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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문경시의 운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1월 09일 (목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추웠으나
일출 후부터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전형적인 가을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5도에서 영상
1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서중리 버스정류장(59번 2차선 포장도로)-서중리회관과 경로당-서중리쉼터-서중관정-금사재(시멘트 포장도로 안부)-비포장 임도-능선진입-성황당 안부-송전탑-작은재-일출-352.7 삼각점봉-346 무명봉-
노거수 무명안부-348.2봉-무명안부-묘지2기-무명안부-355 무명봉-월방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월방산정상 100 m, 봉천사 1.5 Km, 봉정리 1.5 Km)-월방산(360.1미터, 정상석, 이정판들)-월방산 갈림
삼거리 복귀-342봉-무명안부-봉샘 갈림삼거리 이정판(봉샘 40미터)-324 철조망 무명봉-311 잡풀무명봉-무명안부-묘지지대-243 고사목봉-무명묘지-경찰통제선-지독한 잡목지대-감나무 과수원-축사와
사과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수루재(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김녕김공 묘지-지독한 잡목과 묘지지대-평택황씨묘지-222.4봉-무명안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비어있는 거대축사-비포장
임도-능선진입-비포장 임도-약천산(210.8미터, 정상석, 운달지맥 마루금 조망)-비포장 임도-바위암릉지대-묘지지대-사과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문경온천(충주방면) 도로 표지판-34번 4차선 포장도로-
산업단지 버스정류장-진정사거리 도로 표지판-산업단지복지회관-산양산업1단지 포장도로-유풍산업과 럭스코-2차선 포장도로-공장공터-115 무명공터 끝지점-풍천임씨 가족묘원-논둑-경북선 철로-
시멘트 포장도로-인공수로 통과-비포장 임도-117.3 삼각점봉-왜곡재(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논둑-잡풀 비포장 임도-가선대부 묘지지대-지독한 잡풀지대-127 무명봉-아카시아 조림지-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그물망 비포장 임도-인공수로 진행-한양조공묘지-밭 경작지-조경지대-거대 축사단지-인공수로 진행-새발재(갈림삼거리 포장도로, 923번과 34번 및 28번 2차선 포장도로
교차지점)-능선진입-잡목과 잡풀지대-인공수로 진행-923번 2차선 포장도로-청림조경-주)태경과 동양 건물-시멘트 포장도로-염소농장-비포장 임도-경주김공묘지-축사-924번 2차선 포장도로-
농협삼거리 도로 표지판-능선진입 후 곧바로 924번 도로로 복귀-영순중앙교회-사근3길 도로 표지판-영순초등학교와 사근리-사근 버스정류장-글로벌선진학교-사근노인회관-사근2리 도로표지판과
사근 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논둑-고구마 밭-경주김공 묘지들-감 과수원-능선진입-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밤고개(2차선 포장도로)-밭 둑-민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묘지지대-능선진입-비포장 임도-영월엄공묘지-소나무 등로-180 무명봉-아카시아 군락지-도장산(236.2미터, 준.희님 응원판)-경주손공묘지-무명안부-218 무명봉-도장골 안부-236 무명봉-
이정표(문수사 2.7 Km)-갈림삼거리 이정표(천마산 0.2 Km, 문수사 2.8 Km)와 벤취 쉼터3-벤취 쉼터2-천마산(274.4미터, 정상석, 산불감시초소)-243 무명봉-무명안부-216 무명봉, 문경 A10 이정목-
222.3봉-198 무명봉-205.8봉-이정표(삼강교 3.7 Km, 천마산 1.6 Km)-문경 A11 이정목-큰고개(2차선 포장도로)-176 무명봉-무명안부-174 무명봉(등산로 이정판)-193 무명봉(등산로 이정판)-
무명안부-벤취 쉼터1-문경 A12 이정목-182 무명봉 벤취 쉼터1-199.5봉-광산노공묘지-달봉산(236미터, 정상석, 육각정자) 이정표(삼강교 2.0 Km, 천마산 3.3 Km)-비포장 임도-통나무계단-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이정표(삼강교 1.5 Km, 천마산 3.5 Km)-능선진입-190
무명봉-198
무명봉-내성천과 낙동강 합수점-운달지맥 산행 종료-용화사-삼강교-원달지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운달지맥 산행 약 20.88 Km와 서중리 버스정류장-금사재까지
02.15 Km)
삼강교에서 원달지
버스정류장까지 약 300미터는 제외
산행트랙
: 20171109 운달지맥 마지막제3구간
금사재-합수점.gpx
산행시간 : 전형적인 가을날씨에
임도와 포장도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08시간 20분 (06시 14분부터
14시 34분까지)
교통편 : 애마로 점촌시내버스터미널 옆
제12공영주차장까지 이동
점촌시내버스터미널에서
산북 지나 동로행 06시 버스로 서중리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1,200.-)
원달지 버스정류장에서
점촌시내버스터미널 행 14시 40분 버스로 점촌시내머스터미널까지 이동
(1,200.-)
점촌시내머스터미널 옆 목욕탕에서 목욕 후 손님 만나 일보고 이른 귀가
운달지맥이란 ???
운달지맥은 백두대간 대미산(1145봉)에서 남으로 분기 되는 능선으로 여우목고개(해발 약618미터)를 지나 911.9미터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전령(661.7봉)에서 지맥의 이름을 낳은 운달산(1097.2봉)으로 이어지고 운달산에서 계속 남진하는 운달지맥은 석봉산(983봉)을 지나면서 내려 앉았다
조항령을 지나 현재 활공장으로 변한 866.9미터봉을 살짝 들어올린 다음 남쪽 단산(956봉), 배나무산(813봉)과 월방산(360.1봉), 약천산(212.3봉)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진 다음 금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삼강나루인 삼강교에서 맥을 다하는 약 48.8 Km의 산 줄기를 말한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웃으면서 즐겁게 마무리한 운달지맥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늘 역시 저녁에 제천에서 일이 생겨 내려가야
하는데 어영부영하다가는 하루가 그냥 지나갈 것 같아 지난 여름 지독한 무더위 속 잡목과 잡풀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남겨 둔 운달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고 일을 보기로 하니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다.
일단 점촌버스터미널에서 산행 들머리인 서중리가는
버스편과 산행 완주 후 원달지에서 점촌버스터미널로 뒤돌아 오는 교통편을 살펴보니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산북 거쳐 동로가는 버스에 탑승하면 가는
길은 될 것 같은데 돌아 오는 교통편은 원달지에서 오후 2시 40분 이후에는 4시 30분이기에 아슬하기만 하다.
진행하다 늦어 오후 2시 40분 버스를 타지
못하면 택시를 부르기로 하고 일단 지난 밤 옆지기가 준비한 간식과 과일 그리고 식수를 배낭에 챙겨 나오는 시간이 새벽 3시 40여분을 넘기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계획했던 교통편을 이용해
무탈하게 산행 완주 후 제천으로 넘어가 일을 마치고 조금은 늦은 시간에 귀가를 하니 또 하루가 그렇게 길게 지나가며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만큼은
최고의 하루로 기억되고 있다.
홀로 내려가 진행하기 까다로운 지맥 산행
두군데를 일과 병행하며 마무리 짓고 나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남도의 산줄기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늘 기획하고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준비를 하다보면 자꾸만 돌아보게 되니 그 계획된 실천도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던 하루였다.
오후 2시 40분에 원달지를 돌아 나가는
버스편에 맞추려 하다 보니 마음은 급한데 가끔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지대와 가을을 지나며 단단하게 영글어 가는 아카시아와 산초 가시들로 인해
속도는 나질 않는다.
몇 번의 붉은 선을 손등에 만들고 나니
이제부터는 교통편에 맞출 생각없이 안전하게 즐긴 후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방금전까지 급했던 시간보다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약천산 정상에 도착을 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산양산업단지가 발 아래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산업단지 우측으로 끊어질듯 이어지며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운달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강렬한 태양 빛 아래 이 산객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이 좋아 이 야밤에 홀로 산중을 걷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이런 황홀한 풍경들을 살펴보면 그 답이 있는 듯 정리가 되기에 또 그 산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시간이다.
