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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딱정벌레가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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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연/ 강남 대모문학 140p 2008. 11.
아들을 잃었다. 모든 것이 허망하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결국 무에서 무로 돌아간다는 말을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을까. 오여사는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저 멀리 창 너머로 떨어지는 오동 나뭇잎이 보인다. 봄인가 하더니 벌써 가을로 접어든다. 새는 산에서 산으로 날을 때마다 씨앗을 옮긴다. 그 씨앗은 바위 깊숙한 곳에조차 뿌리를 내리고 서식한다. 뿌리를 내린 식물들은 바위를 부드럽게 한다. 부드러워진 바위는 흙으로 변하고, 아늑한 곳에선 이끼가 자라기 시작한다.
새싹은 씩씩한 나무로 자란다. 바람은 조그만 벌레들을 싣고 와 그 나무와 산에 내려놓는다. 갖가지 작은 동물들이 산을 찾아와 산의 몸에서 먹을 것과 쉴 곳을 얻는다. 다음해 봄에도 새는 다시 찾아와 씨앗을 떨어뜨리고 그렇게 다시 시작 할 것이다. 그녀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비명으로 간 아들이 그리워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치맛자락으로 연신 훔친다. 얼마동안을 서럽게 울다가 상념을 지우려고, 거실의 소파로 가서 풀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무료해지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었다. 화면에서는 높은 산에 사는 양떼들의 움직임을 비추고 있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습니다.’
텔레비전의 앵커는 말한다. 그녀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몰라 하면서 화면에 집중한다. 다시 앵커는 말한다. 스프링 영양은 아프리카에서 사는 동물이다. 주로 높은 곳에서 풀을 뜯어 먹으며 산다. 처음에는 한 곳에서 아주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다가, 앞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먹어 버리면, 뒤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차지하려고 다투면서, 그 대열 앞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가 점점 빨라진다.
또 그 뒤쪽의 양들이 점점 속력을 내어 앞으로 오려고 하기 때문에, 앞쪽에 있는 양들은 더욱 선두를 유지하려고, 더 빨리 앞으로 달린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주객이 전도한다. 풀을 뜯어 먹는 것이 원래 양들의 목적이었지만, 서로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다투게 되면서, 무조건 앞으로 달린다.
앵커는 여기에 문제가 생겨서 죽는 다는 말을 하면서, 세차게 앞으로 뛰어가는 양떼들의 화면을 보여 준다. 무슨 일이 생기는 지도 모르고, 결국 모든 양떼들이 전 속력으로 앞을 향하여 달리다가, 절벽에 다다랐어도 멈추지 못하고, 그 속도에 밀려서 절벽으로 떨어져서 죽는다. 뒤쪽에서 달려오는 양떼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같은 운명이 되어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는 말을 한다.
오여사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앵커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말을 하였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비단 동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계속한다. 우매한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일류발전에 공헌하지 못하고, 물욕이나 출세욕 때문에 결국은 파멸하는 것을 본다. 그녀는 앵커의 말을 듣고서야, 어렵게 검사가 된 자기의 아들도 스프링 영양처럼 우매한자가 되어서 죽었다는 생각을 하고, 더욱 가슴을 치며 슬퍼한다. 그녀가 얼마동안 울고 있는 사이에 화면이 바뀌면서 인류는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점을 부각하는 화면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가 얼마 전에 겪었던 아이엠에프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인류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그들의 사고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발견으로 수많은 사람이 수혜를 보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은 과학의 힘보다는 보편적 가치에 무게를 더 두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래서 변호사나 회계사를 더 선호한다. 경제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의 과학자 정신이 없었다면 인류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전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밝은 세상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오여사는 앵커의 말을 듣고서야 신부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우매한 자들이 그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또다시 오열한다. 한동안 오열하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에 전화 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아들의 전화였다. 집들이를 한다고 오라는 전화였다.
열심히 일한 덕에 장남은 좋은 집을 장만했다. 오여사는 그게 너무 기뻐서 춤을 추고 싶다. 하지만 막내아들은 다른 표정이다. 형에 대한 응어리가 많은 데, 그것을 풀지 못하고 있다.
“전 안가요. 어머니나 갔다 오세요.”
“무엇 때문에 그래?”
