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접촉이 있었다는 5월 9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다면 내년 봄 핵 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수 있다"고 했던 날이다. 당시 청와대가 "베를린 제안의 진의(眞意)를 북에 전달했다"고 했던 게 바로 이 비밀 접촉이었던 모양이다.
북(北)이 비밀접촉 사실과 참석자 명단, 대화 내용까지 시시콜콜 공개하고 나선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를 더 이상 상대 안 하겠다"는 말이 진심인 듯하다. 북은 정부가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의 책임있는 조치 요구를 끝내 유야무야(有耶無耶)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명박 정부를 망신시키고 궁지(窮地)로 몰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다. 북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시효(時效)는 어차피 올 연말까지이고,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할 여야 차기 대선주자들의 대북 정책 노선을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는 게 낫겠다고 계산했음 직하다.
우리의 궁금증을 돋우는 것은 대관절 김정일의 방중기간 중 북·중 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우리 정부와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남북 비밀접촉까지 공개하며 남쪽 정부를 비난하는 종잡기 힘든 이상(異常) 심리증상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정상회담을 하자고 매달려 온 쪽은 북이었다. 그러나 북은 이번 접촉에서 우리 정부가 6월 하순과 8월, 내년 3월 등 세 차례 일정까지 제시하면서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걸 보고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과 관련해 남쪽 정부가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역(逆)이용하려는 듯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 나선 느낌을 주고 있다. 2000년 총선 직전 발표된 1차 정상회담, 2007년 대선 직전 열린 2차 정상회담의 경험을 통해 북은 큰 선거를 앞둔 남쪽 정부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일을 통해 국내 정치적 계산을 뒤섞으면 오히려 그들의 장난에 놀아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걸 깊이 느껴야 마땅하다.
--------중일보------------------
--------동아일보---------------
[사설]北의 ‘정상회담 南南갈등 획책’ 이후도 대비해야
기사입력 2011-06-02 03:00:00 기사수정 2011-06-02 03:00:00
북한이 어제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남한과 접촉한 사실과 추진 상황을 공개하고 이명박 정부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공개한 내용은 북한의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사실까지 왜곡해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분석하되 선전 공세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 대응이 돼야 한다.
북한은 지난주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대남(對南)공세 수위를 높였다. 지난달 30일에는 남한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며 동해 군 통신선을 차단하고 금강산지구 통신연락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어제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한 직후 조선신보를 통해 남측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평양의 최후통첩’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북-중 정상회담에 힘을 얻어 남한 압박에 나섰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최근 우리 측 일부 예비군 부대와 해병대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진을 사격훈련 표적지로 사용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이 여기에 반발해 남북 비밀접촉을 공개했을 수도 있다.
북한 공세를 압박용 선전선동으로 판단하더라도 북한 국방위원회의 발표에는 반드시 규명해야 할 내용이 들어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다가 ‘유감’으로 수위를 낮추며 매달렸다고 주장했다. 북한 대표에게 돈 봉투를 내놓았다는 주장도 했다. 정부는 그런 일은 없었으며 북한에 대해 시종일관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고위 당국자는 정상회담도 북한의 도발 문제가 해결된 뒤 남북한 고위급 회담을 거쳐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정부는 좀 더 명쾌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남북 비밀접촉이 드러났는데도 몸을 사리면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로 인해 남남 갈등이 빚어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면 누가 좋아할 것인가. 민주당도 북한이 남북 접촉 사실을 공개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에 대해 “겉으로는 대북 강경대책을 고수하면서 뒤로는 정상회담을 애걸하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정상회담 공세’는 일회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2009년 싱가포르 접촉을 포함해 여러 차례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비밀접촉이 있었다. 북한이 2차, 3차 ‘공개 공세’를 펼 수도 있다. 선전 공세가 먹혀들지 않으면 북한이 또다시 무력도발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북한의 다단계 획책에 대응하는 철저한 태세를 갖추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비밀접촉 폭로전까지 부른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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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과거 여러 차례의 대치 국면에서도 물밑대화 사실이나 내용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의 ‘폭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여기에는 현 정부가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대북 강경자세를 취하는 등의 이중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초 베를린에서 내년 3월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참석을 제의하면서 핵 포기 문제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담보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런 다음 우리 측 진의를 북측에 전달했다며 비밀접촉 사실을 먼저 공개했다. 그러나 북측의 폭로를 분석할 때 남측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모종의 대안을 내놓았지만 거부당한 것 같다.
북의 폭로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북측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북측의 대북 식량지원 요청을 수용하려는 상황에서도 홀로 지원을 거부해 북측에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최근 일부 군부대의 김정일 부자에 대한 사격훈련 표적지 사용도 북한을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최근 중국 방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판단, 남북관계에 대한 전략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한겨레--------
북한이 어제 남쪽 정부 핵심인사들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는 베이징 비밀접촉 전말을 공개하고 나섰다. 남쪽 당국자들이 돈봉투까지 내놓으면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정치적 절충 등을 꾀하기에 거절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사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사실상 파탄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런 일이다.
정부가 북쪽과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한 것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정상회담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유력한 방법이다. 당국 간 사전 정지작업도 당연히 필요하다. 오히려 북쪽이 접촉 전말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게 문제다. 북쪽의 태도는 대화 기반을 유지하려는 성의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그러나 접촉의 구체적인 내용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남쪽 당국자들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쪽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쪽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남쪽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북쪽의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북쪽은 무관함을 주장해왔다. 이 문제가 정상회담 추진의 걸림돌임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남쪽 제안은 양쪽 당국이 처음부터 짜고 치는 눈속임을 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북쪽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사과하지 않는 한 남북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공언해왔다. 그런 터에 이런 제안을 했으니 누가 봐도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남쪽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하면서 돈봉투를 내밀었다는 대목도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북쪽에 끌려다니는 남북대화는 하지 않겠다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꽁꽁 틀어막았다. 정권의 기반인 한나라당은 전임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을 돈 주고 산 회담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현 정부 당국자들이 돈봉투로 유혹하려다 망신당했다는 소리를 북쪽한테 듣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한심하고 민망한 행태다. 정부는 그동안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기왕의 남북 교류협력을 끊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에는 대북 압박을 한층 강화했다. 그러다 임기 말이 가까워 오자 남북관계 성과를 챙겨보자는 초조감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가 단단히 망신을 당한 꼴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대북정책을 먼저 변화시키는 게 옳다. 이를 통해 대화 여건을 조성해 나가다가 정책 변화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회로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게 순리다. 이런 깜짝쇼 방식으로는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을 결코 이룰 수 없다. 이쯤 되면 당분간 남북 양쪽 정부에 뭘 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이럴 바에는 남북관계를 더 망치지 말고 현상유지나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