점촌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며 집에서 들고 나온 사과와 단감 몇 조각이 오늘 아침 허기를 달래 줄 유일한 먹거리가 되었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간이지만 준비한
소세지가 있으니 그것으로 허기를 대신해 보기로 하고 12공영주차장에 애마를 잘 주차 시킨 후 돌아 점촌버스터미널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는 썰렁한
대합실이 반겨준다.
새벽 5시 50여분이 지나고 잠시 후 아저씨
한분이 들어오며 불도 밝히고 TV도 켜 주니 이제서야 대합실 분위기가 나지만 타야 할 동로가는 6시 버스기 보이지 않아 대합실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 승차장에서 추위에 떨다보니 잠시 후 시동을 켜는 버스 한대가 보이고 달려가 확인하니 바로 그 버스가 산북을 지나 동로로 가는 6시
버스이다.
아침 6시 1분에 점촌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타고 내리는 승객 한명 없이 이 산객 혼자 달랑 태우고 오전에 걸어 진행해야 할 산양산업단지 옆 도로를 지나 15분여만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서중리에 이 산객을 내려주고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3개월 전 무더위에 식수도 떨어져 서중리 교회에서 식수까지 얻어 마시던 추억이 생각 나 잠시 웃음을 지으며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움추리고 재빨리 산행 준비 후 서중버스정류장 옆에 서 있는 서중리 이정석을 사진에 담으며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완성하기 위해 출발하는 시간이다.
잠시 59번 서중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남서쪽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서중마을로 들어가니 견공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짖어대기 시작하고 깊은 잠에 빠졌던 민가에서도 하나 둘 새벽을 밝히는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도로 좌측 작은 개울 건너 지난 3개월 전 시원한 식수를 얻어 마셨던 서중교회 건물을 살펴보고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서중리동회관과 서중리경로당이란 입간판이 걸려 있는 건물 앞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산행이 아니라면 평생 들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서중리 마을 도로를 통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걸어가며 서중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은 또 다른 의미로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서중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 금천이 흐르며 그 주위에 평지가 분포한다.
자연마을로는 곰우챙이, 서중이 있는데 곰우챙이는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납세한 양곡을 보관했던 곰(웅)과 같이 큰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웅창이라고도 한다.
서중은 근품산의 품자와 산자를 합하면 암자가 되므로 마을 이름을 근암이라 하였고 박씨 문중에서는 서원이 있는 마을이므로 서원이라 불렀다 하며 이후에 이 마을이 상주 목에 속하였을 때에는 서원중리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자와 중자를 따서 서중이라 이름 붙였다.
그
마을회관과 경로당 건물을 지나니 축사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머물던 작은 강아지 한마리가 목이 쉬도록 짖어 대 뛰다시피 재빨리 그 축사지대를
벗어난다.
계속 도로를 타고 재빨리 걸어 북서 방향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사각정자인 서중리쉼터도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서중리 민가들을 벗어 나 호젓한 농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방향의 금사재가 저 멀리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서중 버스정류장을 출발할 때만 해도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10분 차이로 여명이 밝아 오며 불빛 없이도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는데 시간을 보니 새벽 6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3개월 전 무더위에 고생하며 내려올 땐 파란
들판에 계곡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렸었는데 오늘은 벼베기 수확이 끝난 비어 있는 들판에 계곡 물도 말랐는지 물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아 계절의
변화를 실감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도로 우측으로 서중관정 건물과 사각정이 보이고 그곳에서 입었던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한다.
다시 도로를 타고 오르며 도로 주변들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도로 옆에서 큰 장끼 몇마리가 여명속에 놀라 날아 달아나는데 그 꿩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이 산객도 놀라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흐를 정도이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져김도 커지고 가끔 들려오는 멧돼지들의 울음소리도 정겹게 느껴질 쯤 드디어 3개월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금사재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올라간 방향 좌측 사면 풀섶 속에 이정표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어 나뭇가지에 임시 방편으로 달아 놓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금사재는 남쪽의 서중리에서 북쪽의 호계면 지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옛날에 이 근처에서 사금이 났다하여 사금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확인은 어려워 보인다.
사금재에서 본격적인 운달지맥 마지막 산행은 좌측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며 시작된다.
서중리에서 금사재 올라가는 방향 좌측으로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잘 조성된 묘역이 나타나는데 분봉은 없고 잔디만 관리가 된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묘지이다.
묘지를 지나서도 한동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져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너무나 잘 나 있다.
진행 방향의 산줄기들도 살펴보며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진행이 되는데 등로가 갑자기 희미해지고 길찾기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래도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살피며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커다란 아카시아나무와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성황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안부이다.
성황당 일명 서낭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며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고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과 나무, 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으며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에 성황사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하고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이
산객이 살던 시골에서도 어릴적 이런 서낭당에서 굿을 하면서 그 굿이 끝나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집까지 뛰어가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 이런 서낭당과 상여집을 지나게 되면 어릴적 추억에 잠시 잠겨보는 버릇이 생겼다.
서낭당 안부를 지나 오르니 잡목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몇번 잔가지에 얼굴을 매섭게 맞고 나니 여간 고통스럽지 않아 조심하며 걸어 본다.
잠시 옛 집터같은 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사면 등로를 지나 지도 상 작은재를 지나는데 전혀 고개같지 않은 곳들 뿐이다.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 공터였다가 소나무들을 식재하며 자라 이제는 이곳이 안부였는지 조차 느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해 주위를 살펴보지만 여전히 고개같은 느낌은 전혀 없는 작은재를 지난다.
지도에는 등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이 작은재 가까이까지 올라 왔다는 표시가 보이는데 잡목들로 인해 확인도 못하고 진행을 한다.
작은재를 지나 다시 거칠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올랐다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일출이 시작되는데 두꺼운 구름이 가로막아 떠 오르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인다.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저 멀리 동쪽 하늘로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늘 만나는 하루 중 아침 해지만 오늘처럼 홀로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오르는 아침은 왠지 모를 특별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기분 좋게 일출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아침에 올라온 서중리 넘어 떠 오른 일출을 감상하고 다시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는 너무나 뚜렷하게 잘 나 있어 지난 구간 잡목과 칡넝쿨로 고생했던 운달지맥 마루금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잠시 후 다시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진 틈을 이용해 조금 더 떠 오른 아침 햇살을 살펴보고 오르니 잡목들로 뒤덮혀 있고 등로만 열려있는 352.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문경309란 번호가ㅣ 안내판에 보이지만 실제 삼각점은 오래되어 식별이 불가능하고 더욱이 군사용 삼각점처럼 일반 산각점과는 다른 내용들이 보여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되었던 삼각점이었다.
삼각점봉을 지나 내려오자마자 나뭇가지 옆으로 석물 하나가 보이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정상 주변으로 묵은 묘지가 있는 듯 없는 듯 보여 마음이 편치 않은 시간이다.
다시 잡목들의 저항을 받으며 두 다리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면서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들과 거목이 혼재되어 있는 346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이곳 무명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며 진행이 되고 있다.
무명봉인 346봉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진행해야 할 348.2봉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운달지맥 마루금이 가깝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눈 앞에 나타난 지독한 잡목과 가시지대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등로 바로 좌측 골짜기 아래 민가 한채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그 민가 뒤 저 멀리에는 조만간 오르려고 준비중인 국사지맥 마루금의 국사봉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에는 마루금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왕의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올려다 보인다.
국사지맥 산행을 하면서 가능하면 다녀오고 싶은 왕의산이지만 실제 산행을 하면서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지 궁금한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 그리고 벌목 후 쌓아 둔 나무더미들이 아직 완전히 썩지 않아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어렵게 내려가 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한ㄷ그루가 죽어 쓰러져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노거수를 만난 후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들을 흘리다 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348.2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348.2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가파르게 내려가니 활엽수와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 본다.
그 무명 안부를 지나 잡목들 사이로 좁은 등로만 열려있는 곳을 지나 오르니 다시 나즈막하게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오래 전 아카시아 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등로가 나타나고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또 다른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묘비가 보이는 묘지 한기를 지나니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보기와는 달리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소나무 등로 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오르니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5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특이할 것 없는 무명봉이기에 곧바로 출발하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월방산 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우측으로는 월방산과 봉천사 그리고 봉정리 가는 방향과 거리가 표시된 이정판이 서 있다.