오여사는 막내에게 눈치가 보였지만 형네 집에 가자는 말을 한다. 막내는 매몰차게 안가겠다고 한다. 오여사는 막내의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막내의 얼굴을 처다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모든 것을 잊어버릴 때도 되었지만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기 형에게서 받은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오여사는 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저절로 한숨을 쉰다. 왜 그렇게 장남 일철에게만 공을 들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장남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온 식구들이 굶주리고 일했다. 그 덕분에 장남은 검사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다. 장남을 돕기 위해서 다른 형제들은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얻은 것이 없다.
오여사는 모든 희망을 장남에게 걸었다. 그런 결정 때문에 형제들은 일만 죽도록 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논에서 장남의 학비를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형제들은 장남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모두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 이유들로 형제들 간에도 문제가 생겼다. 둘째 이철 역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서 집을 뛰쳐나갔다.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였다. 하지만 배운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했다.
부두의 노동자가 되었다. 역전에서 등짐 나르는 일을 했다. 일일 노동자로 전봇대를 세우는 막일도 했다. 하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 늘 배가 고프고 일에 지쳤다. 그렇게 막노동자로 전전하다가 식당 주방에서 잡일을 하게 되었다.
이철은 배운 것은 없지만 붙임성이 있다. 이내 주인의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이유로 작은 물건들을 구입해 오는 일을 맡아서 했다. 막힌 하수구를 뚫는 일이나 허드레 일도 불평 없이 감내하면서 주인의 신용을 얻었다. 그의 착실함이 주인의 신임을 얻어서 주방 일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철은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장남 일철의 학비와 형제들의 배고픔에 대한 것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자기는 힘든 일을 감내하고, 배고픔에 지쳐가면서도, 장남의 학비와 가족들을 돕는 일에는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이철의 희망은 장사를 해보는 것이어서, 조금씩 돈을 모아서 마침내 노점상을 차렸다.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점차 장사 요령이 생기고 나아졌다. 조금의 여우가 생기면서 형의 학비를 기꺼이 대주었다.
이철은 결혼할 연령이 되었지만 마땅한 색시가 없었다. 오여사는 그것이 늘 걱정이 되어서, 며느리 감을 구해 보았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하다는 이유로 시집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오여사는 둘째 아들의 혼기를 놓친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마음이 아팠다. 장남은 형제들의 그런 도움을 받고 출세를 했지만, 요즘에 와서 형제들을 외면하고 있어서 불만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형제들이 자기형 집에 발걸음을 안 한지가 오래 되었다.
“둘째 형도 안가는 데 내가 왜 가요.”
“너희들 모두 왜 그러니, 형이 집들이를 한다는데 안가면 어떻게 하니, 같이 가보자?”
오여사는 명령하듯이 막내아들에게 다시 말했지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녀 역시 장남이 배은망덕한 것 같아서 때로는 화가 치밀기도 했다. 오죽하면 형제들이 저럴까 하면서도, 잘못하면 형제들 간에 불화가 생길까봐서 그 동안 형제들을 다독거리고 지냈다. 장남은 자기가 잘나서 출세를 했는지 알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형제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도 없었지만 공부를 했다. 집안의 처지로 보면 공부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형제들의 도움으로 성공했다. 어렵게 공부한 장남이 고시에 합격하자,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 왔다. 지금은 고시 합격자가 너무 많아서 어림도 없는 일이 되었지만, 부잣집 규수가 선택되어서 돈 안들이고 쉽게 결혼했다. 처가에서 큰 집과 자동차를 사주었다. 형제들의 눈에는 그러한 것들이 자기만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였다.
“너 어미 말 안 들을래, 형이 좋은 일로 오라고 하는데, 안가면 어떻게 해, 잔말 말고 빨리 가자,”
“입을 것도 없어요, 무얼 입고 가요, 자기들은 잘 나가는데, 싫어요.”
