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도 - 도주줄다리기
문헌상 조선시대 1779년(정조 3년)에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고, 18세기 도주줄, 19세기 영남줄, 20세기 초반 읍내줄, 1983년 화양줄로 명칭이 바뀌다 1997년부터 청도천 둔치에서 달집태우기와 동시에 열리면서 도주줄당기기로 이어지고 있다. 도주(道州)는 고려시대 청도 이름이고, 줄당기기는 줄다리기의 사투리다.
도주줄당기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쯤 청도 화양읍 동상리와 서상리 경계인 ‘강지땅’에서 이어져 왔다. 강지땅은 청도읍성 북문 바깥 형장이 있던 곳이다. 형장에서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농경의례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
도주줄당기기는 군민 2천여 명이 동`서군 양편으로 나뉘어 승부를 겨룬다. 큰 원줄과 가닥줄 80개(동군 40가닥, 서군 40가닥)가 들어가는데 규모가 줄길이 110m, 원줄 지름 60㎝에 이를 정도로 영남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참고]
엄청난 규모의 줄다리기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줄과 달리 뿌리가 뻗어져나오는 듯한 모양의 줄을보고 감명받았습니다.
또한 올해 3월초 경상북도 줄다리기로는 처음으로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줄다리기에 대한 관심이 좀더 커질것으로 보이며
특이한 모양의 줄을 캐릭터로 만들어 표현해보면 좋을것 같아서 선정했습니다.
2. 성주 - 가야산 여신의 소원
옛 가야산에는 가야산의 모습과 같이 높고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라는 여신이 살고 있었다. 가야연맹 내에 있는 많은 산신들이 주인처럼 높이 받들 뿐 아니라 이 지역 내에 사는 백성들이 또한 가장 우러러 믿는 신이었다. 그 모습과 같이 곱고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여신은 백성들의 갸륵한 소망을 들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가야산 큰 바위아래에 제단을 차려놓고 옥같이 맑은 물에 멱을 감아 몸을 깨끗이 한 후 하늘신인 '이비하'의 짝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렇게 빌기를 얼마나 하였는지 하늘신께서 정성을 가상히 여겨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는 계시가 내리었다.
그리하여 하늘신 '이비하'는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상공에 나타났고 여신은 이를 맞이하기 위하여 목욕재계하고 잠자리 날개 같은 옷깃을 아지랑이처럼 나부끼며 맞이하였다. 뭉게구름 속에 방을 꾸미고 실구름으로 얽어서 가야산 높은 봉우리 상공에서 만난 하늘신 '이비하'와 가야산 처녀 산신은 이렇게 하여 부부가 되었다. 꿈같은 세월이 흐른 후 옥동자를 둘 낳았다. 형은 얼굴이 '이비하'를 닮아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하였다. 아우는 어머니인 여신을 많이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의 이름은 '주일'이라 하였다 아우는 '청예'라고 불렀다. 형 '내질주일'은 자라나서 대가야국의 첫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 '뇌질청예'는 자라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야사람들은 가야산 여신을 높여 '정견모주'라 우러르게 되었다 한다.
대가야 건국설화인 정견모주설화 입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를수도 있을 우리의 역사를 위와같은 건국설화를 캐릭터화해 나타내보는건 어떨까 해서 선정했습니다.
3. 청도 - 감물염색
감물 염색은 일명 ‘시염(柹染)’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특유의 염색법이자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염색법이다.
청도 감은 수분 함량이 많고 씨가 없어 염색 재료로 아주 적합하다. 염색에는 태풍으로 낙과된 떫은 감을 찧어 사용한다. 감물 염색 원단은 코팅 효과가 좋아 비를 맞거나 땀에 젖어도 옷이 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방충 효과와 항균성이 뛰어나 곰팡이나 벌레가 슬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진드기의 활동을 줄여 주며, 피부병 및 아토피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아울러 자외선 차단성이 높고 통기성이 좋아 시원하며, 소취성(消臭性)이 우수해 땀 냄새가 나지 않아 여름철 의복으로 적합하다. 또한 항균성과 방충성이 뛰어나 좀이나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아토피, 천식 등 면역 질환을 억제해 기능성 침구와 의류 상품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이 다양한 색상으로도 표현이 가능합니다.
청도가 감이 유명하던데 감물로 염색을 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선정해 보았습니다.
감물로 염색을 할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감물염색 활성화를 위한 청도시의 노력에 비해 결과가 썩 좋지않아 ^^;;;
인지도 부분에서 대중적이지 않고 신선한소재라 판단했습니다.