지나 온 방향으로 보이는 봉정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 금천이 흐르며 금천 연안에 넓은 경지가 분포한다. 자연마을로는 굴골, 진등, 탑골 등이 있는데 굴골은 1592년 경 경주 사람 최윤이란 선비가 임진왜란을 피하기 위하여 살게 된 곳이며 마을 모양이 굴과 같이 푹 패어 있어서 굴마 또는 굴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진등은 1920년 경 생긴 마을로 마을 뒤에 긴 언덕이 있어 진등 또는 장등이라 부르게 되었고 탑골은 인조 때 노이명이란 선비가 이주 정착하였으며 이때 마을 동쪽 월방산 밑에 3층석탑이 있어 탑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탑골 또는 탑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탑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도굴꾼에 의해 탑이 허물어진 채 그냥 방치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월방산이기에 등로 좌측을 타고 잠시 월방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금새 넓은 공터 옆에 정상석과 커다란 소나무 그리고 주위에는 몇개의 이정판들이 걸려 있는 월방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월방산은 경북 문경시 산양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60미터이고 산북면의 운달산(1097미터) 줄기가 남쪽으로 길게 벋으면서 산북면과 호계면 및 산양면 경계에 솟은 산이다.
산행은
산양면 봉정리에서 시작하여 산신제단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호계면 봉서리로 내려서면 되는데 산행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리며 산기슭에 봉정리 탑동의 삼층석탑 부재, 마애보살입상,
마애여래상, 봉서리삼층석탑 등의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작은 산신당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에 마음씨 고운 아낙네가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미끄러져 정신을 잃었고 이 때 꿈에
산신당의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벼랑 사이에 흐르는 물을 먹고 바르라고 말해 여인이 꿈에서 깨어 노인이 시키는대로 하였더니 과연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앗다.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심술궂은 사내가 산신당 벽에
걸린 산신의 눈을 솔가지로 찌르고 벼랑 사이에 흐르는 우물을 파헤치자 밤마다 귀신이 나타나 3일만에 사내가 죽고 우물물이 흙탕물로 변했으며
호랑이가 나타나 마을의 가축들을 물어갔다.
이에
주민들은 산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이 제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올라 보니 산신당 월방산 정상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올라야 해 만나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데 그 산신당은 산 꼭대기에는 언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곧 넘어갈 듯한 조그마한 기와집 한 채가 외로이 서 있으며 이 방안에는 큰 호랑이를 타고 있는 백발 노인의 화상이 걸려 있으니 이것을 마을 사람들은 산신당이라고 부른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그 월방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추억 남긴 후 다시 월방산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진행 방향 좌측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속도를 내 본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잘려진 나무 밑둥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4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나무 밑둥이 있는 342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 40미터에 봉샘이 있다는 이정판을 만나는데 산행 초반이고 물도 충분하기에 봉샘 다녀오는 것은 생략하고 이정판만 사진에 남기고 바로 출발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잠시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이 되다가 다시 완만하게 오르며 오래 전 식재된 듯한 커다란 아카시아 군락지를 지난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약초를 재배하고 있는 곳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곳이다.
살아있는 거목에 사정 없이 못질과 나사못을 박아 철조망과 그물망을 설치한 모습에 아픈 마음 달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이번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활엽수 할 것 없이 사람 키 보다 낮은 곳에 두께 5에서 10센티 정도 되도록 껍질을 벗겨 놔 말라 죽도록 하였다.
그냥 베어 버리던지 하였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나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해 마음까지 아파오는 등로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잡풀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타고 311 무명봉에 오른다.
그 무명봉을 지나 잡목과 잡초들을 헤치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자실고개와 이어질 듯 보이는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이름이 없는 무명안부이다.
바로 아래에 있는 자실마을은 경북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와 구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구산리에 있는 잣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 자산마을 이름이 변형을 일으켜 자실마을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멋진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에는 간벌 후 쌓아 둔 나무더미들이 썩어가며 진행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어 다시 속도를 늦춰 여유를 부려 본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틀어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그곳 등로 우측 앞으로 저 멀리 새벽에 들렸던 점촌시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벌초된 묘지들을 지나 그 묘지로 통하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로 들어서는데 등로가 희미해져 길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몇기의 묘지들과 널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잡목들로 인해 어렵게 등로를 찾아 걸어 진행을 하니 쓰러진 고사목이 보이는 24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묘지들과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눈 앞에 갑자기 경찰통제선이라는 출입금지 테이프가 보여 잠시 움찔하고 그 선을 넘어 진행하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 그리고 칡넝쿨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다.
잡목을 헤치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 건물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축사 건물로서 아마도 축사 주인장이 설치를 해 놓은 경찰통제선 테이프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곳이 바로 선답자들이 말한 우회지대라는 직감이 들기 시작하여 정상 마루금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그 축사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그 임도 방향으로 나가니 제법 큰 흰 강아지 두마리가 달려들어 심하게 짖어대고 있어 눈 싸움 한번 하고 나니 많이 수그러 들어 그 임도를 따라 축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드디어 축사 건물과 민가가 등로 우측 위로 보이는 곳에서 수확이 끝난 감나무 과수원 가운데로 진행을 하고 축사와 민가 좌측 위로 잠시 올라가 보니 원마루금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그 옆으로도 역시나 사과과수원이 있어 오늘 이 산객이 우회한 좌측으로 우회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잠시 후 주인장이 나와 왜그러느냐고 묻길래 등산을 한다고 하니 집 뒤에는 등로가 없으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기에 인사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방역산 출입금지라는 입간판과 개조심이라는 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원 마루금이 보이지만 개발된 축사와 과수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음을 자인하며 진행을 한다.
잠시 후 등로 우측의 봉천사와 점촌 방향에서 올라 오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우측의 원 마루금 방향으로는 바위암릉들이 보이는데 봉천사에서 각 바위마다 이름을 붙여 그 바위 앞에 이정판을 세워 놓은 것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두꺼비 대가족이라는 바위도 그중 하나로서 어찌보면 두꺼비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완전히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잠시 후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도로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오늘 새벽에 애마를 주차 시키고 시내버스를 타고 빠져 나온 점촌시내가 박무속에 펼쳐져 있다.
점촌시는
경북선이 지나는 경상북도 서부 내륙지역의 교통 중심지로서 크게 성장한 광산도시였으나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쇠퇴해왔고 1995년 문경군과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문경군으로 다시 1896년에 경상북도 문경군이 되었고 1911년에 호서면과 호남면이 호서남면으로
합해졌으며 1920년대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진 광산개발과 1949년 문경군의 군청소재지가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됨에 따라 점촌리 일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56년에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점촌읍이 시로 승격되어 문경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어왔던 문경군과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쪽에는 좌측 방향으로 대한불교조계종 봉천사까지 1 Km 거리라는 이정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마루금은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 새로운 도로를 타고 들어가며 이어지게 된다.
이곳 봉천사는 문경시와 협의하여 월방산과 그 주변을 최근에 새롭게 정비하여 웰빙 시대에 여행객들과 산행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개발하였다고 하나 아직은 많이 미흡해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마루금은 절개지로 변해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우측 전기줄이 설치된 곳으로 들어가니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아마도 농장으로서 귀중한 특약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면 마루금과 멀어지기에 좌측 전기줄을 넘어 어렵게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지나다닌 흔적이 사라지고 많은 무덤들과 가시잡목들 그리고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지난 추석 때 일부는 벌초를 해 놔
진행에 도움을 받으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보이고 곧이어 나즈막한 봉우리에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222.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222.4 무명봉을 지나 등로는 이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무연고 묘지들이 보이고 있다.
그 묘지들을 지나 푹신하게 깔려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무명 안부를 넘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거대한 축사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등로 좌측의 축사 방향에서는 많은 강아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우측은 고요하기만 하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 보지만 등로는 다시 우측 축사단지 방향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어 조심하며 내려가 보니 등로 우측으로 보였던 거대한 축사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비어 있는 축사 가운데를 통해 축사 단지를 통과하니 다시 방금 전 만났던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서 내려오는 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올라 본다.