그때서야 오여사는 막내의 행색을 다시 살펴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막내 말대로 늘 일복으로 입는 카키색잠바와 색이바랜 청바지가 남루하게 보였다. 막내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변변하게 입고 갈 옷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입을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옷장을 열고 옷을 찾아보았다. 전부 낡은 옷들뿐이다. 형들이 입다 아래로 물려준 옷들이 대부분이어서 남루하기가 그지없고, 그나마도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들뿐이다. 오여사는 모든 것이 장남 하나 출세시키려고 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더욱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오여사는 막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장남 집으로 가려던 생각을 고쳐먹고 자기 방으로 갔다. 너무 서러움이 북받쳐서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서 옛날 일들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못사는 집으로 시집을 보냈는지, 부모가 원망스러워서 밤낮없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녀는 신랑의 얼굴도 한번 못보고 시집을 왔다. 부모님이 싫은 결혼을 억지로 시켰다. 그래서 팔려가는 당나귀처럼 결혼을 하고 장손 집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중매쟁이는 쌀가마니나 쌓아놓고 산다는 말을 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시집을 와서 처음으로 부엌에 들어가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부엌에는 다 깨진 항아리와 무쇠 솥이 검은 얼굴을 하고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왜 우는 거여, 못 마땅한 일이라도 있는 거여,”
“아녀요,”
“그려, 새색시가 울면 안 되는 거여,”
그녀는 부엌에서 혼자가 되면 서러워서 눈물을 찍어냈다. 매일 식구들의 세끼 식사를 만드는 일이 중노동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더 큰 고생을 했다. 지나치게 큰 항아리에 보리쌀을 퍼 담았다. 그것을 멀리 떨어진 우물가로 이고 갔다. 찬물에 치대서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었다. 뽀얗게 치댄 보리쌀을 무쇠 솥에 넣고 부글거리도록 삶은 후에, 대소쿠리에 담아 장독 위에 널어놓았다. 나중에 필요한 만큼 덜어서 밥을 지어먹었다.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되는 이런 일들이 처음서부터 끝까지 고통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디 밥 먹겠니? 새 색시가 손이 부지런해야 하는 거여, 이게 뭐냐, 부엌을 해 놓은 꼴하고는, 너의 친정에서는 무엇을 가르쳤냐?”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까지 들먹일 때마다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농촌 일은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고 끝이 없었다. 일을 하고 나서도 일한 흔적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보면 늘 놀은 것 같았다. 장독대 위에 삶아서 널어놓은 보리쌀을 닭들이 헤집어 놓았다. 텃새들도 달려들어 먹어서 새 쫓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강아지와 닭 새끼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아무 곳에나 오줌과 똥을 누어서 일을 만들었다.
텃밭에 심어 놓은 푸성귀 밭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망가뜨리기가 일쑤다. 개 밥그릇이 여기저기 나뒹굴기도 하고 열어 놓은 고추장 독에 닭털이 빠져 들어가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아침내 다듬어 놓은 푸성귀 더미를 무참히 짓밟아 놓으면, 그것을 건사하지 못했다고 야단을 맞았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친정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중매쟁이 말만 믿고 딸을 내어 준 것이 원망스러워서 서럽게 울었다.
“시집이나 잘 보내면 되어,”
“한글이라도 깨우쳐야지요,”
“그건 배워서 뭣해, 언문 배운다고 누가 밥 먹여 줘,”
친정아버지는 여자가 공부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그녀를 하대했다. 양성평등인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말이 안 되었지만, 아들만 사랑하는 편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운 것이 전부다. 아버지는 무조건 딸아이는 시집이나 잘 보내면 된다고 했다. 배운 것이 짧기는 신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농사일만 한 손이 쇠스랑 같았다.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거여, 친정에 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러,”
“싫으면 못사는 거지, 왜 못 와요, 엄마는?”
친정어머니는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그 집 귀신이 되라는 말을 했지만 하루도 못살 것 같았다. 동네라고 해야 이십호를 조금 넘기는 아주 작은 시골 촌 동네다. 아침에는 청승맞게 수탉이 울고 뻐꾸기가 울었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친정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친정아버지의 불같은 성미를 잘 알고 있어서 무조건 참고 살았다.
그녀의 시댁은 먹을 것이 부족했지만 형제 넷이 같이 살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산비탈 논 몇 마지기와 밭 몇 때기가 고작이다. 하지만 형제들은 열심히 일했다. 아침에 밭으로 나가면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매일같이 점심을 만들어 머리에 이고 밭으로 가는 일을 반복했다.
“오늘은 뭐여, 어디 이렇게 먹고 힘들어서 일하겠어,”
남편은 늘 먹는 식사가 빤한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형제들 보기가 민망해서 괜히 어깃장 놓는 말을 했다. 매일같이 꽁보리밥이다. 반찬이래야 열무김치, 풋고추 몇 개와 텃밭에서 따온 상추가 전부다. 그녀는 얼굴을 못 들었지만 형제들은 아무 말 없이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입에 넣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지독하게 돈을 모으려고 해서 잔소리를 했다.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것조차 아끼라고 성화였다.
