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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으로 두고 있는 단어들은 소설을 쓰기 전에 기초로 삼았던 '소재'에 가깝습니다.
아직 단편적으로 연습하고 있어서 매 작품마다 제목을 붙이지는 않고 있거든요;;ㅋㅋㅋ
관심갖고 클릭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ㅋㅋㅋ
이것은 약 2주 전에 쓴 소설입니다!
지난 번 것보다 분량이 좀 적어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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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 콘서트
<1>
“연예기획사 K엔터테인먼트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인 ‘MERRY K-MAS’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K사 소속 가수 모두가 참여하는 이 대형 콘서트는 올 해로 7회째를 맞아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매년 큰 주목을 받는 ‘MERRY K-MAS’의 총감독은 무대감독 ‘박 허웅’씨로 결정되었습니다. K 엔터테인먼트는 아티스트들의 예술성을 극대화 시켜줄 감독을 찾았…”
허웅은 소파에 몸을 파묻고 껌을 좍좍 씹어대며 뉴스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러 입술을 닫지 않아 씹는 소리는 앵커 목소리와 판이하게 방안을 울렸다. 군인처럼 짧게 자른 머리, 수염이 파르스름하게 남은 턱, 눈의 윤곽이 드러나는 옅은 갈색의 선글라스, 다리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검은색 트레이닝 복, 마구잡이이면서도 화려한 무늬가 붙어있는 하얀 박스티.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곧 40을 바라보는 남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허웅 옆에 앉은 K사의 홍보실장 또한 처음에 그랬다.
“벌써 이렇게...”
목소리만큼은 나이를 먹었는지 낮고 둔중한 목소리가 TV소리를 자연스럽게 잠식시키며 울렸다.
“하하, 언론사들이 얼마나 보채던지 이 만큼 미루기도 힘들었습니다. 감독님.”
감독보다 두 살 어린 홍보실장은 사람 좋게 웃었으나 소리의 뒤끝은 흐지부지했다. 허웅은 텔레비전을 껐다. 앵커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껌이 이빨에 달라붙었다 떨어지고 그 와중에 만들어진 작은 공기방울이 터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홍보실장은 쉼 없이 이어지는 그 소리에 어쩐지 갑갑한 기분이 들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푸른빛이 도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감독의 자유는 받는 돈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부르신 액수가 상당히 제 발목을 잡을 것 같습니다.”
감독은 부드럽게 선글라스를 벗어 소파 옆에 놓인 작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매서운 눈매가 그대로 드러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긴장을 더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예술성을 더 강조하려고 감독님을 모신 것이고 그 정도 금액은 저희 쪽에서 당연히 드려야 할-“
“그럼 제 계획에 대해서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가능하십니까?”
음절을 분명히 끊은 ‘일절’은 껌 씹는 소리만큼이나 실장을 숨 막히게 했으나 이번에도 그는 내색하지 않고 역시나 사람 좋게 웃었다.
“물론입니다.”
허웅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이 없었다. 실장은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다는 생각에 별 뜻 없이 감독을 향해 물었다.
“뭐 더 필요하신 건...?”
“있습니다. 자일리톨.”
이제까지의 느릿느릿한 말투와 달리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온 한 마디에 실장은 놀랐다. ‘아…’하며 무슨 말을 할 지 갈피를 못 잡는 실장을 향해 허웅은 당연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진절머리 나게 모니터 들여다봐야 할 때는 껌이 최곱니다.”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섞여있었다. 가늘게 찢어져 처지는 그의 눈꼬리는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과 겉돌았다. ‘진절머리’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이번 콘서트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실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허웅의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언론에 보도까지 된 판에 괜히 감독의 심기를 건드려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허웅은 손수 사무실의 문을 열어주었으나 친절은 거기까지 였다. 실장이 방을 나서자마자 문은 매섭게 닫혔다.
<2>
‘MERRY K-MAS’ 2만 5천 석은 인터넷 공개 17초 만에 매진되었다. 관중들은 열광적이었다. K사의 소속 가수가 10팀 가량 연달아 나오는 동안 함성소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에 든 연두색 발광봉 끝에는 K 엔터테인먼트를 상징하는 필기체의 K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허웅은 관중석 뒤 3층에 위치한 지휘실에서 무대를 향한 카메라들이 보내는 모든 화면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그는 K사가 준비한 껌을 한 번에 세 개씩 씹어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 장장 3시간의 콘서트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J의 피날레 무대.”