넓게 새로 생긴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이 산객이 살았던 시골 풍경과 흡사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그렇게 오르니 임도 좌측의 우회 등로로 내려오는 마루금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지금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넓은 비포장 임도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한여름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가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는 풍경이 지난 3개월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조금 더 올라 임도 좌우측으로 거대한 아카시아나무들이 보일 쯤 커다란 바위 하나를 넘어 213미터의 나즈막한 약천산 정상에 도착을 해 정상석 앞에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약천산(210.8미터)은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에 있는
산으로 운달산(1097미터)에서
월방산(360미터)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지는 운달지맥의 마지막 부분에 있으며 약천산에 이어지는 가재골에 약샘이 있어 약천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곳곳에
큰 바위가 있으며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나 높이가 낮은 야산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는 많지 않고 봉정리 쪽으로 비구니 암자인
경선암이 있으며 가재골의 약샘을 찾는 인근의 주민들이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이
산객의 입장에서는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으나 남쪽 방향으로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운달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어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약천산이다.
제일 먼저 바로 발 아래 펼쳐진 거대한 산양농공산업단지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2011년 준공식을 시작으로 비약적인 업체 유치등을 통해 이제는 4만여평의 부지가 모자라 면적을 더 넓혀가고 있으며 유치대상 기업은 음식료품, 화학, 의룡용 물질 및 의약품, 1차금속, 전자컴퓨터, 전기장비, 자동차 및 트레일러, 기타제품제조업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는 기업과 미래에너지의 핵심인 녹색성장산업과 첨단사업 분야의 업종 위주로 선정하여 운영중이다.
산양 제2농공단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 IC에서 9.8 Km(10여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양호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정부의 중부내륙고속전철 확충계획, 경북도청 이전에 따른 교통망 확충 등 교통여건이 탁월하고 주변경관 또한 자연녹지의 청정지역으로 근로자들의 작업여건도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대한 새로운 도시 하나가 새로 생긴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산양농공산업단지이다.
그 산양농공산업단지 우측 도로를 따라 비산비야를 이루는 운달지맥은 저 멀리 나즈막한 야산을 지나 좌측으로 흐르며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삼강교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고 그 산줄기를 따라 발걸음을 해야 되는 오늘 하루이기에 그 풍경을 가슴속에 남겨보는 시간이다.
약천산에서의 조망을 즐기고 다시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려고 시도를 해 보지만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도저히 내려갈 수 없기에 정상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내려가니 바위암릉이 줄지어 나타나고 그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하며 어렵게 내려가니 드디어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사과 과수원 옆 등로로 내려 선다.
바로 눈 앞에는 34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드디어 그 34번 4차선 도로 위에 선다.
우측으로는 김천과 상주로 가는 방향이고 좌측으로는 안동과 예천으로 가는 고속국도이다.
좌측으로 걸어가니 산업단지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몸에 붙어 있는 낙엽과 가시들을 제거한 후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가 횡단보도를 통해 34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본다.
도로를 건너니 진정사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산업단지복지회관 건물이 보이는데 아침에 허기졌던 배가 이제는 배고품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사각정자에서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산업단지복지회관 건물을 우측에 두고 산업단지 내 2 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얼마 못가 좌측으로 럭스코와 유풍산업 가는 이정판이 보이고 그곳 좌측으로 90도 꺽어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산양2농공산업단지를 통과해 본다.
산양면은 경상북도 문경시 남동쪽에 있는 면으로 호계면, 영순면과 예천군 용궁면 등과 접한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낙동강 연안의 낮은 산지로서 주위에 왕의산, 봉산, 비조산 등의 낮은 산이 있어서 분수계를 형성하며 면의 중앙부를 남류하는 금천이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서쪽
경계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 남류하고
연평균기온은
12도이나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고 강우량도 약
1100mm로서
건조지역에 속한다.
낙동강 및 그 지류인 영강과 금천 연안에 경지가 넓고 쌀과 보리 등 주식작물 외에 최근에는 채소의 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진정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영지버섯과 느타리버섯 등 특수시설 작목이 재배되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새재청결미, 수박, 영지버섯 등이 생산된다.
도로는 점촌과 영덕 간 국도가 동쪽으로 안동시와 영주시, 서쪽으로 점촌동을 거쳐 김천시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이화령을 지나 충청북도지방으로 통한다.
문화재로는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천연기념물 425), 문경 봉정리 약사여래좌상 및 관세음보살 입상(경북유형문화재 308), 김승주 삼공신 회맹록 판본(경북유형문화재 309), 충절사와 상의재(경북문화재자료 302), 문경 녹문리 고병숙 가옥(경북문화재자료 365), 영모재, 김병표묘 등이 있다.
방금 전 만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곳 산양2농공산업단지 역시 산양면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조성된지 그리 올래되지 않은 산양농공산업단지인데 벌써 부지가 꽉 차 새로운 부지를 만든다고 하니 이곳 점촌도 이제 석탄도시에서 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계속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그 산업단지 끝자락 좌측으로 드넓은 공터 위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어 가는 곳을 통해 어렵게 비산비야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곳을 통해 나즈막하게 남아 있는 산줄기를 따라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음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어렵게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약천산에서 이곳 산업단지 끝자락까지 이어져 온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우측으로 밭과 논을 두고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곳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붙어 있고 곧이어 풍천임씨 가족묘지들이 등로 우측에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 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경북선 철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 갈 수가 없어 살펴보니 우측 논 둑을 통해 걸어 내려가면 절개지가 낮아지는 곳이 보여 그 우측 논둑을 타고 걸어 본다.
그 논둑이 있는 절개지가 낮아진 곳에서 좌우측을 살피고 기차가 오지 않은 시간에 재빨리 절개지를 내려가 철로를 통과한 후 건너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시멘트 포장 농로가 보인다.
경북선 철로를 건너 농로 한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정리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 간다.
진정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에 있는 리로서 영강과 금천 사이에 위치하여 경지가 비옥하며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기동, 미리물(진정), 시거리, 추산 등이 있는데 기동은 1700년 경 영양 남씨 문중에 임은 남용한이라는 선비가 영덕군 영해에서 안동 예안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면서 텃골 또는 턱골로 불렀던 곳이다.
미리물(진정)은 마을에 용(미리)이 살던 우물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시거리는 길이 예천, 산북, 점촌 등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거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추산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의 입향선조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산에 머루와 다래 등 과실나무가 많아서 멀뫼라 했던 곳으로 뒷날 한문으로 고쳐 추산이라 하였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농로 포장도로 옆 논둑에 피어 있는 억새가 아름다워 잠시 한눈을 팔아 보는 시간도 가져가며 걸어 오르니 눈 앞에 인공수로가 보이고
그 인공수로 밑을 통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인공수로를 지나 밭 경작지를 통해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인공수로 넘어 진정리 들판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점촌시내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밭과 논 경작지 최상부에 나 있는 잡초가 자랐다 말라 죽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며 117.3 삼각점봉을 찾아 보지만 망실이 된 듯 삼각점은 보이지 않아 잠시 찾다가 다시 출발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다 능선으로 들기 직전 뒤돌아 보니 약천산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어져 온 운달지맥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둔덕을 넘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지도에는 왜곡재라 표기된 곳으로 좌측으로는 축사와 민가가 보이고 운달지맥 마루금은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게 되어 있다.
왜곡재에 관란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다만 이 왜곡재가 잇는 곳이 진정리임만 확인을 해 보는 시간이다.
직진의 농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곧이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 직전 비포장 임도를 만나 잠시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가선대부 초계복공 묘지를 지나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죽어가는 잡초지대를 넘어 능선으로 올라 가 본다.
잠시 더 오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쌓여 썩어가는 12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가 사라져 잠시 등로 찾아 헤매게 된다.
그냥 진행이 불가능 해 좌측 사면 등로로 내려가 우회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고속도로처럼 드넓은 등로로 바뀌고 있다.