시어머니는 무엇이든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자기에 싸서 들고 읍내로 나섰다. 참외 몇 개와 상추, 고구마 삶은 것 한 바구니, 옹골진 수탉 한 마리, 무엇이든지 팔 수 있는 것들을 들고 나갔다. 도토리도 주어다 팔고, 어쩌다 잡아온 꿩이나 산토끼 같은 것을 읍내로 들고 가서 팔아왔다.
“어머님, 뭐 반찬거리 좀 사다 주세요,”
“배부른 소리한다. 있는 대로 먹어야지, 텃밭에 널려 있는 것이 먹을 건데 무슨 반찬 타령이냐?”
시어머니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불호령을 했다. 그래서 늘 푸성귀만 먹었지만, 다른 먹을거리는 늘 부족했다. 매일같이 자고 일어나면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다. 그녀는 눈물과 한숨 속에서 끝없이 부엌일만 했다. 그녀의 남편은 같이 살아 주는 것을 고마워했다.
형제들은 아무 말 없이 땅을 찍었다. 남의 산자락을 삽으로 일구어 밭을 넓히는 일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일은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돈을 모으려고 하다가 결국은 병이 들어서 하루아침에 죽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남편 역시 젊은 나이지만 어머니를 따라서 요절했다.
오여사는 하루아침에 시어머니와 남편을 잃자, 앞이 캄캄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의 형제들도 각자 제갈 길을 찾아서 떠났다. 하지만 모두들 어려운 생활들을 했다. 시어머니의 잘못된 판단이 모든 가족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시어머니의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여사는 그런 연유로 좀 여유가 생기면 남편의 형제들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형제들 역시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장남 일철이 검사가 되고 난 후부터는 무엇인지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남이 집들이까지 한다고 하니, 오여사는 이제 삼촌들에게조차 변명하기가 어려웠다. 자기 자식들도 이해를 못하는데 삼촌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답답했다.
오여사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막내는 자기형의 집들이에 가볼 생각은 하지 않고, 등지게 위에 주섬주섬 농기구들을 올려놓았다. 그것을 등에 지고서 말없이 집밖으로 나갔다. 하루쯤 일을 쉬어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역시 형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보였다.
오여사는 방안에서 막내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장남의 집들이에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푸석한 자기의 얼굴이 마치 남의 얼굴처럼 보였다. 대충 얼굴에 분을 바르고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치마에 묻은 먼지들을 습관적으로 한번 털고는 방에서 나와 사립문을 나섰다. 하지만 막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머리를 푹 숙이고 신작로를 따라서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
“어디가, 아들네 집에 가는 거지? 집들이를 한다며,”
오늘 따라 정류장에는 동네 사람들 몇 명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 댁이 부러워하며 물었다. 오여사는 막내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생각과는 다르게 활짝 웃었다.
“참 좋겠다. 아들이 부잣집에 결혼하고, 검사가 되고, 집도 장만해서,”
광주 댁이 또다시 너덜을 떨자, 다른 아낙들도 맞장구를 쳤다.
“막내아들도 이제 일 좀 그만 시켜, 오늘도 일하러 가던데, 잘사는 장남이 좀 도와주어야지, 그렇게 일만 시키면 되겠어,”
오여사는 대꾸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버스가 이내 도착해서 올라탔다. 그녀는 재빠르게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후에, 동네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후에 자는 척했다.
장남 집에 오여사가 도착한 것은 오후 한시경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읍내 유지들도 모여 있었다. 검사라는 직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늘 그렇지만 성공한 사람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그녀는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온통 막내 생각뿐이다. 지금도 땡 빛에 나가서 밭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즐거운 표정을 했다.
장남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다. 괜한 심술이 생겨났다. 장남의 좋은 집이 허상으로 보였다. 막내의 두꺼비 손이 보였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지만 막내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죽은 남편의 얼굴이 보여서 먹을 수가 없었다. 며느리가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고운 얼굴로 아양을 떨었지만, 결혼을 시키지 못한 두 형제들의 얼굴이 앞을 가려서 눈물이 핑 돌았다.
