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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회와 LG硏修院의 인연
행사기간 ; 자 2010년 4월 5일 지 2010년 4월 7일.
보고서 작성자 조 성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 어른님 네들의 얘기를 少時쩍에는 종종 들었던 어구 중에 하나였다. 지난해의 일이지만 기억력도 아리 숭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작년 우리 장수회의 백미도사(白眉道士) 홍순덕 님의 선처와 후의로 溫泉으로서도 有名한 백암온천으로, 그것도 아무나 갈 수도 없는 LG硏修院에서 좋은 친구와 더불어 따끈따끈하고 물 좋다는 백암 온천에서 2泊3日을 기대하면서 동대구역에서 상봉하여 아주 오랜만에 열차타고 고도 경주로 向했다.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원족가기 전날은 밤잠도 이루지 못하고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서성대던 그 때 그 기분을 방불케 하였다. 나는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이라는 행사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가는 도중 점심시간에는 바닷가의 진미 생선회를 배불리 먹고 한 보따리 사서, 저녁 시간을 기대하면서 온정중학교에 먼저 도착하였다. 앞에 있는 초등학교, 뒤에 있는 중학교가 어쩌면 예쁜 시골 처녀 보는 듯 깨끗하고 아담할 뿐더러 온정중학교 테니스 코트가 더더욱 내 마음을 꽉 사로잡았었다. 테니스와 더불어 온정중학교 코트에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노익장을 과시하던 그야말로 산 둏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테니스 라켓을 맘껏 휘두르다 보니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이 피곤하지도 않고 얼마든지 노닐 것 같았었다. 여유로운 시간대에는 불영사를 마주보는 산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 그대로 그림자도 못 본체 불령 계곡도 내려다보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가 밤이면 술 좋고 안주 좋고 친구 좋은 덕택에 맘껏 마시고 정말 행복한 시간을 즐기다가 돌아올 때는 넉넉한 완행열차에서 김밥으로 안주삼아 소주 한 잔 하며 영화 장면 같은 차창 밖 자연을 만끽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시절을 수시로 아쉬워하였었다. 그러나 생각이 나서 또 한 번 가보았으면 하는, 半 期待 半 付託삼아 今年에도 한 번 더 가보자고 은근슬쩍 내뱉었던 나로서는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도 반반 기대, 청탁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지면을 通해 다시 한 번 洪 道士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2010庚寅年 四月 初닷세, 바로 식목일이었건만 우리 장수 회에서는 불행이도 전원 참석치 않았었지만 그래도 여덟 명 회원이 토끼(Chairman)와 거북이(Genesis)에 네 명씩 나누어 승차하여 09時를 약간 지나 대구은행 본점 앞을 출발하였다.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일곱 명의 회원 모두가 입가의 웃음꽃이 피어 만발하였다. 날씨도 좋을뿐더러 학부 출신의 토끼 거북이 기사에다 차 창문 열면 맑고 시원한 공기에 취해 지상 최상의 조건을 갖춘 채, 기분 또한 날아갈 것만 같았지만 불참 회원 김한규, 원용수, 장판수, 최연완 네 분을 생각하니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영덕군 강구 구 시장에 위치한 達山人 신우섭회장님의 고향인의 식당에 들려, 대게 다리 찜 20개씩을 먹고, 게장은 별도로 채취하여 점심밥에 비벼 먹으니 약간 시장 끼가 돌던 터이라 배꼽이 삐죽이 밀고 나올 정도로 먹고도, 야채 반 미즈꾸리(みずくり;물가재미膾)회 반을 섞은 회 무침을 직경 24cm크기의 둥근 쟁반 두 개에 오봉산처럼 쌓아올린 그 많은 회를 깨끗한 쟁반으로 비울 정도였으니 장수회원 여덟 명의 위장, 대장, 소장의 용적도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식당을 떠날 무렵에는 오늘 저녁에 한잔 할 안주 みずくり膾 삼만 원짜리를 사고 보니 큰 스티롤 수지박스에 가득하였다. 내 짐작으로는 이틀 저녁을 충분히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배불리 점심을 먹은 뒤라 차 뒷좌석에 앉아서 살짝 졸다가 도착해 보니 바로 신 회장님의 선조이신 의병 대장이셨던 신돌석 장군의 사당에 도착하였다. 깨끗한 사당 마당은 넓게 주차장도 정비 되어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참배를 하는데 사당 옆에 세워진 큰 자연석 비문에는, 평해 월송정에 올라가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근심하면서 읊은 詩句가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 樓에 오른 길손은 갈 길을 잃고 檀君의 터전에 落木이 가로 놓여 있음을 歎息하네. 男兒 27에 이룬 일이 무엇 인고 잠시 가을바람에 의지하니 感慨가 새롭구나. 」 申장군에 대해 약간 부언을 한다면, 신석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산 申氏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예이나 門中은 서리 출신인 영해 부 아전 가문의 후손이었다.