잡목지대를 뚫고 나오니 멋진 등로가 열리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잡목을 헤치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오래 전 식재된 듯한 아카시아 나무 지대들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민가들이 보이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고 멋진 리끼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걸어가니 등로는 능선 좌측으로 떨어져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지도를 보니 이곳 마을은 평지리로서 평지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전체가 낮은 산지를 이루며, 농경지가 분포한다.
자연마을로는 상평지, 중평지, 하평지, 새발재 등이 있는데 상평지는 마을 개척 당시 큰 못이 있어서 주위보다 산세가 낮다 하여 평지못골로 칭하던 곳이고 현재는 평지 또는 제일 위쪽에 위치한 곳이라고 하여 상평지라 부른다.
중평지는 마을이 중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하평지는 옛날에 기와집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기와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 아래에 옛 삼사지가 있어 못골이라고도 부르고 바로 위에 있다 하여 직상이라 하기도 한다.
새발재는 마을의 산이 낮고 평평하여 새가 밭에서 나는 형상같기도 하고 산이 새의 발같기도 하여 새발재 또는 봉강이라 불렀다 한다.
이제
비초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갈림삼거리의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우측의 마을에서 올라 온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한가운데에 경운기가 자리하고 있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죽어가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는데 임도 우측으로는 절개지 위에 그물망을 쳐 놨다.
등로 좌우측으로 보이는 밭 경작지와 민가들 그리고 마을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갑자기 콘크리트 인공수로가 나타나는데 그 수로 좌우측으로는 잡목과 잡풀들 그리고 진행하기 어려운 등로로 인해 물이 흐르지 않는 인공수로 안으로 들어가 그 수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인공수로로 들어가 걸어 전진하니 수로 좌측으로 한양조공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기에 도착을 해 잠시 그 인공수로를 빠져 나온다.
그 수량 조절기를 지나 다시 인공수로로 내려가 그 인공수로를 타고 걸어보는 색다른 경험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인공수로 좌우측으로 보이는 마을과 도로 그리고 축사 단지들을 내려다 보며 그 인공수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수로 위에 덮개가 덮혀 있는 곳에 도착을 해 그 인공수로를 빠져 나와 그 수로 옆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후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밭 경작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직진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앞 좌측으로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흐르지만 운달지맥 마루금은 그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 좌측으로 종경수들이 식재되어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조경수들이 식재되어 있는 능선을 타고 걸어 전진하니 다시 인공수로가 직선으로 길게 설치되어 있고 운달지맥 마루금은 그 인공수로 아래를 통해 수로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공수로가 다시 시작되는 시작점의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한우 비육장 처럼 보이는 축사이다.
이곳에서도 인공수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이 직선으로 이어진 인공수로 내부에 물이 말라 있기에 그 인공수로를 타고 진행을 하기로 한다.
인공수로를 타고 걸어 가니 수로 우측 아래로는 사과과수원도 보이고 좌측으로는 평지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그 앞으로는 923번 2차선 포장도로도 내려다 보이는데 그 도로는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 위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을 새발재라 적고 있는데 새발재를 찾아보니 경북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이 새발재로서 새발재는 마을의 산이 낮고 평평하여 새가 밭에서 나는 형상같기도 하고 산이 새의 발같기도 하여 새발재 또는 봉강이라 불렀다 한다.
직접
새발재를 걷고 있지는 않지만 인공수로에서 곧바로 내려다 보는 풍경도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인공수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수로의 뚜껑이 덮혀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해 어렵게 그 인공수로를 빠져 나와 잠시 편안한 능선을 따라 걸어 본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사과과수원이 보이는데 가지가 찟어질 정도로 가득 열려 있는데 주인이 이제서야 사과를 수확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조용히 그 사과 과수원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위로 인공수로를 두고 잡목과 잡풀이 우거졌던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어 참으로 어렵게 걸어 전진을 해 보는 시간이다.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그 인공수로를 건너 진행되고 어렵게 인공수로를 넘어 걸어가니 또 다시 헤어졌던 인공수로를 만나 이번에도 그 인공수로 내부를 통해 걸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상 마루금은 이제 인공수로를 빠져 나와 좌측으로 내려가고 인공수로는 직진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그 인공수로를 빠져 나와 좌측으로 내려가니 923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만나 이제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한동안 걸어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방금 전 능선에서 헤어졌던 인공수로가 도로 우측 논 경작지 위로 지나가고 그 풍경을 살펴보며 도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그 9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인공수로가 따라오고 그 아래에는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콘테이너 박스도 보이고 그곳을 살펴보니 청림조경이라는 회사 사무실처럼 보이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어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올라 고갯마루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3층짜리 공잘 건물이 보이고 그 좌측 앞으로는 비날속에 푸른 식물들이 보이는데 바로 양파들이었다.
등로는 그 공장 건물 앞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는데 입구에는 (주)태경이라는 회사 입간판이 서 있다.
잠시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태경이라는 공장 건물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동양이라는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보인다.
그 두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923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이곳으로 들어 오는 등로가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걸어가니 진행 방향의 마루금 넘어 마지막 좌측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도로 우측 아래 밭 경작지에는 노부부가 밭에 비닐을 덮고 있어 물어 보니 이곳 역시 양파를 재배할 예정으로 이곳도 양파 주산지이라고 말해 준다.
노 부부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양파 모종을 심기 위한 비닐로 포장된 밭 경작지들을 살펴보며 걸어 전진하니 갈림ㄴ 삼거리를 지나 우측에 커다란 축사를 바라보며 걸어 진행을 한다.
오늘은 산행을 하면서 능선을 걸었던 시간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도로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었던 기억 뿐이다.
다시 산짐승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그물망이 쳐진 밭 경작지를 지나니 금새 도로 우측으로 커다란 축사도 지나는데 한우 사육을 위한 축사이다.
그 축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아래로 흐르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 염소 방목장이 있는 도로를 따르면 둔덕을 넘어 다시 완만하게 내려간다.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경주김공 묘지와 다른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 밭 경작지와 민가들이 있는 사이를 통해 924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잠시 사진을 담다 보니 이곳이 바로 농협삼거리라는 도로 표지판이 올려다 보인다.
그 924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을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원 마루금을 찾아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기다렸다는 듯 온 몸을 찌르고 때리며 많은 생채기를 만들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지금까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해던 인공수로가 다시 나타나고 잠시 그 인공수로 내부로 들어가 걸어 보지만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수로를 탈출 해 다시 좌측 절개지를 내려 가 방금 전 헤어졌던 924번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벼 수확이 끝난 논으로 떨어지고 그 논을 통해 924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이제는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간다.
도로로 내려 와 방금 전 내려 온 능선을 살펴보니 이 계절이나 원마루금을 찾겠다고 한번 올라 보지 여름이었으면 오르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진행되었을 것 같은 능선이다.
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아래로 영순중앙교회 건물이 보이는데 드디어 산양면에서 영순면으로 바뀌고 있다.
그 영순중앙교회를 지나니 사근3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니 사근리 마을의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우측으로 사근천주교회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고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영순초등학교와 사근리라는 입간판과 이정석도 보인다.
영순면은 경상북도 문경시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산양면, 동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예천군, 서쪽 및 남쪽으로 영강을 끼고 상주시와 접한다.
면 역내에는 소백산맥 남사면의 말단산지와 낙동강 연안의 평지가 뒤섞여 있고 동쪽의 낙동강 지류인 금천과 서쪽의 영강이 남류하다가 말응리에서 합류하여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연평균 기온은 12도이나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며 연평균 강수량은 약 1100mm로 건조한 편이며 본래 상주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경군에 이속되어 영순면이 되었다.
논농사 중심으로 주곡작물의 재배가 성하며 금천과 영강 및 낙동강 연안에서는 무와 배추 등의 채소경작이 이루어지고 특산물로 사과(120ha), 수박(25ha), 오이(20ha), 양파(18ha)가 생산된다.
서쪽에 인접한 중앙동을 통하여 국도와 철도로 각지에 연결되나 동부의 교통은 불편하고 면사무소가 있는 의곡리는 중심 취락으로 관공서와 상가가 밀집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홍귀달선생 신도비(경북유형문화재
122), 식산
이만부 전적(경북유형문화재
289), 유곡역
고문서(경북유형문화재
304), 백석정
등이 있다.