오여사는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아들이 피우는 담배를 하나 빼어 가지고 집밖으로 나왔다. 담뱃불을 붙인 후에 한 모금 빨아보았다. 입 안이 써서 못 피우겠다. 심술이 나서 잘 자란 정원 잔디밭에다 내 던졌다. 푸르게 잔디밭 정원을 걷는데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그녀의 집에 있는 황소에게 푸른 풀을 먹이로 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정원에 놓여 있는 하얀 테이블이 시골집 찌그러진 밥상과 대조가 되었다. 어지럼증이 났다. 하지만 테이블에 주저앉아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른 자식들이 생각나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둘째는 접어 두고라도 지금까지도 막내를 너무 고생시키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장남이 잘 살면 형제들도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막내는 그것을 일찌감치 알아챘는지 일만 꾸역꾸역 했다. 배우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형을 위해서 일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다. 오늘 역시 그래서 집들이에 오지 않고, 밭으로 나갔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여사는 파란 잔디밭 끝자락에 피어 있는 빨간 장미가 매우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림책 속에 있는 허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또다시 막내 생각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다 제복이지, 이제 어떻게 해, 장남이 잘살면 도와주겠지,’
그녀는 막내의 생각을 지우려고 그렇게 혼잣말을 했지만 장남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겨, 아무 걱정 말고 너는 공부나 혀,”
“그냥 동생들과 같이 일하고 싶어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면 된다. 집안에 기둥이 있어야 하는 거여,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장남은 자기만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무엇이든지 제일 좋은 것은 장남 차지였다. 장남에게는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주면서도, 다른 아들들에게는 먹는 것조차도 시어머니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구박을 했다.
장남은 새벽에 이 십리 길을 걸어서 성당학교에 갔다. 눈과 비를 맞기도 하고 아침이슬을 밟기도 했다. 어린나이에 어머니의 성화를 잘 참고 견디어 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먼 거리를 매일 걸어서 학교에 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집에서 먼 길을 걷는 것만도 지치는 일이 되었다. 매일아침 외로운 싸움을 했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재를 몇 번이나 넘어야 한다. 겨울철에는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떠서 학교에 다니기가 더욱 어려웠다.
오여사는 아들을 데리고 해가 뜨는 시각까지 학교로 같이 갔다. 저녁에도 멀리까지 가서 아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왔다. 장남은 피곤에 지쳐서 돌아왔다. 늘 배고파 있었다. 허기가 질 때마다 남의 밭에서 무, 고구마, 참외, 오이, 같은 것을 따먹었다. 늘 문제가 되어 말썽이 되었다. 동네 밭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따먹는다고 야단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여사는 아무 말 없이 그 값을 치렀다.
성당 학교는 교육 전도사들이 공부를 가르쳤다. 가난하여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나이가 많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주 어린애들도 함께 공부했다. 성경 중심의 교육이 많았지만 일반 정규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도 시켰다. 성경 학교에 다니는 장남의 책가방 속에는 성경책과 프린트 자료들 몇 가지와 도시락, 연필 한 자루가 고작이었다. 제대로 된 학교교재가 없었다. 그래서 정규학교 학생들이 보던 교재를 얻어다가 보았다.
장남은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열심히 노력했다. 오여사 역시 매일 극성스럽게 물어보고,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든지 해결해 주었다. 장남의 반복적인 학습으로 취미가 붙었다. 공부가 습관화되면서 점점 어려움이 없어졌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이 생기고, 학문에 대한 즐거움이 생겼다.
장남은 성당의 많은 사람들도 사귀게 되었다. 삼 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졸업 후에 읍내에 있는 정규 고등학교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오여사는 아들의 모자와 교복을 만지면서 감격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한 아들이 대견하여 밤새도록 눈물을 지었다.
장남은 점점 공부에 자신과 소신이 생겼다. 어머니의 희망을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다. 형제들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장남의 공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양보했다. 가난 속에서도 장남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불평하지 않았고 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장남은 고등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었다. 몸은 수척해지고 말랐지만 눈동자는 반짝였다. 매사에 침착성과 수재가 갖는 전형적 모습을 보여줬다. 성당의 신부님은 장남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님이 오여사를 불렀다.
“아드님을 잘 두셨습니다.”
“모두가 신부님의 덕택입니다.”
“아닙니다. 천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목자가 될 훌륭한 재질이 있습니다. 신학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학자요?”
“모든 학비를 저희 성당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신부님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부님 앞에서 죄인처럼 흐느끼며 너무 기뻐서 울었다. 신학교에 가기 위한 추천서를 써준다고 했다. 신학이 싫으면 과학자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은 긍정을 낳는다. 반면에 악은 악을 낳고 옳은 것은 언제 옳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치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우매한자는 그것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소수의 경제이론가나 정치이론가가 잘못 판단하면, 국가가 거덜 나거나 망하기도 하지만, 과학의 힘을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했다.