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부친과 아우 태범과 함께 의병 활약을 한 서민 출신 의병장이었다. 이곳을 참배하고 괴시리 전통마을로 向했다. 고려말의 대학자 목은 이 색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에 도착하였다.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城下池)가 있어 호지촌이라 부르다가 목은 선생이 문장으로서 元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의 괴시 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이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그의 비슷해 귀국 후 괴시(槐市)라고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에 함창 金씨(목은 선생의 외가이며,)선생의 외조모는 영양 남씨가 처음 입주한 이래, 조선 명종 조에 수안(遂安) 金씨, 영해(寧海) 申씨, 신안(新安) 朱氏 등이 거주하다가 인조 8년부터 영양(英陽) 南氏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타성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 영양 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문벌을 形成하였다고 한다. 마을 앞은 동해안의 3대 평야인 기름진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고, 남동쪽의 망일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마을을 入字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런 자연 地形에 맞추어 대부분의 고택들이 서남향으로 2~3백 년 된 「口」字形 구조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영남 반촌에서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해마다 학자들과 학생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격년제로 마을에서는 「목은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동해안의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모래를 밟으며 싸늘한 바다 바람과 조금 씩 조금씩 바닷물을 따라 들어가는 모래들이 애처롭기 만한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좀 더 눌러있게 하기위해 국군 아저씨들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일곱 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칠보(더덕, 황기, 산삼, 돌 옷, 멧돼지, 철, 구리)山 자연 휴양림에 찾아가 보니 어디 없이 좋은 곳에는 불당이 자리한 유금사(有金寺)에서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는 온정중학교로 향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신우섭회장님이 대표로 학교장께 인사를 마치고 나온 뒤 테니스 두게임을 마치고 LG연수원으로 입실하여 짐을 풀고 따끈따끈한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는 방으로 돌아와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술판에 좌정한 뒤 소주 대병 두 개를 사가지고 와서는, 하나는 오늘, 다른 하나는 내일 저녁으로 배당을 한 후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취기가 콧잔등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큰 병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끝낼 것 같았던 술판이 또 다시 내일 몫으로 남겨둔 큰 병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자 안주가 모자라니 남겨둔 내일 분의 미즈꾸리 안주를 또다시 식초를 부어 여러 개의 젓가락으로 믹스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이왕 버린 몸 부어라 마시자 먹자 너도 나도 이렇게 시작한 것이 결국은 완전 바닥을 치고 말았다. 얼굴 색깔이 붉다가 희어지고 희다가 붉어지고 먹다보니 안주가 좋아서 인지, 술도 별로 취하지 않고 그 많던 미즈꾸리회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 좋다 정말 기분 좋다. 토끼, 거북이 기사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를 찾아갔고, 결국 여섯 명이서 그 많은 것을 해 치웠단 말이가? 아니지, 나 한 사람 또한 빠지고 나면 결국은 다섯 명이서 대병 소주 두병, 미즈꾸리회 3만 원짜리를 거의 다 먹은 셈이다. 이날 저녁에 회원들의 기분은 절정에 달했다. 단 한 가지 不足한 것은 性이 다른 사람이 없어 좀 서운했지만 우리 주변에는 있어도 없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았소이다. 왜냐하면 여자보다는 술이 더 위이니까. 출발 전부터 아쉽게 생각된 것이 바로 장판수 교장이 불참한다는데 있다. ❛호보연자(護保然自)하고 심조불산(心操火山)은 시산경(市山慶)에 있지만, 누가 이런 구절을 발표한단 말인가?❜ 그러면 꿩 대신 닭이라고, 내라도 조금 읊어볼까 하고 생각한 것이---.