계속 이어지는 그 924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사근 버스정류장도 통과하고 좌측으로 신전리와 왕태리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도로 표지판도 만난다.
잠시 후 벼 방아를 짓고 있는 양곡장인 대길영농법인 앞을 지나 글로벌선진학교 교정 옆을 통과하는데 알아보니 글로벌선진학교(Global Vision Christian School)는 미국의 AP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국내의 인가된 국제화 대안학교로서 재학생의 20% 정도가 국내대를 진학하고 나머지 80%의 학생들은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대학으로 진학한다.
2003년에 음성캠퍼스를 개교하였으며 2011년에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옛 영순중학교 부지에 분교인 문경캠퍼스를 개교하였으며 2015년에는 미국의 펜실베니아 캠퍼스를 개교하였다.
그
글로벌선진학교를 지나니 사근노인회관을 통과하고 곧이어 우측으로 사근2리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곳 삼거리에서는 직진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사근2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사근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리로서 낙동강 서쪽 연안의 평지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남산마, 무림, 방고개, 사근절, 새터, 서낭댕이, 엄촌, 재궁마, 진촌, 추촌 등이 있는데 남산마는 무림의 남쪽 산밑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무림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주변이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방고개는 아주 신씨 휘각이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방을 붙였던 곳이라고 하여 방고개라 하였다는 설과 밤나무가 많았던 곳이라고 하여 밤고개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사근절은 마을 뒷산에 사근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새터는 옛날에 이곳에 한 길이 생기고 난 뒤 이 길을 중심으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샛터라 불려지고 있으며 서낭댕이는 옛날 성황당을 짓고 무림동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엄촌은 영월인 엄사현이라는 사람이 정착하부터 부르게 된 이름이고 재궁마는 개성 고씨 가문에서 재사를 두 동 건립한 후 재사 관리인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며 진촌은 추실이라는 사람이 추촌에 정착한 이후 여양 진씨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추촌은 추실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 사근2리 방향으로 나 있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여전히 인공수로가 따라 오고 있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커다란 건물을 지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민가 한채를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마지막 능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도 그 막바지에 들어 온 기분으로 마지막은 능선을 타고 몇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이제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무리에 도착할 것이다.
민가 한채를 지나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논둑으로 이어지고 논을 지나 오르니 고구마를 수확한 밭 경작지로 오른다.
자금이야 수확이 모두 끝났기에 마음 편히 오르지만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기에는 등로 찾기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 경주김공 묘지들을 지나 논과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묘지지대를 지나 앞으로 보이는 나즈막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도를 보니 이곳으로 오르지 않고 2차선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 진행을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완주 후 후회할 것 같아 이곳으로 올랐지만 역시나 특별할 것이 없어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래도 능선으로 들기 직전 우측으로 감나무 과수원에 남아 있는 감들이 몇개 익어가고 있어 따 먹고 진행을 하니 허기졌던 배가 불러오며 조금은 체력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묵은 밭을 지나 밤고개와 사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진행을 하고 내려다 보이는 사근리 마을 방향으로 조심하며 걸어 내려간다.
이곳 밤고개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노근리의 방고개로서 방고개는 아주 신씨 휘각이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방을 붙였던 곳이라고 하여 방고개라 하였다는 설과 밤나무가 많았던 곳이라고 하여 밤고개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밤고개 의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마을 도로를 타고 마지막 능선을 향해 힘차게 올라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 마루금도 약간 변경이 있어 원마루금을 타지 못하고 마을을 관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다 좁은 소로를 타고 페가 옆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아래로는 코리아 CNO라는 커다란 공장 건물이 보인다.
잠시 후 새로 만들어진 듯한 모습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오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보인다.
그곳 묘지들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배낭 내려 잠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식수를 마신 후 다시 묘지 위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나 온 사근2리 마을과 밤고개를 내려다 보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 전진하니 여전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고 마지막 묘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아래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또 다른 무명 묘지2기가 보인다.
그 묘지들 뒤로 올라 영월엄공 묘지를 통과하니 오랫만에 멋진 리키다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있어 힐링하는 기분으로 걸어 본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전 11시 30여분을 지나고 있어 원달지에서 오후 2시 40분 버스를 탑승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속도를 높히지 않고 지금까지 진행했던 평이한 속도를 유지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18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는 이제 우측으로 크게 휘어 진행이 되고 있다.
여전히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오르니 이곳 역시 오래 전 아카시아 나무들을 식재했었는지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등로에는 잎이 떨어진 아카시아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잠시 후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가 보이지만 직진으로 올라 걸어 오르니 드디어 준.희님의 응원판이 붙어 있는 해발고도 236.2미터의 도장산에 도착을 한다.
도장산이란 이름은 공식 명칭은 아닌 듯 하며 이곳 아래 골짜기 이름이 도장골이라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도장산이라는 236.2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하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고 또한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올라갔던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듯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236.2봉 정상 방향에서 내려오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경주손공 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낮은 돌무덤이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가 본다.
큰 고도 차이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물병이 나뒹굴고 있는 218 무명봉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으로 도장골을 살펴보지만 잡목들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다.
다시 잡목을 헤치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하나가 쓰러져 있는 무명 안부를 지나 잠시 아카시아 거목들이 자라고 있는 군락지도 통과를 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23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영강과 내성천 중 어느 합수점으로 진행을 할 것인지 갈림삼거리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무명봉들이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우측으로 문수사까지 2.7 Km라는 이정표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우측 내리막 등로 방향으로 문수사 가는 곳을 살펴보고 다시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어 무리하지 않고 여유있게 걸어 본다.
그렇게 오르니 벤취 쉼터3개와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몇장 남기며 쉬어 간다.
신산경표 상에서는 이곳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천마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지만 또 어떤 산꾼들은 직진의 방향으로 진행을 해 영강과 낙동강이 합수되는 지점을 운달지맥의 마지막 산줄기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통일된 이론이 필요할 듯 하다.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진행하고 있기에 오늘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천마산 방향으로 진행하여 금천과 내성천이 만나 최종적으로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을 최종 산줄기로 생각하고 걸어 보려고 한다.
다만 차후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시간적인 여유가 되면 영강과 낙동강이 합류되는 산줄기도 한번쯤 걸어 보며 사실 확인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갈림삼거리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 몇장 남기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 역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짧게 열리더니 금새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로 변하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이씨묘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등로를 가로막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진행하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그 앞으로 천마산 정상석이 서 있는 천마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천마산(278미터)은 영순면 달지리와 이목리 및 말응리 위치한 해발 278미터의 산으로 문경시 동로면에서 내려 오는 금천이 산북면 산양면을 지나고 영순면에 와서 예천군에서 내려오는 내성천과 합쳐지고 다시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해 지면서 영순면 달지리 삼강이 된다.
이곳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영순면이 있으며 문경시의
젖줄기인 영강이 낙동강과 다시 만나는곳
영순면
말응리 영풍교반까지 문경시의 제일 남쪽을 막고
있는 산이
천마산으로 이 산이 영순면 달지리에서 영순면
이목리와
말응리까지 이어져 있어 낮지만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는 산이다.
옛날 낙동강이 주요물품의 이동 통로였을 당시에는 이 천마산 기슭 나룻가에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며 아직도 금포 백포라는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고 옛날 산에 평령암이 있다고 하나 지금은 없고 해장골에 해장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추억
몇장 남기고 있으니 산불감시촣소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아 이 산객이 먼저 소리를 하니 산불감시초소에서 아저씨 한분이 고개를 내밀며
산행하러 왔냐며 반겨줘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본다.
추억을 남기고 등로 좌측인 북동쪽으로 가 내성천과 금천 그리고 오늘 진행 방향의 최종 마지막 산줄기를 북동쪽을 살펴보지만 아직은 또렷하게 그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다만 금림리 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여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금림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리로서 낙동강 서쪽 연안의 평지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뒷못안, 미급, 버구리, 자그네, 정자동, 정자무림, 탑골 등이 있는데 뒷못안은 큰 못이 있고 못 옆에 세 갈래 길이 나 있는 곳으로 지나는 행인이 쉬어 가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급은 마을의 형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버구리는 마을 지형이 말죽통과 같이 생겼다 하여 버금치로 불려지다가 이것이 변음되어 버구리 또는 법동으로 명명되었으며 자그네는 장안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마을을 장안내라고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자그네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천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이 말안장과 흡사하다고 하여 자그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정자동은 옛날 이곳에 큰 정자가 있어 마을을 정자 혹은 정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정자무림은 사근과 금림을 구별하기 위하여 행정구역 변경 때 붙여진 이름이며 탑골은 과거에 장안사라는 사찰과 탑이 이 골짜기에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자리를 옮겨 다른 방향을 살펴 본다.