오여사는 신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고맙기는 했었지만 아들은 달랐다. 법학을 공부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다. 오여사는 신부님이 부른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신부님과 장남의 생각에 차이가 있었다. 고마움에 대한 것을 아는 그녀는 갈등을 느꼈다.
“법학이 뭐냐? 그거 하면 밥 먹는 거니,”
“법률에 대한 성질 효력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어려운 소리 모르겠다. 신부님이 그렇게 원하는데 배반하면 쓰겠냐?”
“배반이 아닙니다. 법학자가 되어 보답하면 됩니다.”
“난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아들의 말대로 법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신부님은 성직자로 키우고 싶어 했다. 하나님의 사업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며 가치 있는 일인지를 설명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풀잎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해결해 주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가 있는 일임을 강조했다.
오여사는 한 번 먹은 마음을 꺾지 않았다.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고 훌륭한 법학자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에 입학 원서를 냈다. 학비가 없었지만 신부님의 제안을 거절하는 그녀는 대단했다.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고, 형제들 역시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묵묵히 형제들은 배고픔을 참으며 장남의 성공을 위해 희생했다.
장남은 우수한 성적으로 일류 대학에 합격했다. 그녀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 시골 동네에 천재가 났다고 야단이 났다. 신부님과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장남은 열심히 공부한 덕에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오여사는 졸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장남은 지금부터가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가족들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들은 무척 실망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취직이 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다시 하숙비와 생활비, 책값을 형제들이 형편대로 부담했다.
장남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를 했지만 첫해 시험에서 낙방했다. 가족들은 판검사 자리는 맡아놓은 것으로 알았다가 실망했다. 하지만 오여사는 그까짓 것 한번 떨어진 것을 가지고 대수냐고 했다. 그렇게 한 것이 몇 년에 걸쳐서 낙방을 했다. 그 후에 가족들은 사법시험 이야기만 나와도 짜증을 냈다. 장남은 한번 공부한 책은 밑줄을 긋기도 하고, 수도 없이 뒤져본 책이어서 다시 보는 것이 짜증이 난다고 했다. 새 마음으로 다음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책을 다시 구입해야 공부가 된다고 했다. 많은 법률들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새 책을 사는 일과 학비 부담이 매년 많아져서 형제들의 부담이 많아졌다.
“책만 사면 무엇 하니? 그냥 쓰도록 해라,”
장남은 소리를 내어 울었다. 가족들은 이제 고시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장남만을 위해서 그만큼 했으면 되었지, 어떻게 더 하느냐고 모두가 눈치를 주었다. 운이 없으니 그만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마땅한 일을 찾아서 취직을 하라고 가족들 모두가 말했다. 장남은 포기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래서 늘 풀이 죽어 있었다. 공부를 해도 잘 되지도 않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 해에 몇 명이나 뽑아,”
“이 삼십 명을 뽑는 모양입니다.”
“모두 수재들만 시험을 볼 거 아니야, 별 따기 같구먼, 그래 몇 번이나 낙방한 거여?”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 봤다. 그럴 때마다 오여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수재가 났다고 자랑을 늘어지게 했는데, 얼굴을 못 들고 다녔다. 확률적으로 보면 가망성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천명이 넘게 매년 사법고시 합격자를 낸다. 하지만 당시는 아주 적은 인원을 뽑았다. 그래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장남은 무척 고민했다. 계속해야 되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몇 년째 집안의 도움을 받으며 고시공부를 했지만 점점 더 자신이 없다. 공부를 포기하고 취직을 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오여사는 형제들에게 다시 도움을 청하여 학비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장남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혼란스러워 공부가 되지 않았다. 점점 회의에 빠지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장남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수도 없이 생각했다. 매일 술 먹는 일이 점점 심해지고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고 실패를 몇 번씩이나 거듭하고 나서야 합격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가족들은 장남이 고시에 합격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으로 알았지만 그렇지 않아서다.
오여사는 장남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 막내아들이 우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기쁨의 눈물로 볼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옴두꺼비 같은 막내아들의 손등을 보면 눈물이 저절로 났다. 사랑으로 키우지 못했다. 밭에서 밤중까지 일만 하며 형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냈다.