감독은 무대의 진행상황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곧이어 진행자가 K사 최고의 가수 J의 등장을 알렸다. 22살의 댄스가수. 그가 K사의 초기 자본 대부분을 벌어들였다는 데에 있어서는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큰 키와 멀끔한 마스크,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의 자작곡. 사람들이 야광봉을 세차게 흔들었다. 카메라가 관중석을 훑자 야광봉에서 나온 연두빛이 지휘실 화면으로 가득 넘쳤다. 감독은 지휘실 바닥에 넘실대는 빛에서 자신의 발을 빼며 신경질적으로 껌을 씹어댔다. 허웅은 J, 그러니까 김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아티스트라고 떠받드는 어린 놈, 그러나 예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놈.
“하, 정말 감독님 덕분에 J가 아주 빛이 납니다.”
실장은 지휘실 뒤편에 얌전하게 앉아서는 감독의 기분을 띄워주려고 온갖 아부를 떨고 있었다. 허웅이 진명을 싫어한다는 것을 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허웅은 K사의 모든 가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실장은 생각했는데 오늘 씹어대는 껌의 양으로 봐서 그 생각은 거의 정확한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실장은 공연 내내 지휘실에 앉아 허웅이 돌발 행동을 하지 않게끔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곡을 무사히 마치고 J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으며 두 번째 곡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카메라 2번, 가수 왼쪽 얼굴 클로즈업 해. 땀방울까지 보이게.”
감독이 마이크에 대고 지시했다. J의 높은 콧대, 헐떡이는 목울대, 턱선을 따라 흐르는 땀이 모니터 가득 잡혔다.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이 스크린에 드러나자 객석은 크게 물결쳤다.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전주 나오면 1번이 전체 무대 잡고.”
전주가 시작되고 화면은 클로즈업 컷에서 무대 전체 컷으로 바뀌었다. J는 무대에 등을 돌리고 홀로 조명을 받으며 천천히 주먹 쥔 오른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관중은 열광했다. 쭉 펴진 오른팔 위에 매달린 주먹이 쫙 펴졌다. 그의 손등이 조명을 받아 희게 빛났다. 일순간 그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쥐어 뜯었고 곧, 뻣뻣한 자세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카메라 객석으로 돌려!”
관중들은 쓰러지는 것이 무대의 일부라 생각하고 열심히 형광봉을 휘둘렀다. 지휘실에는 연두빛의 파도가 쏟아져 들었다. 감독은 놀라서 3초간 턱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지금 J한테 무슨 일이-“
급히 감독 옆으로 다가온 실장의 말을 자르며 감독이 지시를 내렸다.
“7번 카메라, J 찍어. 남김없이 모조리.”
“무슨! 돌발상황인데 뭘 찍습니까, 지금 가수가 쓰러졌는데!”
지시용 마이크에 다가가려는 실장을 감독이 거칠게 제지했다. 감독은 다시 한 번 엄정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7번 카메라 J를 찍어. 화면에는 2번 카메라가 객석만 내보낸다. 7번은 촬영만 하고 2번 카메라는 객석을 찍는다.”
허웅은 이제 소리 없이 껌을 씹었다. 턱을 움직이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실장은 급하게 지휘실을 빠져나가 무대 쪽 스태프들에게 비상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허웅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7번 카메라맨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쓰러진 J를 성실하게 화면에 담았다.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찰나에 영혼이 떠난 것처럼 생동감있게 굳어있었다. 눈은 까뒤집어져 흰자위가 드러났고 입가에는 속에서부터 터져 나온 피가 흘러나온 채였다. 백댄서들이 급히 그를 들쳐 업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뒷모습까지, 지휘실에 앉은 허웅은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앞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3>
온갖 살해의혹을 등에 업고 시작했던 J의 사망에 대한 조사는 싱겁게 끝났다. 자살이었다. 유서는 그의 휴대폰 메모에서 발견되었다.
‘박수 받을 때 떠나겠습니다.’