평소 글줄께나 읽었다고 文字 쓰는 것을 자랑삼아 뇌까리며 떠다니는 얼치기 양반 놈이, 오랜만에 깊은 산골에 있는 처가에 갔다가 어설픈 文字 쓰다가 뭇매 맞고도 버릇 못 고친 사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즉 깊은 산골에 있는 처가에 갔다가 한 밤중에 나타난 호랑이가 배가 고파 동내에 내려와 마침 이 사나이의 처가에 출현하여 소를 잡아 가려고 하자 이를 눈치 챈 장인이 자다가 뛰어나와 자기 집 소를 지키려다 결국은 호랑이가 소 대신 장인을 물고는 산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 얼치기 양반 사위가 큰일 났다 싶어 온 동내를 뛰어다니면서, ❝원산호(遠山虎) 근산래(近山來)하여, 부빙장(扶氷丈)을 去하니, 유총자(有銃者)는 집총(執銃)하고 , 무총자(無銃者)는 집장(執杖)하여, 속출 속출(續出 續出).❞ (먼산에 있던 호랑이가 가까운 산으로 내려와서 내 장인을 잡아 갔으니, 총이 있는 사람은 총을 들고 총이 없는 사람은 막대기라도 들고 빨리빨리 나오시오.) 이와 같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온 동내를 한 바퀴 돌았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자, 처가에 들어가 동내사람들의 부당함을 부르짖었다. 날이 밝자 온 동내사람들이 모여서 새벽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 하였다. 이 때 이 얼치기 양반의 장모가 울면서 나타나 동내사람들의 몰인정한 행위에 대해 한풀이를 하였다. 자초지종 내력을 듣고 난 동내사람들이 이 얼치기 양반을 불러 세워놓고는 몽둥이찜질을 하면서, 또 이따위 짓을 할 것이냐? 하니. 대답하되, 曰, 차후(此後)는 불용문자(不用文字)하오리다. (이 다음부터는 문자를 쓰지 않겠습니다.) 結局 그래도 정신 못 차리더라 하는 이런 얘기지요.
또 하나는 中國 四大 美人과 脫落한 美人에 대한 것인데 아래와 같다. 1.서시(西施 ; 춘추전국시대) 2.왕소군(王昭君 ; 명나라 元祖 때) 3.초선(貂嬋 ; 삼국시대) 4.양귀비(楊貴妃 ; 당나라 명황 때);이 四大 美人을 일컬어 침어(侵魚), 낙안(落雁,) 폐월(閉月), 수화(羞花)라는 대명사로 표현한다. 그러나 탈락된 한 미인은 양귀비와 대조가 되는 미인으로서 조비연(趙飛燕)이라고 하는데, 이 두 사람을 연수환비(燕瘦環肥)라는 사자성어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代名詞로 「연수(燕瘦)는 임풍양유형 미인(臨風楊柳型 美人)」이요, 「환비(環肥)는 부귀목단형 미인(富貴牧丹型 美人)」이라 稱한다고 한다. 특히 趙飛燕은 말랐으니(瘦)美人이었고, 楊貴妃는 살찐 (肥)美人이었다. 趙飛燕은 작장중무(作掌中舞)라 가볍기가 그지없어 손바닥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이렇게 준비를 해 보았건만 별로 들을 만한 동기유발이 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주안상에 더 관심이 큰 것이었던지 결국 시지 부지하고 말았다. 역시 특허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입담이 좋은 사람은 별다른 소재가 없어도 남을 잘 웃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들을만한 소재를 가지고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싱거울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하루를 끝내고 편안한 안식을 취하는데 나는 특히 밤에는 목청 돋우어 다양한 콧노래를 잘하는 편인데, 타인은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데 유독 한사람만이 오랜 시간을 감상하다가 잠을 별로 이루지 못했다고 하니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따끈한 온천 생각이 나서 혼자라도 갈려고, 어제 받은 욕실 입장권을 가지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니 벌써, 홍 도사께서 입장권을 내게 주시는 표를 받아보니 입장권 색깔이 어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한 장을 받아서 온천에 들어가 있으니 따끈한 온천수가 어찌 그렇게 시원한지 묘한 기분이었다. ❛따끈따끈한데 시원하다.❜ 정말 좋다, 아니, 좋다는 것 보다는 기가 막힌다. 더운 물로 갔다가 또 나와서 찬물로 갔다가 이번에는 따스한 물에 갔다가 어린아이처럼 첨벙대다가 샤워를 하고는 욕실을 나왔다. 이렇게 해서 상쾌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온천을 거쳐 온 탓인지 불그스레한 얼굴에 번질번질하고 피둥피둥한 웃음을 머금으며 작년보다는 좀 Up glade된 식당에 들어가 황태포조림의 특식 아침 식 사를 맛있게 먹고는 또 한 대 태우고는 토끼와 거북이에 올랐다. 우선 울진의 월송정을 향했다. 울진대게 해안도로와 관동 제일경 월송정을 가는 도중에는 울진군이나 영덕군이나 생선건조대 기둥에는 붉은 대게의 장식을 길 따라 만들어 걸어 놓았고 해안도로에서 나와 국도를 따라 잠깐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월송정 표시판이 보이고 진입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솔숲길이 우리를 반기고, 왼쪽은 어느 崔씨 門中 기념관과 재실 같은 한옥 건물울 축조하는데 돈 푼깨나 있는 門中처럼 보였다. 울창한 솔숲을 지나 바닷가에 이르면 2층으로 지어진 越松亭이 나타난다. 여기서 장수회 선비들이 우루루 모인 터에 詩 한 수 없을 손가!? 그래서 長壽會의 날 나리 詩人 조 성환가 시 한 수를 적어보았소이다.