한사람의 성공이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가족들이 오로지 장남만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 성공한 아들을 생각하면 기쁨이 넘쳤지만, 다른 형제들에게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집들이는 무엇 때문에 해, 다른 형제들도 생각해야지’
오여사는 정원을 걸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장남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마음과는 다르게 집안에서는 장남의 친구들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오여사는 정원의 한쪽구석을 서성거리다가, 또다시 장남이 가족들 문제를 잘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진다. 장남은 공부만 하느라고 땀 흘려 일해 본 적이 없다. 지식인의 이기심이 흐르고 있다. 수고의 대가 뒤에는 반드시 피와 눈물이 있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막내는 고생스러운 일이 끝나기를 염원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새벽에 밭에 나가 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혼자 울기도 하고 희망이 없는 것을 탄식했다. 성공한 장남 역시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어떻게 감내 할지 몰라서 걱정은 하고 있었지만, 형제들에게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오여사는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생각하면 생갈 할수록 장남의 집들이에, 형제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가슴 아팠다. 가족들이 만류했던 것처럼 집안의 대들보 만들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장남이 노는 방에서는 화투치는 소리와 술잔을 놓고 떠드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술잔이 몇 잔씩 돌아가고 모두가 배부르게 먹었다. 왁자지껄하게 마시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장남의 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여기, 대접 하나 주세요,”
“대접은 무엇 하게,”
“마누라한테 일 시켜서 그러냐?”
“무슨 그런 말은, 대접 가져오는 것이 무슨 일이라고,”
장남의 처 인숙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큰 대접을 하나 가져 왔다. 소주를 대접에 따랐다. 한 병의 소주로도 대접이 가득차지 않았다. 인숙에게 건네주며 신고식으로 마시라고 했다.
“저 술 못 마셔요,”
“못 마시는 것이 어디 있어요, 사모님이 못 마시면 누가 마십니까?”
“저 사모님 아닌데요,”
“하여튼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인숙이 못 마시면 남편이 벌주로 마셔야 한다고 했다. 장남이 할 수없이 벌주를 대신 마셨다.
“이런 날은 취해야 되는 겨,”
“더 이상은 안 되어,”
“ 안되기는, 남자 놈이 술 몇 잔 마셨다고 엄살은, 마누라 불러라, 네가 못 먹으면 마누라가 먹어야지,”
장남은 어쩔 수없이 또 술을 마셨다. 친구들은 계속 술 마시기를 강요했다. 여러 명의 친구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검사 길들이기를 했다.
“에이! 죽기 아니면 살기지,”
“그럼,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내가 먹을 테니, 너도 마셔야 되어,”
“걱정을 하지 마,”
장남의 친구들은 술을 마시면서 객기와 오기를 부리고, 경쟁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술은 술을 부른다. 처음에 사양을 하던 장남도 나중에 우매한 자가 되었다. 장남은 술이 취하자 오히려 자기가 한술 더 떠서 술을 계속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지혜는 명철한 사람에게 있지만 미련한 자의 속에도 있다. 그렇게 먹기 시작한 술은 장남과 친구들 모두가 정신을 잃었다. 그들은 마치 미친 병사들처럼 변해 갔다. 검사인 장남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막내 생각 때문에 오여사는 정원 가장자리를 오랫동안 서성거리다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장남이 술이 몹시 취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만 마셔라”
“왜 그러세요. 어머니는 저에게 무엇을 해준 게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혼자였습니다.”
벌써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고생했던 시절을 잊고 있었다. 장남의 마음은 이미 어머니와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욕구로 차 있음을 알았다. 오여사는 그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이 귀찮고 슬퍼졌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 하지만, 아들의 내면에 있는 마음을 알았다. 술이 취한 장남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여사는 처음으로 이성을 잃은 장남의 모습을 보았다. 어린 시절에 품안에서 있었던 그런 모습은 간데없고 오만함과 방자함이 있었다. 몹시 슬펐지만 할 수없이 못들은 척하고 건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장롱을 열고 베개를 꺼내어서 베고 한쪽 구석에 누웠다. 좁은 공간에서 작은 시계는 풀벌레 소리를 냈다. 누워 있는 자기의 모습이 한쪽 벽면의 거울에 비쳐서 보였다. 웅크리고 누워 있는 자기의 모습이 마치 시골집의 늙은 개처럼 보였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며느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소리가 등 뒤로 났다.
“어머니, 여기계셨군요, 주무세요?”
며느리가 누워 있는 시어머니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한마디 했다. 하지만 오 여사는 못들은 척했다. 그러자 며느리는 홑이불을 꺼내서 덮어 주고 이내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대로 누워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눈물이 났다.
장남은 몹시 취했다. 다른 손님들은 다들 돌아가고, 이제 아주 친한 친구들만 남았다. 인숙이가 그들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했지만, 이차를 가야 한다고 했다.