조사결과, J는 공연 중 극약인 비상을 복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뉴스와 신문들은 쉴 새 없이 젊은 뮤지션의 죽음을 애도했다. 죽은 가수를 위해 꽃과 선물을 바치러 오는 팬들의 모습이 신문 1면과 TV화면에 가득했다.
그와 동시에 허웅이 언론사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J가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담긴 녹화본은 허웅의 소유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언론사가 어떤 가격을 부르든 그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K 엔터테인먼트에게도.
말없이 영상만을 쥐고 있는 박허웅 감독을 둘러싸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다. 그 영상으로 떼돈을 벌려는 생각이라는 둥, J의 죽음을 조장했다는 둥, K사와 앙숙관계라는 둥 소문들은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나 사람들의 입을 타고 뻗어가는 가지는 판타지에 가까웠다. 어쨌든 감독은 말이 없었고 다들 그의 의중을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독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은 J의 자살이 허다한 다른 뉴스들에 의해 파묻혀 잊혀져 갈 때쯤이었다. 6월. 그는 개인 영상전을 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제목은 영상전 공개 전 날까지 비밀에 부쳤다. 쏟아지는 질문, 특히나 J에 대해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해
“제 개인적인 예술관을 나타낸 영상전일 뿐입니다.”
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짧은 머리카락을 나이가 들었으나 여전히 팽팽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기자들을 대했고 인터뷰 중이라도 껌을 뱉는 일이 없었다. 그의 예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는 선에서 끝났다. 영상전도 영상전이지만 그의 그런 독특한 태도는 대중들의 관심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예술가다운 자신감이다.’라고 하는 사람들과 ‘너무 오만하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감독은 6개월 전, J가 죽었을 때처럼 사람들의 말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영상전 공개 당일 정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전 입장은 무료입니다.”
영상전이 열리는 전용전시장, 장사진을 이룬 취재진과 시민들 앞에서 허웅은 이렇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전시장의 문이 열리고 출입문 정면에 황금색 직사각형 판에 검은색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큼지막한 세 글자. ‘김진명’. J의 본명. 사람들은 앞다퉈 안 쪽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곧 J의 노래들이 2배속으로 흘러나왔다. 그것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너무 빨라서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J의 목소리, 죽은 청년의 목소리. 그러다 갑작스럽게 바닥, 천장, 3면의 벽에서 J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J의 다양한 무대영상이었다. 화면 상으로는 그지없이 화려한데 기묘한 음향 탓에 겉도는 느낌을 풍겼다. 그 때 사람들의 뒤에서 허웅의 목소리가 음악소리를 뚫고 분명하게 울려 나왔다.
“이건 오프닝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노래가 멎고, 사람들의 함성소리 그러니까 콘서트장의 함성이 실내를 꽝꽝 울렸다. 화면이 바뀌었다. MERRY K-MAS 당시의 7번 화면, 즉 김진명이 죽어가던 모습이 담긴 화면. 6개월 간 허웅이 꽁꽁 숨겨두던 그 화면. 무대 바닥에 가슴에 이상하게 굽은 손가락을 모으고 누워있는 J의 모습이 어두운 실내를 가득 채웠다. 함성소리는 그런 그의 모습과 전혀 동떨어진 채로 웅장하게 울려댔다. 허웅은 화면을 보고 넋이 나간 사람들의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천천히 턱을 움직였다.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는 자일리톨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고 향이 짙었다. 무대 카메라의 화질은 꽤 훌륭했기에 6개월 전에 이미 죽어버린 J가 마치 바로 눈앞에서, 다시 한 번 죽어가는 것 같았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의 입가로 흘러나오는 피는 함성소리와 맞물려 짙은 공포를 만들었다. 영상의 마지막은 허옇게 뒤집어진 J의 눈동자였다.
화면이 모두 까맣게 없어지고 다시 처음부터. 허웅의 영상전은 4분 가량의 이 영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영상이 한 번 끝나면 다시 시작되고 끝나면 또 다시 시작되고- 사람들은 J가 죽는 장면이 두 번째에도 똑같이 나오자 구역질을 하며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기자들은 영상전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허웅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뒤에 서서 느긋하게 턱을 움직였다. 그의 선글라스 위로 영상과 사람들의 그림자가 왜곡되어 비쳤다.
