 않고 KT&G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국산담배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담배 한 개비 안에 국산잎담배 비중이 최소 50%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2013년 국산잎담배 사용비중을 보면 37%로 50%이하로 떨어졌다. 즉, 담배원료 63%가 수입산 담배로 이루어졌음에도 KT&G는 버젓이 국산담배로 취급받으며 매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김광림의원 담배사업법 개정 발의해
‘담배사업법 25조의 3 제조업자 등의 공익사업’ 제1항을 보면 담배 20개비당 20원 이내의 공익기금을 출연하도록 할 수 있다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유재량에 의해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라 법적인 의무는 없다. 김광림 의원은 “한 갑당 10원, 15원씩 공익기금으로 조성한 선례에 맞게 금번에도 적용하되, 앞으로 공익기금 출연한도를 의무화하고 담뱃값 인상폭을 고려해 출연한도를 20원에서 40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법안을 15일 공동 발의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내 잎담배 생산유지와 국산 잎담배 지급률 향상을 위해 담배 1개비에 포함된 잎담배의 원산지표시를 의무화 할 것”이라며 “담배경작 농민 지원을 위해서나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잎담배 농민 지원대책은 2011, 2012년 2년 연속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정요구를 받았던 내용이다.
김광림 의원은 “이번 담배사업법 개정안에는 잎담배 경작농민 보호를 위한 지원계획을 포함시켰다”며 “정부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손익을 입는 단체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담배사업법 개정안으로 인해 피해를 보신 잎담배농민들에게 정확한 보상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