남동쪽으로 눈을 돌려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그 뒤로 의성군 풍양면 하풍리쪽 산줄기가 낙동강 건너로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이번주 일요일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으로 올라야 할 비봉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몇 년 전 팔공기맥 산행을 하면서 찾았고 지난 달 문수지맥 산행을 하면서도 찾아 봤던 보현지맥의 비봉산을 다시 이곳 운달지맥 천마산에서 만나는 시간은 또 다른 추억으로 오랫동안 기억 될 듯 하다.
남쪽 방향으로는 낙동강 넘어 조만간 다시 걸어야 할 숭덕지맥 산줄기가 가깝게 다가오며 언제 만날 수 잇는지 확인하고 있다.
한동안 그 천마산 정상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산불감시초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아저씨와 이야기도 나눈 후 다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며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내려가기 직전 북서쪽 잡목 위로 드러난 문경시를 다시 한번 더 눈으로 확인한 후 내려가니 생각보다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어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낙동강이 바로 발 아래로 다가와 있고 그 뒤 저 멀리 이번주 일요일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으로 올라야 할 비봉산이 조금 더 선명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멧돼지들이 목욕 후 문지른 흔적이 선명하고 곧이어 243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노거수 한그루가 반겨 준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능선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깊지 않은 무명 안부를 다시 통과한 후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다 첫 이정목을 만난다.
이정목을 지나 멋진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잡목 구간을 따라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다시 깊지 않은 소나무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잡목들이 잠시 사라진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222.3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출발하는 시간이다.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던 222.3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이제 참나무로 변한 등로를 따라 무명 안부도 넘는다.
잠시 후 껍질이 벗겨지고 쓰러지려 하고 있는 고사목이 있는 19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싸리나무와 일렬로 줄을 서 있는 듯한 소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해 있는 등로도 만나 기분좋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고사목 하나가 쓰러져 있고 정상에는 잡목들이 보이는 205.8봉에 도착을 해 높이를 확인하고 잠시 쉬었다가 출발한다.
그 205.8봉을 지나 내려가니 생각보다 많은 잡목들이 다시 등로를 가로막고 조심하며 그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잠시 후 잡목대신 잡초들이 등로를 채우고 있다.
다시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묘지 한기를 지나고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우측 방향으로 삼강교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이정표의 유혹에 빠져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다 다시 올라 와 정상적인 방향의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우측 삼강교 방향으로 잠시 걸어 내려가다 다시 뒤돌아 올라 와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깊은 절개지가 나타나는데 밑을 살펴보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큰고개이다.
직접 내려갈 수 없어 우측으로 우회하며 잡목을 잡고 내려가니 진주강공 묘지를 만나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큰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절개지로 인해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간 곳으로 내려갔다.
해발고도 140미터인 큰고개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해 알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큰고개에서 고갯마루 방향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그곳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며 운달지맥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큰고개 정상부의 도로 표지판을 줌으로 당겨 확인해 보니 거리 이름도 큰고개길이다.
잠시 후 진주강공 묘지를 지나고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큰 노거수 한그루가 서 있는 17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지금까지 걸어 왔던 등로와는 다르게 멋진 소나무 등로에 잡목도 줄어 들어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잠시 후 소나무들이 보이는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제법 거리도 걸어 왔고 시간도 지나 지루한 산행이지만 마지막 합수점에서 내성천과 낙동강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피곤함도 잠시 잊고 즐겁게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소나무에 넓은 나무판에 등산로라는 글자가 보이는 17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가 잡풀과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 안부를 지나고 다시 소나무와 산초가시나무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잠시 소나무가 열병하듯 도열해 이 산객을 반겨주고 있어 잠시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오르니 또 다른 나무 판에 등산로라는 글자가 보이는 19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도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오르고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자 마자 등로 옆으로 벤취 쉼터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벤취 쉼터 하나를 지나 꾸준하게 오르니 문경 A-12이라는 이정목도 만나고 등로는 이제 큰 고도 차이 없이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40분 버스에 탑승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잡풀속에 숨어 있듯 보이는 18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처음에는 이곳 182 무명봉이 199.5봉이라 생각을 했는데 199.5봉은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봉우리이다.
그 182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잡목 하나 없는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며 멋스러움을 발산하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높은 하늘을 향해 쭉쭉 빵빵 벋어 올라가고 있는 소나무들이 반겨주고 곧이어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에 199.5봉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길게 이어진 능선상 199.5봉을 지나 조금 더 같은 고도의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로 내려가다 오른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다시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힐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큰 어려움 없이 편안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서 장끼 두마리가 날아 올라 놀라고 잠시 뒤 고라니 한마리도 달아 난다.
놀란 가슴 진정 시키며 오르니 묘지 몇기들이 산재되어 있고 광산노공 묘비를 지나 오르니 잡목이 사라져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 온 천마산부터의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달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정상석과 육각정자 그리고 이정표가 보인다.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 있는 산인 것 말고는 알려진 내용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달봉산(236미터)은 영순면 달지리와 이목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영순면에서는 해마다 이곳에서 신년 해맞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운달지맥의 끝 자락에 위치한 이 산 가까이에는 경천호에서 내려오는 금천, 예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내성천, 안동에서 큰 줄기를 이루며 내려온 낙동강의 세 줄기가 만나는 삼강이 거대한 강폭을 이루며 휘돌아 굽이도는 곳에 큰 백사장을 만들어 놓았다.
물줄기에 휩쓸려 내려온 금빛과 은빛 모래가 십 여리 백사장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금포와 백포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2004년에 개통된 길이 600 여 미터의 삼강교 인근의 도로변을 산행 들머리로 산행이 시작된다.
달봉산 정상 정자에 배낭을 내려 놓고 잠시 나와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제일 먼저 지금까지 걸어 진행을 한 서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천마산에서 이어져 온 우날지맥 마지막 능선이 이곳 달봉산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각 능선마다 막바지 가을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 나 있다.
조만간 만추의 능선도 그 아름다운 단풍잎을 모두 떨구고 찬바람 불어 오는 모진 겨울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마루금 우측으로 비산비야를 이루는 등로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금촌시내가 박무속에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낙동강 넘어 저 멀리 조만간 올라야 할 숭덕지맥 마루금 상 봉우리들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이곳 삼강부근으로는 총 6개의 지맥 마루금이 합수되는 곳으로 전국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물줄기와 산줄기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6개긔 산줄기 중 팔공과 보현 및 문수 그리고 오늘 운달까지 마무리가 되면 4개의 산줄기가 합수점에서 끝이 나며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그 끝자락을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다만 보현지맥은 이번 주 일요일 그 끝자락인 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서게 되나 총 4개의 산줄기의 두물머리에 서 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천마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동쪽으로는 낙동강 넘어 저 멀리 보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비봉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각 지맥 이어 걷기의 마지막 구간에서 의식처럼 목표물로 정해 찾아 보는 비봉산이다 보니 이제는 그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알 수 있을 것 처럼 친숙하게 다가오는 비봉산이다.
이번주 저 비봉산에 올라 이곳 달봉산과 천마산을 살펴보며 그 봉우리를 찾을 수 있을지 제법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육각 정자에서 배낭을 풀어 음료수와 준비한 간식 그리고 과일로 허기를 달래보며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1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남아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고 높은 산도 없으니 놀며 쉬며 진행을 해도 한시간이면 충분하겠다는 계산이다.
한동안 육각 정자에서 쉬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잠시 후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니 내리막 등로에는 통나무계단들이 설치되어 있다.
잠시 그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이제 낙동강이 아닌 내성천과 금천이 보이기 시작하고 달지리 마을들도 내려다 보인다.