“영감님 한잔 더 하셔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래, 이제 자네가 맘에 드는군, 라스배가스로 가지,”
모두가 취해서 비틀거렸다. 동네 골목길을 벗어나면서 제 멋대로가 되었다. 방뇨하는 자, 고성을 질러 대는 자, 자동차 길을 휘젓고 건너려 하는 자, 늦은 시간에 돌아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자, 모두가 미쳤다. 밤거리의 술 취한 자들은 앞을 보지 못하고 눈이 멀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어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행동을 했다. 그들은 술 취한 자들이 밤거리를 휘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랐다. 죽음으로 가고 있는 악마들 같았다. 이성을 잃은 장남의 친구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이상이 쓴 ‘오감도’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행동했다.
술 취한 장남 일철의 눈에는 안개가 보였다. 전조등의 붉은 빛이 행복의 문으로 가는 길로 보였다. 하지만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트랙에 들어선 것처럼 백 미터 경주를 하고 지나갔다. 헤드라이트 속에 물체들이 보였다가 살아져갔다. 속도를 내는 자동차들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지나가고 있다.
간혹 성경을 옆에 끼고 새벽에 교회로 가는 사람이 있다. 우유와 신문, 두부를 파는 사람들이 새벽을 깨우고 있다. 그들과 함께 술 취한 자들이 도로 위를 비척거리며 걷는다. 일철의 눈에는 좁고 긴 길이 멀리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행복의 문이 그곳에 있었다.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곳으로 딱정벌레들이 느린 걸음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
행복의 문으로 가는 길은 고개 마루와 들꽃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하늘 위에는 길 잃은 새가 울며 날고 있다. 행복의 문안에 서있는 어머니의 환영을, 일철은 자동차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불빛 속에서 보았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그 순간 고난의 세월 속에 있었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와 탄식소리도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일철은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행복의 문을 통하여 멀리 보이는 넓은 대지 위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누워서 별을 보고 싶었다. 멀리서 누군가 잠을 깨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였지만, 그 자리에 잠들고 싶어서 누웠다.
‘거기 눕지 마! 어서 일어나 거라,’
꿈속에서처럼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래도 누워 잠들고 싶었다. 파랑새가 나르고 새들이 숲에서 노래하는 소리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파열음이 큰 소리로 새벽의 공기를 갈랐다. 딱정벌레가 된 자동차가 일철의 몸통 위로 재빠르게 지나갔다.
오여사는 아들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장남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대들보가 부러지는 소리도 함께 났다. 그녀는 소스라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들을 목 놓아 불렀다. 그리고 미친 듯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걸음에 내달려 큰 길로 나갔다. 어둠을 가르며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 속에 누워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큰 소리로 아들을 부르며, 자기가 아들을 죽였다고 몸부림쳤다.
“내가 나쁜 년이지, 신부님의 말씀을 따라야 했는데,”
그녀는 오열하면서도 신부님의 은혜를 배반해서 죄를 받았다는 자책을 한다. 그녀는 어떻게 할지를 잠시 생각하다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이 잠들고 있는 곳으로 갔다. 딱정벌레가 지나간 자리에는 핏물이 낭자했다. 그녀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장남의 시신을 만지며 통곡했다.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 희망을 잃었고 집안의 대들보를 잃었다.
신부님의 말처럼 인생은 풀잎이며 이슬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검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을 몰랐다.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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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theme)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은 과학의 힘이다.
머리 좋은 인재들은 고시장으로만 몰린다.
젊은 세대들이 출세지향과 이기주의에 빠져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 속에서 서로 도와주며 사는 것을 모른다.
부모들 역시 자녀를 출세시키려는 욕망이 너무 지나친 세상이 되었다.
첫댓글 오여사의 가슴 뜯는 후회에서 물질만능주의 세태, 올바른 삶이란 무었인가 자식 키우는 부모들에게 주는 경고 메시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조성연선생님 고맙고 반갑습니다 새해 건강과 행운 기원합니다
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려운 건, 오여사 같은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계속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디 이런 글들과 우린 문인들의 노력이 이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길 빕니다. 조성연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올려주신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감명깊게 잘읽었습니다 인간의 부귀 영화 어머니 오여ㅕㅕ사의 희망 형제들의 행복 마음대로 되지않는 인생 탐물백년 일조진미라 즉 인간의백년동안재산을 모은것도 하루아침의 티끌 그래도 조용하고 가난한행복 이것이 최고가아닐까요