<4>
김진명의 유족, J의 팬들의 방해로 영상전은 2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젊은 가수의 자살이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몇몇 팬들을 제외한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떠밀려 갔던 젊은 청년은 다시금 수면으로 떠올랐다. 요절한 음악천재 같은 감상적인 느낌은 벗겨지고 유족은 발 빠르게 대응하여 영상이 공개된 바로 다음 날 감독을 고소했다. 김진명에 대한 명예훼손 및 유족들에게 심리적인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그 죄목이었다. 감독은 이제까지의 침묵과 달리 꽤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기자들에게 미끼를 던져주듯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저는 일개 아이돌로 죽어갔던 김진명을 인간으로,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이건 죄가 될 수 없죠.”
열을 내며 그를 비판하는 J의 팬들, 6개월 전을 기억하며 기자들 앞에서 원통함을 토하는 유족들과 달리 그는 항상 신사적이었고 말투 또한 조곤조곤했다. 선글라스 뒤에 숨은 눈동자는 신비로우면서도 강렬하게 취재기자들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똥을 담은 금요강이 있다 칩시다. 난 그냥 요강의 뚜껑을 열었을 뿐입니다. 똥을 감추기 위해 뚜껑을 다시 덮든, 똥을 드러내기 위해 요강을 깨부수든 그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는 취재진 앞에서 결코 웃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에도 무게가 실렸다. 방송사들은 허웅의 모호한 말들을 해석하기 위해 전문가란 전문가는 모두 데려와 카메라 앞에 앉혔다. 그가 발표한 영상전, 영상전 이전과 이후에 뱉은 의미심장한 말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에는 예술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들 하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영상을 두고 예술적 가치를 따진 다는 것은 예술을 넘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밖에 안됩니다.”
“박허웅의 작품은 대중을 생각하게 합니다. 떠받들던 아이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는 것은 어떤 환상의 파괴라고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술평론가, 예술계통 교수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말문을 터놓았다. 4분 짜리 영상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극단적이었고 전문가들이 그렇게 갈리는 만큼 대중들도 양분되는 형태를 보였다. 허웅은 그러한 주장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표명하지 않았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허웅은 검찰청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항상 텔레비전을 켰다. 어디든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니 어느 채널을 켜든 상관은 없었다.
그의 영상은 자극적인 부분이 생략된 채로 토막토막 방송에 삽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상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채널에서나 그에 대한 첨예한 토론을 벌였다. 인간은 언제나 말이 많다고, 허웅은 천천히 껌을 씹으며 생각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빛나는 텔레비전의 화면이 그의 선글라스 위로 왜곡되어 비쳤다.
감독은 기다리는 중이었다. 자신의 심중을 읽어낼 누군가를. 이제 껌을 씹는 것도 지겨워지는 참이었다.
<5>
소란스러운 세상과 달리 검사실은 느긋하며 긴장감이 팽팽했다. 명예훼손과 심리적 피해보상, 심지어 그것이 공인이었던 김진명과 연관된 일이라니. 이목이 집중된 사건은 아무래도 귀찮은 부분이 많았다. 검사는 구형을 하되, 합의를 끌어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고자세인 허웅탓에 합의는 커녕 구형도 쉽사리 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웅은 영상예술이라는 분야의 특성에 대해서 오히려 검사를 설득하려 들었다. 예술, 명예훼손, 심리적피해- 이런 두루뭉술한 말들을 검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불분명한 그 세 가지가 그의 구체적인 구형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껌 좀…”
검사는 서글서글한 눈빛을 하며 휴지를 내밀었다. 허웅은 휴지를 받아 자신의 앞에 고스란히 두었다. 선글라스는 벗은 채였다. 휴지를 건넨 검사를 향한 어떤 비난도 없었으나 검사는 자신이 준 휴지가 곱게 버려졌음을 느꼈다.
“진절머리가 날 때는 껌이 최곱니다. 검사님도, 세상이 참 진절머리나지 않으십니까.”
허웅과 비슷한 또래의 검사는 입을 다물며 책상에 올려진 휴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허웅의 고집. 검사는 그의 말에 대한 수긍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절머리, 나지요. 당연히. 검사도 못해먹을 짓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시는 감독님이 참 부럽습니다.”