「 蔚珍海風浥輕塵 亭子前松靑色新 (울진해풍읍경진 정자전송청색신) 울진의 바다 바람이 먼지를 깨끗이 씻었는데 정자 앞 소나무는 푸른빛이 산뜻하네, 勤君更盡一杯酒 東出海洋無故人. (근군갱진일배주 동출해양무고인)」 그대에게 술 한 잔을 다시 한 번 권하노니 동쪽 바다로 나가면 친구가 없으리라.
날씨가 좀 싸늘하고 바닷바람이 생선비린내와 같이 몰아쳐 오니, 시장 끼도 돌고 해서 식이위대(食以偉大)라 했거늘 그래서 죽변 항에서 뭔가 그럴 뜻한 것을 찾아다니다가 여러 가지 종류의 회를 사고, 처음 먹어보는 내장탕(싱싱한 魚類의 내장으로만 끓인 탕)을 주문했는데 정말 그 맛이 일품(逸品)이었다. 만약 또다시 죽변에 갈일이 있다면 어김없이 찾아가 훌륭한 그 맛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리라. 맨 처음 申회장께서는 단단히 계획을 세워, 관동팔경 中 이번 기회에 관동 삼경을 답사하리라 계획을 세웠지만 약간의 사정이 있어 결국은 망양정(望洋亭)과 월송정(越松亭)만을 더듬고 돌아오게 되었다. 관동 팔경이라 함은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로서 간성 청간정,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인데 다음 또 기회가 오게 되면 갈수 있는 곳을 여행해 보는 것도 장수회의 목표로 설정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봄직 합니다. 다음은 민물고기전시관을 둘러보고 각종 민물고기들의 생태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내 왔다. 물론 입장료는 경노우대 차원에서 무사통과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괘씸하게도 왕피천 엑스포공원은 50%의 입장료를 내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보기 싫은 양 뒤돌아서고 말았당게! 울진 바닷가의 해풍이 몹시 거세게 불어 죽변 항 드라마세트장(폭풍 속으로, 사랑한다 말해 주.)에서는 바람에 실려 바다로 다이빙 할 번 하였소이다. 벼랑 끝에 세워진 교회와 조그마한 집은 촬영장으로서는 그럴싸하였소. 때마침 울진 原子力 발전소가 가까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서울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발전소 시찰단처럼 점잖게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난 뒤, 토끼를 따라 거북이도 여유롭게 LG연수원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역시 우리 大韓民國은 살기도 좋을뿐더러 도로가 너무나 잘 정비되어있었고 거기에다 차마다 네비시스템을 부착하고 있으니 별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온천과 더불어 안락하게 지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냥 잘 수가 없어 씨원한 맥주 대포로 회포를 풀고 또 그냥 잘 수 없어, 목이 터져라 마이크 잡고 애원하면서 밤 22:00까지 끝까지 흔들다가 각 방으로 돌아가서 단잠을 이루었다. 빡빡한 일정에 바삐 행차하느라 두 거북이와 토끼 기사님들이 수고를 매우 많이 하셔서 정말 고맙고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특히 더 고마운 것은 이 도걸 부장님께서 金 一 封을 찬조하셔서 신고식 겸 큰 盞들고 맥주로❝건배❞를 외칠 수 있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참하신 분들에게는 미안합니다. 두서없이 누덕누덕 漢字를 섞어 놓았으나, 시산경(市山慶)을 터득한 분들이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겠소이까! 잘못 서술한 것이 더러는 있겠지 만은 너그럽게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長壽會의 會員 여러분께서는 더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과 우리 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증진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외쳐 봅시다. ❝九九八八 二三死를 爲하여.❞ 感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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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장선생님의 여행 후문과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도 뛰어나시고 저가 백암온천을 다녀 온 것 같이 느꼈습니다.
몇 번 저가 장수회 월례회를 보았지만 일흔 하고도 두살이신 어르신네들의 몸 놀림은 저희들 보다도 더 활기차고 힘있어 보였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장수하시길 기원 합니다.
박정옥 드림
조교장님, 글을 늦게 읽어보아 미안합니다. 글을 읽는 동안에 배꼽을 몇번이나 잡았는지 모릅니다. 집에 식구는 누구와 체팅하느냐고 다그칩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