4. 영덕 -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장군
처음에는 의병 100명을 모아 영릉의병장(寧陵義兵長)의 이름으로 출발하였다(1906). 4월에는 울진 장흥관에서 일본군선 9척을 파괴하고, 6월에는 원주에서 일본군들을 습격하였다. 이어서 삼척, 강릉, 양양, 간성 등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그들이 전선을 가설하는 작업을 공격하여 방해하기도 하였다. 1907년에는 울진 수동으로 돌아와 다시 의병을 증모하였고, 그 병력으로 영덕의 관공서를 습격하였다. 또한 일본군이 청송에 집결해 있을 때 이를 공격하기 위해 의병을 가까운 청부역으로 진군시켰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의병을 자청하여 약 3,000여 명이 증가하였다. 일본군이 강력한 의병 소식에 영양의 주곡(注谷)으로 퇴각하자 이를 공격하여 격퇴시켰다. 진보(眞寶)의 삼위(三危)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경주의 대산성(垈山城)에서 연일 대일 전투를 벌였고, 청하로부터 조현(鳥峴)에 이르러서도 적과 싸워 이겼다. 그리고 소항을 지나 대동(大洞)으로 진출하였다. 10월에는 영해경무서를 습격하였다.
전국의 의병은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이인영(李麟榮)을 중심으로 13도 의병이 연합하여 양주(陽州)에 집결하였다(1907. 12). 신돌석도 경상도 의병을 대표하여 의병 1,000여 명을 모아 양주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의병 재편 과정에서 신돌석은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당시 의병은 양반이나 유생 출신이 주로 지휘하였기 때문이었다. 전국 의병연합은 계획과 지도력의 미흡으로 서울 공격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신돌석은 경상도 영해로 돌아와 평해의 독곡(獨谷)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1908. 1). 1908년 3월에는 수비(首比)로 돌아와 안동, 울진, 삼척, 강릉 등지의 의병과 결합하여 의병세력을 강화하고, 춘양, 황지, 소봉동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그 후에도 평해 한곡에서(7월), 희암(9월)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0월까지 진지를 이동하면서 활약한 후, 겨울이 되어 다음해에 다시 기병하기로 하고 의병들을 귀가시키고 눌곡(訥谷)에 있는 부하 의병인 김상열(金相烈)의 집에 칩거하고 있었는데, 이들 형제들이 모의하여 그만 신돌석을 타살하고 말았다.
최초의 평민출신 의병장입니다. 용맹한 그의 일대기를 기리는 기념비나 글들은 많지만
딱히 캐릭터화 되있는건 없다고 판단하여 선정해 보았습니다.
사실 "유금사"설화를 선정하고 싶었으나 캐릭터화 하기에는 부적합한 부분이 많았고 설화보단 역사적으로 있었던 인물을 바탕으로 캐릭터화 하는게 더 좋지 않나 판단해서 선정했습니다.
5. 예천 - 통명농요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예천 통명농요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의 농민들이 매년 모심기를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르는 농요로 조선 중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심기할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와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와 <상사듸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에이용소리>, 논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봉헤이>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부녀자들이 부르는 <삼삼기노래>·<베틀노래>·<도해따기> 등이 있다. 모심기소리나 논매기소리가 모두 느리고, 길게 빼는 음을 많이 쓰고, 노래를 메기고 받을 때에 앞소리의 끝과 뒷소리의 앞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불러 이중창적인 효과를 내는 점은 예천 통명농요의 특징이다.
중요무형문화제 제84호로 지정되었다.
경북 도처에 많은 농민들이 계실탠데 그분들의 힘겨운 노동을 승화한 농요를 캐릭터화 시켜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서 선정해봅니다. 2015년 공모전 대상이 이와 비슷한 주제를 채택해서 적절한 주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6. 영천 - 보현산 천문대
영천시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지점, 청송군 현서면(縣西面)과 경계를 이루는 보현산(1,124m) 정상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1996년 4월 설립하였고, 광학천문연구부 소속이다. 최첨단 종합천문대로서 국내 광학 천문관측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항성·성단·성운·은하 등의 생성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3만 156㎡의 부지에 자리잡은 천문대는 1.8m 광학망원경동, 태양망원경동, 코팅·공작동, 방문객센터, 연구관리동, 연구동 등으로 이루어졌다. 광학망원경동은 1층에 관측실, 간이주방, 화장실, 분광실험실, 2층에 기기보관실 및 BOES 분광실, 3층에 통풍실, 4층에 광학망원경이 있다. 태양망원경동은 관측실과 망원경 돔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팅·공작동에는 진공증착실(코팅실), 공작실, 변전실이 있다. 방문객 센터에서는 천체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간단한 기념품을 실비로 구입할 수 있다. 연구관리동은 1층에 행정지원시설 및 실험시설, 2층에 연구시설과 관측자 숙소가 있다.
국내 최대 지름인 1.8m 반사망원경과 태양플레어 망원경 등을 갖추고 있는데, 건물 4층에 설치된 1.8m 반사망원경은 영하 20℃, 습도
95%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
또한 매년 보현산 별빛축제를 열어 관광객 유치에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보현산 천문대 유명한 장소중 하나입니다만 한번 넣어봤습니다.
"Star YeongCheon" 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별이라는 이미지로 도시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영천
그 이미지의 중심에는 보현산천문대가 있는데 천문대 자체를 캐릭터화 시켜보면 어떨까 해서 선정했습니다.
첫댓글 1/2/3/4/5 중 자신있는 것으로 선택하셔서 구체적인 진행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