허웅은 무표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 진절머리날 때 껌이 최고라고 했고, 아직 뱉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덧없이 웃었다. 피곤하면서도 흥미롭다는 생각이었다. 밤 9시. 오늘 더 붙잡아 둔다고 이 사람의 생각이 바뀔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허웅은 ‘수고하셨습니다.’하며 목례를 했다. 검사도 인사를 받았다. 조용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검사실을 빠져나가는 그의 뒤꽁무니에 대고 검사가 뚜렷하게 말했다.
“내일은 새로운 마음으로 봅시다!”
허웅은 나가다 말고 검사를 돌아보았고, 그저 다시 한 번 목례를 했다. 검사가 건넨 휴지를 책상에 내려놓던 그 고집 그대로였다. 터져나올 무언가를 감춘 눈빛으로 검사를 지그시 응시하던 감독은 그대로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취재진은 검찰청에서 걸어 나오는 감독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허웅은 피곤하여 지난 며칠처럼 지나치려는 데 앳된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와 자리에 우뚝 섰다. 그는 소리가 난 쪽으로 팔을 뻗어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제압할 만큼 둔중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기자들의 어깨를 비집고 나와 허웅의 곁에 섰다. 젊은 여기자였다. 그녀는 사람들에 치여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나 분명한 발음으로 조금 전에 던진 질문을 또박또박 반복했다.
“비평가들 중 일부는 이번 영상전이 ‘죽음으로 벗긴 가면’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습니다.”
감독은 씨익 웃었다. 취재진 앞에서는 최초로 보인 미소였다. 기자들은 여기자의 질문을 기록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며 허웅의 답을 기다렸다. 일순간 고요했다. 그러나 감독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여기자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곁으로 끌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수첩 한 장을 뜯어냈다. 여기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서있었고 카메라들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자처럼 맹렬하게 움직였다.
허웅이 뜯어낸 수첩 종이에는 방금 여기자가 읊었던 질문이 정자로 쓰여있었고 그 밑에는 답을 적으려고 했던 여백이 있었다. 허웅은 보란듯이 종이를 입에 대고 껌을 뱉었다. 그리고 껌을 감싼 종이를 뭉쳤다. 허웅은 천천히 동그랗게 말린 종이를 여기자의 손에 꽉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아주 신사적인 리듬으로, 가볍게 여기자의 손등을 손끝으로 톡톡 쳤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였다.
“이게 제 답입니다.”
<6>
다음 날, 감독의 이상한 행동은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하룻밤 만에 생각을 바꾸어 자신의 모든 잘못을 인정했고 검사의 구형에 일체 변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법정에 출두한 허웅은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고 옷도 단정하게 입었으며 껌도 씹지 않았다. 재판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1년의 집행유예와 6개월의 실형, 그리고 유족에 대한 3억 원의 피해보상금. 그는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법정에서 빠져 나오는 그를 향해 언제나와 같이 질문들이 쏟아졌다. 무심하게 지나치던 이전과 달리 그는 모든 질문을 열심히 경청했다. 초조하게 답을 재촉하는 기자들의 눈빛을 외면하며 하나의 질문이 끝나면 ‘다음 질문’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감독님께 J는 어떤 의미입니까?’, ‘김진명과 개인적인 원한관계 인가요?’,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제 뱉은 껌은 무슨 의미인가요?’, ‘죽음으로 벗긴 가면이라는 걸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셨습니까?’
허웅은 어제와 같은 미소를 또 한 번 보였다.
“여러분이 제게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저의 작품과 ‘죽음으로 벗긴 가면’이라는 말 안에 있습니다.”
기자들은 기대한 답이 나오지 않자 다시 벌떼처럼 웅성대며 달려들었다. 감독은 모두를 제압하는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답했다.
“이제 저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한 마디 하자면, 껌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껌이 필요 없는 날입니다. 오늘은.”
허웅은 자신의 차를 타고 유유히 떠났다.
첫댓글 출근 길에 버스 속에서 휴대폰으로 단숨에 읽었습니다. 긴장감과 박진감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조현 양의 깊이 있는 정신세계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현 양을 둔 부모님을 부러워하며... 재미 난 소설 올려줘서 감사합니다.
단숨에 읽으셨다는 말이 정말 큰 칭찬입니다ㅠㅠ 감사합니다. 짧지만은 않은데 다 읽어주시고 칭찬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주 들를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