금천과 내성천을 살펴보며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와 만나는데 내랴간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 도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지도에 표기가 되지도 않은 시멘트 포장도로에는 천마산에서 3.5 Km 진행해 왔고 삼강교까지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거리표시가 없는 뱃가 이정표의 각기 다른 두개가 보인다.
잠시 사진을 담고 있으니 좌측에서 트럭 한대가 올라와 고갯마루를 넘어가고 이 산객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어렵게 능선으로 올라 본다.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잡목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소나무만 자라고 있는 호젓한 등로가 보인다.
그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억새가 보이는 19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른다.
잠시 후 싸리나무 잎들이 모두 죽어있는 198 무명봉에 도착을 해 마지막 봉으리에 오른 추억을 남겨 본다.
이제 운달지맥에 있는 모든 봉우리를 넘고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되는데 그 내리막 하산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희미하던 등로조차 사라지고 그저 방향만 보고 내려가야 하ㅣ는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내리막 경사도는 급해 미끄러지기 쉽기에 조심하며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내성천이 낙동강과 만나기 위해 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잡목을 잡고 사라진 등로를 찾아 가파르게 내려가니 잠시 후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그 등로도 똑바로 내려가질 못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등로를 찾아 내려간 듯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마른 계곡에 도착을 하고 그 계곡을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며 잡목들을 헤치니 드디어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삼강교가 빤히 보이는 강가에 무탈하게 도착을 한다.
합수점이 있는 달지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며 그 주위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달늪, 삼인, 한밤 등이 있으며 달늪에는 산북 방면과 안동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만나서 넓다란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달봉산 아래의 늪이라 하여 달늪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삼인은 마을 뒷산 숲속에 새들이 많이 모여 와서 잠잔다고 하여 새미라 호칭하던 곳으로 그 후 선조 때 이곳의 강씨 3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경상감사가 용궁현에 순시 차 들렸을 때 이 3형제가 배알하는 자리에서 이들이 새미에 사는 누구라고 하자 감사가 어진 선비 셋이 난 곳이니 마을 이름을 삼인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 해서 그 후로 새미는 삼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밤은 마을 개척 당시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많은 사진을 담으며 내려가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용화사가 나타나고 불자 한분을 만나는데 등산을 하느냐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 준다.
마시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와 내성천 강가에서 셀카로 사진 한장 남겨 보지만 역광이라 잘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걸어 삼강교 출입구 방향으로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민가 두채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예전에 주막이 있었던 백포나루이다.
백포나루를 지나 삼강교 밑을 통과한 루 좌측으로 오르니 드디어 삼강교 초입에 도착을 해 길고도 힘들었던 운달지맥 산행을 세구간으로 마무리 하는 시간이다.
마음이야 저 삼강교를 건너 삼강주막에서 탁배기 한잔 마시고 싶지만 기다리는 버스가 보이고 손님과 약속이 잡혀있어 아쉬운 마음 돌려 삼강교 반대쪽인 원달지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물야면과 봉화읍을 흐르는 하천으로 백두대간의 선달산과 문수지맥의 문수산에서 발원하여 물야면과 봉화읍을 지나서는 영주시와 예천군을 거쳐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고장에서는 가계천과 창평천이 만나는 봉화읍 삼계리 부터가 내성천의 본류라고 부르는데 삼계리도 세 곳의 물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봉화군 내성천 상류에 물야계 또는 소천이 묘사되어 있을 뿐 내성천 지명은 고지도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이 지명이 지도에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지형도이다.
지명은
군의 내성면에서 유래하였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면 시원할 것 같으면서도 막상 합수점에 도착을 해 바라보면 왜 그리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뿐인지 모르겠다.
잠시 망설이고 있으니 버스 운전사가 그락션을 울리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잠시 아쉬운 마음에 낙동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원달지 버스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한다.
낙동강는 강원도의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거쳐 부산광역시의 강서구 일대에서 남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며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하천으로 유역 면적은 남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며 한반도에서 압록강·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유로가 길다.
고대
가야와 신라 건국의 바탕이 되었으며 조선시대는 경상좌·우도의 경계를 이루기도 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황지천 상류의 금대봉이고 태백시
황지를 거쳐
봉화군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국가하천이 되어 안동호와
임하호를 이룬
후 예천군 용궁면에서 내성천, 상주시 함창읍에서 영강, 낙동면에서 병성천과 위천, 구미시 선산읍에서 감천 등의 하천을
합류한다.
달성군 다사읍에서 금호강, 고령군 우곡면의 경상남·북도 경계에서 회천을 합한 후 경상남도로 유입하고 경상남도에서는 합천군에서 황강, 창녕군 남지읍에서 남강,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밀양강, 양산시 물금읍에서 양산천을 합한 후 김해시 대동면에서 크게 두 물줄기로 나누어져 서낙동강과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유입한다.
하류에
대규모의 삼각주를
이루고 있고 이 일대가 지금의 강서구와 김해평야지역이 되며 이 강은 사하구 을숙도(낙동강
삼각주의 하나)에 이르면 다시 강물이 크게 동·서로 나누어지고 이어서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이란 지명은
가락(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공검면 일대가 옛 고령가야의
땅이다.
한편 택리지에는 상주가 중국의 낙양과 같다고 하여 그 동쪽을 흘러 지명이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있고 지역에 따라 부분칭으로 부르고 있다.
개산강은 경상북도 고령지방에서 부르던 명칭이고 삼분수는 경상남도의 낙동강 하류지방에서 부르던 명칭의 하나이며 삼분수는 삼차수 또는 삼차하라고도 하였다.
황산강은 경상남도 양산지방에서 부르던 명칭의 하나이고 성호사설에는 6가야가 동쪽으로 황산강을 경계로 삼았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양산)에는 황산강 상류를 가야진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황산강은 황산하 또는 황산진이라고도 하였는데 황산강은 한뫼가람의 뜻으로서 넓은 들을 지나는 큰 강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렇게 낙동강에 내성천이 합수되는 두물머리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 계획된 버스에 오르는 시간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원달지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 있는 마을로서 삼강 나룻터에서 올라온 산골짝 안에 있는 나루터 마을이다.
산양방면과 예천방면에서 흘러오는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수하여 넓은 늪지대를 형성하였는데 달봉산 아래의 늪이라 하여 달늪이라고 하며 옛날 낙동강 소금 배가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와서 문경과 예천 지방에 소금을 공급하였으며 또 이곳 갯벌에서 생산되는 무와 배추 등이 유명하여 널리 각 지방으로 반출되는 등 농산물집산지로 촌락을 이룬 곳이다.
지난 3개월 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날 어렵게 시작하여 구간 끊기도 쉽지 않았던 운달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나니 시원한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렵고 힘들게 진행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하면서 기다려 준 버스 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그 큰 버스를 혼자 전세내듯 타고 출발한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고 돌아 몇명의 손님들을 더 태운 버스는 원달지에서 출발한지 약 35분 만에 드디어 새벽에 헤어진 점촌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버스 터미널 밖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사진에 담고 12공영주차장으로 돌아 가 옷을 챙겨 바로 옆에 보이는 목욕탕으로 가 샤워하고 나오니 이제서야 운달지맥 산행이 온전히 마무리가 되는 기분이다.
손님과 연락해 제천으로 가 일을 마치고 늦게 출발하여 집에 도착하니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그렇게 운달지맥과의 인연도 마무리를 해 보는 시간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가까운 곳의 지맥 산행 한곳을 다녀오고 일요일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을 완주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몸이 어려우면 토요일 하루는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잘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감사합니다 대길님
아름다운 마루금을 걸으며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남아 있는 오늘 하루도 좋은 시간 보내시고요
날머리 내성천합수점에 이르시면서 운달지맥을 마무리하셨군요.
늦가을 정취가 물씬 등로에 묻어납니다.
홀로 멋스러운 산하를 누비시는 모습이시구요.~
덕분에 정감어린 산행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어렵게 시작하여 좋은 계절에 즐겁게 잘 마무리를 하였답니다
이제 가을도 지나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마루금이더군요
늘 수고하심에 감사 드리며 환절기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